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심판의 땅 (3)
“컥!”
로칸의 일격을 관통한 우레의 화신, 전격의 타이탄은 그대로 주먹을 내질러 로칸의 가슴을 때려 멀찍이 날려 버렸다.
전격 대미지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위력 자체가 사기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이 대번에 0까지 바닥을 쳤다.
“미치겠군.”
보통은 고스트 같은 유령 계열이나 정령 따위도 오라를 머금은 공격에는 타격을 받는다.
우레의 화신으로 변한 전격의 타이탄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잠시 몸의 일부가 흐릿해졌지만, 문제는 곧 회복해 버렸다는 것이다.
쿠르르릉.
심판의 벼락. 그것이 놈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녀석이 이곳에서 무적의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 시간 싸움인가.”
그것을 확인한 로칸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해법을 찾아냈다.
놈의 스킬도 무한히 유지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다른 이들이 자신을 상대하듯 자신 역시 시간을 끌어 놈의 지속 시간을 갉아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디 해 보자!”
입술을 질끈 깨문 로칸은 배틀 액스를 휘두르는 대신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이곳에 오기 전, 만들어 두었던 기계 공학 아이템들을 꺼내 주변에 뿌리고 박았다.
[피뢰침]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심판의 벼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 왔던 것들을 마법진처럼 깔아 놓고 전격의 타이탄을 대비했다.
“이노옴!”
쿠르르릉! 파지지직!
피뢰침의 효과는 탁월했다. 오랜 세월 벼락을 맞으며 내성을 지니게 된 땅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놈이 쏘아 낸 벼락 줄기들을 모조리 땅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전격 계열로서는 천적에 가까운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감히!”
그 모습에 녀석이 더욱 열을 냈다.
고작 쇳조각 따위로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스스로 몸을 던져 로칸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치지지지지직!
[피뢰침의 효과로 우레의 화신이 가진 힘이 약화됩니다.]
덕분에 힘의 일부를 흡수당하기는 했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놈은 강력을 물리력으로 땅을 뒤집으며 땅에 박힌 피뢰침들을 파괴해 버렸다.
“걸렸다, 요놈아! 피뢰탑. 사용!”
하지만 로칸은 애초에 놈과 싸워 줄 생각이 없었다.
놈의 돌진을 확인 한 순간, 뒤로 물러나더니 더욱 커다란 철제 구조물을 땅위에 세워 올렸다.
피뢰탑.
벼락을 대신 흡수할 3미터짜리 철탑을 몇 개나 세우자 놈의 힘이 급속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라 폭격!”
거기에 오라의 힘을 가미해 놈을 방해했다.
곧 회복해 버린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타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회복을 할 때마다 지속 시간을 갉아먹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였다.
계속해서 준비해 온 기계 공학 아이템과 금속들을 던지며 놈을 방해하고 막아섰다.
“캬아아아아악!”
이쯤 되니 놈이 발작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모든 힘을 폭발시키며 일시에 모든 방해물들을 파괴해 버렸다.
무기는 사라졌지만 벼락을 모아 무기의 형상을 갖춘 뒤 휘두른 것이다.
“전신의 돌격! 투지의 발걸음! 급가속!”
로칸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싸워 줄 이유가 없으니까.
우레의 화신이 된 전격의 타이탄은 정말 벼락같이 빨랐지만 로칸 역시 이미 몇 배로 능력치가 뻥튀기된 상태였다.
거기에 이동 스킬까지 더하자 극한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점멸!”
그러나 확실히 우위는 로칸에게 있었다. 전격의 타이탄이 빠르기는 했지만 원거리 공격으로는 로칸에게 어떤 위해도 끼칠 수 없는 까닭이다.
어쩔 수 없이 이동에만 집중을 해도 스킬을 사용해 빠져나가거나 점멸을 사용해 멀찍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고, 그렇게 마냥 시간을 보내다 보니 스킬의 지속 시간이 한계에 다다랐다.
“시간 역행!”
먼저 제한 시간에 도달한 것은 로칸.
화염의 타이탄을 흡수하며 지속 시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무래도 먼저 스킬을 사용한 탓에 빨리 종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로칸에게는 시간 역행이 있었다.
미리 설정해 둔 최대치인 30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광풍 현신의 상태가 되었다.
“이쪽이다!”
다시 시작된 술래잡기.
이쯤 되면 전격의 타이탄도 도망을 칠 법했지만 타이탄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끝까지 로칸을 쫓아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차례가 된 것 역시 로칸이었다.
“미친…….”
놈이 사용한 창조 스킬의 지속 시간이 무려 1시간 가까이 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놈 역시 슬슬 육신을 되찾아 가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로칸 쪽의 스킬 해제가 더 빨랐다.
조금만 더 버틸 시간이 필요했다.
“카이!”
로칸은 즉시 판단을 내렸다.
놈이 벼락을 몰고 오는 듯 여전히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지만 카이라면, 엘리멘탈 바리어라면 당분간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쿠르르릉!
카이의 등장과 함께 전격의 타이탄도 마지막 힘을 몰아쳤다. 한계까지 벼락을 몰아쳤다.
쩌저저정! 끼유유웃!
비명에 가까운 고함과 함께 힘을 발하던 카이의 보호막을 깨뜨리고 반쯤 돌아온 육신으로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카이, 역소환.”
하지만 로칸은 그것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에게는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으니까.
“버서크.”
광풍의 배틀 액스에 내장된 옵션. 하루 한 번 후유증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버서크가 지금 사용되었다.
쩌엉!
벼락 그 자체인 놈의 망치와 배틀 액스가 부딪쳤다.
혹시나 관통하는 것은 아닐까 살짝 몸을 비틀었지만 놈의 변신도 풀리고 있기 때문인지 힘과 힘의 대결이 되었다.
“광풍참!”
그리고 터진 광풍참!
오래전 광풍이 타이탄을 잡을 때 사용했던 광풍의 난무가 로칸의 몸으로 재현되었다.
크아아악!
허리케인과 같은 힘의 폭풍이 놈의 몸을 흩어 버리고 심대한 타격을 남겼다.
“다 했냐?”
그 한 방에 놈의 변신이 완전히 풀렸다. 후유증까지 겹쳤는지 막아 내는 힘이 한없이 약하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완전히 로칸의 시간이었다.
“쇼타임이다, 이 새끼야!”
비틀거리는 전격의 타이탄을 허물어뜨린 로칸의 배틀 액스가 처참하게 놈의 몸을 유린했다.
가슴을 가르고 근육을 베어 냈으며 펄떡이는 심장을 눈앞에 꺼내 놓았다.
[심장을 먹는 아귀가 전격의 타이탄의 심장을 탐식합니다.]
[대상의 심장과 영혼에 깃든 힘을 흡수합니다.]
[거신의 힘을 흡수합니다.]
[당신의 몸속에 거신의 기운이 깃듭니다.]
“거신의 힘?”
놈의 심장에 심장을 먹는 아귀를 박아 넣은 로칸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전격의 타이탄이니 전격과 관련된 능력을 흡수할 것이라 예상했건만, 타이탄이라는 종족 자체가 가진 힘을 빼앗아 온 것이다.
이미 전격 제어 능력을 갖추어 능력이 겹칠 것을 염려하던 로칸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거신의 힘]
당신은 거신족의 피를 타고 흐르는 능력을 빼앗았습니다.
거신족의 종족 특성을 획득합니다.
-힘 수치 30% 상승
-체력 수치 30% 상승
-방어력 30% 상승
-자신보다 작은 존재들과 전투 시 모든 능력치 30% 상승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전투 시 모든 능력치 20% 상승
“……미쳤네.”
단순한 능력 상승이 아니었다. 퍼센티지 형태로 능력이 상승하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30%나!
이 정도면 더 이상 타이탄들도 로칸보다 힘에서 앞선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더구나 자신보다 작은 존재와 강한 상대를 대상으로 능력치가 상승하는 것까지 따진다면 그 배율은 그야말로 사기적이 된다.
“광풍 현신이 아니었으면 박살이 났겠군.”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광풍이라 불리던 이가 어째서 광풍 현신과 비슷한 거인화 스킬을 손에 넣었는지도.
만약 광풍 현신을 사용해 몸집을 부풀리지 않았다면, 놈의 능력은 무려 30%나 상승했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랬다면 자신이 이길 수 있었을까?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살짝 자신이 없어질 뻔한 로칸을 시스템 알림이 달랬다.
레벨 업.
이로써 로칸의 레벨은 396레벨이 된 것이다.
이제 3레벨만 더 올린다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지.
“가만?”
주먹을 불끈 쥐며 돌아서던 로칸이 뭔가를 떠올리고 음흉한 미소와 함께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잘만 이용한다면 생각보다 399레벨까지 금방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족 놈들이 나에게 이를 갈고 있다고 했었지.’
모종의 수작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온 로칸은 잠시 마계에 방문했다. 꼭 구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기 때문이었다.
통합 경매장도 없는 이곳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구한다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일 수 있지만, 막대한 코인을 내걸자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마계야말로 자본주의가 가장 잘 적용된 곳이 아니던가?
아이템을 수배하는 것부터 위치를 제보하는 것까지, 몽땅 코인을 현상금으로 걸자 단 이틀 만에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흠, 재료가 떨어지지는 않았겠지?”
이쯤에서 한창 작업에 열중일 드록쉬를 찾아가 볼까도 싶었지만 로칸은 생각을 바꿔 먹었다.
재료는 아주 넉넉히 챙겨 놓았으니 고작 며칠 만에 동이 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판단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 가서 유니크 아이템 몇 개쯤 허리띠에 먹인다 해서 달라질 것은 별로 없었다.
대신 머릿속으로 짜 놓은 덫을 발동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천상의 룬 북, 사용.”
계산을 마친 로칸은 즉시 천계로 이동했다.
신분을 가려 주는 천년 벼락의 로브는 벗어 버렸다. 자신을 감추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저자는……!”
덕분에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소란이 일었다.
“유니콘 소환.”
하지만 로칸은 그 시선을 즐기듯 보란 듯이 유니콘까지 소환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기서 뭔가를 터트려도 좋겠지만 장소가 좋지 못하다.
로칸은 그 시선들을 이끌고 천천히 어디론가 이동했다.
바로 천족들의 성지이자 천계의 중심, 세인트 발로나가 그곳이었다.
“미친!”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원래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천신의 대신전이 있는 곳이니까.
딱히 누가 막는 것은 아니어도 도시 주변에 펼쳐진 천신의 결계가 자격 없는 자를 통과시키지 않는 까닭이다.
천계 진영으로 이적하지 않은 이는 당연히 들어올 수 없었고, 천계 진영에서도 자격을 갖춘 자만이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런 그곳을, 로칸이 활보했다.
‘반응은 좋군.’
덕분에 치를 떨며 당장이라도 그를 찔러 죽일 듯한 시선들이 모여들었지만 경거망동할 수는 없다.
로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어쨌든 천신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존재를 함부로 재단하여 공격하고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여기서 로칸이 입에 발린 말만 잘한다면 틀어졌던 천족들과의 사이마저 회복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사건이었다.
‘저쪽인가?’
그러나 물론, 로칸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방향은 같았다. 지금 로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천신의 대신전이니까.
“정지!”
당연하게도 로칸을 막아서는 천족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지키는 경비병들조차 순수 천족들이었다.
그렇기에 로칸은 그들의 제지를 무시했다.
“멈추라니까!”
무기를 들이대며 막아서는 천족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공격이라도 하려고? 로칸은 그들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로칸을 붙잡아 봐도 그들의 힘으로 로칸을 멈춰 세우는 것은 무리였다.
“제길, 안에 신호를 보내!”
차마 공격을 하지는 못하겠는지 놈들은 즉시 안쪽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신전을 지키는 천족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로칸,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도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이냐!”
“천신의 대신전, 아닌가?”
경비병들뿐 아니라 천신의 사제와 대사제들까지 몽땅 몰려온 것을 보며 로칸이 피식 웃었다.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감히 천신의 땅에 너 따위가 발을 들이다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천신이 싫었다면 날 막았겠지. 안 그래?”
말하는 족족 맞는 소리만 해 대니 놈들은 더욱 천불이 났다.
그러나 그를 공격하는 순간, 천신의 분노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집 지키는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놈들을 씨익 웃으며 돌아본 로칸은 더 이상 나오는 놈들이 없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다가, 한 번 더 놈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너네, 나 마음에 안 들지?”
“이놈이!”
“그럼 한판 붙을까? 원한다면 너희들 전부와 한판 붙어 줄 생각도 있는데. 만약 내가 진다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지.”
“뭣?”
천족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백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와 한 판 붙어 보겠다니? 이런 오만한 자가 있나.
자존심을 긁는 그 도발에 놈들의 눈이 돌아가, 당장이라도 전투를 치를 준비를 했다.
“워워, 진정들 하라고. 여기서 날뛰면 너희도 곤란하지 않겠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뒀으니 그리로 가지.”
부욱.
그 말과 함께 로칸이 찢은 것은 워프 게이트 스크롤이었다.
천상의 룬을 갈아 넣어 특정 좌표를 입력한 공간 이동 스크롤.
그것을 찢자 로칸의 앞으로 거대한 워프 게이트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아지겠지만 서두른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함께 이동할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그럼 나는 먼저 가 있지. 자신 있으면 따라와 보라고. 뭐, 쫄리면 어쩔 수 없고.”
그 말을 끝으로 로칸은 워프 게이트에 쏙 들어가 버렸다.
대답이나 대화를 할 시간 따위를 주지 않았다.
“이익! 따라간다! 정당한 대결이니 천신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잠시 머리를 굴린 천신의 대사제가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리에 모여든 모든 천족들이 이를 갈며 워프 게이트 안으로 하나둘,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이런 비겁한!”
그리고 잠시 후, 천족들은 이를 악물며 몸부림을 쳤다.
워프 게이트가 이어진 곳은 다름 아닌 심판의 땅.
그곳에 먼저 도착한 로칸이 심판의 벼락과 함께 워프 게이트를 넘어오는 놈들을 하나하나 도륙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들. 갈 곳이 어디인지는 확인했어야지.”
심판의 번개에 적중당해 온몸이 마비된 채로, 로칸의 배틀 액스의 제물이 되었다.
다음 경지에 오르기 위한 경험치 공급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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