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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화.붉은 도끼 드록쉬 (1) (262/500)

 # 262

붉은 도끼 드록쉬 (1)

‘하…… 이거 참.’

일단 말을 잘못한 것은 자신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게 나오는 드워프를 보자니 그건 그것대로 짜증이 났다.

“이 붉은 도끼 드록쉬 님께서 본때를 보여 주마!”

‘아무리 천상이라지만 상당히 얕보이고 있나 보군.’

이곳 천상에서 자신이 얻은 명성은 아직 하찮은 정도이니 그럴 만도 했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할 로칸이 아니다.

“흠, 여기서 할 건가?”

“허……! 좋아. 따라와라!”

자신을 밝혔음에도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는 로칸의 모습에 녀석이 또 한 번 발끈했다.

그가 앞장서서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대련장.

깔끔하게 PK를 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고, 대련에 ‘조건’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몸의 이름을 듣고도 여기까지 따라온 걸 보니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오늘 네놈의 버릇을 똑똑히 고쳐 주지!”

[붉은 도끼 드록쉬 님께서 결투를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여기까지 온 마당에 망설일게 무어냐. 로칸은 먼저 결투를 승인하고 조건을 조율했다.

“조건은?”

“흥! 무엇이든지!”

놈은 순수하게 자신을 박살 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지 어떤 조건이든 수용할 의사를 비쳤다.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속으로 피식 웃은 뒤 제멋대로 조건을 적어 넣었다.

[결투 조건 : 패자는 1개월간 승자의 노예가 된다.]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결투에서 패배하는 순간, 패자는 1개월 동안이나 승자의 모든 요구 조건을 들어주어야 했다.

“으드득! 좋아, 아주 개처럼 부려 주지!”

[상대가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결투는 결투의 신의 공증을 받습니다.]

결투의 신의 공증이란 것은 별것 없다. 아이템 계약서와 같은 효과를 발휘할 뿐이다.

드록쉬는 뜨거운 콧김을 거칠게 뿜으며 수락했고, 곧 전투가 시작되었다.

[결투가 시작됩니다. 5, 4, 3, 2, 1, 시작!]

“스로잉!”

선공을 취한 것은 드록쉬였다. 들고 있던 배틀 액스를 부메랑처럼 던지며 로칸을 압박해 왔다.

여전히 자신이 한참 우위라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무협지에서처럼 공격 세 번을 양보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성질도 급하군. 튕기기!”

투웅.

제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로칸은 코웃음을 치며 대응했다.

피할까도 생각했지만 놈의 다음 행동이 궁금해졌다.

생성 스킬을 발휘해 가볍게 배틀 액스를 튕겨 내고 놈을 똑바로 지켜보았다.

‘호오?’

배틀 액스는 본디 투척 무기가 아니다.

주 무기에 해당하는 것.

때문에 녀석이 무기를 다시 회수하려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드록쉬는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충분히 상정 범위라는 듯 거침없이 다음 도끼를 꺼내 던졌다.

이번에는 다리와 몸통 양쪽이다. 어떻게든 로칸이 피하도록 만들겠다는 듯한 투로였지만 의도대로 움직여 줄 로칸이 아니었다.

자세를 낮추고, 돌진의 힘을 끌어 올렸다.

“폭주 전차!”

쿠웅, 쿵.

돌진력과 더불어 방어력까지 증가하는 스킬의 힘이 로칸에게 덧입혀졌다.

날아오는 도끼들을 튕겨 내고 오히려 로칸의 몸이 놈에게로 쏘아졌다.

“감히 힘으로 해보겠다는 거냐!”

그 순간, 놈의 몸 역시 붉게 달아올랐다.

그저 마나의 특성만이 아닌지 가까워지는 것만으로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콰앙!

이내 두 몸뚱이가 한 지점에서 부딪쳤다.

강력한 충격과 함께 서로를 밀어 냈다.

“큭.”

하지만 로칸은 마냥 이득을 볼 수 없었다.

힘이라면 자신이 있지만 놈 역시 생성 스킬 또는 조합 스킬이었는지 만만치 않은 힘을 쏟아 낸 것이다.

치이이익!

게다가, 부딪힌 지점이 붉게 달아올랐다.

불에 달궈진 쇳덩어리에 부딪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엔 내가 간다! 폭염의 주인!”

그때, 드록쉬가 먼저 다음 행동을 취했다.

마스터 스킬을 발동시키며 로칸을 압박했다.

화르르륵!

붉은 홍염이 그를 중심으로 요동쳤다.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네 갈래로 나뉘어 로칸의 사방을 점했다.

그리고는 로칸이 서 있는 땅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원을 그렸다. 서로 교차하며 마법진을 만들어 내었다.

“큭.”

치이이익.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것은 채찍 같은 불꽃의 줄기들이었다.

길게 늘어진 그것들은 요사스러운 움직임으로 로칸의 양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화염 저항력이 높아 그 자체로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강하게 당겨와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그리고 그때, 드록쉬의 전신에 퍼져있던 열기가 양손과 도끼로 모여들었다.

나무꾼의 것과 비슷한 외날 도끼가 붉게 달아올랐다.

콰앙! 쾅! 쾅!

[붉은 도끼에 적중되셨습니다. 타격 부위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타격이 누적될 경우 큰 내구력 하락과 받는 대미지 증폭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드록쉬에게 붉은 도끼란 위명을 가져다준 스킬이 로칸의 몸 위에서 터져 나왔다.

‘이거였군.’

놀랍게도 붉게 달아오른 도끼는 상대 갑옷, 타격 부위를 녹이는 힘을 가졌다.

사자왕의 흉갑이야 대미지 감소뿐 아니라 엄청난 내구도를 가지고 있어 영향이 적었지만 이런 스킬이라면 확실히 방어력이 대단한 놈들도 때려잡을 수 있겠다.

하지만 거기까지.

볼 것을 다 보았으니 이제 반격의 시간이었다.

“광풍 현신!”

“허억!”

후두두둑!

거신의 모습으로 화한 로칸은 압도적인 힘으로 속박을 풀어냈다.

지금의 로칸이라면 화염 저항력이 아니더라도 순수한 힘으로 뿌리칠 수 있었다.

“왜, 이런 건 처음인가?”

퍼억!

자신을 두들겨 대던 드록쉬를 가뿐히 후려쳐 밀어 낸 로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익! 덩치만 커진다고 될 줄 아느냐!”

그러나 호전적인 드워프답게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힘에서 밀린다는 것은 단 일격으로 확인했지만 싸움은 힘이 전부가 아니니까.

놈은 오히려 거리를 벌리더니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아공간?”

인벤토리라도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또 한 자루의 도끼를 꺼내 움켜쥐었다.

처음 던졌던 것과 비슷한 배틀 액스였다.

“웨폰 익스플로젼!”

“……!”

휘이익. 콰앙! 퍼버버버버벅!

그다음 놈이 취한 행동은 무척 놀라웠다. 배틀 액스를 냅다 집어 던지더니 허공에서 폭발시킨 것이다.

마치 세열 수류탄 같았다.

폭발 그 자체의 위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수백 조각으로 쪼개지며 튀어 나간 무기 조각들이 로칸의 거체를 때렸다.

‘제법이군.’

지상에서도 비슷한 스킬을 쓰는 자를 보긴 했지만 이건 수준이 달랐다.

‘무기 등급의 차이인가?’

사용자의 수준과 파괴한 장비의 등급 차이겠지.

로칸은 방어했지만 무시 못 할 만큼 대량으로 깎여 나가는 생명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도 놈은 계속해서 무기를 던져 파괴하고 있었다.

‘미친놈!’

딱 봐도 최하가 레어 등급의 무기들이다. 팔아 치우기만 해도 상당한 코인을 벌 수 있을 텐데 그것들을 소모품처럼 마구 써 대고 있다.

‘이쪽이 불사라는 걸 모르나 보군.’

자세히 보니 투척을 하면서 점점 몸이 뒤로 밀리고 있다.

힘이 부족해서? 아니다.

자신의 필살기 격인 스킬을 몇 방이나 맞고, 그것도 몸집이 커진 만큼 더 많은 파편에 노출되었음에도 끄떡없이 다가오는 로칸에게 겁을 먹은 것이다.

실제로는 로칸도 놀랄 만큼 빠르게 생명력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무기 조각 정도로는 로칸의 심장이나 머리를 파괴하기에 위력이 부족했다.

“투지의 발걸음.”

콰앙!

이번에는 로칸의 차례다.

웨폰 익스플로젼 따위 날아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달려든 로칸이 거력을 일으켰다.

스킬 반동과 긴장으로 굳어있는 드록쉬를 향해 절망적인 난무를 펼쳐 냈다.

“광……!”

“항복!”

[붉은 도끼 드록쉬 님이 항복했습니다.]

[승자는 로칸 님입니다.]

[결투 조건이 성립됩니다. 조건을 어길 시 영혼이 파괴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놈을 난도질하려던 로칸의 배틀 액스가 허공에서 뚝 멈추었다.

하이 마스터쯤 된다면 광살에 담긴 힘을 느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 제기랄. 그걸 전부 견뎌 내다니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 거냐!”

“존댓말.”

“뭣?”

“존댓말을 써야지, 노예 씨.”

“큭!”

분통을 터트리던 드록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영혼이 파괴되기 싫으면 1개월 동안 꼼짝 없이 노예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그제야 인식한 것이다.

때문에 분한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말은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이런 작은 요구라도 거듭해서 거부할 경우 결투의 신이 내리는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제길…… 날 어쩔 셈이냐……요.”

존댓말이 익숙지 않은지 어색하게 덧붙이는 드록쉬. 화들짝 놀라 말을 덧붙이는 걸 보니, 뭔가 그만 알 수 있는 제지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라 말을 덧붙이는 걸 보니.

‘글쎄. 뭘 해 볼까?’

천상이란 곳에 대한 이해도 다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드록쉬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보너스에 불과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득.

덕분에 따로 이 녀석을 데리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조건을 걸었던 것이기에 로칸은 잠시 고민했다. 딱히 할 것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궁금증부터 풀기로 했다.

“그 전에 한 가지 묻지. 그 웨폰 익스플로젼이라는 스킬……. 돈을 엄청나게 잡아먹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남발한 거지?”

“그야 이기기만 하면 네 녀석의 주머니를 털…… 헙!”

씨익.

아깝다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던 드록쉬는 음흉한 로칸의 미소에 스스로의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반대의 경우도 각오했겠군?”

“아, 아니. 그게…….”

“그래. 노예에게 사유재산 같은 건 필요 없겠지.”

“잠깐!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요!”

그가 하려던 짓이 무엇인지 로칸이 알아차린 것이다.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지만 이미 로칸은 마음을 정했다. 만약 졌으면 자신이 당했을 일이니 죄책감 따위가 있을 필요 없지 않은가?

“가진 거 다 내놔. 털어서 나오면 10코인에 한 대다.”

로칸은 당당하게, 드록쉬에게 삥(?)을 뜯었다.

“으허헝! 이 나쁜 놈아! 요!”

코인뿐이 아니었다. 로칸은 내친 김에 그가 아공간에 가지고 있던 것들까지 몽땅 털었다.

무기만 해도 서른 자루에 가까웠고 지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값나가는 광물들도 다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거군.”

이 과정에서 드록쉬가 높은 등급의 무기를 아낌없이 던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승리 후 로칸에게 삥을 뜯을 생각도 있었지만 그 자신이 뛰어난 대장장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재료와 제작 여건만 갖춰진다면 레어 등급의 장비쯤은 어렵지 않게 찍어 낼 수 있는 드워프 장인.

보통 대장장이들은 자신의 제작물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데, 웨폰 익스플로젼이라는 무지막지한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면 이놈도 정상은 아니다.

“흥! 결국 무기야 남을 죽이기 위한 소모품인데 목적만 달성하면 되지! 요.”

무기는 소모품. 맞는 말이다. 투척용 무기라는 것도 있으니까.

물론 이 경우는 주 무기를 투척용으로 쓴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 또한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단순 공격력만 따진다면 주 무기 쪽이 우월하니까.

“그렇군.”

로칸도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써먹어 볼까?’

1개월 동안 대장간을 빌린 뒤, 그 안에 가둬 놓고 장비만 찍어 내도록 시켜도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고작 천상에서 잔뼈가 굵은 하이 마스터를 그 정도로 써먹으면 서운하다.

로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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