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나가 사냥 (1)
하늘섬은 말 그대로 섬의 형태를 갖추었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섬의 모습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 ‘반대편’ 또한 존재했다.
암석 지대와 같은 모습을 하지만 중력은 똑같이 존재하는 차가운 대지가 하늘섬의 이면에 존재했다.
“세계의 끝 같은 느낌이군.”
한 발자국. 낭떠러지 같은 경계에서 한 발자국을 더 내딛자 세상이 반전되었다.
몸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더니 척박한 땅에 발이 닿고 밤처럼 은은한 빛만이 흐르는 전혀 다른 필드가 나타난 것이다.
[하늘섬의 이면에 진입하셨습니다.]
[최초 입장 보너스로 3일간 획득 경험치가 30% 증가합니다.]
[최초 입장 보너스로 3일간 드롭률이 30% 증가합니다.]
[타이틀 ‘선구자’의 효과로 최초 입장 보너스가 10% 강화됩니다.]
어디 그뿐인가? 퀘스트 덕분인지 필드 전체가 하나의 사냥터이자 던전처럼 인정되었다.
최초 입장 보너스가 적용되며 무려 40%의 추가 경험치와 드롭률이 주어졌다.
“꿀 좀 빨겠군.”
새삼 퀘스트를 수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카이!”
로칸은 적응하자마자 곧장 카이를 소환했다.
우주와 같던 천상의 길목에서는 소환이 불가능하다는 알림이 나타났지만 하늘섬은 제대로 된 필드로 인식이 되는지 소환이 가능한 것이다.
역시 정찰을 할 때는 하늘이 최고다.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오른 카이가 날개를 퍼덕이자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지고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 단위로 생활하는 건가?”
필드에도 돌아다니는 몬스터와 나가들의 모습이 몇몇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을 단위로 뭉쳐서 생활을 하는지 한참을 이동하자 몇 개나 되는 나가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고, 로칸은 고민에 빠졌다.
저것들을 과연 단신으로 몰살시킬 수 있을까?
조인족의 천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존재인 그들을?
하나같이 하이 마스터 레벨일 게 뻔하니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었다.
치고 빠지는 방식을 택한다면 결국은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로칸은 이곳의 주민이 아니었다.
만약 실수로라도 죽음을 맞이할 경우, 다시 지상에서 부활해서 천상 대포를 타고 지루한 여행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조인족과의 평판이나 호감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짜증 나는 일일 것임에는 분명하다.
“일단 한 놈.”
그렇기에 로칸은 간을 보기로 했다.
따로 떨어져 사냥 중인 나가를 발견하고 놈을 향해 급강하를 시도했다.
“붉은 유성.”
화아앗.
밝은 달빛이 비추는 정도에 불과한 대지에 태양이 떨어졌다.
주위가 환해지자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은 나가가 무방비 상태로 변했고, 로칸이 놈을 짓뭉개며 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나가의 비늘은 단단했다.
드래곤 스케일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갑옷으로 만들어도 유니크 등급은 너끈히 받을 만큼 그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로칸의 공격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놈을 짓뭉개고 마운트 자세로 올라탄 로칸은 그대로 배틀 액스를 내리찍었다.
장작을 패듯 훤하게 드러난 놈의 가슴을 쪼개고 심장을 확인했다.
‘없군.’
그리고 정말 심장이 없음을 확인했다.
심장이 없으니 심장 폭발에 따른 즉사 효과도 없다.
휘리릭!
“어딜.”
팔을 들어 아직 죽지 않았는지 날카롭게 후려쳐오는 놈의 꼬리 공격을 튕겨 내고 다시 한 번 놈에게 배틀 액스를 박아 넣었다.
생명력의 수준을 가늠했다.
지상에서야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유저들이 밝혀낸 정보를 토대로 몬스터의 생명력과 특징 등을 확인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천상은 전생에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는 미지의 영역. 이제부터는 로칸이 직접 몸으로 겪고, 알아 갈 필요가 있었다.
“이건 어때?”
푸확!
다음 실험은 꼬리 자르기였다.
도마뱀처럼 혹시 꼬리를 잘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호기심에 꼬리를 잘라 낸 것이다.
이번에도 비늘이 거세게 저항을 했지만 로칸의 공격력이 한 수 위였다.
“키아아악!”
몇 번을 내리치자 뎅겅 꼬리가 잘렸고, 나가는 비명을 질렀다.
[나가의 혈독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만독불침의 효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혈독까지? 흠.”
이 정도면 꽤 까다롭다. 비늘도 단단한데 심장을 터트려 일격에 죽일 수도 없고, 심지어 피를 흘리면 그 자체로 무기가 된다.
물론 로칸 자신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만 다른 이들이라면 무척이나 곤란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뭐, 그런 의미에서 놈들에게는 내가 천적인 셈인가?”
나가를 마저 죽여 놓고 놈을 연구하던 로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이 마스터급의 존재답게 생명력은 제법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것도 아니다. 오롯이 생명력만 따지자면 하늘섬의 다른 몬스터들이 더 많았으니까.
로칸의 공격력이라면, 만약 광풍 현신과 전신 무쌍까지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순살이 가능할 정도.
이정도면 마을 단위를 공략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확실히 오버 밸런스이긴 하군.’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참 지랄맞게 강하긴 하다.
아무리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본 적 있고, 또 두 개의 마스터 스킬까지 최상급으로 뽑아냈다고는 하지만 동급의 존재를 순살하고 다대일의 전투를 우습게 여길 수 있다니.
놈들의 마스터 스킬이 어떨지에 따라 전투가 꽤 난잡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그러다 만약 죽어 버리면?
“어쩔 수 없지.”
하늘섬까지 다시 날아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몸을 사릴 수도 없지 않은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절대자’가 될 수도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더 로드에서 몸을 사리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될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로칸이기에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왔나?”
하지만 그 전에, 붉은 유성의 이펙트와 굉음을 듣고 몰려온 나가들부터 상대해야 했다.
“하이 마스터가 되면 좋은 게 뭔지 알아?”
“……쉬이익?”
“바로 기본 스킬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다! 고작 네놈 정도를 상대로는 마스터 스킬도 필요가 없지!”
순간, 로칸이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갔다. 엄청나게 강력한 발 구름을 견디지 못하고 움푹 파이고 망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로칸은? 당연히 새롭게 나타난 나가의 앞에 나타났다.
콰앙!
스킬 투지의 발걸음.
지속형으로 쓸 수도, 강력한 발 구름을 이용해 폭발적인 속력을 내는 단발성 스킬로 사용할 수도 있는 레이지 버서커의 하이 마스터 스킬이 발동되었다.
“쉬…….”
퍼억!
로칸의 배틀 액스가 일망의 거리낌도 없이 놈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아예 사선으로 베어 버릴 듯 심장 위치를 지나치며 내리그어졌다.
살육의 일격.
놀랍게도 이 스킬은 그가 그동안 쌓아 올린 킬 수에 비례해 공격력이 증가하는 스킬이었다.
제법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을 겪으며 수만 마리 그 이상을 베어 낸 로칸의 대미지 증폭률은 실로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피의 살육 효과가 발동됩니다.]
[공격력과 생명력이 증폭됩니다.]
새로운 패시브 스킬 피의 살육.
피보다는 독에 가까운 그것이지만 어쨌든 피는 피였다. 나가의 피를 뒤집어 쓴 로칸의 전투력이 더욱 상승했다.
“츠츠츳! 죽어라!”
나가는 ‘온도’를 볼 수 있다. 때문에 은신 같은 하찮은 수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반대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암습에 능하기도 했다.
허공에서 태어나듯 모습을 드러낸 나가 도적이 로칸을 향해 독이 진득하게 묻은 단검을 휘둘렀다. 그것도 난무에 가까운 연속 공격이다.
“투기의 갑옷!”
터엉?
“……!”
그러나 그조차 로칸의 몸에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투기의 갑옷. 생명력의 하락까지 막아 주지는 못하지만 투기를 일으켜 적의 공격이 몸에 박히는 것을 막아 주는 스킬이 발동하며 놈의 공격을 튕겨 내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반탄력에 나가의 손이 어지러워졌고 빈틈을 드러냈다.
“광살.”
퍼버버버버벅!
멍청히 서 있는 나가의 몸은 샌드백과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매끈하던 나가의 몸이 넝마가 되어 쓰러졌다.
그 모습에 덤벼들던 다른 나가들의 몸이 우뚝 서 버렸다.
공포. 생명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공포가 그들을 엄습했다.
“나가신의 주박!”
아예 공격 패턴마저 바꾸었다. 직접 공격을 가하는 대신 주술 계열의 힘을 사용하는가 싶더니 중독 효과가 있는 주박의 힘이 로칸을 옭아매었다.
마스터 스킬인지 더럽게도 단단한 속박의 힘이 로칸을 붙잡았다.
“심장 비수!”
그 틈을 노리고 다른 나가 하나가 로칸에게 뛰어들었다.
지금이라면 로칸의 심장을 터트리고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이 역시 마스터 스킬인지 그 기세가 매섭다.
“흥!”
그런 놈을 보며 로칸이 코웃음을 쳤다.
이전이었다면 이런 속박기가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겠지만 레이지 버서커로 전직한 지금은 아니다.
“피의 집중.”
“……!”
푸욱!
로칸이 단검 하나를 꺼내 스스로를 찔렀다. 강렬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대신 모든 종류의 속박과 상태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레이지 버서커의 탈출 스킬이 로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 안 돼……!”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달려들던 나가는 로칸의 배틀 액스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급히 몸을 틀어 봤지만 관성을 이기기에는 무리였다.
마주 짓쳐 온 로칸을 마주했다가, 메두사를 바라본 것처럼 딱딱히 굳어 버려,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후우!”
주술사를 포함해 모든 나가들을 정리한 로칸은 몸 상태를 살폈다.
투기의 갑옷으로 방어하기는 했지만 연속된 나가의 단검 찌르기는 제법 많은 생명력을 갉아먹었다.
게다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찌른 것도 상당한 생명력 감소를 가져왔다.
“젠장. 노멀 등급 단검이라도 하나 구해야겠군.”
노멀 등급의 아이템은 경매장에도 거의 올라오지 않기에 아쉬운 대로 레어 등급의 단검을 구입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증폭시키는 대미지률이 있다 보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가지 개선점을 체크해 두고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포션으로 생명력을 모두 회복시켜 두고 이번에는 나가 마을을 탐했다.
그러나 무작정 쳐들어가서는 답이 없었다.
좀 전처럼 로칸을 묶어 버리는 주술이 연속적으로 발현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따로 있었다.
[맹독의 나가족장 오스렌][Lv 372]
무려 372레벨의 나가족장.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으로 멀리서도 마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로칸이기에 놈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계는 없군.’
조인족 이외에 적수가 없어서일까, 나가족의 마을은 경비가 약했다. 그나마 있는 방어 시설이나 경계 초소도 대공 초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상전보다는 하늘에서부터 강하하며 전투를 시작할 때 가장 강력한 조인족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로칸은 그 점을 이용했다.
“디그독.”
투두두두두두.
하늘에만 관심을 쏟는 나가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기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