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마신의 안배 (2)
[마신의 이빨 허리띠][갓]
마신이 직접 자신의 이빨의 일부를 사용해 만든 허리띠.
무엇이든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다.
-방어력 : 6,666
-내구력 : 파괴 불가
-힘 + 500
-체력 + 500
-[포식 성장] 사용 가능
“어?”
성능은 훌륭하다. 방어력도, 파괴 불가의 내구력도, 힘과 체력에 한정이긴 하지만 추가되는 수치 자체가 어마어마했으니까.
철컥.
로칸은 일단 장비부터 착용하고 봤다.
한데, 마지막 옵션의 정체는 뭘까?
“포식 성장?”
더 로드에 잔뼈가 굵은 로칸으로서도 처음 들어 보는 종류의 옵션이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뭔가를 먹여서 성장을 시킨다는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일까?
“설마 심장은 아니겠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지웠다. 아무렴 허리띠가 심장을 먹어 치울까.
파직!
“헛?”
일단은 착용하고 슬쩍 매만지자 번쩍 불꽃이 튀었다.
천신의 별빛 건틀릿과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서로 반발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이놈이?”
아니다. 정확히는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아귀 같은 입을 벌려 건틀릿을 깨물려고 든 것이었다.
다행히 동급에 상극의 힘을 지닌 아이템이라 잡아먹히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건틀릿에 잠시 이빨 자국이 났다가 사라졌다. 자체 수복된 것이다.
“대충 뭔지는 알겠군.”
큰일이 날 뻔했지만 덕분에 포식 성장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바로 아이템을 포식함으로써 성장하는 아이템인 것이다.
무려 갓 등급의 아이템치고는 옵션이 심플하다 싶었는데 성장을 통해 옵션을 불려 나가는 종류인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한마디로 돈 먹는 하마였지만 로칸에게는 문제되지 않는다.
당장 그의 인벤토리와 창고에만 하더라도 천상에서 얻은 수많은 전리품들이 쌓여 있지 않던가?
코인 보충을 위해 팔아치운 몇 개를 제외하면 적어도 수백 개의 아이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로칸에게는 사자왕의 무구라는 압도적인 장비가 있어 꺼낼 일이 없을 뿐.
“일단 먹여 볼까?”
딱히 슬롯 표시가 되지 않는 걸로 보아 먹일 수 있는 장비의 개수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가지고 있는 것부터.
와작 와작 와작.
인벤토리를 뒤져 대충 레어 등급의 아이템을 꺼낸 로칸이 허리띠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내구력 따위는 무시하는지 놈이 이빨을 드러내며 마구 씹기 시작했다.
퉤엣!
“헐.”
하지만 그뿐이었다. 몇 번 씹더니 그대로 뱉어 버린 것이다.
팔아도 상당한 코인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쓸모없는 고철로 바뀐 순간이었다.
“레어 정도로는 성에 안 찬다 이거지?”
입밖에 없지만 어딘가 거만함이 묻어 나오는 그 모습에 로칸이 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고작 레어 등급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 먹어라.”
그렇다면 이번엔 유니크 등급의 단검이었다.
낼름.
그것을 내밀자 녀석은 혀를 내밀어 스윽 핥아 보더니 약 2초 정도 망설이다가 그것을 입에 넣었다.
맛없게 몇 번 씹는가 싶더니 꿀꺽 삼켰다.
“참 나, 이것도 성에 안 찬다는 건가?”
그럼 에픽이나 레전드 등급이라도 바치라는 건가? 어이가 없었지만 허리띠 자체가 신급이니,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
하지만 로칸은 놈이 원하는 대로 어르고 달래 줄 의사가 없었다. 지가 배고프면 알아서 처먹겠지.
아이템도 배가 고픈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이놈을 얼마나 먹여야 할지, 또 먹여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마당에 무작정 몇 개 없는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먹이로 던져 줄 수는 없었다.
커헝!
로칸이 건틀릿을 찬 손으로 허리띠를 두들기자 반발력 때문인지 놈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몇 번을 두들기자 놈도 눈치를 보는지 유니크 등급의 장비도 군말 없이 잘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놈이군.”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마신의 안배를 찾을 때 그랬듯 천신의 안배 역시 이 녀석과 공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아닐지도 모르지만 소소한 파워 업을 한 것이나마 위안은 되었다.
“마지막은 전격의 타이탄이었지?”
슬쩍 소문을 수집해 보니 화산 폭발로 인해 산 아래 마을인 플레임워커스까지 반파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덕분에 마을 수호 퀘스트까지 발동되었고, 보상도 꽤 짭짤하다고.
하지만 로칸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 봤자 경험치 조금 더 주는 정도겠지.
대신 제약도 있을 터였다. 중도 이탈 시 페널티가 있다던가.
그렇게까지 쓸 시간은 없었기에 로칸은 모르는 척 다음 목적지를 탐색했다.
“심판의 땅이라…….”
전격의 타이탄이 있는 장소는 천계에서도 무척 특이한 지형이었다.
끊임없이 내리치는 벼락 때문에 천족들조차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된 곳이라나?
덕분에 플레임워커스 같은 마을도 없어서 비처럼 내리치는 전격을 해소할 만한 특화 아이템도 구하기 어려웠다.
로칸이 화염의 타이탄을 먼저 찾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심판의 땅에 비하면 화염 지대는 양반이니까.
“버서크라도 쓰고 달려야 하나?”
물론 벼락 한 방에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그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에서 타이탄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염의 타이탄이 가진 심장을 먹어 치우면서 버서크 계열의 지속 시간이 늘어났다지만 과연 그 안에 끝장을 볼 수 있을까?
그 안에서 서식하는 것을 보면 놈은 벼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으로 수면에서 깨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쉽게 잡기는 그른 셈.
이쯤 되자 로칸도 당장 놈을 잡으러 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흠, 이건 뭐 맨땅에 헤딩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살 수 없다면 만들 수밖에.”
그렇기에 로칸은 생각의 방식을 바꾸었다.
벼락 지대를 통과할 무언가가 시중에 나와 있지 않다면 직접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사냥을 통한 드롭 형식으로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제작’을 하면 그만이었다.
이것이 안 되면 되게 하는 한국 게이머의 방식.
더구나 천상에는 실력 좋은 대장장이가 널리고 널렸으니 재료만 충분하다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광풍의 날개도 망가졌었지.”
마침 광풍의 날개도 망가진 상태였다.
자체 수복이 되는 장비라고는 하지만 타격이 커서 날개 기능이 되돌아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어차피 시간도 필요한 마당이니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전격 속성을 가진 놈이 뭐가 있더라?”
알 리가 없지. 나름 천상에서의 생활이 길어진 로칸이지만 아직 멀었다.
워낙 큰 땅덩어리였고, 기상천외한 놈들이 많은 곳이니까.
때문에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돈으로 해결했다.
정보 상인.
마족 진영의 편리한 서비스로 자본주의의 위대함을 다시금 실감한 로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격 속성의 몬스터 리스트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천년 전기뱀장어, 뇌격의 도마뱀, 세뿔 뇌전 바실리스크, 천둥새, 천둥 이무기, 옐로 드래곤이라……?”
하나같이 만만해 보이는 이름이 없었다.
그 서식지 또한 중립지대부터 천계, 마계 등 다양했고 활동 영역 또한 육해공에 두루 걸쳐 있었다.
이 중 어떤 놈이 가장 만만할까.
그리고 어떤 놈의 거죽을 뒤집어써야 심판의 땅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로칸이 고민했다.
결국 제작까지 완료해 봐야 효과를 알 수 있겠지만 가장 적합해 보이는 놈을 골랐다.
“천년 전기뱀장어와 천둥새, 천둥 이무기 정도인가? 드래곤은……. 아직 시기상조겠고.”
사실 사냥하기에는 세뿔 뇌전 바실리스크가 가장 쉬울 것 같았다.
일단 날개까지 망가진 상태에서 지상에 서식하는 놈이니 상대하기 편했고, 바실리스크 계열의 가장 큰 무기인 ‘석화의 눈’ 또한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통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놈의 두꺼운 가죽이 심판의 땅에 내리치는 번개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놈이 뇌전을 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뿔’에서 나오는 힘이니까.
그런 만큼 심장을 먹어 치우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슬롯을 채우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물이라…….”
그에 반해 천둥새나 천둥 이무기는 아마도 확실하게 뇌전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터였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카이가 있으니 사냥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그러나 로칸은 어쩐지 전기뱀장어가 탐났다. 올드 게이머의 감이라고나 할까.
촉이 강하게 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당연히 있었다.
사냥은 까다롭지만 녀석이라면 번개를 방어할 수 있는 가죽뿐 아니라 잠수와 관련된 아이템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속에서 싸울 일이라는 것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혹여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는 옵션이 달린 아이템만 얻더라도 앞으로 물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러니 필요한 아이템을 미리 구비해 두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듣자하니 바다를 건너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지역도 있다는 것 같으니까.
“해 보자.”
조금 위험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린 로칸은 일단 로그아웃부터 했다. 현실에서 전기뱀장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더 로드의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같은 경우 현실의 동물이나 전설 따위에 기반하여 만드는 것이다.
“으흠, 어렵겠는데?”
하지만 그렇기에, 현실로 돌아와 잠시 자료 검색에 나선 로칸, 아니 영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전기뱀장어의 사냥 방식이 생각보다 공략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격을 퍼트린다고 생각했기에 단순히 물속에서 끌어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놈은 물속에서만 전기를 뿜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른 상태에서도 엄청난 고압의 전격을 쏘아 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작전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뭐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포기란 없다. 이미 놈을 사냥하기로 정했으니까.
한참이나 놈에 대한 검색을 이어가던 영민은 결국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건 해 볼 만한 가치가 있군.”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일단은 체크.
추가적으로 이리저리 정보를 더 살피던 그는 리프레시 차원에서 방문한 더 로드 홈페이지에서 다소 의외의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천상 러시! 로칸의 뒤를 이를 두 번째 천상인은 누가 될 것인가!]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게이머들은 벌써 9부 능선을 넘었다.]
[더 로드의 판도를 바꿀 천상 진출. 게임 강국 한국의 길드들은 무얼 하고 있나.]
“천상 러시?”
영민으로서도 클릭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제목들이었다.
갑자기 천상 러시라니? 아직 하이 마스터도 나오지 않은 이 마당에?
‘아니, 숨은 하이 마스터는 있을 수도 있지.’
영민의 경우 보스 몬스터, 이벤트 몬스터 등을 독식하며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지만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하이 마스터까지는 어찌어찌 한둘 정도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갑자기 천상이라니?
그것은 이제 막 하이 마스터에 오른 유저 한둘만 가지고 뚫어 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언젠가 결국 해답을 찾아내겠지만 당장의 유저 수준으로는 수십, 어쩌면 수백 번의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몇 번 들이받아 봤으면 알 텐데 대체 왜…….’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상 대포? 날개? 물론 지금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미스랄즈오름을 피하는 일이나, 하늘섬을 거치는 일 등은 정보가 없으면 못 할 짓이다.
몇 번만 시도해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러시’라는 말이 붙을 만큼 붐이 인 것일까?
영민은 알지 못했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로칸이 있었다.
[캬루스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던 로칸이 천상에서 활동하더니 신기를 얻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 하나의 사실이 유저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이다.
더구나 지상에는 마스터 레벨 사냥터 정도는 있어도 하이 마스터 이상의 사냥터는 아직 없는 상태였으니까.
천상을 하이 마스터라면, 혹은 하이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꼭 가야 하는 다음 레벨의 사냥터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비단 한국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빠르게 타락 퀘스트와 종족 퀘스트가 일어난 한국보다 퀘스트 진행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해 온 해외의 유저들이 더 먼저 천상으로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안전하게 천상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천상 러시라는 현상이, 이 변화가 다시 한 번 더 로드의 판도를 뒤바꾸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