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0화.순수 혈통 (1) (270/500)

 # 270

순수 혈통 (1)

“여기가 마을인가?”

천계의 입구라 불리는 마을의 사이즈는 상당히 컸다. 이 정도면 대형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랄까.

로칸으로서도 처음 보는 양식의 대형 건축물들도 즐비했고, 천신과 천족 영웅들의 동상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큰 것은 바로 천족들의 쉼터였다.

“휴게실을 저 따위로 크게 짓다니. 위세가 대단하군.”

“쉿! 여기서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큰일을 치를 거다, 요.”

제멋대로 소감을 읊어 대는 로칸과 달리 드록쉬는 제법 눈치를 보았다.

차라리 다른 도시면 모를까, 이곳은 천계의 입구인 만큼 다른 곳에 나갔다 돌아온 천족들이 제법 있는 것이다.

‘그래 봤자 진짜배기들은 천상의 룬으로 이동하겠지 뭐.’

물론 로칸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진짜 지위가 있고 능력이 있는 천족들은 천상의 룬 북 하나쯤은 챙겨 다니지 않겠나?

이렇게 발품을 팔아 이동하는 족속들은 결국 천족이라 해도 말단일 게 분명했다.

“감히 천계의 하인도 되지 못한 버러지가 어디서 함부로 입을 올리는가!”

“응?”

“어이고!”

그렇게 마을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고 있을 때, 그들의 뒤쪽에서 누군가 노성을 터트렸다.

로칸도 슬쩍 긴장을 하며 돌아보니 그 행색이 사뭇 익숙했다.

“그 비공정의?”

사람을 썩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놈은 알아볼 수 있었다. 한 번 시비가 붙은 적이 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시비 붙었던 놈들은 제법 잘 기억하는 로칸이었다.

“또 뭐지?”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고개를 똑바로 뜨고 입을 올리느냐!”

똥개도 제 집 안마당에서는 짖는다던가. 놈이 딱 그 짝이었다.

물론 비공정에서도 드록쉬가 말려서 돌아간 것이긴 했지만 제 집과 같은 천계에서 만나자 더욱 소리를 높이고 기운을 발출하는 것이다.

“천계에 이제 막 도착한 촌놈이라 놀라서 그랬나 봅니다. 제발 노여움을 거두시고…….”

“어느 안전이고 나발이고, 그래서 어쩌라고?”

드록쉬가 이번에도 몸을 낮추고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로칸이 기름을 끼얹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시비 터는 놈을 가만히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랜드 마스터도 아닌 놈이다. 거의 근접했다고는 하나 그랜드 마스터랑도 맞장 뜨는 로칸이 놈을 피할 리 없었다.

“이놈이!”

쿠구구궁!

분노하며 전력으로 힘을 발출하는 놈의 기세에 땅이 파이고 힘의 폭풍이 몰아쳤다.

도시 내에서 이래도 되나 싶기는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로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이빨을 드러냈다.

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성큼 성큼 놈에게 다가갔다.

“감히……!”

“할 줄 아는 말은 그게 전부냐?”

일촉즉발.

로칸마저 으르렁거리자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되었다.

언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살벌한 기세를 알아차린 다른 천족과 천족 지망생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괜히 얽혀 봐야 좋을 것 없는 것이다.

“왜, 뭐?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 하등한 종자가 어디 천신의 혈통인 이 몸께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어서 무릎 꿇지 못할까!”

원래 크게 짖는 개가 안 무서운 법이다.

조선시대 양반처럼 고래고래 소리 질러 대는 놈의 행동에 로칸은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하등한 종자한테 한번 얻어 터져 볼래?”

“건방진!”

하지만 놈도 쉽게 손을 쓰지 못했다. 도시 안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먼저 덤벼 주면 이쪽이야 땡큐다. 정당방위가 성립될 테니까.

‘이쪽의 법은 모르지만……. 여차하면 다 조지고 튀면 되지.’

게다가 어차피 천족을 사냥감으로 점찍은 로칸이 아닌가? 그들과 사이가 틀어진다 해서 두려울 것은 없었다.

이른바 ‘척살’ 같은 것이 벌어질지는 몰라도 정 안 되면 한동안 한적한 사냥터에 짱 박혀 있다가 레벨을 올리고 나오면 될 일이다.

하다못해 마계에 가서라도 설쳐 대면 잡으러 올 수 없겠지.

언제든 반대 진영이나 중립 지역으로 토낄 수 있다는 것이 로칸의 자신감을 높여 주었다.

“감히 천계에서 천족을 능멸하다니, 그러고도 곱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

“진짜 멸(滅)해 줄까? 자살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군.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는데 꼬우면 덤벼, 그 잘난 종족 뒤에 숨지 말고. 이무기가 나타났을 때는 꼬랑지 말고 숨어 있던 새끼가 어딜 깝쳐?”

“이익……!”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객실 안에 있어 몰랐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이무기가 나타났다는데 어찌 전혀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을까. 객실 쪽에도 최소 조심하라는 안내는 나갔을 터였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이무기와 함께 비공정에서 떨어져 나간 놈이 왜 멀쩡히 여기에 있지? 하고 말이다.

물론 방문자이니 죽어서 다시 건너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상 맞지 않는다. 비공정이 다시 오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로칸은 초행이라 했으니 천상의 룬으로 위치를 저장시키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도 이곳에 있다는 것은, 이무기를 따돌렸든 죽였든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고 이곳까지 제 발로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과연, 자신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망설여졌다. 하등한 종족이라 여기는 놈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은 분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지만 맞상대를 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까.

자신이 죽으면 놈은 천족들의 추적을 받을 테지만 일단 죽으면 끝이었다. 죽은 다음 이루어지는 복수야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한다.

“왜, 한판 뜰까? 거추장스러운 그 닭 날개 정도는 잘라 줄 수 있는데.”

“이 천한 것이 감히! 좋다. 내 친히 네 놈을 박살 내고 다시는 신성한 대지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가까스로 참고 있던 분노의 둑이 로칸의 마지막 도발에 터져 버렸다.

‘걸렸군.’

천족의 날개는 그들의 상징이자 자존심과 같은 것.

그것을 모독했으니 참는 것이 병신이었다.

“좋아. 그럼 따라 나와!”

놈의 결투 신청에 씨익 미소를 지은 로칸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먼저 앞장섰다.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아무래도 도시 내부에서의 결투는 이목도 집중되고, 그저 ‘결투’로 끝날 수 있으니까.

로칸이 원하는 것은 그저 적당히 손봐 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천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그렇게 되자 놈도 불안하지만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가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명색이 순수 천족씩이나 되어 진영 선택도 하지 않은 인간에게 도망친다? 자존심을 떠나 천족으로서의 명예를 실추시킨 벌로 그 지위를 박탈당할지 모를 일이다.

때문에 희고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로칸의 뒤를 따랐다.

‘이쯤이면 되겠지?’

그렇게 앞장 선 로칸은 제법 먼 곳까지 나왔다.

하이 마스터급, 그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존재들이 격돌할 경우 일대가 남아나질 않는 것도 있지만 ‘증인’을 없애기 위함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처리한 뒤 한참 뒤에 돌아가면, 굳이 천족들과 당장 척을 질 일도 없겠지.’

시체야 ‘사냥’하면 일정 시간 뒤에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닌가? 더구나 따로 토목 공사를 하는 지역도 아니니 적당히 디그독을 불러 땅에 묻어 버리면 걸릴 일도 없었다.

천족들과 척을 진다 해서 두렵지는 않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로 불편을 겪을 생각까지는 없는 로칸이었다.

“자, 덤벼!”

대충 자리를 물색한 로칸은 광풍의 날개를 접으며 다시 한 번 놈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명백한 도발.

하지만 이번에는 놈도 쉽사리 넘어오지 않았다. 이곳까지 끌고 온 것에 뭔가 함정이 있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흥! 네까짓 놈에게 선공을 가할 것 같으냐! 네가 먼저 덤벼라!”

하지만 놈은 알지 못했다. 로칸에게 선공을 양보한 것이 얼마나 큰 실책인가를.

“그래? 그럼 나야 땡큐지.”

순간 로칸의 눈빛이 돌변했다.

굳이 선공을 양보해 준다는데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놈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즉시 그의 최고 돌격기를 선사했다.

“유니콘 소환, 전설을 타는 자, 폭주 전차, 투지의 발걸음, 급가속, 광기의 시간!”

“헉!”

단숨에 거리를 0으로 만드는 초고속의 돌진에 놈이 기겁을 했다.

푸확!

재빨리 몸을 움직여 피해 보지만 완전히 피해 내는 것은 무리였다.

대비하고 있었다지만 로칸의 돌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난데없는 유니콘의 등장에 깜짝 놀라 타이밍을 잃었으니까.

“빌어먹을 인간 놈이 어찌 신수를……!”

“거 너무 성질내지 마. 곧 잘릴 날개인데 구멍 좀 뚫린 게 어때서 그래?”

로칸의 이죽거림에 놈의 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미 진작 불덩이였나?’

하지만 로칸이라고 놈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다. 신수씩이나 되는 유니콘의 돌진은 실로 무시무시했으니까.

[신수 유니콘][Lv 400]

유니콘은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였다. 전설을 타는 자를 사용해도 다른 종으로 진화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킬이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종은 바뀌지 않았어도 더욱 강력한 힘을 얻은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런 유니콘의 돌진을 피한 것만 해도 미타엘의 실력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속도형인가 보군.’

하지만 그것으로 놈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었다.

유니콘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해 타이밍을 놓쳤음에도 이만큼이나 피해 낼 수 있다니. 날개에 구멍이 뚫리긴 했지만 그 속도 하나만큼은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빌어먹을 인간 놈! 내 이후로 인간 놈들은 보는 족족 처죽이고 말 것이다!”

“그것도 여기서 살아서 갈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

놈의 엄포에 로칸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역시 가만히 살려 둬서는 안 될 놈이다.

“그럼 계속해 볼까? 광풍 현신, 전신 무쌍!”

로칸은 지체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 갔다. 이번에는 마스터 스킬까지 몽땅 때려 부었다.

그의 덩치와 함께 유니콘의 덩치도 함께 커졌고, 더욱 강력해졌다.

“네놈 뜻대로 될 줄 아느냐, 천신의 군단!”

“……!”

그 순간, 놈도 자신의 마스터 스킬을 발동시켰다.

하늘에서 광휘가 비치는가 싶더니 미타엘과 똑같이 생긴 수십의 천족들이 내려왔다.

‘가짜?’

아니다. 그저 흔한 환영이라고만은 보기 어려웠다. 그들 하나하나가 풍기는 기운이 결코 미타엘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분열된 천족 미타엘][Lv 390]

“풉.”

하지만 다음 순간, 로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과 똑같은 분신 여럿을 만들어 내는 마스터 스킬은 꽤나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 쪽이 한 수 위인 듯싶었다. 아니면 천적이거나.

“가자!”

히잉!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돌진했다.

실체가 있는 환영이라 해도 이런 분신술은 공통적인 약점을 지닌다.

바로 술사가 쓰러지면 사라져 버린다는 것.

때문에 로칸은 최단 거리로 본체에게 달려들었다.

‘이건…… 병신인가?’

비틀.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날개에 구멍이 뚫린 채로 분신을 만들어 내니 분신들 역시 날개가 꿰뚫려 있는 것이다.

자연히 비행이 자유롭지 않았고 의도와 달리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나마 애초부터 땅에서 나타난 놈들이 로칸을 막아섰지만 사자왕의 견갑에 의해 강화될 대로 강화된 돌격이다.

겹겹이 뭉쳐 저항한다 해도 고작 놈들의 힘만으로는 막아 낼 수 없었다.

“저리 꺼져!”

퍼엉 펑 펑 펑.

놈들을 소멸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돌진 공격력이라면 로칸 이상인 유니콘이 아니던가? 그 뿔에 꼬치처럼 꿰이자 단숨에 생명력이 닳아 빛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친!”

미타엘은 분신들을 희생하며 어떻게든 몸을 빼냈지만 그 또한 예상 범주 안이었다.

“말살의 사슬!”

로칸은 즉시 사슬을 쏘아 내 놈의 몸을 두들겼고, 미타엘의 몸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점프, 붉은 유성!”

그 순간, 붉은 유성으로 변한 로칸의 무릎이 놈의 허리를 찍었다.

외마디 비명조차 허용하지 않는 격통에 몸을 뒤트는 놈의 머리에 크고 날카로운 도끼날을 가져다 대었다.

“살육의 일격!”

퍼억.

미타엘의 머리가 푹 하고 들어갔다.

단단한 두개골이 어떻게든 버텨 주긴 했지만, 그건 한 번뿐이다.

“돌대가리네, 이거. 이것도 막아 봐라. 광살!”

퍼버버버버버벅. 퍼석.

로칸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미타엘의 머리통에 즉시 연격을 꽂아 넣었다.

놈의 머리가 풋사과처럼 으깨지며 죽음이 찾아왔다.

그가 그렇게 무시하던 인간에게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났다.

“역시인가?”

휘익, 하고 배틀 액스를 털어 피를 뿌려 낸 로칸은 그제야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천족을 죽이셨습니다.]

[타이틀 만인살의 효과로 머더러 카운트가 오르지 않습니다.]

천계에서 무려 천족씩이나 되는 이를 죽였지만 머더러 카운트가 오르지 않았다.

설령 당장 다른 천족을 만나더라도 그들은 로칸이 천족을 죽였는지 알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더없이 깔끔한 뒤처리.

아무래도 이 타이틀 효과를 써먹을 데가 많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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