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9화.꼼수는 있다 (1) (309/500)

 # 309

꼼수는 있다 (1)

“유니콘, 소환.”

히이잉!

멀리 갈 것도 없다. 로칸은 그 자리에서 유니콘을 소환했다.

로칸과 일체가 되어 중급 마족 하나를 격살한 뒤 역소환되었던 유니콘이 걱정되었는지 로칸에게 뺨을 부벼 왔다.

그리고.

[4. 400레벨 이상의 존재 굴복 1 / 10]

퀘스트의 한 자리가 절로 채워졌다. 기존의 행위들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재확인’을 거치니 인정을 받은 것이다.

로칸의 탈것으로 등록된 유니콘 또한 400레벨의 존재.

그러니 사실 퀘스트 조건이 달성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이언트 버터플라이, 소환.”

로칸은 이어 자이언트 버터플라이도 소환해 퀘스트 조건을 채웠다.

“그 녀석들이 살아 있으려나…….”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렸다.

바로 샤라크와 키리토.

그들 역시 400레벨의 존재들이고, 동맹을 맺은 사이이니 그들을 만나기만 한다면 열 자리 중 두 자리가 추가로 채워질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장 어려운 조건이 절반 가까이 달성되는 셈이었다.

물론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살아는 있나 본데…….”

그것을 깨달은 로칸이 즉시 계약서를 확인했다.

만약 그들이 죽었다면 계약서 또한 불타 없어졌을 텐데, 투루비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목숨은 부지했는지 두 장의 계약서는 여전히 멀쩡했다.

도망을 친 건지, 그몰탄의 장담처럼 잡혀 가서 노예로 부려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퀘스트에 큰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했다.

“일단은 쉬운 것부터 해결해야겠군.”

전자여도 찾기 어렵겠지만 후자라면 접근부터가 문제다. 그몰탄이 그들을 편한 자리에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때문에 로칸은 그들을 잠시 잊기로 했다. 살아 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겠지.

준비를 마치면 로칸이 그몰탄을 먼저 찾을 테니까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로칸은 일단 마을을 벗어났다. 중립 지역에서 부활을 했지만 방문자의 특성을 알고 있는 그몰탄과 그 수하들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었기에 일단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그 녀석부터 만나러 가 볼까?”

마을을 벗어난 로칸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드록쉬가 자리 잡은 광산 마을.

천상의 룬 북을 사용해 그 한편에 위치한 작업장을 찾자 드록쉬를 만날 수 있었다.

“응?”

한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저번에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초췌하기 짝이 없어 다 죽어 가는 몰골이었는데 지금은 얼굴이 번지르르하니 기름기가 좔좔 흘렀다.

여유가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놀았냐?”

그러니 로칸으로서는 드록쉬의 불성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에 의해, 또 장인 정신에 의해 그러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흐흐흐흐흐흐!”

“어?”

그리고 궁리를 하느라 아직 켜 놓고 있던 퀘스트 창이 변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400레벨 이상의 존재 굴복 3 / 10]

“설마…….”

로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왜 올라갔지? 설마……?

[복수의 창조자 드록쉬][Lv 400]

황당한 눈으로 그를 다시 살피자 아니나 다를까, 드록쉬의 레벨이 400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은 죽을 둥 살 둥 전쟁을 일으키고 싸워 가며 간신히 399레벨을 달성했는데 골방에 틀어박혀 망치질만 한 녀석이 먼저 400레벨을 달성하다니?

아니, 레벨은 거의 근접했었으니 차치하고 그랜드 마스터 승급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좋은 재료가 많더군. 덕분에 초월의 경지에 도달했다.”

말은 감사의 표현이지만 드록쉬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복수의 대상을 바라보듯이.

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하면서 뭔가 내성 같은 것이 생겼는지 계약서의 힘이 발동함에도 고통을 꾹 눌러 참으며 반말까지 했다.

“허, 이거 참.”

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반응이, 결정이 반가웠다.

같은 그랜드 마스터 승급 퀘스트를 받은 입장에서 그가 내린 결정과 승급이라는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놔.”

“뭐, 뭘 말이냐?”

“뭐긴 뭐야, 네가 만든 아이템들이지.”

“그, 그래. 유니크 등급 아이템을 제법 많이 만들어 두었다. 에픽 등급도 몇 개나 되고. 그걸 주면 되겠지? 아, 물론 그 아래 등급들도.”

살짝 당황하면서도 말이 많아지는 드록쉬.

그러나 로칸은 그가 말장난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전부 다.”

“그, 그런……!”

로칸의 대답에 드록쉬의 낯빛이 새까맣게 변했다.

로칸이 ‘전부’라는 말이 나오기 전, 선수를 쳐서 말을 이리저리 늘어놓았지만 간파당한 것이다.

‘에픽’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그 복수의 대상이 나라면, 날 상대하기 위한 아이템을 만들었을 거잖아? 그렇다면 고작 에픽 등급 정도일 리 없지.’

복수의 창조자라는 수식언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완료 조건을 달성해야 할까.

자신이 그런 것처럼 무수히 많은 각 등급의 아이템을 찍어 내야 할 수도 있지만 로칸의 생각은 달랐다.

‘복수’를 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아이템의 제작.

그것이 퀘스트로 제시되었을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울상을 지으며 하나둘씩 아이템을 꺼내 놓는 드록쉬를 보자 그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크흠, 몇 날 며칠을 제작에만 빠져 있다 보니 제가 애착이 가는 물건이 하나 있어서 그런데 그것만 빼 주면 안 되겠습니까?”

게다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존댓말까지 써 가며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왔다.

“응. 안 돼.”

그 얄팍한 수작에 로칸이 놀아날 리 없다.

단호한 그 대답에 드록쉬가 절망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모든 것을 쏟아 내었다.

“오?”

[복수자의 흉갑][레전드]

복수를 꿈꾸는 제작자의 혼이 담긴 흉갑.

사용자의 감정에 따라 위력이 증가한다.

-방어력 : 20,000

-내구력 : 100,000 / 100,000

-모든 능력치 + 400

-한 번 패배한 적이 있는 대상을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 50% 상승

-한 번 패배한 적이 있는 대상을 상대할 때 모든 공격력, 방어력 100% 상승

-방어력 관통 효과 무시

-사용자의 감정에 따라 모든 옵션 증가

-모든 대미지의 50% 반사

-[복수의 시간] 사용 가능

미쳤다. 이건 미친 옵션이다. 복수의 대상을 한정하기는 하지만 조건만 맞는다면 이건 최고의 방어구라 할 수 있었다.

복수의 대상을 상대로는 레전드 등급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옵션이 아닐 수 없었다.

‘확실히 이거라면…….’

만약 이것을 드록쉬가 가졌다면 자신은 그를 이길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불사 효과를 이용해 대미지 반사를 무시할 수야 있겠지만 마지막에 달린 [복수의 시간]이 문제였다.

[복수의 시간]

복수의 대상으로 지정한 상대의 능력치 50%를 30분 동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어찌 되었든 전투 계열의 능력도 갖춘 데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드록쉬가 모든 강화를 마친 자신의 능력치 중 절반을 훔쳐 간다면,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을 버텨 내고 복수에 성공할 확률이 무척 높았다.

이제는 드록쉬가 아닌 로칸 자신이 주인이 되었지만 말이다.

“대단한데? 잘 쓸게.”

맛있는 냄새를 맡았는지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이빨을 딱딱거리며 발광을 해 댔지만 이것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조련하듯 천신의 별빛 건틀릿으로 툭툭 두들기며 그가 모아 둔 소중한 제작물들을 일단 인벤토리에 쓸어 담았다.

결국 이 중 상당수는 허리띠의 먹이가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쓸 곳이 남아 있었다.

“으허허헝!”

이제는 대놓고 울음을 터트리는 드록쉬를 향해 진득한 미소를 짓던 로칸은,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함께 갈까?”

“으헝?”

영문 모를 말에 잠시 반응을 보이는 드록쉬의 눈에 로칸의 사악한 표정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는 몸.

그러나 피할 새도 없이 그를 질질 잡아끈 로칸은 그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슈우우우우우웅!

둘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무지개 전송 탑이었다.

천계와 마계, 양쪽의 추격을 받는 입장에서 천상에 머물며 퀘스트를 완료하기도 어려웠지만 사냥보다 더 쉽고 빠른 방법이 바로 지상에 있기 때문이다.

“지, 지상이라니…….”

천상에서 태어나 지상에는 처음 와보는 드록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복수자의 흉갑을 잃은 슬픔, 로칸에게 복수할 길을 잃어버린 허탈감은 가득했지만 새로운 호기심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단 따라와. 뭐, 일단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되었으니 언젠간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지 않겠어?”

“그, 그건…….”

말이야 맞는 말이다. 레전드, 아니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도 엄청난 천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확률은 제작자의 레벨과 기술, 그리고 운에 영향을 받는 것이기도 하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로칸의 말처럼 계속해서 제작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와 비슷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아이템을 만들어 낼 확률은 분명히 존재했다.

더구나 이제는 그랜드 마스터까지 되었으니 더 쉬워지지 않겠나? 영혼 없는 위로였지만 덕분에 드록쉬의 눈에 헛된 희망이 깃들었다.

“오셨습니까.”

그렇게 조금은 기운을 되찾은 드록쉬를 이끌고 로칸이 향한 곳은 황궁이었다.

재상이 된 전(前) 황제가 간단하게 브리핑을 했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짧은 주기로 황궁을 찾았기에 그가 신경 쓸 만한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굳이 있다면 시간이 흐르고 유저들이 레벨 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마스터 레벨의 유저 수가 크게 증가하고 하이 마스터도 몇이나 등장했다는 정도일까.

그러나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로칸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하이 마스터의 수준이니 한번 비벼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마스터 이상을 전부 불러들여라.”

“예? ……전쟁이라도 치르실 참입니까?”

뜬금없는 로칸의 지시에 재상의 눈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느닷없이 마스터 레벨 이상을 전부 황궁으로 불러들이라니.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저항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로칸이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자 그는 자신의 권한으로 나라 전체에 포고령을 내렸다.

이 움직임에 검은용군단이나 다른 황금사자 진영의 종족들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로칸은 직접적으로 전쟁을 치를 생각이 당장은 없었고, 그들 역시 다시 마스터들을 흩어 보내는 것을 안다면 경계하되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모든 마스터 이상의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칸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난 뭘 하면 되지, 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면담을 진행하고 퀘스트 조건을 채우는 동안 빈둥거리는 신세가 될 뻔한 드록쉬에게 로칸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너는 드워프 종족의 수도로 가야지.”

“……그리고?”

“드워프들의 수장이 되라. 어차피 놈들은 제작 실력으로 수장을 뽑으니까,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돼서 고작 하이 마스터에게 지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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