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신수 사냥 (2)
“이무기?”
“젠장, 잘못 걸렸군.”
놈의 등장에 모두가 긴장했다.
놈과 동급인 그랜드 마스터가 다섯이나 있으니 막아 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드록쉬를 비롯한 승객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객실로 들어간다면 비교적 안전하겠으나 만약 놈이 비공정의 하부를 노린다면 그 또한 무조건이라 하긴 어려운 것이다.
“저건 뭐지? 원래 나오는 놈인가?”
“그러게 공부 좀……. 에잇, 말을 말자. 저게 바로 신수다, 요. 네가 셋이나 상대해야 할 놈이지, 요. 물론 그중에서도 강력한 축에 속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닌지 갑판 위에 선 자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놈과의 전투를 그랜드 마스터인 선원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 로칸만큼은 생각이 달랐다. 눈빛이 달라졌다.
“저게 신수란 말이지?”
“허튼 생각 하지 마! 요. 저놈은 신수 중에서도 특별한 놈이니까. 놈은 선원들에게 맡기고 천계에 도착해서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놈들을 고르는 편이…….”
“하나만 묻지. 지금 여기도 천계의 영역인가?”
“여기? 으음, 아마 맞기는 할 텐……. 야이 미친놈아!”
드록쉬가 확인을 해 주는 순간, 로칸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와 함께 뒤로 물러났던 것은 도움닫기를 하려는 것이었다는 듯 빠르게 달려가더니 뱃머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카이!”
그런 그의 발밑으로 카이가 나타나 가뿐하게 로칸을 태우고 겁도 없이 이무기를 향해 돌진했다.
“광풍 현신! 전설을 타는 자! 전신 무쌍!”
로칸과 카이의 몸이 거대해졌다.
그래봤자 50미터가 넘는 이무기 앞에서는 어린아이보다도 작은 크기에 불과했지만 카이는 조금 달랐다.
대붕의 모습으로 최대치까지 몸을 키우자 감히 이무기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이 부풀어 올랐고, 날갯짓 한 번에 놈의 코앞까지 다가설 수 있었다.
끼윳!
이무기가 반사적으로 힘을 토해 냈지만 카이도 만만치 않았다.
엘리멘탈 배리어를 최대 출력으로 전개하며 버텨 냈고, 놈의 방어를 뚫으며 뱀처럼 길쭉하고 매끄러운 몸에 발톱을 박아 넣었다.
“우리도 간다!”
“으아아악!”
그러는 사이, 로칸도 놈에게 뛰어들었다. 어차피 카이만으로 놈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에 놈의 몸 위로 들러붙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날개 모드를 펼쳐 이무기에게 뛰어드는 그의 곁에는 사슬에 감긴 채 짐짝처럼 덜렁거리는 드록쉬가 함께였다.
“드록쉬, 시선을 끌어!”
“미친!”
이무기의 하단을 향해 드록쉬를 던져 놓은 로칸은 망설임 없이 놈의 등 위에 올라탔다.
드록쉬가 놈의 시선만 끌 수 있다면 자신의 공격력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무혼 각성!”
이윽고 무혼 각성이 발동하며 찬란한 금빛이 그의 몸을 휘감았고, 드록쉬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힘을 폭발시켰다.
“웨폰 익스플로젼!”
허공에서 자세를 잡기는 어려웠지만 그 역시 천족이다.
천족의 날개를 활짝 펼치자 안정적으로 멈추어 서며 힘을 방출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끄웩!”
붉게 달아오른 무기 파편들이 하복부를 파고들자 놈도 비명을 질렀다.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급이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드록쉬 역시 380레벨을 코앞에 둔 강자였다.
투앙.
발작하듯 몸을 뒤틀며 드록쉬의 작은 몸을 축구공처럼 후려치긴 했어도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온 몸을 비틀며 괴로움을 표했고, 그 위에 올라탄 로칸은 마치 로데오를 하듯 리듬을 탔다.
“사자열파참!”
그리고 강력한 한 방을 꽂아 넣었다.
키아아악!
[타이틀 드래곤 슬레이어가 발동합니다.]
동시에 강대한 힘이 로칸에게 깃들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 혹시나 했는데 놈에게도 용의 피가 어느 정도 흐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격력 300%도 모자라 관통 효과까지 지닌 일격이 놈의 단단한 비늘을 헤집었다. 살을 베고 뼈를 쪼개었다.
진득하고 음험한 피가 로칸을 덮쳤지만 그에게 덧입혀진 사자의 불꽃이 그것이 지닌 저주까지 홀랑 태워 버렸다.
“사자난무!”
로칸은 허벅지에 강하게 힘을 주며 버티고, 다음의 연격을 마저 꽂아 넣었다.
놈이 날뛰거나 말거나 힘으로 버티며 용족 한정으로 월등히 강화된 공격을 마구 퍼부으며 상처를 더욱 크게 벌렸다.
‘어쩌면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군.’
따지고 보면 이놈이 비공정으로 달려든 것도 비공정이 아닌 그를 노린 것일지 모른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용족에게 강제적인 적대감을 심어 주는 타이틀이니까.
“전속 항진!”
“으앗! 멈춰! 우리도 데려가라고!”
그사이, 비공정은 전속력으로 전장을 이탈했다. 그들을 버리고 떠나 버린 것이다.
드록쉬가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쳤지만 이미 항로를 정한 이들은 멈추어 서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이무기가 죽지 않을 것이기에, 일이 더 커지기 전 그들의 희생을 애도하며 전장을 벗어났다.
“제기랄! 빌어먹을 놈들!”
그 모습에 드록쉬가 분통을 터트리며 눈치를 봤다.
이무기의 몸에서 어떤 힘이 솟아나가는 것을 보며 빠르게 날개를 움직였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쿠르르릉!
“크헉!”
그렇게 한참이나 난동을 피우는 사이, 어느새 그들의 머리 위로 모여든 먹구름이 눈물 같은 비를 쏟아 내고 천둥을 내리쳐 그들을 강타했다.
이무기의 스킬인 기후 조종과 그에서 파생된 전격 소환이 떨어진 것이다.
샛노란 전격의 기둥은 상처 입은 이무기의 등을 태웠지만 놈은 개의치 않았다. 전격에 대한 저항력은 이미 극도로 높아진 상태였으니까.
덕분에 그 위에 올라탄 로칸이 새까만 숯덩이가 됐다.
“으흐흐, 겨우 이 정도냐! 광살!”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속성 저항력이라면 로칸도 뒤지지 않게 올려 둔 상태였으니까.
번개에 직격당한 탓에 몸은 새까맣게 변해 버렸지만 아직 생명력에는 여유가 있었다.
설령 생명력이 0이 되었다 하더라도 불사의 힘을 지닌 이상 버텨 낼 수 있었을 테지만.
대신 보답하듯 하얗게 미소를 지으며 배틀 액스를 놈의 상처에 마구 꽂아 넣었다.
치명타 대미지를 듬뿍 머금은 일격 일격이 놈의 살점을 떨어뜨리고 피로 비를 뿌렸다.
“읏차!”
게다가 그 깊이가 어느 정도까지 깊어지자 로칸은 아예 상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무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천계에 울려 퍼졌지만 무시했다. 곧 죽을 놈 알게 무언가?
“휠 윈드!”
그리고 몸속에서 드릴처럼 회전하며 공격을 뿌려 댔다.
키약!
더없이 큰 고통에 이무기가 난동을 부리며 아예 나는 것을 포기하고 급강하를 시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칸은 배틀 액스를 쥔 손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이미 놈의 몸속에 파고들었으니 바닥에 부딪친다 해도 어느 정도의 충격 대미지만 있을 뿐이다.
콰앙! 쾅! 쾅! 쾅!
벌레라도 잡는 듯이 땅에 마구 몸을 부딪쳐 대지만 로칸은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이무기는 그렇게 서서히 고통 속에 죽어 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와우.”
이무기의 사체 속에서 비틀대며 걸어 나온 로칸은 단번에 3계단이나 상승한 레벨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놈의 레벨을 생각하면 3레벨도 적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하이 마스터 수준에서의 3레벨은 무척 큰 의미였다.
[신수 사냥 : 1/3]
게다가 아직 사냥할 신수가 둘이나 더 남지 않았나? 여기에 악마의 심장까지 더한다면 금방 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
[드래곤 킬러][퀘스트]
드래곤 슬레이어의 영광된 이름을 차지한 자여. 그대의 업적이 요행이 아님을 증명하라.
-성공 조건 : 드래곤 처치 1/7
-성공 보상 : ???
내친 김에 드래곤 킬러 퀘스트까지 확인해 본 로칸이지만 아쉽게도 드래곤 처치 수는 올라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짜 드래곤만 카운팅되는 모양이다.
‘실망할 건 없지.’
하지만 괜찮다. 언젠가는 사냥할 테니까.
천계의 드래곤이라면 어쩐지 검은용보다도 더 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리 겁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적이 강하다면 자신은 더 강해지면 그만이니까.
“드록쉬?”
“괴물……. 미친놈…….”
그렇게 훌훌 털어 버리고 이무기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챙기며 돌아보자 드록쉬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한 눈빛으로 로칸을 쳐다보았다.
괴물인 건 알았지만 이처럼 상상 이상이 괴물일 줄이야.
잘못 걸렸다는 생각과 함께 절대 로칸에게 개기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는 드록쉬였다.
“여기가 어디지?”
“그야 나도…… 모르지, 요.”
“흐음, 일단 천계이긴 한 건가?”
“아마도?”
주변 지형을 훑어본 드록쉬는 살짝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지형상으로는 천계가 맞는 듯싶었지만 너무 외곽인 터라 잘못 움직이면 천계를 벗어날지도 모를 것 같았다.
“일단은 몸을 피해야겠군.”
그의 설명을 들은 로칸은 잠시 생각하다가 디그독을 소환했다.
이무기씩이나 되는 존재의 피가 사방에 뿌려졌으니 겁을 먹고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주변에 동급, 혹은 그보다 상위의 존재가 있다면 그 살점을 한 입 베어 물기 위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디그독으로 땅굴을 판 뒤, 광풍 현신의 후유증이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 상태로 잘못 적을 만났다가는 뭔가를 해 보지도 못하고 죽어 버릴 수 있었다.
[접근 차단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응?”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때, 퀘스트가 자동으로 완료되었다.
아무래도 비공정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
거리가 멀어졌기에 자연히 취소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퀘스트였지만 완료 처리가 되며 대량의 명성과 경험치가 들어왔다.
“이게 뭐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천상의 룬이라는 아이템도 인벤토리에 추가되었다.
“어……. 음……. 그게 말이지…….”
그것을 들어 보이자 드록쉬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아무래도 뭔가 의도가 있던 모양.
“말, 해.”
로칸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명령하자 드록쉬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지상의 룬처럼 위치를 기억하기 위한 아이템이다. 그것으로 장소를 기억시키면 천상 어디에서든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 다섯 개를 모으면 천상의 룬 북을 제작할 수 있고.”
예상대로 그것은 룬이었다. 천상에는 텔레포트 마법진도, 룬도 없어서 바로 연상시키지 못했던 것인데, 사냥을 하거나 이처럼 특수한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던 모양이다.
“왜 내게 그걸 알려 주지 않았지?”
“그건…….”
드록쉬가 대답을 얼버무렸지만 로칸은 대충 알 것 같았다. 만약 천계로 넘어온 뒤 자신이 죽어 버리면 다시 경계의 마을로 돌아갈 테고, 그렇게 된다면 연락두절이 된 드록쉬는 반쯤 자유의 몸이 될 테니까.
계약 기간 동안 숨어만 다닐 수 있다면 계약을 거의 무효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꼼수였다.
그 사실을 파악한 로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았고, 드록쉬는 딴청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