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신수 사냥 (1)
“모두 탑승하라.”
비공정은 놀랍게도 무료로 운행되었다.
그들의 진영에 힘이 더해지는 일이니 그럴 만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로칸으로서는 땡큐다.
드록쉬와 함께 비공정에 오르자 다른 이들이 힐끗 그들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곧 관심을 끊었다.
제아무리 로칸이라 해도 아직 다른 이들이 알아볼 만큼의 인지도를 쌓은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반응은 다소 의외의 것이었다.
“저거, 붉은 도끼 드록쉬 아니야?”
“다시 천계에서 활동하기로 한 건가?”
“저런 이와 함께 가다니, 영광이군.”
일부 그들을 향한 수군거림이 로칸이 아닌 드록쉬를 향한 것인 것이다.
처음에 그렇게도 자랑을 하더니, 정말 천계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린 모양이었다.
[붉은 도끼 드록쉬][Lv 378]
‘마냥 허세였던 건 아닌 모양이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무려 380레벨에 가까운 강자이자 뛰어난 대장장이니까.
“출발한다!”
잠시 후, 비공정이 다시 하늘을 날았다.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몇이나 되는 그랜드 마스터 선원들이 위치마다 자리를 잡았고, 승객들은 안으로 들어갔지만 로칸과 드록쉬는 잠시 머무르며 주변을 살폈다.
[접근 차단][퀘스트]
비공정에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요격하라.
-성공 조건 : 목표 지점까지 비공정을 안전하게 보호
-실패 조건 : 사망
-성공 보상 : 천상의 룬, 대량의 명성, 대량의 경험치
-진행 중 획득 경험치 2배
“응?”
그리고 그때, 퀘스트 하나가 돌발적으로 나타났다.
비공정이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지키는 일종의 방어전 퀘스트였다.
“해 볼까?”
“크흠,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들의 보호를 받는다지만 이건 좀…….”
관심을 보이는 로칸과 달리 드록쉬는 다소 난색을 표했다.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급인 선원들이 보호한다지만 그 숫자는 다섯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 선원은 그들과 비슷한 하이 마스터급인 것이다.
물론 이들로도 비공정을 보호하는 정도는 충분하겠지만 갑판에 나와 있는 승객들까지 보호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어떤 비행형 몬스터가 출현할지, 어떤 방식으로 기습을 할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자칫 빠르게 접근하여 목표만 채 가 버리는 일이 발생하면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자신 없나?”
“아니, 이 붉은 도끼 드록쉬 님을 뭘로 보고……!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걸 돌려주지.”
발끈하면서도 망설이는 드록쉬의 모습에 로칸이 인벤토리에서 꽤 많은 양의 무기들을 꺼내 놓았다.
모두 드록쉬에게 압수했던 물건들.
그러자 드록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 눈빛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문제없지.”
그렇게, 로칸과 드록쉬가 퀘스트를 수락했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참여자가 적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겠지?’
물론 로칸으로서도 위험 요소는 있었다. 비공정의 크기 때문에 광풍 현신까지 사용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무게야 비공정이 버텨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덩치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을 받기 쉽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광풍 현신만이 자신의 전부는 아니기에, 배틀 액스를 매만지며 갑판 끝에 섰다.
위험하다고 선원들이 만류하기는 했지만 어떤 것들이 오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브라운 와이번][Lv 383]
[해피하피][Lv 354]
[구름 슬라임][Lv 377]
‘만만치 않군.’
그렇게 갑판의 끝에 서서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을 사용한 로칸은 곧 비공정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 일단의 몬스터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하이 마스터급인 놈들이 최소 열 이상씩 무리를 지어 배회했다.
그나마 그랜드 마스터급이 아니기는 했지만, 아직 운행 초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쩌면 꽤 험난한 여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객기를 부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인간 주제에 천족이 되려 하다니. 말세군, 말세야.”
그때, 고운 천족의 날개를 짊어진 몇몇이 그의 주위로 섰다.
‘하프엘프?’
아니, 엘프들이다. 하프엘프 따위가 아니라 고귀한 숲의 혈통이 천족의 날개를 달고 서 있었다.
로칸의 종족을 잔뜩 무시하면서.
‘그 옆에 놈은…….’
아니, 차라리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표하는 놈들은 낫다.
그들의 옆에 선 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족인 놈은 이쪽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면서도 정작 로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쪽은 쳐다보지 마, 요.”
“……저놈은 뭐지?”
슬쩍 심술이 난 로칸이 놈을 흘겨보자 드록쉬가 다리를 툭 치며 주의를 주었다.
놈이 대체 무엇이기에?
[천족 미타엘][Lv 395]
정보 창을 확인해도 뜨는 건 천족이라는 이름뿐, 어떤 종족에서 넘어간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조인족이나 나가족처럼 토착 종족이라도 되는 건가? 그랜드 마스터도 못 된 새끼가 어디서…….’
아마 그런 모양. 굳이 부딪칠 이유는 없기에 고개를 돌리려는데, 로칸의 스캔을 알아차린 녀석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감히!”
“……?”
후우우웅!
강력한 힘의 폭발.
만약 하이 마스터 미만의 약자라면 그 힘의 파동만으로 휩쓸며 비공정에서 떨어져 버릴 만한 힘의 폭풍이 놈에게서 일어났다.
“천한 종족 따위가 이 몸을 쳐다보느냐!”
“이 새끼가…….”
명백한 적의요, 도발이었다.
말을 내뱉으면서부터 똑바로 로칸을 노려보고 있으니 누구를 향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바가 아니었다.
이런 시비에 기죽을 로칸이 아니었다.
슬쩍 밀려날 뻔한 것에 열이 솟은 로칸이 몸을 돌려 으르렁거리려 하자, 드록쉬가 그 짧은 몸뚱이로 로칸을 막아서고 그를 대신해 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고, 이제 막 천상에 올라온 무지렁이가 고귀한 혈통을 몰라 뵈었습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야?”
“흥! 뉴비라고 하니 한 번은 봐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 눈알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다면 큰일을 치를 것이다.”
“하?”
“감사합니다!”
홱 하고 몸을 돌려 사라지는 천족.
아무리 천상이라지만 자신이 뉴비(newbie, 초보자) 소리를 들을 줄이야.
로칸은 너무 황당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놈이 말을 섞은 것조차 더럽다는 듯 몸을 털며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드록쉬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놈은 뭐지?”
“으이그, 큰일 날 뻔한 거 내가 구해 준 거야, 요. 그러니 어떻게 계약 기간을 조금만 줄여 주면…….”
“아니, 뭐냐고.”
하지만 드록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공에 대해 어필할 뿐이었다.
“뭐긴 뭐야. 천족이지, 요.”
“천족? 무슨 천족? 귀족 계급쯤 되는 건가?”
“어휴, 그러니까 공부 좀 하고 천천히 이동할 것이지……. 그게 아니라 진짜 천족. 천사족이라고, 요. 천신의 가호를 받으며 태어난 일족. 순혈주의가 강해서 다른 종족에서 넘어온 천족들은 발아래로 보지만 그 실력 하나는 진짜이기도 하고, 혈통을 중시하는 만큼 자기 종족 일에 오지랖이 넓어서 한 명은 어찌어찌 감당한다 해도 그 이후가 문제인 놈들이지, 요. 비공정이라 적당히 끝난 거니까 도착해서도 저렇게 생긴 놈들을 만나면 괜히 시비 걸 생각 하지 마, 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제야 로칸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놈들에게 굴복할 생각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깡패 같은 고레벨 길드 같은 것이 아닌가?
지금이야 모든 힘을 쏟아부어도 한둘을 상대하는 것이 고작일 테니 부딪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만 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터였다.
누가 이 구역의 미친놈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따로 이름을 기억해 둔 뒤, 다시 갑판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음?”
휘익. 퍼억!
잠시 소란이 있는 사이, 선원들과 퀘스트를 받은 승객 일부의 ‘청소’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이런 소란을 여러 번 겪어 본 것인지, 아니면 얽히기 싫었던 것인지 그들은 각자 원거리 공격을 날려 모여드는 몬스터들을 요격하거나 견제하여 흩어 버리는 중이었다.
한데 그 공격 하나하나가 제법 대단했다.
무음에 가까운 저격을 쏘아 내는 엘프와 굉음을 동반한 폭발을 일으켜 놈들을 쫓아내는 주문 사용자들, 그리고 벌써 비공정 위로 올라오려 시도하는 놈들을 쫓아 버리는 근접 계열들까지.
모두 최소가 하이 마스터급인 만큼 만만치 않은 무위를 선보이며 비공정을 지키고 있었다.
‘하긴,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을 모아야 갈 수 있는 곳이었지.’
그 모습에 로칸도 살짝 놀랐지만 곧 떠올렸다. 천계라는 곳 자체가 천상에서 일정 수준 이상 명성을 쌓은 자들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질 수 없다는 듯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도 경험치 좀 먹어 볼까?”
일단은 손도끼부터 꺼내 들었다.
쏘아지는 것은 폭격!
강맹한 손도끼 투척이 배회하던 해피하피들의 몸을 때렸다.
콰과광! 끼악!
폭발 에너지로 변환된 힘이 놈들을 휩쓸었다.
직접 타격당한 놈의 뼈마디를 부러뜨려 놓는 것은 물론, 주변에 있는 놈들까지 폭발의 충격으로 엉망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말살의 사슬!”
촤라라락! 퍼버버버벅!
연이어 뻗어 나간 사슬이 창살처럼 몸에 꽂히며 숨을 끊어 놓았다.
본래대로라면 공격력이 살짝 모자랄 수도 있었지만 걱정 없다.
[타이틀 ‘최초의 기사’의 효과로 ‘기사도’가 발휘됩니다.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타이틀 ‘최초의 점령군’의 효과로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타이틀 ‘최초의 점령군’의 효과로 적과의 인원 차이에 비례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방어전 퀘스트를 받은 덕분에 능력치가 크게 증폭된 것이다.
거기에 만인살 타이틀 효과까지 더해졌으니 와이번 이상으로 생명력과 방어력이 높지 않다면 충분히 원 콤보로 끝장을 볼 수 있었다.
모자라면? 스로잉이든 뭐든 추가해서 끝장을 내면 그만이지.
“허…… 인간이 어찌…….”
덕분에 로칸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던 이들이 놀란 토끼 눈으로 변했다.
고작 인간 따위가 이만한 무위를 자랑할 줄이야.
물론 과거 인간의 몸으로 천상에 오른 이들 중 약한 이가 없기는 했지만 그 수가 워낙 적었기에 얕보았거늘, 저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괴력을 타고난 다른 종족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웨폰 익스플로젼!”
콰과과과과광!
그러나 로칸 이상으로 활약하는 이가 있었기에 놀라움은 곧 사라졌다.
바로 붉은 도끼 드록쉬.
화염의 기운까지 머금은 채 폭발하는 그의 무기들은 일격에 한 무리의 비행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며 압도적인 성과를 보였다.
삐이이익.
그렇게 한참을 날아 목적지까지 절반 이상이나 지나왔을 때, 비공정 전체에 긴급 신호가 울려 퍼졌다.
저 먼 곳에서부터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이 감지 된 것이다.
[폭군 이무기 부레키][Lv 428]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인 주제에 무려 400레벨이 넘는 폭력적인 존재가 그들이 타고 있는 비공정을 노리고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