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심판의 땅 (2)
콰르르르르릉.
심판의 땅을 유유히 걸어가는 로칸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로칸의 로브에 달린 옵션처럼 전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전격의 타이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굴에 기거하며 강력한 전격 내성을 지닌 존재들도 일부 서식하고 있기는 했다.
동굴에 서식하는 다른 하위 몬스터를 양식하듯 잡아먹으며 생활하는 족속들과 전격의 기운을 양분 삼아 먹고 자라는 일부 식물들은 간혹 나타나는 방문자들을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침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동굴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있는 동굴로 가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었다.
[번개의 풀을 획득하셨습니다.]
[벼락 꽃을 획득하셨습니다.]
식물들이야 전투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니 캐 버리면 오히려 이득이고.
강력한 전격의 기운을 머금은 식물들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원이기에 로칸도 놓치지 않고 그것들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연금술로 사용하든, 장비 제작의 재료로 사용하든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지 않겠나.
아쉽게도 카이까지는 덮을 수가 없어서 걸어 이동해야 했지만 그런 소소한 재미 덕분에 심심치 않게 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있다.’
그러기를 꼬박 반나절.
로칸은 마침내 목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격의 타이탄][Lv 444]
레벨도 아주 기가 막히다. 무려 444레벨.
그랜드 마스터의 다음 경지에 450레벨인지, 500레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그랜드 마스터들과도 격이 다를 터였다.
‘설마 전격을 흡수하는 건 아니겠지.’
게다가 심판의 벼락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그뿐일까?
만약 전격을 흡수해 체력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면, 꽤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무혼 각성, 무혼 각성!”
놈과 눈이 마주쳤을 때, 로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거인의 형상으로 변화하며 힘을 개방시켰다.
은신을 이용한 기습도, 이전처럼 자이언트 피데기의 웅크리기도 사용할 수 없기에 아예 정면 승부를 건 것이다.
놈의 무기는 대형 망치.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놈이었지만 타이탄인 놈이 들자 한 손 무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뒤잡기.”
둔기류를 주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힘에 자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맞부딪치는 대신 놈의 등 뒤로 돌아갔다.
콰앙! 파지지직!
빈 땅을 내리치자 땅에서 번개가 번쩍인다.
아무래도 놈 역시 전격의 힘을 다루는 모양.
그렇다면 공격을 받아 낼 때마다 감전 효과에 당하는 것은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토르냐…….’
타이밍 좋게 그들의 주변으로 벼락까지 내리꽂히자 녀석이 천둥의 신, 토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토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라그나로크 팀의 애송이와는 비교가 불가한 위력이었다.
“광살, 사자 난무!”
그러나 로칸은 기죽지 않고 힘을 쏟아 냈다.
로칸을 얕본 것인지, 지형 효과를 믿는 것인지 대뜸 큰 동작을 펼친 놈이었기에 로칸 역시도 큰 기술을 사용할 타이밍은 충분했다.
“끄어어엉!”
배틀 액스가 살쾡이처럼 놈을 할퀴었다.
피부와 배틀 액스가 닿을 때마다 번쩍거리며 스파크가 튀었지만 그뿐이다.
천년 벼락의 로브 덕분에 대미지는 없었고, 약간의 저항감쯤이야 힘으로 뚫어 냈다.
놈의 살갗을 뚫고 역으로 벼락의 기운을 몸속에 흘려 넣었다.
“전격 발출.”
치지지지지직!
살이 익는 소리가 났다. 노릿한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놈이 비명을 질렀다.
피를 타고 흐르는 전격의 기운에 화들짝 놀라 팔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이크!”
단순한 버둥거림에 불과했지만 상대가 타이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위협적인 휘두름에 로칸이 백 스텝을 밟아 거리를 벌렸다.
“오라 폭격! 사자열파참!”
하지만 공격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놈의 상처를 노리며 강대한 기운을 마구 뿜어냈다.
“전류 제어.”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계 수준까지 자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동안 봉인 상태에서만 사용했던 전류 자극이 온전한 상태에서 사용되며 로칸의 능력을 급격히 끌어 올렸다.
“어디 한번 해보자! 파멸의 일격!”
전신에 힘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 로칸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배틀 액스를 세워 머리와 심장을 보호한 채로 맞을 것을 각오하고 놈에게 짓쳐 들었다.
“큭!”
퍼억!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쳤다. 그것뿐인데도 생명력이 크게 추락하고 몸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 정도로 멈출 수는 없지.
재차 투지의 발걸음을 사용하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를 사용할 틈을 주지 않은 채, 난타전으로 싸움을 몰고 갔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다.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지자 발동하는 불굴의 의지 효과.
모든 능력치가 2배로 뻥튀기되며 가공할 경력이 그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흐흐흐흐!”
이 정도면 할 만하다. 고레벨 타이탄의 힘이라도 로칸보다 2배 이상 강력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능력치 면에서는 우위를 점한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로칸이 자세를 낮추고 놈의 다리를 걸었다.
퍼억! 부웅. 콰앙!
다리를 걷어차자 놈이 몸의 통제력을 잃었다.
지금까지는 막강한 힘으로 강대를 찍어 누르기만 했던 타이탄이기에 자신이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지 고작 다리에 힘을 주어 막으려다가 몸 전체가 떠올랐다, 추락했다.
“넌 뒈졌어!”
그 위로 로칸이 냉큼 올라탔다. 놈의 가슴을 깔아뭉개고 무릎으로 두 팔을 짓눌렀다.
“살육의 일격!”
퍼억!
놈의 어깨에 배틀 액스를 박아 넣었다.
‘젠장.’
하지만 잘리지 않았다.
막대한 공격력을 머금은 일격임에도 놈의 피륙을 자르고 살을 뭉개는 것이 고작이었다.
단단한 뼈는 파괴 불가라도 되듯 공격을 버텨 냈고, 로칸은 속으로 욕을 삼키며 다시 한 번 공격을 내질렀다.
‘서둘러야 해.’
일방적인 공격 상황.
그러나 조급한 쪽은 로칸이었다. 자신만만하던 놈을 단숨에 거꾸러뜨렸지만 놈은 아직 주력 스킬들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것이 나오기 전에 해치우는 것이 베스트였다.
‘아직이야.’
그렇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로칸은 놈의 가슴을 의식했다.
가능하면 살아 있는 채로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었다.
“커헝! 전격 폭발!”
콰과과광!
그리고 놈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눈앞에서 한순간 전격을 폭발시키며 로칸을 날려 버린 것이다.
“큭, 제기랄.”
천년 벼락의 로브 덕분에 피해는 없었지만 승기를 잃었다.
다시 무기를 들고 벌떡 몸을 일으키는 전격의 타이탄을 노려보며 2차전을 준비했다.
“빌어먹을 인간 노옴!”
치지지지지직.
다음 순간, 놈이 뿜어낸 전격은 스스로를 감쌌다.
철철 피가 흘러넘치는 상처를 번개로 지져 버리며 지혈을 한 것이다.
그 독기에 로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상황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놈도 피해를 입었을 테니까.
‘이게 신의 한 수였군.’
모든 전격 계열 효과를 무시하는 로브.
로브 형태다 보니 행동에 살짝 제약이 걸리는 느낌이지만 드록쉬가 최대한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어 준 덕분에 그럭저럭 움직일 만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걸 믿고 간다.
“내리쳐라, 천둥이여!”
콰과과과과광!
그때, 심판의 벼락이 거대한 빛줄기가 되어 내리쳤다. 마치 하나로 묶인 듯 공간 전체를 때려 대기 시작한 것이다.
전신을 두들기는 벼락의 힘에 로칸마저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지만 타격은 없었다.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지.’
하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은 척 연기는 필요했다. 그래야만 놈의 방심을 한 번 더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모여라, 천둥이여!”
그때, 전신에 가해지던 압박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일대를 메우던 번개들이 모조리 놈의 망치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썬더 브레이크!”
놈이 망치를 쭉 내뻗자 새하얀 빛이 튀었다.
마치 마법처럼 응축된 벼락의 기운을 뿜어낸 것이다.
“컥!”
그 물리력은 로칸조차 위협적으로 느낄 정도였다.
재빨리 팔을 교차해 심장과 머리를 보호한 로칸은 그대로 튕겨 나 바닥을 굴렀다.
“크윽…….”
“심판의 망치!”
부우웅.
그런 로칸을 노리며, 전격의 타이탄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망치로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위해 점프한 것이다.
그 순간에도 놈의 망치로는 강대한 전격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반격.”
스르륵. 콰앙!
하지만 로칸은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놈의 망치가 자신을 찍어 누르려는 순간, 반격을 사용해 뒤로 물러났다가 외려 짓쳐 들었다.
큰 힘을 쓴 뒤에는 반드시 주춤거리는 경직 상태가 오니까.
“점멸.”
공격의 실패를 직감한 놈이 얼른 망치를 놓아 버리며 방어에 나섰지만 로칸은 놈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두 팔을 뒤로 뻗어 목을 감은 뒤, 전력을 다해 던져 버렸다.
후웅. 콰앙!
전격의 타이탄의 거체가 날아가 바위에 부딪쳤다.
타격은 크지 않겠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로칸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니까.
“저리 꺼져라!”
로칸은 놈을 보지 않았다. 대신 놈이 땅에 박아 넣은 망치를 잡아 저 먼 곳으로 던져 버렸다.
주인을 인식하기라도 하는 듯, 잡는 순간 스파크가 튀었지만 알게 뭔가? 전격 공격에는 완전 면역인 상태인데!
한순간에 놈의 무기를 없애 버린 로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놈에게 짓쳐 들었다.
“유니콘 소환, 전설을 타는 자, 전신의 돌격! 점멸!”
아예 유니콘까지 소환해 놈을 들이받았다.
오래 유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유니콘이라면 잠깐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까!
“커헉!”
코앞에서 나타나는, 대처 불가능한 폭발적인 돌격에 가슴을 내어 준 전격의 타이탄이 또 한 번 바위에 날아가 부딪쳤다.
게다가 유니콘의 뿔에 찔려 옆구리에는 깊은 구멍까지 난 상태였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로칸은 곧장 승부를 걸었다.
“초극.”
자신의 모든 스킬을 중첩시켰다.
일격에 모든 것을 담았다.
산채로 능력을 빨아먹겠다는 안일한 생각 따위는 지워 버린 상태였다. 어차피 죽은 시체에서도 능력을 빼앗을 수는 있다고 했으니까.
아직 놈이 모든 것을 보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 이 한 방으로 모든 것을 끝장낼 각오를 했다.
“크아아아아악! 우레신의 분노!”
“빌어먹을!”
번쩍!
로칸의 일격이 놈의 머리를 터트리려는 순간, 놈이 어떤 스킬을 발동시켰다.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애꿎은 바위가 산산이 부서져 비산했다.
창조 스킬.
그랜드 마스터의 권능인 그것을 발동시킨 전격의 타이탄이 육신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벼락으로 몸을 바꾸었다.
우레의 화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