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드래곤 사냥 (5)
쩌저저적! 콰앙!
대폭발. 마치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충격이 레어를 흔들었다. 격전을 치르던 가디언과 가오칸의 병력들마저 크게 휘청거릴 정도.
그나마 가오칸과 사말리안은 영향 없이 싸우고 있었지만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이 로칸과 분신을 덮쳤다.
퍼엉!
오죽하면 단번에 분신의 생명력이 바닥을 치고 소멸되어 버렸을까.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파괴된 합체 골렘의 핵 안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튀어나온 것이다.
“미친!”
오히려 더욱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는 무언가가 힘을 발하기 시작했다. 억누르고 있던 봉인이 깨어진 것처럼.
“점멸!”
그것은 거의 본능이었다.
로칸은 그 힘을 느끼자마자 달려들었다.
이미 그것을 파괴할 힘은 잃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었다.
“먹어라!”
와작!
바로 마신의 이빨 허리띠! 그 사나운 이빨이 그것을 물어뜯고 벅찬 희열과 함께 꿀떡 삼켰다.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포식 성장의 효과로 급격히 성장합니다.]
등급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처넣었지만 그 효과는 극적이었다.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고작 한 단계 따위가 아니라 급격한 성장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능력치 확인은 나중의 일. 일단은 몸을 날렸다.
가오칸의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니. 몇몇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결국 사말리안을 잡지 못한다면 모조리 죽게 될 테니까.
그렇기에 로칸이 향한 곳은 사말리안 쪽이었다.
당장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막강한 로칸의 공격력은 그 자체로 부담이다.
그것을 알기에 가오칸이 영리하게 움직였다.
“도전자의 검!”
가오칸이 힘을 떨치자 허공에서 수백, 수천 개의 검이 생겨났다. 창조 스킬을 사용한 중에만 쓸 수 있는 특수 스킬이다.
그가 도전할 때 사용했던, 또 그에게 도전했던 이들의 검들이 마나로 구현되어 한꺼번에 사말리안을 찔러 갔다. 놈을 현혹시켰다.
“앱솔루트 실드!”
쿠구구궁!
그러나 가오칸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사말리안이 용언을 발휘해 절대의 방어막을 소환해 낸 것이다.
드래곤의 막대한 마나를 머금고도 짧은 시간밖에 구현되지 못했지만 그 위력은 실로 절대적이었다.
“유니콘, 전설을 타는 자!”
하지만 로칸이 반 박자 느리게 짓쳐 들었다.
앱솔루트 실드가 해제되는 순간,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자신을 믿는 대신 유니콘의 힘에 자신의 힘을 더했다.
푸욱!
유니콘의 뿔이 다시 한번 놈의 역린을 꿰뚫어 생명력을 곤두박질치도록 만들었다.
“크허어어어헝!”
다시 한번 사말리안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까무러치며 몸을 뒤집었다.
그렇게 생겨난 빈틈. 가오칸이 그 틈을 제대로 노렸다.
“도전자의 눈.”
도전자는 챔피언의 빈틈을 찾는다. 완전무결 속에서 좁쌀만 한 빈틈을 찾아냈다.
“무한의 일격.”
그 순간, 가오칸의 모든 힘이 한 점에 집중되었다.
창조 스킬의 지속 시간마저 단축시킬 만큼 빠른 힘의 소모와 함께 몸부림치는 사말리안의 목을 갈랐다.
드래곤 하트.
사말리안의 목 부근. 드래곤의 심장이자 단전인 모든 힘의 근원을 노리고 쏘아졌다.
까가가가가강!
사말리안의 피륙은 쉽게 벗겨졌다. 가오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드래곤 하트에 닿은 무한의 일격은 거센 저항감에 멈칫거렸다.
드래곤 하트의 단단함도 단단함이지만 그 안에 충만하게 들어찬 마나가 반탄력을 내뿜은 것이다.
“크윽!”
분명 공격하는 것은 가오칸인데,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신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매달린 것도, 찌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힘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말리안의 폭력!
그 무지막지한 힘이 가오칸을 향했다.
“흐아아압!”
쿠웅!
사말리안이 휘두른 짧은 팔과 로칸의 주먹이 부딪쳤다.
힘과 힘의 대결.
모든 스킬의 쿨 타임이 돌고 있는 지금, 로칸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힘으로 놈의 움직임을 막아 내는 것과 가오칸의 공격이 성공할 수 있도록 그를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묵직한 감각과 함께 몸이 허공에서 떨 듯 밀려 났지만 로칸은 멈추지 않았다.
“카이!”
유니콘 대신 카이의 위에 올라탄 채로 놈의 힘에 저항하며 힘을 상쇄시키기 시작했다.
‘제기랄.’
그러나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로칸은 하나였지만 놈의 팔다리는 네 개였으니까.
게다가 거추장스러운 날개도 바람을 일으키며 훼방을 놓고 있었다.
‘가만?’
그때, 로칸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놈의 행동을 묶고 제약할 아주 좋은 방법이.
“늘어나라!”
로칸이 정신을 집중하자 배틀 액스에 매달린 사슬이 빠르고 길게 늘어나 사말리안의 팔다리와 몸통을 묶기 시작했다.
파멸을 봉인한 사슬.
힘이라면 드래곤보다 앞선다는 타이탄조차 제압하고 봉인했던 사슬이 사말리안을 꽁꽁 묶어 버렸다.
“잘했다, 로칸! 흐아아아아압!”
그사이, 가오칸은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 올려 창조 스킬이 캔슬될 정도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이끌어내 검 끝에 밀어 넣었다.
끄그극 끄그그극! 퍼엉!
그리고 마침내 꿰뚫었다. 드래곤 본으로 이루어진 마나의 그릇을 깨뜨리고 그 안에 갇힌 마나들을 세상에 풀어놓았다.
“흐헉!”
부작용은 있었다. 갑작스레 드래곤의 마나에 노출된 가디언들이 일제히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은 거세지고, 위력 또한 증폭되었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그저 막고 피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과도하게 마나를 받아들인 놈들이 자멸하기 시작했으니까.
쿠구구궁.
가고일, 언데드가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그들을 구성하는 몸이 폭증한 마나양을 버티지 못하고 파괴된 것이다.
“허억, 허억.”
쿠웅!
그리고 마침내 사말리안 역시 허무한 눈으로 쓰러졌다. 목이 꿰뚫리고, 사슬에 꽁꽁 묶인 채.
“해……낸 건가?”
아마 레벨 업이 막혀 있지 않았다면 ‘폭렙’을 했을 터였기에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놈을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우우우웅. 파아아앗!
그것을 증명하듯 가오칸의 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황금 사자의 그것과 같은 금빛 광휘가.
“축하드립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로칸은 직감 할 수 있었다. 그가 새로운 경지에 들었다는 것을.
[???? 가오칸][Lv 450]
슬쩍 살피니 도전과 기회의 왕이었던 가오칸의 수식어가 물음표로 대체되었다.
뭔가 바뀌고 있다는 뜻.
아무래도 450레벨이 다음 경지에 이르는 경계선인 듯싶었다.
“후후후!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가오칸은 금빛 신성을 머금은 두 눈으로 로칸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피해는…… 안타깝군요.”
“어쩔 수 없지. 저만큼이라도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그러나 그가 데리고 온 전력들은 크게 상한 상태였다.
그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가오칸의 제자들 중에도 무려 여섯이나 죽임을 당했다.
크나큰 전력 손실이 아닐 수 없지만 그의 말처럼 전멸이 아닌 게 어딘가?
또 한 단계 성장한 가오칸이라면 그만한 전력을 금방 키워 낼 수 있을 테니 걱정 할 것은 아닌 듯싶었다.
“흠, 나는 이곳에서 좀 더 힘을 수습하다 갈 생각인데…….”
잠시 병력을 정비한 가오칸은 로칸의 의중을 물었다.
이대로 돌아가기보다 어느 정도 힘을 취하고, 익숙해진 뒤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하는 김에 사말리안의 레어도 털어 볼 것이다. 그가 가진 보물들을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약해진 전력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테니까.
드래곤의 보물.
로칸 역시 탐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약속한 것은 여기까지다. 이제 와서 보물에 대한 지분을 요구할 생각도 없었고, 퀘스트 완료 조건은 충분히 달성했기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거의 다 됐어.’
퀘스트 창을 슬쩍 살핀 로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인공 생명체는 인정되지 않는지 골렘들을 잡은 것이 퀘스트 조건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외의 조건들을 대부분 달성했기에 이제 그랜드 마스터까지는 정말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 나머지를 채울 방법 또한 이미 마련해 둔 상태였고.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래.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요청하게. 힘닿는 데까지 돕도록 하지.”
그렇게 잠시 재정비를 하며 담소를 나누던 두 사람은 가볍게 일별하고 헤어졌다.
가오칸과 그의 병력들을 사말리안의 레어에 남겨 두고 로칸이 먼저 천상의 룬 북을 사용했다.
기존에는 강력한 마법 결계에 의해 공간 이동이 제약되었지만 사말리안이 쓰러진 지금은 그저 커다란 동굴일 뿐이니까.
그렇게 로칸이 다시 돌아온 곳은 천상에 도달해 처음 도착하는 시작의 마을이었다.
경계의 마을로 가는 것이 더 편하지만 아쉽게도 경계의 마을은 이미 천족들과의 전투로 파괴된 상태였으니까.
“로칸 님?”
“응?”
그렇게 시작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로칸을 반긴 것은 천족도, 마족도 아니었다.
‘유저?’
바로 유저. 하지만 상위 랭커들 중에서도 본 적 없는 얼굴과 이름의 사내였다.
[베르단][Lv 361]
‘벌써 천상에 진입한 이들이 있었군.’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분명 메시지는 또렷이 전달되고 있는데, 그의 언어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영어라……. 미국 쪽 유저인가?’
놈이 사용하는 것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이기 때문이었다.
회화가 가능할 정도의 영어 실력은 갖고 있지 못했지만 자체 통역 기능 같은 것이 있는지 그의 말을 알아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렇군.’
언젠가 더 로드의 제작자들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더 로드에서 다른 국가의 유저들을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질문의 답이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말의 뜻은 ‘지상’에서는 타국의 유저들을 만날 수 없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유저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바로 ‘천상’부터.
이전에는 천상에 진입한 이들조차 거의 없었기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상에는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판이 커지겠군.’
로칸은 그런 변화가 기꺼웠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게임 강국, 게임 최강국으로 불린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유저들 역시 이제는 만만치가 않았으니까.
그가 바꾼 미래로 인해 아직 한국 유저들은 천상에 도달하기 전이라고 하지만, 이만큼이나 빠르게 천상에 진입했다는 것은 그들의 실력 역시 특별하다는 뜻이었다.
국가별로 조금씩 다른 플레이 스타일과 아이템 세팅들. 그것이 궁금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미국 소속의 유저 베르단이라고 합니다. 프로즌 노바라는 작은 길드를 맡고 있죠.”
“로칸입니다.”
프로즌 노바라면 로칸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의 소개와 달리 미국 대형 길드 중에서도 최상위로 꼽히는 이름이니까.
그리고 프로즌 나이트 베르단이라는 이름 역시 꽤나 유명했다. 쾌검술을 다루는 주제에 빙결 속성의 힘을 같이 사용해서 상대는 느리게, 자신은 더 빠르게 만드는 스피드 타입의 기사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에게 왜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최초의 천상인으로서 유저들 중에서도 선구자이기 때문에 호감을 갖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팬으로만 보기에는 그의 말과 행동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더 로드 짬밥으로는 그 누구와도 비할 데가 없는 로칸이기에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새끼 봐라?’
베르단을 쭉 훑어본 로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