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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화.나이트메어 (2) (319/500)

 # 319

나이트메어 (2)

로칸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 일을 벌인 것이 필시 천족의 짓이라 생각하겠지.

로칸이 특유의 컨트롤로 신경 써서 상처와 흔적을 남겼으니 그를 의심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크아아악!”

“습격! 습격이다!”

“사리탄 님께 알려라!”

그때, 광산의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

갑자기 습격이라니? 자신을 알아차렸다고 보기에는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만약 도망쳐 나간 놈이 있다면 사리탄이 아닌 그몰탄에게 알려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는 것은 입구 쪽에 또 다른 방문객이 있다는 뜻이었다.

“키리토?”

그리고 잠시 후, 로칸은 습격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몰탄에게서 간신히 도망쳤다던 키리토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로칸.”

따지고 보면 자신과 종족을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로칸이었지만 키리토의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 자신을 대신해 동족들을 해방시키려던 로칸에게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뭐, 나쁠 건 없겠지.’

그의 태도와 눈빛에서 그 생각을 읽어 낸 로칸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챠라랑.

열쇠 꾸러미. 웨어울프들을 구속하고 있는 목줄을 열 수 있는 열쇠들이었다.

“먼저 나가. 난 여기서 잠깐 할 일이 있거든.”

“……알겠다. 기다리지.”

“아 참,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여기 있는 시체들을 밖으로 옮겨 주고, 밖에 있는 시체들을 광산 안에 던져 놔 주겠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지.”

당연히 흔적을 발견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게 조치를 마친 로칸은 광산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천신의 안배, 그리고 마신의 안배가 일으키는 공명을 찾아 광산 이곳저곳을 뒤져 댔다.

‘온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자 공명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 봉인석 광산처럼 폐쇄 팻말이 붙은 곳이 없어 헤매기는 했지만 그 떨림만큼은 확실히 강해지는 길을 찾아 계속해서 전진했다.

“아직 덜 판 건가?”

한데 좀 이상했다. 분명 공명은 강해졌는데, 아직 그때만큼의 수준은 아닌 것이다. 길은 이미 끝이 났는데 말이다.

로칸은 자신이 너무 일찍 왔음을 직감했다. 한계까지 파내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탓에 아직 봉인의 결계에 맞닿기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디그독!”

하지만 포기할 리 없다. 그가 곡괭이질을 해서 파내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에게는 땅파기의 명수가 있지 않던가?

터엉!

디그독을 소환해 벽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오래지 않아 결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빙고.”

전설을 타는 자까지 사용해도 파고들 수 없다면 결계가 확실하다.

로칸은 디그독을 역소환시킨 뒤,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초극.”

쩌저저적! 쨍그랑.

청아한 소리와 함께 파괴되는 결계. 그와 함께 검은 게이트가 나타났다. 익숙한 상황.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흐음, 이거…….”

게이트 너머의 공간에는 악마의 조각상이 가득했다. 그냥 멋으로 새겨 놓은 것이 아닌 듯 그 방위가 묘했는데, 아마도 이것들이 봉인을 이루고 있는 듯싶었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건가?”

그것을 보며 로칸은 마신도 천신과 똑같은 짓을 했음을 직감했다. 아마도 이곳에 봉인된 것은 천신의 안배겠지.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로칸은 높은 확률로 자신의 생각이 맞을 것이라 여겼다.

끼아아아아아악.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저 멀리서 귀곡성이 들려왔다. 영혼 계열 몬스터라도 가디언으로 있는 것일까?

발키리를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로칸이 배틀 액스를 꼬나 쥐었다.

[정신 착란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그 소리조차 평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설 수록 자주 들려오던 귀신 소리는 정신 계열 디버프를 일으켰고, 불굴의 의지가 무효화 시켰다는 알림이 수시로 들려왔다.

“으흠.”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길의 끝.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누가 먼저 다녀간 것도 아닐 텐데…….”

심지어 가디언조차 출현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류나 버그 같은 것일까? 아직 구현이 안 되었다거나 한 건 아닌지 볼을 긁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고 소름끼치는 귀곡성이 들려왔다.

끼아아아아아악!

“왔구나!”

그 소리에 로칸이 반겨 소리쳤다. 가디언이 등장했다는 것은, 놈을 쓰러뜨리면 제단이 나타날 것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악몽과 환상의 대악마 나이트메어][Lv 444]

“미친.”

그러나 다음 순간,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무려 444레벨이라니. 450레벨이 아닌 게 다행이긴 했지만 만만치 않을 게 분명했다.

더구나 말의 형상을 하고 허공을 짚으며 날아다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접근 자체가 까다로울 것 같았다.

‘어쩐다.’

아직 광풍의 날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 쓰려면 쓸 수는 있겠지만 제 성능을 다하지는 못할 테고, 그 정도로 놈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나이트메어가 정신 세뇌를 발동합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세뇌?’

로칸이 망설이는 동안 나이트메어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래 봤자 정신 계열 공격인 탓에 로칸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느닷없이 세뇌라니?

생각해 보니 이전의 효과들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정신을 붕괴시키는 종류의 스킬들이었지 않나? 마치 지금을 위한 연계인 것처럼.

‘대체 뭐길래…….’

이렇게 되자 로칸은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을 숨겨 놓았기에 이처럼 철통 보안인 것일까.

세뇌를 해서 뭐 하려고?

로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려운 만큼 보상이 짜릿한 것이야말로 더 로드의 특징이니까.

“유령마라 이거지.”

영혼이 뜨겁게 달아오를수록 머릿속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직접 공격을 자제하고 정신 공격만 뿌려 대는 놈을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악령 지배.”

마신의 이빨 허리띠에 새롭게 붙은 스킬을 사용했다.

범위 안에 있는 영혼 계열 존재의 정신을 지배하는 스킬.

일단 정신을 지배하면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더 큰 것을 위해 이 정도 희생쯤이야.

키에엑?

그 순간, 나이트메어의 눈빛이 변했다.

아주 순종적으로.

히힝, 히힝!

[악몽과 환상의 대악마 나이트메어를 테이밍했습니다.]

“응?”

잠시 지배하는 정도가 아니다. 로칸이 가진 마신의 기운을 읽어 낸 것인지 아양을 떠는가 싶더니 스스로 테이밍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보통의 테이밍은 굴종의 구슬이라는 아이템이 필요했지만 이런 경우 의미가 없었다. 영체화된 나이트메어의 몸은 딱히 어딘가에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테이밍은 유저당 한 마리만 가능한 게 아니었던가?

로칸에게는 이미 자이언트 버터플라이가 있었지만 딱히 방생되었다는 알림도 없던 것이다.

“허…….”

[테이밍 몬스터 : 자이언트 버터플라이, 나이트메어]

상태 창을 확인하니 둘 모두가 테이밍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트메어가 로칸의 영혼의 일부로 스며든 까닭이었다.

“대박이군.”

졸지에 444레벨의 아군을 하나 더 얻은 셈.

게다가 사이클이 따로 돈다면 어쩌면 자이언트 버터플라이와 나이트메어를 동시에 소환해서 부릴 수도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그때, 진동과 함께 제단이 올라왔다.

신성한 기운을 품은 무언가와 함께.

“어? 저건……?”

그것을 발견한 로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 생김새가 무척 익숙한 것이다.

[천신의 피][갓]

천신의 힘이 담긴 혈액.

이것을 마시면 천신의 힘을 일부 획득할 수 있다.

마신의 피 때와 같은 용기에 담겨진 액체. 그것은 바로 천신의 피였다.

그제야 로칸도 이해가 갔다. 마신이 이런 봉인을 걸어 둔 것이.

만약 누군가 천신의 피를 손에 넣더라도 세뇌를 통해 역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천신의 피란 말이지.”

이번에도 분신을 불러내 그것을 손에 넣은 로칸은 잠시 고민했다. 마신의 피와 천신의 피. 서로 상극의 힘을 지닌 이것들을 한 몸에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둘 다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폭주해서 몸이 폭발해 버릴까?

꼴깍꼴깍.

알 수 없었지만 로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어?’

두 혈액을 동시에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만약을 대비해 광풍 현신의 힘은 끌어 올린 상태.

이것으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격을 버텨 낼 생각이었다.

만약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399레벨을 달성한 상태이니 죽어도 레벨 다운 같은 것은 없을 테니까.

“크헉!”

무모하기 짝이 없는 그 행동의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들이켜는 순간부터 목이 타들어 갈 것 같더니 내부에서 두 힘이 부딪치며 장이 가닥가닥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신의 피와 천신의 피를 동시에 복용하셨습니다.]

[신성과 마기가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제, 제기랄…….”

고통만이 아니다. 두 힘의 충돌은 그 어떤 독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하여 급격한 생명력 저하를 가져왔지만 광풍 현신으로 이루어 낸 불사 효과가 죽음에 저항했다.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고통을 오롯이 견딜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신성과 마기가 충돌합니다!]

[강력한 에너지가 체내에서 폭발합니다!]

극심한 고통에 로칸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생명력을 모두 갉아먹은 뒤에는 마나를, 영혼을 갉아먹으며 로칸에게 무한한 고통을 선사했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이 공간을 가득 메웠지만 그를 구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캐, 캔…….”

광풍 현신을 캔슬할까. 그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로칸은 잠시 고민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고통이 지속되자 어느 순간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현실이었다면 치아가 깨질 만큼 꽉 깨문 이빨 사이에 신음마저 가두고 버텨 냈다. 이겨 냈다.

[마신의 피와 천신의 피가 융합됩니다.]

[사용자의 피 속에 강력한 신성이 깃듭니다.]

“헉, 헉.”

고통은 한참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온몸에 진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 일어설 수도 없었지만 로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고통이 심했던 만큼, 엄청나 소득이 있는 것이다.

[신성 저항력이 80% 만큼 상승했습니다.]

[모든 신성 계열 버프 효과가 50%만큼 상승합니다.]

[암흑 저항력이 80% 만큼 상승했습니다.]

[모든 암흑 계열 버프 효과가 50%만큼 상승합니다.]

[강력한 신성이 체내에 흡수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00만큼 증가합니다.]

[신성에 대해 깨쳤습니다.]

[아직 신성을 발현할 수 없습니다.]

로칸은 무수히 쏟아지는 변화의 알림을 확인하며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 줄을 살짝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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