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
드래곤 사냥 (1)
로칸과 드록쉬가 일단 몸을 의탁한 곳은 다름 아닌 사자왕의 영지였다.
중립 지역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인 가오칸의 비호 아래 있다면 천족도, 마족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가는 곳마다 경계의 마을처럼 파괴되어 버린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천계나 마계처럼 절대적인 누군가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마을의 파괴에 대한 응징 또한 약하기에 그들이 충분한 배상을 각오한다면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흐흐흐, 꽤 재미있는 일을 벌였는데? 마치 내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군!”
다행히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타입은 아닌 가오칸은 그들을 흔쾌히 받아 주었고, 오히려 로칸이 벌인 일에 기꺼워하며 큰 흥미를 느꼈다.
“가오칸 님도 천족과 척을 진 적이 있으셨습니까?”
“천상에 처음 왔을 때는 그랬지. 결국 그들이 포기하고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때는 나도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상태이기도 했고, 천신의 중재가 있었으니까. 근데 너는 그런 것도 아니라며? 앞으로 어쩔 셈이야?”
“글쎄요. 저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일단 그랜드 마스터에만 오르면……. 제대로 한판 붙어야죠. 원래 혼자 다수를 상대하는 것에는 자신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는 걸 보면 딱 보이거든. 흠, 그럼 그랜드 마스터로는 어떻게 오를 건데? 퀘스트가 꽤 거창하다면서.”
“그것도…….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저를 노리는 이들이 많으니 금방 채울 수 있겠죠. 그래서 말입니다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와 달라고? 그거 재미있겠군. 어디 뭘 도우면 될지 들어 볼까?”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오칸과 파티를 맺고 사냥하는 것이다.
중립 지역에 영지를 가진 인물이니 천족 또는 마족과의 전투에 끼어드는 것까지는 어려울 수 있지만, 그가 로칸을 거들어 사냥에 나서 준다면 몬스터만 잡아도 쉽게 퀘스트 완료 조건을 채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을 들어줄 리가 없다는 것은 로칸도 잘 알고 있었다.
가오칸이 선뜻 돕겠다 나선 것도 어디까지나 로칸이 그의 무력을 빌려 뭔가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테니까.
그것은 로칸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가 하는 부탁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사냥에 저도 끼워 주십시오.”
“뭐?”
순간 가오칸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로칸의 말뜻에 숨은 의도를 파악했다.
“그렇군!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리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가 오랫동안 드래곤 사냥을 준비해 온 것은 로칸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준비가 막바지라는 것도.
남은 것은 가오칸의 결단뿐, 사실상 모든 준비는 마쳐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로칸이 제안을 한 것이다.
“자네라면 믿을 수 있지.”
드래곤을 사냥할 때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산맥 정복.
드래곤의 레어를 중심으로 모여든 몬스터 무리의 소탕과 가디언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쩌면 드래곤 그 자체를 사냥하는 것보다 까다로웠다.
거기서 과도하게 힘을 뺄 경우 막상 드래곤을 상대함에 있어서 힘이 부족할 수 있었고, 게릴라전을 펼치듯 천천히 소탕해 나가다가는 드래곤이 거처를 옮기거나 그사이 병력을 보충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드래곤이라는 족속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들이었다.
따라서 가오칸은 로칸의 제안을 검은 용 때와 같은 ‘드래곤 사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몬스터 무리와 가디언의 소탕. 로칸이 그 수고로움을 덜어 주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가 해야 할 일은 드래곤 사냥이 아닌, 퀘스트 조건 완료였으니까.
‘드래곤 산맥이라면 충분하지.’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일.
가오칸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것을 수락함과 동시에 작은 우려를 표했다.
“아무리 빨라도 2주는 족히 걸릴 텐데, 괜찮겠어?”
“물론입니다. 저도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체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로칸이 굳이 천족과 마족의 추격을 피해 이곳으로 온 것도 바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으니까.
두 가지 리스크를 동시에 해소함과 동시에 퀘스트 완료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는 최소 1주에서 2주의 시간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럼 나도 준비를 시작하지.”
그렇게 동맹 아닌 동맹이 맺어지자, 가오칸은 로칸 대신 드록쉬를 끌고 갔다.
천상에 서식하는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검은 용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준비가 필요했다.
검은 용 카르파고는 노쇠한 드래곤이었지만 이곳의 드래곤들은 아직 쌩쌩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되는 장인의 출현은 가오칸에게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구의 질을 한층 높이고 전력을 상승시킬 기회였으니까.
그렇게 드록쉬가 다시 생산 노예로 전락한 사이, 로칸은 조용히 가오칸의 영지를 빠져나갔다.
“폴리모프.”
마족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고 로칸을 찾아 혈안이 된 그몰탄이 날뛰는 마계로 이동했다.
“소문을 내 달라고요?”
“그래.”
“이 일은 이미 대부분의 마족들이 알고 있을 텐데요. 물론 천족에 대한 건 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알겠습니다. 뭔가 뜻이 있으시겠죠.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일이니 5백만 코인만 받겠습니다.”
바로 소문을 퍼트리기 위함이다. 정보 상인에게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별도의 소문을 퍼트리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5백만 코인을 소비하여 로칸이 퍼트린 소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천족이 로칸을 철천지원수처럼 쫓고 있다는 것.
그몰탄이 로칸에게 현상 수배를 건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분노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 죽이고, 감금하여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알아낼 수 있는 소식이기도 했지만 더 빠른 확산을 위해 로칸이 직접 손을 쓴 것이다. 그 소문이 돌고 돌아 그몰탄의 귀에까지 들어가도록.
‘됐군.’
그렇게 소문을 전한 뒤에는 아예 그몰탄의 군세가 로칸을 찾기 위해 이 잡듯 뒤지고 있는 지역까지 깊숙하게 들어갔다.
“천족이 그몰탄 님과 손을 잡길 원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버러지 같은 놈들이 하는 말이라면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그리고 휘하 마수들에게도 작은 소문을 퍼트렸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되고 말겠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어떤 소문들이 더해진다면 그몰탄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뭐, 안 믿으면 할 수 없고. 한데 내가 아는 마족이 중립 지역에서 들었다는군. 얼마 전에는 놈을 잡으려던 천신의 군대도 박살이 났다지?”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소문. 그것을 적당히 던져 두고 다음으로는 과거 자신의 것이었던 마계 영지 투루비를 찾았다.
‘완전히 박살 났군.’
그몰탄이 자신의 휘하에 두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투루비는 폐허가 된 그 상태 그대로였다. 수리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그것을 용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수들이 주둔하며 잔당이라 할 수 있는 놈들을 색출하고 있는 상태.
애초에 따로 접점이 없던 로칸이니 잔당 따위가 있을 턱이 없지만 들어 보니 샤라크와 키리토가 아직 잡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포로가 된 웨어울프와 뱀파이어들은 포로이자 인질이 되어 매일매일 처형이 진행되는 모양이었고.
뱀파이어인 샤라크라면 몰라도 동족 의식이 강한 편인 웨어울프, 키리토라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살짝 미안한데?’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로칸은 일말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뿐이다. 어차피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을 뿐이니까.
마계에서의 볼일을 마친 로칸은 다시 사자왕의 영토로 돌아왔다.
더 이상 경험치는 쌓을 수 없지만, 소일거리 삼아 영지와 인접한 사냥터를 돌며 소소하게 퀘스트 조건을 만족시켜갔다.
“폴리모프.”
그리고 폴리모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사흘 뒤, 이번에는 천족으로 변신해 천계로 넘어가 마찬가지로 정보를 흘리기 시작했다.
“마수 조련사 그몰탄이 놈을 쫓고 있다고?”
“그 쪼잔한 놈이 현상금까지 걸다니, 어지간히도 화를 돋운 모양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와 손을 잡을 생각까지 할까?”
“흐음, 이건 일단 보고해 둘 가치가 있겠군. 공동전선까지는 몰라도 그놈에 한해 협조 체제 정도는 갖출 수도 있으니 말이야.”
“천신님과 천신의 사제들을 희롱한 놈이니 더러운 손을 빌려서라도 기필코 처단해야 해!”
마찬가지로 마계에 대한 소식이었다.
상급 마족인 탓에 천계에서도 유명 인사인 마수 조련사 그몰탄이 현상금까지 걸고 로칸을 찾고 있다는.
그리고 천계와 손을 잡길 원한다는 소식 말이다.
이번에도 허구였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고대 황제와 타락을 두고 지상의 두 진영이 손을 잡았듯,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었다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손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실현되겠지.’
로칸은 그 공동전선이 분명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서로를 죽일 듯 미워하기는 하지만, 이번 건의 경우 종족 간의 대화합 따위도 아니고 로칸을 처리하기 위한 일시적인 동맹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그들이 정말로 힘을 합칠 경우 사자왕을 압박할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세력이 되어 자신이 더욱 위험해질 텐데 말이다.
그 진실은 오직 로칸만이 알고 있었다.
“준비됐나?”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저한 준비에 온 힘을 쏟은 가오칸은 예고했던 2주가 채 되기도 전인 열흘 만에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전 병력을 이끌고 드래곤의 영토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선두는 당연히 로칸.
그 외에도 가오칸이 직접 키운 병력들이 흉흉한 기세를 뽐내며 선두에 섰지만 돋보이는 것은 역시 로칸이었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무혼 각성!”
시작부터 로칸은 모든 힘을 개방시켰다. 애초에 자원해서 선두에 선 이유부터가 퀘스트 조건을 채우기 위함이니까.
사말리혼이라 불리는 드래곤 산맥의 초입에 기거하는 영웅 오크 대부족을 단신으로 쓸어버리며 가오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오호, 그새 좀 더 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을 가오칸이 여유롭게 감상했다.
본래 이런 전투에서 빠지지 않고 앞장서는 그였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지휘관으로서 주변을 살피고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야 했다.
‘역시 오지 않는군.’
하지만 만에 하나로 우려했던 천족이나 마족의 습격 따위는 없었다.
영웅 오크 대부족을 몰락시키고, 흡혈 트롤과 광기 오우거 부족을 몰락시키는 동안에도 그들의 군세는커녕 정찰대로 보이는 존재조차도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이곳에 나타나는 순간, 사자왕의 행사를 방해하는 순간 그를 적으로 돌리게 되니까.
거창하게 병력을 이동시킨 사자왕의 행사를 아예 모를 리는 없고,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하기보다는 이번 행사가 끝난 뒤 사자왕을 압박하여 로칸을 토해 내게 만드는 것이 쉽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그때가 되면 제아무리 사자왕이라도 병력이 줄어들고 힘이 위축되어 있을 테니까.
‘일단 여기서 최대한 숫자를 채운다.’
때문에 로칸은 전투가 거듭될수록 눈앞의 적들에게만 집중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몰아 잡는 것이 아닌 이상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 후유증을 겪는 중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기에 숫자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끝도 없이 몬스터들이 나타났고, 로칸은 기꺼운 마음으로 녹초가 될 때까지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그렇게, 며칠을 미친 듯이 싸워 대자 결국 드래곤 산맥의 어느 지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드래곤 레어.
그 커다랗고 위압적인 동굴을 앞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