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4화.붉은 도끼 드록쉬 (3) (2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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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끼 드록쉬 (3)

스습 스습.

개미굴의 모든 통로에서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여왕개미의 페로몬에 노출된 것처럼 홀린 듯한 눈빛이었지만 당연히 여왕개미를 보는 것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흡! 온다, 요!”

철천지원수를 보는 것과 같은 살의.

살육 개미들이 드록쉬와 로칸을 보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개미가 아니라 마치 전차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벌써 수십의 살육 개미를 처죽인 드록쉬조차 헛바람을 집어삼킬 정도였다.

“좋군! 광풍 현신, 전신 무쌍!”

그런 놈들을 맞이한 것은 역시 로칸이었다.

벌써 1백 마리를 넘어가고 있는 놈들의 모습에 드록쉬가 급히 웨폰 익스플로젼을 펼칠 준비를 했지만 그를 제지하고 먼저 나선 것이다.

로칸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배틀 액스에는 물러서지 않는 강대한 힘이 실렸다.

‘이런 훌륭한 경험치 덩어리들을 양보할 순 없지!’

“폭주 전차!”

콰앙!

열을 지어 다가오던 살육 개미들과 진짜 살육 전차가 부딪혔다.

땅에 발을 디뎠을 때에도 무려 1미터는 족히 되는 거구였지만 거신으로 화한 로칸에 비하면 진짜 개미와 같았다.

짓밟고, 뭉개고, 부수며 밀고 들어간 로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촤르르륵.

뒤를 슬쩍 돌아보며 드록쉬와의 거리를 가늠한 뒤 사슬의 끝을 잡고 배틀 액스를 힘껏 휘돌렸다.

“투지의 발걸음, 휠 윈드!”

대량 학살용 스킬 휠 윈드!

거기에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더 강한 위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 주는 투지의 발걸음이 더해지자 그 위력은 극도로 강화되었다.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살육 개미들을 부수고 분쇄하며 순식간에 놈들을 도륙했다.

“히익! 이 미친놈이!”

덕분에 드록쉬 역시 크게 놀랐다.

매 전투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로칸의 저력은 끝이 없었다.

자신과 싸울 때 쉽게 결판이 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 될 정도로, 로칸의 전투는 무지막지했다.

스습!

하지만 그렇다고 편안히 구경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로칸이 저만치 앞에서 살육 개미를 몰아잡고 있지만 어쨌든 다크니스 오러를 마신 것은 그였으니까.

로칸을 피해, 혹은 다른 경로로 찾아온 살육 개미들은 여전히 그를 노리고 몰려든 상태였다.

“제길, 얕보였다 이거지? 이 몸이 붉은 도끼 드록쉬 님이시다!”

물론 그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여분의 무기만 많다면 로칸처럼 살육 개미들을 몰살시킬 자신도 있었고, 광역기인 마스터 스킬이 없더라도 고작 살육 개미들을 상대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로칸은 그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디그독, 전설을 타는 자!”

새롭게 추가되는 살육 개미들을 휠 윈드로 갈아 버리고 있는 와중에 드록쉬의 쪽으로 디그독을 소환해 낸 것이다.

그리고 전설을 타는 자를 사용해 강화했다.

레벨로 따지자면 카이를 소환해야 맞겠지만 개미굴이라는 특성상 비행 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카이보다는 디그독을 소환해 강화했다.

켈베로스처럼 머리가 세 개로 늘어나고 덩치가 거대해진 디그독은 바위도 깨뜨리는 집게발로 살육 개미들을 마구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걸로 시간은 끌겠지.’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레벨 업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 카이와 달리 천골마와 디그독은 처음의 레벨 그대로이니까.

땅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특수 능력은 천상에서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천상에서 새로운 탈것들로 교체할 필요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아직 명성이 부족해 탈것 구입이라는 콘텐츠가 해금되지 않았다.

진화한 디그독이 그럭저럭 잘 버텨 주고는 있지만 곧 떼로 몰려든 살육 개미들에게 쓰러질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로칸은 휠 윈드를 돌리는 손에 힘을 더했다.

다크니스 오러의 힘을 해제할 포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슬슬 기어 나오고 있는 전투 살육 개미를 넘어 병정개미, 여왕개미까지 몽땅 꼬여 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으니까.

전투는 한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개미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육 개미들은 정말 어마무시하게 쏟아져 나왔다.

살육 개미를 넘어 전투 살육 개미들이 나타난 것은 대략 1천 마리가 넘어갈 즈음. 그러나 놈들의 공세는 끝이 날 줄을 몰랐다.

“허억, 허억, 이거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니냐, 요? 넌 모르겠지만 난 부활할 수가…….”

이쯤되니 드록쉬가 지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하이 마스터의 능력을 가졌다 한들 상대 역시 그에 전투하는 괴물들인데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동족의 시체를 넘어 전진하는 무데뽀였으니까.

게다가 이제 슬슬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도 끝나 가고 있었다.

기껏 고생해서 올린 경험치를 날려 먹지 않으면 시간 역행을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로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캔슬!”

후유증까지 감수하며 몇 초 남지 않은 광풍 현신을 캔슬해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영혼 군단.”

영혼 군단. 그동안 로칸이 살육한 5천여 마리의 동급 존재의 영혼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중 영혼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작해야 1천에 불과했지만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나아가 모든 개미굴의 통로로 밀고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헐.”

이곳에서 잡은 살육 개미 이외에는 대부분 하늘섬에서 잡아 죽인 놈들의 영혼이다. 간혹 지상에서 잡은 마스터급의 영혼도 섞여 있긴 하지만 그 비중이 무척 작았다.

무려 1천의 하이 마스터 군단.

심지어 물리 공격에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가지고 있는 영혼체의 형태인데다 로칸에게서 비롯된 군단 버프가 그들을 강화시켰다. 승부가 갈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라. 여왕개미를 잡아와!”

드록쉬가 도끼를 떨어뜨리며 입을 쩍 벌렸지만 로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혼체들을 지휘해 개미굴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지.”

멍한 표정을 짓는 드록쉬에게서는 끊임없이 다크니스 오러의 효과가 발동하고 있었지만 몰려오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개미굴이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살육 개미, 전투 살육 개미는 물론 병정개미들조차도 강화된 영혼의 군단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그들의 위치는 입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고, 여왕개미가 숨어 있는 여왕의 방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었으니까.

“조수 소환, 길잡이.”

로칸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털더니 드록쉬를 이끌고 더 깊은 곳을 향해 이동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영혼체들이 벌어 오는 경험치를 음미하며 한참을 걷자 전투 중인 영혼체와 병정개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만 넘으면.’

그 필사적인 전투 현장을 보며 로칸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너머에 여왕개미가 있다.

방어 병력의 수와 질을 생각할 때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안에는 더 많은 병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

기다릴까, 말까.

아직 광풍 현신의 쿨 타임은 조금 남은 상태였다. 반면 남은 병정개미의 숫자는 당장이라도 밀어붙여서 끝장을 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놈들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영혼체의 숫자가 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5백 마리가 넘는 영혼체가 살아남은 상태였다.

“밀어붙여!”

슬쩍 보니 영혼 군단의 지속 시간도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로칸은 망설이지 않았다. 현상금이 따로 걸릴 정도인 여왕개미이긴 했지만 이쪽도 믿는 구석이 하나쯤은 더 있었으니까.

그렇게 공세를 강화하자 입구는 금방 뚫렸다.

“공격!”

5백여 영혼체가 밀물처럼 밀고 들어갔다.

슬쩍 보니 안에도 만만치 않은 병정개미들이 있었지만 로칸은 드록쉬와 함께 가만히 지켜보았다.

[살육 여왕개미의 페로몬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어?”

그리고 그때, 눈에 보이지 않는 여왕개미의 공격이 들어왔다.

여왕개미의 페로몬. 설령 개미가 아니더라도 몬스터를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이는 매혹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다행이군.”

그러나 다행히 영혼체들에게도 영향은 없었다. 육신이 없는 영혼이 페로몬에 당한다는 것이 우스우니까.

하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웨폰 익스플로젼!”

“……!”

콰과과광!

드록쉬가 풀려 버린 눈으로 들고 있던 무기를 집어 던진 것이다. 그것도 본인의 주 무기를!

“멍청한!”

퍼억!

이어 로칸에게 달려들기도 했지만 이미 광풍 현신의 후유증은 끝난 상태였다.

로칸은 맨주먹인 녀석을 주먹으로 후려쳐 쓰러뜨린 다음, 여왕개미의 방 바깥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카이!”

다시 덤벼들려는 놈에게 카이를 붙여 주었다.

“제길…….”

다시 고개를 돌리자 상당수의 영혼체들이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스킬인 만큼 병정개미들 쪽에도 타격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군에게 포커싱을 하고 사용한 터라 이쪽의 피해가 더 컸다.

왜애애앵. 푸확!

게다가 여왕개미를 호위하는 호위병들이 나서는 상황이었다.

인간처럼 두 발로 선 채 창을 들고 찔러 대는 날개 달린 개미들.

상황이 좋지 못함을 확인한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전장을 향해 몸을 던지며 힘을 일으켰다.

광풍 현신의 쿨 타임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비슷한 또 다른 힘이 남아 있었다.

“버서크!”

광기의 힘이 로칸의 전신에 가득 들어찼다.

광풍 현신만큼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아껴 두었던 스킬을 발동시켰다.

“무혼 각성!”

사자왕의 힘이 로칸에게서 눈을 떴다.

억지로 하이 마스터의 힘을 끌어 올렸을 때도 그랜드 마스터를 잡아 낸 힘이다.

광풍 현신과 전신 무쌍은 사용할 수 없지만 고작 하이 마스터급의 보스를 잡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로칸의 변화를 눈치챈 호위병들이 날개를 펼치며 그를 찔러 왔지만 날개는 그에게도 있었다.

“날개 모드!”

광풍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쾌속하게 찔러 오는 창격을 피해 내며 맹렬히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사자 열파참!”

로칸의 배틀 액스에서 일어난 황금사자의 기운이 호위병들을 일격에 베어 버렸다.

어찌어찌 피했다 해도 상태는 좋지 못했다. 바닥을 나뒹구는 놈들을 향해 영혼체들이 공격을 날린 것이다.

“투지의 발걸음, 급가속, 광기의 시간!”

잔챙이들이 사라졌으니 남은 것은 여왕개미뿐.

로칸은 지체하지 않고 전력으로 부딪혔다.

대병력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여왕개미이지만 직접 전투력이 형편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광살!”

광풍 현신을 사용한 로칸만큼이나 거대하던 여왕개미의 몸이 허물어졌다.

체액을 잔뜩 뒤집어쓰면서도 몸속을 헤집고 난도질하는 로칸의 배틀 액스가 여왕개미의 숨을 끊어 놓았다.

“마, 맙소사! 네가 어떻게 그 힘을 쓰는 거지, 요?”

“뭐?”

녹색 체액을 뒤집어쓰고 악귀처럼 걸어 나오는 로칸을 보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드록쉬가 말을 더듬었다.

사자왕의 힘. 그것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로칸의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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