소설리스트

251화.하늘섬 (1) (251/500)

 # 251

하늘섬 (1)

우주를 유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오롯이 혼자인 기분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을 디딜 땅이 없어진 기분은 발이 닿지 않는 물속을 언제까지고 헤엄쳐야 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더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다행히 공기가 없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더해졌다.

“…….”

고독과 불안.

누군가를 만날 수조차 없는데다 혼잣말조차 위험한 상황은 제아무리 로칸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섬뜩하군.’

혼잣말이라도 가능하면, 음악 듣기 기능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덜 심심하겠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미스랄즈오름][Lv 408]

이 공간 속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청소부라 불리는 존재가 굶주린 채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으로 뱀과 같이 움직이는 놈의 위치를 파악한 로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려 400레벨이 넘는 데다 어지간한 날개로는 따돌릴 수 없을 정로도 빠른 속도, 샌드웜 이상으로 먹성 좋은 그 식성을 지닌 녀석은 하이 마스터라 해도 감히 비벼 보기 어려운 강력한 존재였다.

어둠에 퇴화된 두 눈 대신 소리에 더욱 민감해진 놈의 귀는 작은 소음도 잡아낼 수 있기에 소리가 날 만한 행동은 자제하고 조용히 이동을 계속했다.

‘이러니 천상에 도달하기 어렵지.’

창세의 왕이라 불리던 오딘조차 닿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주라면 잠시 다른 행성에 머물러 쉴 수라도 있겠지만 이곳에는 그런 곳조차 없다.

그 끝에 도달할 때까지 딱 하나의 행성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행성에서 잠시 쉬어 가려다가, 오딘도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었다.

‘일단 거기까지는 가야 해.’

물론 그곳을 통하지 않고도 천상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보다 쉽게 천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힌트도 있었다.

전생에 대한 마지막 기억 속에 ‘그 행성’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알려졌으니까.

그리고 그 방법은 이미 로칸의 수중에 있었다.

‘참자.’

어둠에 동화된 로칸의 이동이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찾았다.’

마침내 하나의 섬같이 생긴 행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늘섬에 진입합니다.]

[주의하십시오. 하늘섬은 기존의 평판과 명성이 통용되지 않는 지역입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강제 추방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페이크지.’

게임에 있어서 툴 팁 한 줄, 단어 하나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 한마디 말에 따라 효과나 공략 방법이 좌우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 ‘자격’이라는 말이 속임수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것을.

흔히 자격 증명이라 하면 퀘스트를 떠올리지만 하늘섬은 달랐다. 아예 입장을 할 수 없으니 자격 증명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초대장.

하늘 티켓이라 불리는 그것이었다.

“정지! 처음 보는 종족인데 너는 무엇이냐!”

비행 모드를 유지한 채 천천히 하늘섬으로 하강하자 잽싸게 날아와 로칸을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다.

새도 인간도 아닌 기이한 모습.

그러나 로칸은 이런 존재를 본 적이 있었다.

게으른 미식가 타에민.

그를 비롯해 지상에도 몇몇의 조인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천상으로 향하고 있는 인간입니다. 잠시 하늘섬에서 쉬어 갈 수 있기를 청합니다.”

놈을 대하는 로칸의 모습이 더없이 정중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대는 무려 400레벨 이상, 그랜드 마스터이기 때문이다.

[하늘섬의 경비병 타코민][Lv 403]

“흥, 고작 그 실력으로 천상에?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로군. 장담컨대 천상에 도착하자마자 기어 다니는 벌레에 죽임을 당할 거다.”

조인족인 그에게 벌레란 어떤 의미일까. 먹잇감이다.

그런 벌레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모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로칸은 침착했다. 그의 말처럼 천상이 만만할 것이라고는 로칸 역시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여길 왔잖아, 인마.’

하지만 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으니까.

지상에는 마스터급 사냥터는 적당히 있어도 하이 마스터가 사냥해서 충분한 경험치를 먹을 만한 몬스터가 거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레벨 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잡몹을 잡아 성장하려면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로칸이 이곳에 들른 것이기도 했다.

하늘섬은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하이 마스터가 잡기에 충분한 몬스터들이 득실득실한 곳이니까.

‘최초에 독식까지 개꿀이지!’

최초 보너스에 혼자서 다 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사냥터!

아무리 천상까지 갈 길이 바쁘다지만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로칸은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조인족의 꼬리털.

다른 이름으로 하늘 티켓이라 불리는 그것!

하늘섬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의 역할을 하는 그것을 꺼내자 타코민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야, 이 구린내 나는 깃털은? 킁킁, 타에민 그 뚱땡이 것 같은데?”

잠시 킁킁거리더니 누구의 것인지까지 곧장 알아맞힌다.

이름도 비슷한데 혹시 친척 같은 게 아닐까?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타코민은 슬쩍 로칸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몸을 틀며 마지못해 하늘섬으로의 입장을 허락했다.

“규칙은 규칙이니 할 수 없군. 내려가라, 인간.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두건대 허튼짓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면 당장 쫓겨날 줄 알아!”

“감사합니다.”

타코민의 으름장에도 로칸은 빙긋 웃으며 예를 다해 인사 한 뒤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하늘 성채에 입장하셨습니다.]

조인족의 마을, 하늘 성채에 발을 디뎠다.

‘여기가 하늘섬 유일의 거점이란 말이지.’

하늘 요새에는 수많은 조인족들이 걷거나 날아다니고 있었다.

수가 많아 좀 정신이 없긴 했지만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은 하늘섬에서도 유일한 거점이니까.

자칫 평판이라도 낮아지는 날에는 갈 곳 없이 떠돌다 다시 천상으로 향해야 하는 수가 있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오딘은 처음에 하늘 티켓이 없어 이곳에 입장해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 후 몇 번이나 이곳을 그냥 지나치고 천상에 오르려 했지만, 번번이 이후의 관문들을 통과하지 못해 죽임을 당했다.

결국 어찌어찌 하늘 티켓의 존재를 알아내고 어렵게 구해 내 하늘섬에, 하늘 요새에 들어왔지만 조인족들이 그를 무시하고 상대도 해 주지 않는 바람에 천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상점에서 뻔히 천상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아이템을 판다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기억해 낸 로칸은 그래서 천상에 오르기 전 철저히 준비를 했다. 평판을 끌어올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작전을 짰다.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면 다가오게 만들면 그만이지!’

광장 한쪽에 좌판을 열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응?”

“저 못생긴 종족은 뭐지?”

처음에는 무관심이었다. 약자에 대한, 하등 종족에 대한 멸시와 무관심이 싸늘하게 다가왔을 뿐이다.

예상은 했지만 누구도 로칸이 늘어놓은 물건들은커녕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그러나 로칸은 상처 받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예상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화르르륵!

로칸은 그 자리에 즉시 불을 피웠다.

마을의 광장에 해당하는 곳이지만 애초에 흙바닥이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치이이이이익.

다음 로칸의 행동은 간단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고기를 작게 잘라 끼워 굽기 시작한 것이다.

황실 주방장의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한 특제 꼬치구이였다.

꼬치를 굽는 것이야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요리 스킬이 들어갔다.

직화로 구웠지만 고기 위에 뿌려진 소스와 향신료 냄새가 섞이며 솔솔 맛있는 냄새를 주변으로 풍겨 갔다.

“킁킁!”

“저게 뭐야?”

“츄릅! 이게 무슨 냄새지?”

발길을 절로 이끄는 냄새에 조인족들이 참지 못하고 몰려들었다.

짐짓 점잖은 체를 하지만 애가 닳는 눈빛과 침 삼키는 소리가 그들의 상태를 절로 알 수 있게 만들었다.

“크흠! 이거, 파는 건가?”

그중 용기 있는 조인족 하나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자 로칸 역시 자본주의 미소로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하나 드릴까요? 선착순 무료 시식 이벤트 중입니다. 부담 없이 드시고 입소문 좀 많이 내 주세요.”

“무, 무료 시식? 크흠! 이벤트 중이라면 어쩔 수 없군. 하지만 맛이 없다면……!”

놈은 마지 못하는 척 꼬치구이를 가져가더니 날카로운 부리로 슥 빼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 맛은……!”

다음 수순은 뻔했다. 이 순간을 위해 미식가 타에민을 다시 찾아가 몇 번이나 연습을 하고, 확인을 받았으니까.

조인족 중에서도 미식가인 타에민의 입맛에 맞춘 조리법이니 다른 조인족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미식가가 맞았군.’

사실 내심 걱정도 했었다.

미식가를 자처했지만 사실은 괴식가라든가 하는 거라면 어떻게 하나 눈치를 살폈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기우였던 모양이다.

등 뒤로 용만 지나가지 않았지 마치 요리 만화에 나오는 듯한 격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을 보며 로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도, 나도 줘!”

“밀지 마! 내가 먼저야!”

“선착순이란 소리 못 들었어? 새치기 하지 마!”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조인족들이 난리가 났다.

선착순과 무료라는 마법의 단어가 두 개나 결합되자 체면도 버리고 안달을 냈다.

“줄을 서시오!”

순간적으로 시장 바닥 같은 난리가 났지만 로칸의 한마디에 가볍게 정리가 됐다.

이쪽이 줄이라느니, 새치기하지 말라느니 티격태격하면서도 빠르게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당신에 대한 타게민의 호감도가 약간 상승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타호친의 호감도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타파만의…….]

꼬치구이를 일단 한번 먹어 본 녀석들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로칸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로칸의 평판을 바꾸어 놓았다.

[당신에 대한 조인족의 평판이 호기심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아직 멀었다. 관심도 아닌 호기심에 불과했으니까.

그래도 선착순이라고는 했지만 몇 명이라고 말하지 않고 준비해 온 꼬치구이가 다 떨어질 때까지 무료로 제공한 보람이 있었다.

재료만 더 있었다면 관심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로칸이 요리 도구를 집어넣으며 대기하던 이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좀 더 특별한 메뉴가 궁금하신 분들은 내일 아침 10시에 이곳으로 다시 나와 주세요!”

“으악! 내 차례였는데!”

“오오오옷!”

아쉽게 자신의 앞에서 끊긴 조인족은 절망했지만 한번 꼬치구이를 맛본 조인족들은 환호했다.

오늘과 같은 메뉴를 계속 팔아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매일 먹을 의향이 있는데 더 특별한 메뉴라니? 뭔지는 모르지만 절로 침이 고였다.

“받으십시오. 내일 이걸 가져오시면 특별히 우선적으로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하지만 로칸의 서비스 정신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쉽게 꼬치구이를 맛보지 못한 대기 인원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며 내일의 우선권을 부여했다. 혹시나 이것으로 인해 애써 올려놓은 호감도와 평판이 떨어질까 싶은 까닭이었다.

[당신에 대한 타이룽의 호감도가 약간 상승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타치밍의…….]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서비스 마인드에 대기하던 조인족들이 감동했다.

로칸이, 음식과 서비스로 조인족들을 조련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