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3화.드래곤 사냥 (2) (313/500)

 # 313

드래곤 사냥 (2)

‘이걸 동굴이라고 불러도 되나?’

형태는 동굴인데 사이즈는 남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이라는 개체가 본체의 형태를 유지할 경우, 그 높이는 무려 1백 미터에 달하니까.

그런 놈이 들락거릴 수 있으려면 그보다 높은 천장이 필수였다.

“그린, 드래곤이었죠?”

“그래. 까다로운 놈이지.”

그 입구의 안쪽으로 들어서기 전, 로칸은 다시 한번 녀석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린 드래곤. 드래곤 중에서도 숲을 사랑하는 그린 드래곤의 특징을 떠올린 로칸은 즉시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렇다면…… 굳이 여길 뚫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응?”

이해할 수 없는 로칸의 말에 가오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을 뚫을 필요가 없다니, 그새 두려워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이곳에 오는 동안 목적을 상당한 수준까지 달성했으니 약속을 어기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그 의문에 로칸이 해답을 내놓았다.

“엘프 못지않게 숲을 사랑하는 놈이라면 불을 질러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숲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는 숲에 불을 질러 버리면 나오지 않고 배기겠냐는 것이다.

“하하, 그것도 그럴듯하군.”

그 말에 가오칸이 환한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마법 함정들이 가득 깔리고, 가디언들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을 놈의 레어를 뚫고 나가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경우 이쪽도 한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음?”

“동굴 안에서는 놈도 제대로 날개를 쓸 수가 없거든.”

“아…….”

그랬다. 검은 용 때는 로칸과 카이가 활약을 해 준 덕분에 비행 능력에 대한 부분이 해소되었지만 ‘비행형’으로 분류되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더없이 까다로웠다.

심지어 그 비행을 사용하는 것이 드래곤씩이나 되는 놈이라면.

로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가오칸은 기꺼이 그 실수를 웃어넘겼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앞장서죠.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제일 나을 겁니다.”

방침이 정해지자 로칸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모든 스킬의 쿨 타임을 맞춰 두지 않았던가.

가오칸의 휘하에는 훌륭한 마법사와 트레져 헌터도 있었지만 정말 드래곤이 손수 펼쳐 둔 함정과 마법들이 즐비하다면 그들로서는 과도한 시간을 잡아먹게 될 수 있었다.

차라리 불사의 권능을 믿고 밀어붙인 뒤, 파생되는 부작용들을 그들이 해소하고 대처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유니콘, 소환.”

보다 안전한 진입을 위해 유니콘까지 소환했다.

유니콘은 그 자체로 강력한 존재이기도 했지만 강한 신성을 품고 있어 여러 부가적인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이를 테면 마법 저항이나 방어 주문 같은 것들이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다.

“광풍 현신, 전설을 타는 자!”

아예 입구부터 광풍 현신을 끌어 올린 로칸은 유니콘과 함께 몸집을 부풀리며 길을 만들어 내었다.

[악몽의 결계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린 드래곤 사말리안의 레어에 입장할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악몽의 결계가 파괴되었습니다.]

쩌저정!

그리고 과연, 그 선택은 옳았다. 입구부터 펼쳐져 있던 강력한 정신 계열 결계가 로칸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파훼하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유지되었겠지만 로칸이 그것을 저항해 내 버리는 바람에 효용을 잃고 사라졌다.

로칸이 아니었다면 여기서부터 많은 희생이 있거나, 가오칸이 직접 나서야 했겠지.

그마저도 상당한 심력 소모를 하지 않으면 어려웠을 터였다. 무려 드래곤이 만든 결계이니까.

“전신의 돌격!”

파치지지지직! 콰과과광!

그다음에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지뢰처럼 매설된 강력한 마법 함정들이 로칸과 유니콘에 반응한 것이다.

일부는 폭발을 일으켰고, 일부는 터지기도 전에 사용이 정지되었다.

[유니콘의 신성이 주변의 마력에 간섭합니다.]

“환영 인사가 거창하군.”

대폭발이라 부름직한 파괴의 힘이 그들을 덮쳤지만 로칸과 유니콘은 태연하기만 했다. 극도로 끌어 올린 로칸의 저항력에 유니콘도 함께 영향을 받는 것이다.

폭발의 규모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은 대미지만이 그들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레이트 힐!”

“리커버리!”

게다가, 폭발의 그 순간에도 로칸에게는 힐러들의 스킬이 집중적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쯤 되니 불사의 능력을 믿을 것도 없이 생명력이 크게 내려가지도 않았다.

“조심히 그의 뒤를 따라라.”

그런 그의 뒤를 병력들이 뒤따랐다.

그가 밟지 않은 곳에는 여전히 마법 함정이 매설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광풍 현신으로 워낙 거대해진 로칸이었기에 그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침입자 경보. 침입자 경보.

-침입자를 말살하라.

그리고 잠시 후, 예고된 가디언들의 방문이 시작되었다.

레어 바깥에서 무리를 짓고 서식하는 몬스터들과 달리 진짜 가디언들은 하나같이 마법 생명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 동굴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툭하면 몇십, 몇백 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으로 알려진 드래곤이니 그동안 레어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몇백 년분의 식량을 쌓아 두기보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정신이 마모되지도 않는 마법 생명체를 가디언으로 두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골렘인가?”

그렇기에 가장 많이 선택되는 가디언의 종류는 바로 골렘.

드래곤이 모은 강력한 마력 응집체를 핵으로 삼아 무한히 재생하고 활동하는 그들이 침입자를 말살하기 위해, 로칸에게 덤벼들었다.

[사말리안의 가디언, 미스릴 골렘 1호][Lv 430]

“와우!”

고작 골렘의 레벨이 400을 넘겼다. 이 정도면 드워프들의 종족 퀘스트에서 등장하는 고대 병기보다도 훨씬 강력한 수준.

과연 드래곤의 가디언이라 부를 만한 놈들이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나 되었다.

“어디, 놀아 보자!”

그러나 겁을 먹을 로칸이 아니다. 이미 400레벨이라면 몇이나 해치워 본 그가 아니던가?

만만치는 않겠지만 전력을 다해 놈들에게 부딪쳐 갔다.

“사자열파참!”

스킬의 주인 앞에서 흉내 내는 것이 살짝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로칸은 일단 간을 보는 의미에서 강력한 화염 검기를 내뿜었다.

휘익.

‘빠르다.’

그러나 골렘은 로칸 만큼이나 거대한 덩치와 달리 무척이나 빨랐다.

거리를 두고 뿜어낸 검기 따위에는 맞아 주지 않겠다는 듯, 좌우로 스텝을 밟아 가뿐히 피해 내더니 로칸에게 달려들었다.

“드루와!”

하지만 로칸도 피하지 않았다.

정면 승부.

힘과 힘의 격돌을 통해 놈의 수준을 확인했다.

“파멸의 일격!”

콰아아앙!

“큭.”

주먹과 주먹의 격돌. 그러나 그 파장은 장난이 아니었다.

사슬로 감싼 주먹이 저릿해질 만큼 거대한 충격이 로칸을 파고들었고, 정작 맞부딪친 놈의 주먹은 조금의 파편조차 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내구력도 문제지만 일단 힘에서도 호각이라는 뜻이다.

“쉽지 않겠는데?”

씨익.

그런 놈을 보며 로칸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강자와의 전투는 늘 짜릿한 법이니까.

“뒤잡기.”

후웅!

로칸은 경직을 무시하고 즉시 놈의 등 뒤로 돌아갔다.

눈으로 쫓기 어려울 만큼 빠른 초고속의 이동기.

하지만 놈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상체를 휘돌렸다. 팽이처럼 상반신만을 회전시키며 로칸을 후려쳤다.

“젠장, 진짜 로봇이군.”

생명체라면 따라 할 수 없는 기예.

스킬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어렵게 되었다.

“전격 발출!”

파치지지지직!

살짝 밀려난 로칸은 그대로 전격을 쏘아 냈다. 금속성의 몸체를 가진 적에게 전격 계열이 잘 통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

내부까지 홀랑 태워 버릴 화끈한 전격을 발출해 낸 로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안 통하는군.”

통하지 않았다. 생명력의 저하가 있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놈이 전혀 개의치 않고 달려든 것이다.

“역시 미스릴이라는 건가…….”

최고의 마법 금속이라 불리는 미스릴. 그것을 통으로 사용해 몸체를 이루었으니 강력한 마법 저항력을 가진 것도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힘, 내구력, 저항력까지 모두 갖춘 전천후의 괴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대책조차 서지 않는 놈을 보며 로칸이 다시 한번 광기를 터트렸다.

“흐흐흐, 어디 해보자!”

통하지 않으면 통할 때까지.

광기와 악의로 똘똘 뭉친 로칸이 놈을 들이받았다. 흠집조차 없지만 출렁거리는 놈의 몸에 따라붙으며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까앙!

놈의 몸과 배틀 액스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미스릴이라고는 하지만 이쪽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천상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날이 상했는지는 모르지만 놈의 몸에도 실낱같은 흠집이 생겨났고, 로칸은 희망을 보았다.

“어디 이것도 안 통하는지 볼까? 아머 브레이크!”

콰앙!

골렘의 몸은 그 자체로 강력한 갑주이다. 그러니 갑옷을 파괴하는 아머 브레이크라면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에서 시작된 도끼질은 꽤 그럴싸한 결과를 만들었다.

배틀 액스와 정면으로 부딪치고도 멀쩡했던 미스릴 골렘의 몸이 움푹 패여 들어간 것이다.

“흐흐흐, 이제 손맛이 좀 있군!”

로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아머 브레이크에 난무 스킬을 섞었다.

순식간에 십여 번의 참격을 놈의 몸에 꽂아 넣었다.

-위험 경고. 자체 수복 실시.

쩌저저정.

문제는 놈이 로칸을 밀치고 수리에 들어가자 금세 원상태로 돌아와 버렸다는 것이지만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 어딘가? 로칸은 계속해서 놈에게 짓쳐 들었다.

-호적수. 지원 바람.

문제는 놈이 작은 위기를 느끼자마자 동료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1호기를 돕기 위해 2호기부터 5호기까지, 네 기의 똑같이 생긴 미스릴 골렘이 동시에 나섰다.

“로칸을 지원하라.”

그때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가오칸이 나섰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400레벨의 강자들을 부려 나머지 네 기의 골렘을 막도록 지시한 것이다.

만약 로칸이 아니었다면 어차피 그들이 해야 했을 일이니 불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어쩔 수 없군.’

그것은 로칸도 마찬가지. 그는 자존심과 오만, 만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끝낸다.’

다만 누구보다 빠르게 미스릴 골렘을 처치하겠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아머 브레이크, 광살, 사자 난무!”

방어를 도외시하고 미스릴 골렘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크윽.”

그러는 동안 미스릴 골렘도 가만히 맞아 주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난타전을 벌이듯, 로칸을 마구 두들기며 생명력을 뭉텅이로 깎아 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로칸이 바라는 바다.

머리가 터져 나갈 법만 위협적인 공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 주었다.

생명력을 일부러 떨어뜨렸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타이틀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로 인해 더 강력해진 로칸의 공격이 미스릴 골렘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됐다!’

그러기를 잠시, 두터운 장갑으로 둘러싸인 미스릴 골렘의 몸체가 파괴되었다. 미스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 그 안에서 펄떡이는 힘의 근원을 드러냈다.

“엇?”

그것을, 그 위치를 확인한 로칸의 표정이 묘해졌다.

보통은 ‘핵’이라 불리는 마나석, 또는 구슬의 형태를 띠건만 놈의 몸속에서 드러난 핵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무슨…….”

그것은 장비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을 핵으로 삼아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때문에 로칸으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내구력을 소진시켜야 하니까.

한데 이것은 딱 봐도 내구력부터가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아머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한들, 이것을 단시간에 파괴할 수 있을까?

일단 그것을 놈의 몸체에서 떼어낸 로칸은 잠시 망설이며 얼마 남지 않은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 역행을 써야 하나? 일단 부숴 봐?’

그 순간에도 장비의 마력에 이끌려 미스릴 덩어리들이 그를 향해 날아왔지만 빠르게 발을 놀리며 그것들을 피해 냈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로칸의 머릿속을 스쳤다.

“가만, ‘아이템’이잖아?”

익숙하게 열린 로칸의 인벤토리가 그것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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