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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화.붉은 도끼 드록쉬 (4) (2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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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끼 드록쉬 (4)

“그 힘이라니? 이 능력에 대해 아는 게 있나?”

“그야 당연히…….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를 어떻게 알지? 지금 말하는 게 ‘사자왕’을 말하는 것 맞나?”

끄덕.

드록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맙소사, 사자왕이라니. 그도 이곳 천상에 있는 것일까?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모든 무구를 포기했던 그였기에 같은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모를 수가 없지, 요. 사자왕 가오칸이라면 천계와 마계를 통틀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요.”

“광풍은? 혹시 광풍의 위치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광풍?”

상황을 파악한 로칸이 한 사람의 별칭을 더 불렀지만 모르는 눈치였다.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면 어떻게든 수소문해 보겠는데 광풍에 대한 정보는 그저 그의 행적뿐인 것이다.

[광풍의 발자취][퀘스트]

광풍의 흔적을 모두 찾아낸 당신은 그의 뒤를 이을 자격을 갖추었다.

광풍의 발자취를 찾아 그를 찾아내자.

그는 자신의 업적을 넘어선 당신을 기꺼이 반길 것이다.

-날개 획득 (완료)

-천상 대포 제작 (완료)

-천상으로의 진입 (완료)

-광풍과의 대화 0/1

하지만 로칸은 그가 이곳 어딘가에 있으리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장 그의 발자취를 쫓는 퀘스트가 이곳 천상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던가?

그와 대화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렵게 여기까지 끌고 온 퀘스트인 만큼 한번 만나 보고 싶어졌다.

‘한판 붙어 볼 수도 있고.’

아마 최소 그랜드 마스터겠지만 대련이라도 한번 해 볼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렇단 말이지.”

조금 마음을 진정시킨 로칸은 드록쉬를 다그쳐 일단 사자왕에 대한 정보부터 얻었다.

혹시 사자왕의 천계의 소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물론 천계와 마계에서 모두 그를 영입하려 들었지만 가오칸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했다.

이유도 참 그답다.

“천족과 마족 둘 모두와 싸울 수 있어서라니, 이거 참…….”

어이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로칸이었다. 자신이라도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천족의 날개나 마족의 날개 따위는 이미 광풍의 날개로 대체할 수 있는 그였다.

때문에 천계 혹은 마계에 소속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고민들이 말끔히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 사자왕을 만나 볼 수 있나?”

“그건 당연히 어렵다, 요. 그분이 고정적인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만한 초월자를 함부로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렇군. 일단 돌아가자.”

피식 웃음을 지으며 로칸이 돌아섰다.

개미굴은 이미 완벽 클리어.

두 개의 현상금 미션에 모두 완료 표시가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계의 마을로 돌아왔다.

[명성 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했습니다.]

[천계와 마계가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천계 또는 마계로 이적이 가능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각 진영의 스카우터들에게 문의하십시오.]

그리고 퀘스트 결과를 보고하고, 보상으로 큰 명성을 얻었을 때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천계 또는 마계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로칸의 선택 역시 사자왕과 같았다.

“굳이 사냥터 하나를 포기할 이유는 없지.”

진영을 선택하지 않는다. 언데드 잡화점 주인처럼, 사자왕처럼 어느 한 진영에 소속되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

진영 선택에 따른 이점은 작지 않았지만 로칸의 결정을 돌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이편이 오히려 여러모로 유리하려나?”

게다가 중립을 유지할 경우 천계와 마계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었다.

양 진영의 평판은 ‘무시’에서 시작하게 되겠지만 그것도 문제없다. 일단 적대는 아니니까.

명성을 올리면 평판이야 저절로 상승하게 될 일이 아닌가?

당장 사자왕 가오칸만 하더라도 천족과 마족 중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섰다고 했다.

“강해지면 그만이지.”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 그랜드 마스터 이상의 능력을 갖춰야 하겠지만 로칸은 자신 있었다.

당장 무혼 각성만 사용하더라도 어지간한 그랜드 마스터까지는 비벼 볼 수 있는 그였으니까.

“진심인가, 요? 어려움이 많을 텐데…….”

드록쉬는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렸지만 무시했다.

아마 상황에 따라 마계의 편을 들 수도 있다는 잠재적 위험 때문이겠지만 뭐 어떤가? 로칸 자신의 이득만 챙길 수 있으면 그만이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대신 작은 혼란은 찾아왔다.

보통 이 상태에서 마계나 천계로 넘어가 퀘스트를 받고 레벨링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지만 로칸에게는 그런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라면 ‘자격’을 얻어야겠지, 요.”

“자격?”

“그만한 명성이면 중립 지대를 돌아다니는 것에는 큰 제약이 없겠지만 천계나 마계로 향할 거라면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니까, 요.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개방할 이유가 없지 않나, 요.”

결국 천족이든 마족이든 제 잇속을 차린다는 소리다.

‘똑같은 놈들이지, 뭐.’

하프엘프들이 생각 이상으로 탐욕스러웠던 것과 같이 마족이라고 특별히 악랄하지 않고, 천족이라고 무조건 천사 같은 것은 아니다.

로칸은 이해했다는 듯 끄덕이며 정비를 계속했다.

당장이라도 떠날 채비를 한 뒤, 천족과 마족 스카우터 모두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천계 입장권][퀘스트]

천족들이 천계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조건으로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천계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자.

-악마의 심장 : 0/10

[마계 입장권][퀘스트]

마족들이 마계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조건으로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마계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자.

-신수 사냥 : 0/3

양측의 요구 사항은 분명했다. 그리고 우스웠다.

서로를 저격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더 웃긴 것은 그들이 퀘스트를 발동하며 지급한 아이템이었다.

[임시 마계 출입증][레어]

임시로 마계에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 천족이 아닌 이가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3회에 한해 마계에 진입할 수 있다.

[임시 천계 출입증][레어]

임시로 천계에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 마족이 아닌 이가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3회에 한해 천계에 진입할 수 있다.

서로 반대 진영에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을 제시한 것이다.

단 3회만 사용이 가능한 소모형 아이템이지만 이것이면 충분했다.

천계나 마계에 들어서면 평판이 ‘무시’에서 시작하는 로칸은 상점 이용이 불가능하겠지만 수백, 수천 마리를 잡으라는 것도 아니니까. 이곳에서 충분할 만큼의 소모품을 챙긴 뒤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너무 쉬운 것 아닌가?”

그것들을 챙긴 로칸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고작 출입 권한을 얻기 위한 퀘스트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보다 천족이나 마족들이 ‘중립’에 대해 관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기고만장하군, 요, 흘흘. 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요.”

“어째서지?”

그러나 드록쉬는 생각이 조금 다른 듯했다.

“크흘흘, 그건 가 보면 안다, 요. 제아무리 버서커라지만 ‘격’마저 커버할 수 있을까? 요. 제길! 이놈의 존댓말!”

“격이라…….”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고작해야 세 마리, 열 마리를 잡으라기에 쉽게 생각했더니 ‘하이 마스터’의 레벨이 아닌 모양이다.

그랜드 마스터.

신수라는 이름까지 붙을 정도면 알 만했지만 설마 ‘악마의 심장’까지 그 정도 난이도일 줄이야.

‘하여간 착한 척하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별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족 스카우터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 그럼 어디로 먼저 떠나 볼까.

“일단은 신수부터 해 볼까?”

이름만 들어도 신수라는 존재가 훨씬 강력해 보이긴 했지만 어차피 잡아야 할 존재들이다.

누가 우선이든 상관은 없었지만 배알이 꼴린 로칸은 먼저 천계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천계로는 어떻게 가지?”

“……따라와라, 요.”

결국 길 안내는 드록쉬의 몫이었다.

그가 로칸을 데리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을 바깥이었다.

마을에서도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대한 탑. 구름 위로 높이 솟아 뭐 하는 곳인가 궁금했던 곳인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감흥이 달랐다.

“엄청나군.”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물의 위용에 로칸도 혀를 내둘렀다. 지상은 물론이고 이런 거대한 건축물은 현실에서도 본 적 없었다.

오히려 게임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엄청난 기술력.

심지어 넓이는 그리 크지 않아도 까딱하면 쓰러져 마을을 덮칠 것만 같았다.

“이쪽으로.”

하지만 드록쉬는 이미 와 본 적이 있는지 거침없이 건축물로 다가갔다.

지이잉.

“응?”

그가 건축물에 다가가 지키고 있던 다른 드워프 노움에게 뭐라 말을 걸자 놈이 로칸을 힐끗 보더니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지상과 맞닿은 구조물의 일부가 열렸다.

“엘리베이터인가?”

그것은 거대한 엘리베이터였다.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먼저 들어간 드록쉬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고속으로 이동하는지 거센 압력이 느껴졌지만 괜찮다. 그 정도에 까딱이나 할 로칸이 아니니까.

덜컹. 지이잉.

그리고 잠시 후, 엘리베티어가 이동을 멈추고 다시 문이 열렸다.

공기가 희박할까 싶었는데 숨쉬기가 꽤 편했다.

아무래도 마법적인 처리가 된 모양.

로칸이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며 나서자 드록쉬가 으스대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쪽에 출입증을 제시하면 된다, 요.”

그곳에는 이미 몇몇의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천족임을 상징하는 날개를 달고 있었고, 일부는 아직 날개를 달지 않았지만 예비 천족쯤 되는지 그들과 말을 섞는 중이었다.

“출입증은?”

[임시 천계 출입증을 사용하셨습니다.]

[남은 사용 횟수 : 1/3]

기다리고 있던 천족 노움에게 출입증을 제시하자 횟수가 차감되었다.

드디어, 천계로 향할 준비가 모두 끝이 났다.

“여기서 어떻게 이동하는 거지? 활강이라도 하나?”

“끌끌끌, 기다려 봐라, 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가만히 서서,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뿐, 30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대체 언제…….”

“왔군.”

“……!”

그리고 잠시 후, 구름 너머에서 무언가가 접근했다. 크고 거대한 무언가가.

“비공정?”

그것은 하늘을 나는 배였다. 고대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꽤 덩치가 커다랬고, 몇 가지 무장까지 된 비공정이 그들을 찾아왔다.

“이걸 타고 이동하는 건가?”

로칸의 물음에 드록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공정을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죽기 싫다면 그래야겠지, 요? 하지만 걱정 마라, 요. 비공정에 설치된 마법진과 저들이 천계까지 안전하게 이동시켜 줄 테니까.”

[하늘배 선원 히리토][Lv 401]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고작 배를 지키는 선원이 그랜드 마스터라니.

앞으로의 험난함을 예고하는 것 같았지만 로칸은 미소를 지었다.

천상에서의 생활이 꽤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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