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신수 사냥 (3)
“사용 방법은?”
“……천상의 룬을 사용하고 위치 저장 또는 이동이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요. 다만 천상의 룬 북이 아닌 그냥 룬을 사용할 경우 20회를 사용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사용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지상의 룬과 다른 것은 마크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장소 저장과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과, 그것이 20회 한정의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천상의 룬 북이라는 것을 만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섯 개나 되는 천상의 룬을 모아야 한다니 아직은 요원한 일이었다.
“흠, 일단 여기부터 기억시켜야 하나?”
때문에 로칸은 고민에 빠졌다. 아쉬운 대로 이곳이라도 기억시킨 뒤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얻기 어려워 보이는 천상의 룬이니 좀 더 가지고 있다가 더 괜찮은 장소를 찾아 저장을 시킬 것인가.
충격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일정 시간 캐스팅이 필요하다니 전투 중에 사용하는 것은 무리일 테니 말이다.
“천상의 룬, 사용. 위치 저장.”
우우우웅!
고민 끝에 로칸은 천상의 룬을 사용했다. 뭐든 너무 아끼다 보면 똥이 되는 법이니까.
그렇게 위치 저장이 끝나니 이제는 한결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대충 방향을 가늠하고, 원래의 목적지인 마을이 있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 신수는 없나?”
그러다 문득, 어떤 사실이 떠올라 드록쉬에게 물었다.
굳이 마을로 가지 않더라도 신수만 잡으면 그만이 아닌가?
그 눈길을 받은 드록쉬가 움찔 몸을 떨더니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있기는 있는데…….”
“있는데?”
“이곳이 내가 생각하는 그곳이 맞다면 주변에 신수는 하나뿐이다, 요. 바로…… 유니콘이지, 요.”
“유니콘?”
유니콘이라면 로칸도 알고 있는 신수였다. 물론 직접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꽤 유명한 놈이 아닌가?
더 없이 온순하지만 경계심이 많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한번 화가 나면 코끼리도 단박에 찔러 죽일 수 있는 크고 날카로운 뿔을 지닌 녀석이었다.
‘그 뿔에는 신묘한 힘이 있어 천고의 기물로도 불리고.’
때문에 뿔을 노리는 사냥꾼도 충분히 있을 법 했지만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놈이라는 게 문제였다.
“흐음…… 뭔가 방법이 있던 거 같은데?”
전설 속의 이야기와 완전히 일치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같다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일단은 가 보자.”
로칸은 기억을 더듬으며 일단 자리를 옮겼다.
천계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외곽이라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다.
물론 싸워 경험치를 얻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은 신수를 사냥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진짜로 유니콘을 잡을 생각이냐, 요?”
“가능하다면. 무슨 문제 있나?”
“유니콘은…… 천족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야, 요. 그런 놈을 잡으면 필시 천족들의 노여움을…….”
“그래? 그거 잘됐군.”
뻔한 얘기였다.
사실 신수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신령스러운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신의 동물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니 마족들이 잡아 죽이라는 퀘스트를 준 것이겠지.
어쩌면 마족이 되기 위한 조건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중립을 택한 순간부터 로칸에겐 천족과 마족 모두 적이었다.
그런 마당에 천족이 무서워 신수 사냥을 멈춘다?
물론 다른 신수들이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로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한 가지 떠오르는 가능성이 있기도 했고.
물론 드록쉬가 말하는 ‘천족’이란 그 강력한 천계의 순수 혈통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로칸은 상관없다며 계속해서 걸음을 이어 갔다.
“여기라고?”
어쩔 수 없이 드록쉬가 안내한 것은 묘한 기운이 흐르는 숲이었다.
이른 바 요정의 숲.
유니콘 이외에도 온갖 요정족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요정은 엘프와 다른 족속들이었다.
엘프도, 정령도 아닌 진짜 요정들.
이를 테면 팅커벨 같은 놈들 말이다.
‘성격이 좀 고약한 게 문제이지만.’
문제라면 정작 저들은 남을 괴롭히고 골탕 먹이는 걸 좋아하지만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해를 입는 것은 못 참는 놈들이랄까.
그래서야 마족, 악마와 다를 바가 무언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로칸의 입장에서는 놈들도 사냥감이었다.
유니콘을 잡기 전까지는 최대한 적대하는 것을 피해야하겠지만 말이다.
“좋아. 들어가지.”
머릿속으로 어떤 계획을 떠올린 로칸은 두말없이 요정의 숲으로 들어섰다.
-꺄르르륵
안쪽으로 들어가니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졌다.
놈들이 새로운 방문자를 알아차렸다는 소리다.
로칸은 드록쉬와 눈빛을 교환하고 좀 더 안으로 향했다.
[요정의 가루에 노출되셨습니다.]
[환각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환각 증상이 일어났다.
요정들의 고질적인 장난질이다.
그와 함께 로칸과 드록쉬는 오히려 눈을 꼭 감아 버렸고 대신 녀석들을 상대할 누군가를 소환했다.
“카이!”
뀨웃!
카이는 등장과 함께 강력한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요정의 가루는 물론 요정 그 자체까지 한번에 날려 버린 것이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가자.”
이 틈을 놓쳐서는 안 됐다.
로칸과 드록쉬는 재빨리 카이에게 매달렸고, 조금 몸집을 부풀린 카이는 둘을 매달고도 빠르게 날았다. 숲속 깊은 곳까지.
“자이언트 피데기, 소환.”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로칸이 굴종의 구슬을 던져 한편에 자이언트 피데기를 던져 두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자이언트 피데기가 가진 도발 효과를 통해 뒤쫓아 올 요정들을 묶어 두려는 것이다.
물론 요정의 숲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홀리진 못하겠지만 잠시의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요정들의 장난질은 자이언트 피데기에 통하지 않을 테고, 덕분에 상당한 시간을 끌 수 있을 테니까.
‘샘!’
그렇게 한참을 다시 날자 요정의 샘에 도착했다.
요정의 숲에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신기한 샘.
그 샘물만 받아 마셔도 상당한 회복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해지니 유니콘이 나타날 확률도 높지 않겠나?
로칸이 카이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일단 이것부터.”
하지만 유니콘의 출현은 확신할 수 없는 종류다. 그러니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것부터 챙겨야겠지.
샘물을 얼른 퍼 담은 뒤, 수풀에 숨어 유니콘을 기다렸다.
“…….”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유니콘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전설의 신수를 고작 30분 만에 만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언제 요정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아.”
그제야 무언가 퍼뜩 생각났다.
‘유니콘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소녀의 앞에만 나타난다고 했지.’
유니콘에 대한 전설의 일부다.
경계심이 많은 유니콘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 특히 소녀 앞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고 했던가?
대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마음을 열고 무릎 베게까지 하고 잠이 들기 때문에 순수한 소녀를 이용해 유니콘을 포획하는 사례도 있다고 들어 본 것 같았다.
‘텄군.’
그 사실을 떠올린 로칸은 반쯤 포기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순수한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아주 순수하게 미친 것이라면 모를까.
그것은 드록쉬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다면 유니콘을 잡기는커녕 불러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돌아가야…… 쉿!”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뭔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수 유니콘][Lv 400]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에 잡힌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니콘이었다.
‘대체, 왜?’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일까?
다시 자세를 낮추고 드록쉬에게 주의를 준 로칸은 배틀 액스의 자루를 매만지며 가만히 놈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
그리고 다음 순간, 놈이 나타나 하는 행동을 본 로칸은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뀻? 히잉, 히잉.
놈이 카이와 어울려 놀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친근하게 뺨을 부비고 장난을 치며 살갑게 장난을 걸어 대는 것이다.
‘어…… 카이가 암컷이었나?’
그제야 로칸은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뭐, 어쨌든 중요한 건 일이 생각 외로 잘 풀렸다는 것이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자 유니콘은 카이와 놀다가, 경계를 풀고 몸을 바닥에 뉘었다. 전설처럼 잠을 청하는 것이다.
워낙 경계심이 많은 놈이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대상을 보면 편안해져 잠이 든다더니 진짜인 모양.
로칸은 서두르지 않고 놈이 완전히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됐나?’
그리고 놈이 숙면에 빠져들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좀 아깝긴 하지만…….’
정말 깊게 잠이 들었는지 유니콘은 로칸이 가까이 다가가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뀨?
로칸을 보고 방긋 웃는 카이의 곁에서 고로롱거리며 코까지 골아 댈 뿐이다.
“될지 모르겠군.”
그런 놈을 보며 로칸이 들어 올린 것은 배틀 액스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놈을 ‘사냥’하려 했지만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자, 얌전히 들어와라.”
휘익. 토옥.
그런 유니콘의 위로 떨어져 열린 것은 다름 아닌 굴종의 구슬이었다.
사냥해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도 좋고 운이 좋으면 전리품으로 유니콘의 뿔도 얻을 수 있겠지만, 만약 유니콘을 탈것으로 포획할 수 있다면? 와이번 등 무서운 공중 몬스터들이 대거 출현한 시점에서 기동력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슬슬 천골마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유니콘의 출현은 로칸에게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었다.
‘되라, 되라, 되라…….’
때문에 로칸은 굴종의 구슬이 작동하는 것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수틀릴 경우 언제든지 싸움에 임할 준비를 하고서.
[신수 유니콘이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신수 유니콘을 탈것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 시 기존 등록된 지상 탈것은 삭제됩니다.]
“응?”
성공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굴종의 구슬로 테이밍을 했는데, 유니콘이 탈것으로 분류되어 등록된다는 것이다.
“등록.”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지만 일단 수락부터 했다.
[신수 유니콘이 탈것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니콘이 정말 탈것으로 등록되었다. 마치 야생에서 알부터 획득해 키운 카이처럼.
“아, 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로칸은 즉시 피데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분명 굴종의 구슬로 테이밍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놀랍게도 자이언트 피데기의 테이밍 또한 유지되고 있었다.
유니콘이 테이밍 몬스터가 아닌 진짜 탈것으로 분류된 것이다.
로칸으로서는 슬롯 하나를 번 셈.
“미친……. 진짜 유니콘을 테이밍했다고?”
그 어이없는 상황에 놀란 것은 오히려 드록쉬 쪽이었다. 심지어 천족조차 테이밍하지 못한 존재가 유니콘이 아니던가?
어쩌면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지만 제법 길게 천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본 적 없는 기사에 입을 쩍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