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8화.나이트메어 (1) (318/500)

 # 318

나이트메어 (1)

천계와 마계의 접경 지역. 그곳은 천마 연합군이 교류하는 장소였다.

말이 교류일 뿐, 서로 데면데면하기는 여전했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적대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 소식과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특이하고 의미 있었다.

천족과 마족은 원수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사이였으니까.

천족과 마족이 힘을 키우는 방법. 그중에는 서로 다른 진영의 존재를 잡아먹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족들이 신수의 심장을 그토록 원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힘에 대한 열망을 감출 정도로 로칸에 대한 분노가 깊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 대사제님, 저쪽에서 뭔가 오는 데요?”

“마수?”

“그몰탄의 부하인가?”

“음,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몰탄의 휘하 중에서도 꽤 강력한 존재였던 것 같은데요.”

“새로운 정보가 있나 보군. 내가 나가 보지.”

경계에 상주하던 대사제 중 하나가 그몰탄의 거대 마수 중 하나를 보고 움직였다.

어차피 어설픈 놈들에게는 정보를 주지 않을 터인데다 아무리 임시 휴전, 임시 동맹의 상태라 해도 마수가 천족의 진영 깊숙한 곳까지 오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불편하군.’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지금 다가오는 마수는 이미 꽤 오래전 로칸에게 죽어 사라진 놈이라는 것을.

오히려 마수 중에는 그 사실을 눈치챈 이들도 있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 그몰탄이 다시 되살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딱히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그몰탄의 마수여, 여긴 어쩐 일인가.”

“전할 말이 있어 왔다.”

그리고 곧 거대 마수와 천신의 대사제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천신의 대사제는 특유의 거만한 낯으로 그를 대했고, 거대 마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전할 말? 로칸에 대한 것인가?”

“그렇다. 아마 지금쯤 시작의 마을로 병력을 움직이고 있겠지?”

움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투의 말에 천신의 대사제가 잠시 머뭇거렸다.

확실히 새로 포섭한 방문자들을 이용해 놈의 위치를 파악하고, 서둘러 인근의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완벽한 공조는 아니다, 이거군.’

그 짧은 순간에 거대 마수의 모습으로 변한 로칸은 상황을 간파했다. 어찌어찌 동맹을 맺긴 했지만 그 공조가 완벽하진 않다는 것을.

아니었다면 천족들만 움직일 것이 아니라 마수들 또한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그런가? 잘 모르겠군. 알다시피 난 이곳에 머무르고 있어서.”

대사제는 모르는 적 의뭉을 떨었지만 이미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럼 그것도 모르겠군. 놈이 이미 도망쳤다.”

“뭣?”

“방문자 놈들이 놈을 잡아 놓는 것은 무리였던 것 같군. 놈은 이미 방문자들을 처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또 허탕인가. 대사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공조하기로 해 놓고 단독 행동을 한 자신들을 추궁하기 위해?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말투가 너무 부드럽다. 마족 놈들이라면 벌써 성을 내며 난동을 부려야 하지 않나?

다른 목적이 있음을 직감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로?”

“우리의 정보에 따르면 그건 바로……. 엇?”

그 순간, 거대 마수의 놀란 눈이 놈의 등 뒤로 향했다.

저 너머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휘익.

그 눈빛을 따라 몸이 돌아간 것은 의지가 아니었다. 본능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천족들까지 모조리 몸을 돌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거대 마수가 본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대사제를 때렸다.

와그작!

허물어지는 천신의 대사제를 검은 그림자가 덮쳤다.

거대 마수의 입이 놈을 삼키고, 강인한 턱이 잘게 씹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닛!”

“대사제님!”

“빌어먹을 마족 놈들!”

천족들이 그것을 파악한 것은 몇 초 후의 일이었다.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

천족은 대사제 하나를 잃었고, 마족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동맹이 깨졌다!”

“놈들을 죽여라!”

“대사제님의 복수를!”

정식으로 선포된 적 없는 일이지만 거대 마수가 대사제를 죽이는 순간 모든 것이 틀어졌다. 휴전과 동맹이 깨지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크허허허허헝!”

그것을 증명하듯 거대 마수가 벼락같이 들이닥쳤다. 당황하면서도 무기를 꼬나 쥐는 천족들의 사이를 파고들어 놈들을 유린하고 진형을 허물어뜨렸다.

“크헝!”

“놈들을 죽여라!”

이쯤 되자 마수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천족들에게 목을 빼고 죽여 주길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처음에는 자기 방어를 위해, 나중에는 적대 진영에 대한 분노와 힘에 대한 갈망으로 전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 정도면 됐겠지.’

애초부터 크게 믿지는 않았겠지만 뒤통수를 맞으면 분노 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기존에도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일을 벌인 로칸은 한참을 난동 부리다가, 어느 순간 슬쩍 전장을 빠져나와 그들이 부딪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로칸을 잡기 위해 뭉쳤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향해 원수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도화선에 불은 붙였으니, 슬슬 움직여 볼까?”

그들의 다툼은 경계 지역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진 즉시 임시 동맹이 깨어졌다는 소식이 각 진영에 퍼졌고, 서로 다른 오해가 각 수장들에게 전해졌다.

천족은 그몰탄이 딴마음을 품고 선공을 가한 것으로, 그몰탄은 천족이 뭔가 수작을 부려 자신의 마수가 먼저 공격을 취하도록 만든 것으로 보고받았다.

그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로칸이 변신한 거대 마수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 모두 죽어 버렸고, 그 상황을 지켜본 자들은 정신이 나가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기에 오해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양 진영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낌새만 보여도 도망쳐 버리는 로칸을 잡는 대신, 감히 자신의 뒤통수를 친 적대 진영의 존재들을 처단하기 위해 힘을 일으킨 것이다.

천족 대 상급 마족 그몰탄의 전쟁.

일견하기에는 그몰탄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싸움 같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몰탄의 레벨은 무려 450인 것에 반해 천족들은 대사제들조차도 400레벨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진짜 강자’라 할 만한 인물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건든 것이 고작 지부에 불과하든가.’

400레벨과 450레벨의 차이는 극명하다. ‘어마어마’라는 표현 정도로도 부족할 만큼 큰 격차가 있었다.

한데 천족에는 고작 상급 마족의 수준의 존재도 없다? 그럴 리가. 만약 그랬다면 천족은 진작 마족에게 잡아먹혔을 터였다.

개인플레이 성향이 강한 마족들이지만 천족이라는 먹잇감을 두고 내분을 벌이느라 건들지 않을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따라서 지금 로칸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천족의 무리들은 천족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말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뿐이라면, 그몰탄으로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움직인 거겠지.’

한발 물러나 정보를 수집하던 로칸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거대 마수의 행세를 하며 폭탄에 불을 붙인 로칸의 행동이 그몰탄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의 군세가 널리 퍼져 로칸을 찾던 것을 중단하고, 천계와의 경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후방의 방비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그몰탄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로칸이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웨어울프들이 잡혀 있는 광산.

그몰탄과 천족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날뛰기 전, 일단 웨어울프들을 해방시키려는 것이다.

의리? 물론 그런 것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혼란을 유도하기 위함이 컸다. 그들이 노예로 부려지고 있는 광산은 그몰탄의 영지와 무척 가까운 곳이니까.

그들이 후방에서 날뛰어 준다면 로칸은 더욱 마음 놓고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을 터였다.

여차하면 그들을 미끼로 던질 수도 있고.

‘허술하군.’

그렇게 광산에 도착한 로칸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다.

특수한 힘이 담긴 금속 목줄을 차고 곡괭이질을 하는 웨어울프들의 모습이 초췌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수비하고 관리하는 마수들의 숫자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을 광산 관리자만 해치운다면 나머지는 지리멸렬할 정도로, 그 수도 수준도 형편없었다. 이런 놈들에게 웨어울프들이 명령받는다는 것이 이상할 만큼.

‘시작해 볼까?’

대략의 병력 구성을 파악한 로칸은 곧장 광산 안으로 잠입했다. 입구부터 뚫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역시 기습의 묘미는 보스부터 때려잡는 것이니까.

아이템에 내장된 스킬인 까닭에 은신의 수준은 형편없었지만, 레벨과 능력치의 격차가 큰 까닭인지 바로 옆을 지나는데도 그를 알아차리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로칸은 미묘하면서도 익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이거…….’

바로 봉인석 광산에서 느꼈던 그 감각이다.

‘웨어울프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군.’

상황을 파악한 로칸은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중립지대에 위치한 봉인석 광산에서는 마신의 피를 얻지 않았나? 무언가를 감추기 좋은 위치인 만큼 이곳에도 천신 또는 마신의 안배가 숨겨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일단은 가장 깊은 곳으로.’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안배를 찾아 획득하는 순간 봉인석 광산이 무너져 버릴 수 있으니까.

그랬다가는 힘이 봉인된 웨어울프들이 몽땅 생매장당할 테고, 이곳까지 애써 찾아온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로칸은 아이템의 떨림에 집중하는 대신 광산 관리자부터 찾았다.

‘저놈인가?’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산 관리자, 제압의 사리탄][Lv 395]

‘잉?’

한데 그 모습이 낯이 익다. 마치 그몰탄을 축소시켜 놓은 것만 같은 외형을 지닌 것이다.

‘자식쯤 되는 건가? 좋군.’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 정도면 유전자의 힘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자식이 죽는다면, 아무리 마족이라 해도 분노하고 폭주할 것이 분명했다.

‘장난질 치기에도 딱 좋군.’

로칸의 눈이 음흉하게 변했다.

“유니콘 소환, 광풍 현신, 전설을 타는 자, 전신의 돌격, 점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로칸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공간을 도약해 사리탄의 심장을 찔렀다.

“컥……?”

한창 웨어울프 노예들을 괴롭히던 놈으로서는 대처조차 할 수 없는 신속한 일격이었다.

무려 400레벨의 마수들도 피하지 못한 공격이니 놈이 그것을 방어하거나 대처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허망한 눈빛이 로칸을 향했고, 로칸은 무심히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뎅강.

놈의 목이 떨어졌다.

“저, 적이다!”

“로칸! 로칸이 여기에 왔다!”

일대에 소란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기도 전에, 로칸과 유니콘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며 광산 내의 마수들을 모조리 해치워 버렸다.

“유니콘.”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사체들을 둘러보며 로칸이 유니콘의 등을 두드렸다.

지이이이이이잉.

그 순간 유니콘으로부터 퍼져 나온 신성한 빛이 사체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상처를 신성으로 뭉개고 고깃덩이 사이사이에 신성력의 흔적을 남겼다.

만약 이것을 그몰탄이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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