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
심장을 먹는 아귀 (3)
서리의 타이탄을 침묵시켰던 그 힘이다.
물론 그때는 초월각성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로칸은 이 한 방에 놈이 끝장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헐.”
그러나 대지의 타이탄은 달랐다. 대미지는 충분할 것이라 여겼지만 아무래도 숨을 끊기에는 조금, 아주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전신이 넝마가 되어 장기가 훤히 드러났지만 거칠게나마 숨은 붙어 있는 상태였다.
‘이거…….’
다행히 아직 카이가 허공에 들어 올린 상태라 이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로칸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푸욱!
배틀 액스로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대신, 단검을 들어 놈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이미 인체 해부 하듯 속이 벗겨진 상태라 걸릴 것은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심장을 먹는 아귀가 대지의 타이탄의 심장을 탐식합니다.]
[대상의 심장과 영혼에 깃든 힘을 흡수합니다.]
[대지의 은총을 흡수합니다.]
[종족 특성 미적합. 대지의 은총이 대지의 축복으로 변환됩니다.]
[대지의 축복]
당신은 대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땅에 신체의 일부를 붙이고 있는 동안 당신의 능력이 강화됩니다.
-대지 접촉 시 모든 능력치 20% 상승
-대지 접촉 시 모든 저항력 20% 상승
-대지 접촉 시 방어력 50% 상승
-대지 접촉 시 모든 재생력 200% 상승
-대지 접촉 시 모든 상태 이상으로부터 면역
“헐.”
심장을 먹는 아귀에게 심장을 빼앗긴 대지의 타이탄은 당연하게도 사망했다.
뒤늦게 땅에 있는 상태에서도 심장을 먹일 수 있었을지 궁금하긴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대신 새롭게 획득한 패시브 스킬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다른 모든 옵션들도 훌륭하지만 대지 접촉 시 모든 상태 이상으로부터 면역이라니? 그렇다는 것은 디버프 종류가 아예 통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피의 집중이라는 일종의 탈출기가 있다 해도 연속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운 만큼 다수를 상대할 때 어려움이 있던 로칸에게 이보다 큰 희소식이 없었다.
[당신의 몸에서 타이탄의 힘이 일부 확인되었습니다.]
[특정 아이템의 봉인 해제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아니, 있었다.
특이한 방식이긴 하지만 타이탄의 능력을 흡수하자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에 걸려있던 봉인이 완전 해제된 것이다!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레전드]
광풍이라 불리던 이가 사용하던 배틀 액스. 타이탄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서 천상의 광석을 제련하여 만들어졌다.
-공격력 : 10,000
-내구력 : 파괴 불가
-[광전사] 클래스의 모든 스킬 공격력 1,400% 상승
-버서크 사용 시 공격력 140% 증가
-후유증에 관계없이 하루 한 번, [버서크] 재사용 가능
-하루 세 번 [진(眞) 광풍참] 사용 가능
-타이탄과 전투 시 모든 옵션 효과 2배
-착용 제한 : 350레벨
“……미쳤네.”
일단 대미지부터가 살벌하다.
천상으로 넘어와 사냥하며 하이 마스터급의 아이템을 꽤 많이 보아 온 로칸이지만 결단코 1만이 넘는 대미지를 가진 놈은 보지를 못했다.
어떤 중병기든, 혹은 일회용 아이템이든.
한데 봉인이 풀린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는 이미 기본 대미지가 1만이다.
어디 그뿐인가? 옵션도 달라질 것은 예상했지만 모든 옵션이 2배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무혼 각성을 사용해 억지로 봉인을 풀었을 때는 아이템 능력을 확인할 수 없어 몰랐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증폭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타이탄을 상대할 때는 여기에 ×2를 한 번 더 하게 된다.
대타이탄용 병기라는 말이 이처럼 어울릴 수 있을까?
들고 있는 것만으로 힘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지만 로칸은 간신히 정신 줄을 붙잡았다.
봉인이 풀렸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강화, 강화, 강화……!”
바로 아이템의 강화.
이날을 위해 모아 온 강화석들이 아니던가? 더욱이 지상에서의 실험 결과, [파괴 불가] 옵션이 걸려 있는 아이템은 강화가 실패할지언정 파괴되지 않았다.
강화에 실패한다 해도 강화석, 혹은 고급 강화석만 날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로칸이 고작 고급 강화석 따위를 아까워할 리 없다.
다이렉트로 될 때까지 강화석을 발라 댔다.
“가즈아!”
번쩍!
그리고 결국, 최고 강화 레벨인 +10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흐흐흐흐흐흐!”
무기의 경우 강화에 성공하면 기본적으로 기본 공격력의 10%가 상승한다.
그러나 그것도 5강까지의 이야기.
6강부터는 기본 공격력이 아닌 현재 공격력의 10%가 상승한다. 이를 테면 복리로 상승을 하는 것!
그렇게 10강을 마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가 가지게 된 공격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거 실화냐…….”
공격력 24,158.
이래서 유저들이 강화 콘텐츠에 미치는 것이다.
이전 등급의 최상위 무기를 풀강화하면 어지간히 강화한 다음 등급의 상위 장비 수준으로 강해지는데, 로칸처럼 최상위 등급, 최상위 장비라면 어떻겠나.
이미 봉인이 풀리며 레전드 등급이 되었지만 이건 레전드라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강화가 불가능한 봉인된 무기를 쓰면서 로칸은 내심 공격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터였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랬다.
다른 천상의 장비 중에는 이미 그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종류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광전사 스킬을 7배나 강화해 주고 버서크 계열의 능력을 사용하면 70%나 다시 강화해 주는 옵션 때문에 차마 무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던 그였다.
그 노력과 인내가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거라면 충분하지.”
이거라면 대지의 타이탄이 아니라 다른 어떤 타이탄이라 해도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자이언트 피데기의 웅크리기가 타이탄에게도 제대로 먹힌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나?
로칸의 표정이 만족감으로 풀어졌다.
“어, 잠깐만?”
그렇게 행복에 잠긴 것도 잠시, 로칸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럼 제물은 어떻게 하지?”
광풍을 소환하기 위해 제물이, 타이탄의 심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데 이번처럼 심장을 먹어 치워 버린다면 광풍의 소환이 불가능했다.
특히나 타이탄의 경우, 강력한 존재인 대신 그 수가 한정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심장을 먹는 아귀가 흡수 할 수 있는 능력의 숫자가 제한적인 만큼 리젠을 기다렸다가 심장을 모으는 방법도 있었지만 문제는 리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리젠이 안 되지야 않겠지만 그게 몇 주, 몇 달씩 되어 버린다면 꽤나 난감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길. 선택을 해야 하나.”
광풍을 만나는 것과 타이탄의 능력을 흡수하는 것.
대지가 아닌 다른 속성의 타이탄을 먹어 치우면 또 어떤 능력을 얻게 될지 두근거리던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돌겠군.”
잠시 고민하던 로칸은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렸다.
“이건 한참 미뤄야겠어.”
당연히 능력의 흡수가 우선이다.
무기의 봉인을 풀지 못했다면 모를까, 당장 광풍을 만나야 할 이유가 퀘스트의 완료뿐이라면 굳이 애를 써 가며 우선 달성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까짓것, 안 되면 레벨 업을 해서 만나지 뭐.’
거기에는 계속해서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광풍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기인했다.
가오칸의 말을 들어 보면 당장 그랜드 마스터가, 초월자가 된다 해도 그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 이상의 존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간이 걸릴 뿐이라면 당장의 파워 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퀘스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지만 어쩐지 광풍을 만나는 것으로 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다음은 어떤 놈이었더라?”
선택지를 정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곧장 이동할 수는 없었다. 아직 쿨 타임과 후유증이 끝나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얼른 다음 타이탄의 심장을 음미하고 싶었지만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처럼 다시 마을로 돌아가 차근히 정비를 시작했다.
“남은 건 전격의 타이탄과 화염의 타이탄, 그리고 바람의 타이탄인가?”
다음 사냥감으로 어떤 놈을 택할지도 문제다.
각각 특별한 속성의 힘을 지닌 놈들인 만큼 그에 대한 대비도 필요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의 타이탄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하면 보통 속도지. 정말 타이탄이 미친 속도를 가지고 있는 거라면……. 어후, 생각하기도 싫군.”
단단함이 무기인 대지의 타이탄도 만만치 않은 속도였는데 바람의 타이탄이라면 오죽할까.
차라리 힘 대 힘으로 싸우는 것이 훨씬 속 편했다.
자칫하면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쥐어 터지기만 할 수 있었으니까.
따라서 놈을 잡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아니, 마땅한 대비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예 싸우지 않을 생각까지도 했다.
그렇다면 전격의 타이탄과 화염의 타이탄 중 하나인데, 양 쪽 모두 본인 외적인 문제가 있었다.
“천계와 마계란 말이지?”
전격의 타이탄이 서식하는 곳은 천계, 화염의 타이탄이 서식하는 곳은 마계인 것이다.
물론 사자왕의 엄포가 있었으니 천족들조차도 이제 쉽게 로칸을 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그 음흉한 작자들이 무슨 수작을 꾸밀지 모르지 않나?
일반적인 시비가 아니라 결투, 또는 로칸이 먼저 폭력을 행사할 경우 제아무리 사자왕이라 해도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그라고 무적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일단 마계부터.”
결국 로칸은 마계행을 택했다.
천족의 보복이 무서워서?
그럴 리가. 오히려 먼저 덤벼들어 줄 확률이 높은 놈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다만, 그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마계에 있는 화염의 타이탄이라면 필시 불 속성의 공격을 가해 올 텐데, 화염 저항력이라면 특히 더 높은 그가 아니던가?
훨씬 상대하기 수월한 것은 물론 이동 수단까지 편리하니 더 먼저, 더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쪽부터 택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또한 가는 김에 샤로크와 키리토가 각각 세력을 얼마나 더 키워 놓았을지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코인이야 넘쳐나니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 줘도 좋겠지.
“일단 불시 점검부터 해 볼까?”
천상의 룬 북을 이용해 단숨에 마계로 이동한 로칸은 먼저 뱀파이어 마을을 찾았다.
“흠?”
그리고 실망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보다 상태가 좋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샤로크를 만나 봐야 알 일.
표정을 굳히고 뱀파이어 성으로 향하자 샤로크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오셨습니까.”
“그래. 세력을 키우는 건 잘되고 있나?”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다. 이미 표정에서 질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로크는 여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다만 눈에 띄지 않고 세력을 늘리기 위해 병력을 조금 분산시켜 두었습니다.”
“호오?”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에 로칸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단지 마을을 부강하게 만드는 정도로 생각했거늘, 거기까지 생각하고 행동했단 말인가?
생각이 기특했지만 칭찬은 결과를 보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나 되지?”
“먼저 힘을 회복하느라 아직 미흡합니다. 마을 세 개 정도가 한계였습니다. 아, 그리고 일족에 보고를 하고 남작의 작위도 받아 두었습니다.”
이번에는 로칸도 진짜 놀랐다.
마을이라면 분명 뱀파이어 마을 수준일 텐데 무려 세 개씩이나?
뱀파이어 일족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흡혈’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사실 자신이 준 것은 영토 확장의 권한이 전부이지 않던가?
이 정도 규모라면 뱀파이어 남작이 아니라 자작 수준이다. 열 개쯤 된다면 백작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샤로크의 말에 따르면 일반 뱀파이어가 오를 수 있는 한계가 백작급까지라고 했으니 한계 수준의 병력을 모으는 것도 머지않았다.
“좋아. 그럼 계속 수고해. 아 참, 이건 두고 갈 테니 세력을 확장할 때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쓰고.”
만족한 로칸은 샤로크에게 금일봉을 하사하고 다음 지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웨어울프들이 서식하는 울부짖는 숲.
그들의 영역 역시 확장시켜 주었지만 그들은 영역을 넓히는 대신 숲에 있던 몬스터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쫓아 버리는 식으로 이용했기에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게 무슨…….”
그리고 로칸은 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