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
고인물의 게릴라전 (4)
“아우우우우우우우!”
제아무리 초월자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라지만 신격을 획득한 키리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포식자와 초식동물처럼 놈의 필사적인 저항도 그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고, 목덜미를 물린 채 아무리 저항을 해 봐도 그건 그저 의미 없는 부들거림일 뿐이었다.
“……미쳤군.”
설마하니 이 정도로 격차까지 벌어질 것이라고는 로칸도 생각지 못했다.
그랜드 마스터급의 존재를 진화시켰을 때의 영향이라고 보기에도 지나치게 강력했다.
저 힘이라면 녀석이 단신으로 그몰탄과 그 수하들까지 쓸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파앗.
“아?”
다만, 그 지속 시간이 무척이나 짧았다. 키리토가 놈의 숨을 끊어 놓는 그 순간, 전설을 타는 자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아쉽군.’
잘하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정도면 일종의 필살기로 써 볼 만도 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지속 시간도 더 길어질 터였다.
속으로 계산을 마친 로칸은 온통 시체뿐인 성내를 둘러보다가 다음 지시를 내렸다.
“후퇴한다!”
바로 후퇴.
굳이 이곳에서 자리를 뭉개고 있다고 뭐가 더 나올 것은 없으니 약탈자의 권한으로 챙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긴 뒤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히트앤드런.
혹은 게릴라 전법이라 불리는 그것은 전생 로칸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길드며 파티를 이루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늘 혼자였으니까.
그렇게 그몰탄의 영지 두 곳을 철저하게 파괴한 로칸과 군단은 어둠에 몸을 숨기고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지금쯤 약이 단단히 올랐겠군.”
아마 로칸의 등장부터 병력을 움직였을 그몰탄은 한발 늦게 파괴된 영지를 마주하고 있을 터였다.
로칸이 전속 후퇴를 지시한 것도 모르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겠지.
그동안 로칸은 벌어들인 시간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했다.
놈의 영지에서 벗어난 뒤 빙 둘러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 공격을 감행했던 남쪽으로 부대가 이동한 틈을 타 이번에는 북쪽을 노린다.
이른 바 성동격서의 계였다.
만약 놈이 병력을 이동시키지 않았다면 낭패를 보는 것은 이쪽이겠지만 로칸에게 단단히 화가 난 녀석이 움직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게다가 두 개나 되는 영지가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않았겠나.
냉정히 따져 보면 쉽게 간파당할 수도 있는 작전이지만 분노에 눈이 먼 상태에서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작전이기도 했다.
“모두 전투준비!”
낮 시간에 이동이 어려운 뱀파이어들은 관짝이나 상자에 실어 웨어울프들이 짊어지고 이동을 했기에 꼭 이동이 밤에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만월은 아니지만 충분히 커다란 달빛은 웨어울프들에게 여전히 힘을 실어 주고 있었고, 소모품으로 쓸 병력은 부족했지만 오늘은 로칸이 직접 나설 것이라 그 또한 문제는 없었다.
“전설을 타는 자.”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정면이 아닌 잠입과 기습을 택했다.
디그독을 소환해 땅굴을 크게 판 뒤, 내부에서부터 난동을 부리려는 것이다.
감각이 예민한 마수들이라지만 지하에서 뚫고 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디그독이 뚫는 땅굴은 그리 얕은 위치로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후드득.
“가라.”
파다다다다다닥.
시작은 뱀파이어들이었다. 수만, 수십만 마리의 박쥐 떼로 변한 뱀파이어들이 뭉치고 흩어지며 공간을 어지럽히자 마수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간간이 휘두르는 공격에 박쥐의 일부가 불타올랐지만 그뿐이다.
그마저도 그것만으로 소멸된 수는 극히 적었고, 그들이 시선을 어지럽히는 사이 로칸과 샤라크, 키리토가 지상에 올라섰다.
“크허허허허허허헝!”
거신으로 변한 로칸의 울부짖음이 영지를 뒤흔들었다. 허겁지겁 달려오던 적들의 몸을 뻣뻣하게 만들고 빈틈을 만들어 냈다.
“아우우우!”
웨어울프들의 야성은 그런 커다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짐승의 속도로 달려들어 심장에 손톱을 박아 넣었고, 막히면 흉악한 이빨을 들이밀었다.
“레드 문!”
그리고 다시 발동한 레드 문. 그것이 키리토뿐만 아니라 모든 웨어울프들을 강화시켰다.
그사이 로칸이 각종 광역 버프 아이템을 뿌려 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라!”
영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웨어울프들이 마을의 골목골목으로 퍼져 나가고 뱀파이어들이 하늘과 건물 위에서 그들을 지원했다.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마수들이지만 혼란과 사기 저하를 겪은 상태에서는 기껏해야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라 폭격!”
그나마 그것도 로칸이 뛰어들기 전까지의 일일 뿐.
그와 샤라크, 키리토가 가세하자 전황은 급격히 기울었다.
“제길! 그몰탄 님이 자리를 비우신 틈에!”
“어떻게든 막아라! 한 놈이라도 더 죽여!”
이쯤 되자 놈들도 살기를 포기했다. 이미 자신들과 비슷한 전력을 가진 두 개의 영지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들었기에, 양패구상조차 노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마수 조련사에 의해 심령이 제압된 상태이기에, 그들의 충성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으흐흐흐, 좋구나!”
그러나 로칸은 그 반응이 기꺼웠다.
이전과 달리 한데 모여서 나타난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를 향해 광소를 흘리며 전신의 돌진을 사용했다.
“점멸. 진 광풍참!”
후아아아아앙!
선공 방식은 동일했다. 가장 중심에 선 놈에게 달려들어 숄더 차지를 꽂아 넣고, 그대로 진 광풍참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그 한 방에 정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가 노린 것은 광풍참의 위력에 피해를 입는 것에 더해 놈들을 뿔뿔이 흩어 놓는 것에 있었다.
“크아아악!”
물론 그 피해부터가 막심하긴 했지만.
광풍 현신부터 전신 무쌍, 무혼 각성까지 모조리 끌어 올린 로칸의 일격은 급히 방어하는 놈의 가드를 찢고 몸을 빼내는 놈들의 몸을 난자하기에 충분했다.
“블러디 프리즌!”
게다가 튕겨져 나가는 놈들은 모조리 샤라크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피로 만들어진 감옥. 그것은 놈들을 가두어 둘 뿐 아니라 상처로부터 피를 뽑아내 내구력을 한층 강화시키기 시작했다.
“크흥! 이딴 건 치워라!”
키리토야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감옥째 부숴 버릴 기세였기에 어쩔 수 없이 풀어 주었지만, 샤라크는 영리하게 적을 가두고 농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군.’
3 대 3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그랜드 마스터들 간의 대결이었지만 로칸은 내심 아쉬운 생각을 접을 수 없었다.
상성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이전의 두 성을 지키는 마수들과 이곳의 마수들 역시 상대하기가 생각 이상으로 수월한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강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했지만, 생과 사를 다투는 치열한 전투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제대로 된 창조 스킬조차 보지 못하고 끝나 버릴 때가 있었기에 배틀 액스로 놈의 머리를 찍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래서야 애완동물 쪽이 더 낫군.’
사실 그 이면에는 로칸이 상대했던 그몰탄의 애완동물이 특별하다는 것이 있었다.
방목해서 키웠다고는 하지만 한 지역의 패자이자 그몰탄의 특별한 힘을 이어받은 놈들인 만큼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거기다 까다로운 특성들까지 더해져 오히려 상대하기에는 놈들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으헝!”
쩌엉!
그렇게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쉴 때, 로칸의 배틀 액스가 처음으로 가로막혔다.
젖소 인간의 모습인 놈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할버드를 세워 막은 것이다.
“음모!”
“윽?”
그리고 이어진 난무.
거대화된 로칸의 배틀 액스만큼이나 커다란 할버드를 마구 휘돌리며 로칸을 밀어 낸 녀석은 뜨거운 콧김을 씩 내뿜으며 힘을 발현했다.
“카우 월드!”
“……!”
조합이나 마스터 스킬 따위가 아니었다. 놈의 창조 스킬이 발현되며 그 주변으로 여섯 개의 게이트가 열렸다.
“음모오오오오!”
그리고 놈과 똑같이 생긴 몬스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별짓을 다하는군.”
전장은 한순간에 젖소 목장이 되어 버렸다.
놈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만만치 않은 힘을 지닌 놈들이 로칸을 향해 짓쳐 들기 시작했다.
“풉.”
한데 웃음이 터지는 것은 왜일까.
할버드를 든 젖소 떼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로칸은 왠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놈! 언제까지 웃을 수 있는지 보자!”
쭉, 쭉, 쭉.
그것을 비웃음으로 느꼈는지 다시 한번 크게 콧김을 내뿜은 젖소 인간은 대뜸 무기를 땅에 꽂고서 자신의 젖을 짜내기 시작했다.
새하얀 우유가 분수처럼 솟는가 싶더니 놈의 몸을 뒤덮었다.
츠즈즈즛.
그리고 광풍참과 로칸의 연격에 상처 입은 몸을 완전히 치료해 버렸다.
“푸하핫!”
적이 완전 회복하는 순간이었지만 그 모양이 퍽이나 우스웠다. 이걸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유저가 있을까?
로칸이 아예 박장대소를 하자 젖소 인간은 버럭 성질을 내며 다음 스킬을 발동시켰다.
“보스화!”
“잉?”
마스터 보스화. 자신의 특성을 보스로 바꾸며 더 강한 힘과 체력을 얻는 젖소 인간의 몸이 로칸만큼이나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찾기 쉬워서 좋군!”
하지만 겨우 그런 것에 겁을 먹을 로칸이 아니다. 오히려 놈의 열화판과 본체를 구분하기 쉬워졌음에 기꺼워하며 놈을 향해 날아올랐다.
“울티메이트 어썰트!”
콰아아앙!
붉은 유성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충격과 함께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 아래 있던 놈들? 당연히 피 떡이 되어 널브러졌다.
“진 광풍참!”
어디 그뿐인가? 아예 다시 한번 광풍참을 날려 주변에 있는 미니미 젖소 인간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우유 대신 놈들의 피를 뒤집어쓰며 미약하게나마 감소했던 생명력을 몽땅 회복시켰다.
“흐흐, 경험치도 보스급이었으면 좋겠구나!”
다음은 투지의 발걸음. 포탄처럼 몸을 쏘아 내며 보스화된 젖소 인간에게 짓쳐 들었다.
“폭렬참!”
“오?”
그때, 놈이 거대한 할버드를 휘돌렸다.
마치 로칸의 광풍참과도 비슷한 모습. 그렇기에 광풍참을 정통으로 맞고도 생각보다 잘 버틸 수 있었던 듯싶었다.
‘하지만 안 맞으면 그만이지.’
그러나 로칸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놈의 스킬 발동을 확인하는 순간, 로칸이 백스텝을 밟으며 범위를 빠져나간 것이다.
덕분에 놈은 애꿎은 허공만 휘저었고 로칸은 한 박자 느리게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전신의 돌격!”
뻐억!
강력한 숄더 차지!
동작이 큰 공격을 취한 대가로 가슴팍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놈의 가슴이 크게 젖혀지며 피 대신 하얀 우유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치이익.
우유가 닿은 피부가 따끔하다. 놈에게는 훌륭한 회복약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종류인 듯.
크게 바닥을 구르고 일어난 녀석을 보며 로칸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크게 타격을 입긴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멀쩡한 탓이었다.
‘타격과 동시에 치유가 된 건가?’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놈이 타격당하며 흩뿌린 우유가 놈을 다시 치료한 것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꽤 까다로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타격기로는 무리다 이거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타격 계열의 힘이 놈의 치유를 돕는다면 잘라 내 버리면 그만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유가 마를 때까지 쥐어 패면 그만이니까.
“어디 누가 먼저 지치나 해 볼까?”
방법을 정한 로칸이 사악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손 마디마디를 풀며 놈을 흠씬 두들기기 위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