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
대규모 업데이트 (2)
“지상에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왜긴, 상인이 이득 볼 게 있으니 오는 게지.”
언데드 상인 스베노는 딱히 무언가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친분 관계도 관계이지만 소문으로 들은 로칸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괜히 분란의 요소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이득요?”
“그야 여러 가지가 있지. 천상의 물품이 이곳에서 비싸게 팔린다는 것도 있고, 빠르게 성장하는 방문자들을 점찍어 둘 필요도 있고. 아 참, 지금 나는 상인이기도 하지만 타우혼 님의 사절의 자격으로 온 것이기도 하다네.”
“타우혼이라면…….”
타우혼.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다. 중립 지역에 몇 없는 강자들 중 하나라고 했던가?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사자왕 가오칸처럼 중립 진영이면서도 자신의 세력을 일구고 독보하는 천상의 강자 중 하나였다.
그가 방문자들을 통해 세력을 넓히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천족과 마족도 내려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아마 자네 때문일 테지.”
“저 때문이요?”
“자네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이후에 들어온 신입들도 제법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긴 했지만 자네에 비할 바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자네가 초월자의 격을 얻었다는 소식에 다들 조급해진 게지. 자네 같은 인재가 또 없으리란 법도 없지 않나? 자네 같은 인물이 조금만 더 있어도 힘의 판도가 바뀔 테니 그들로서는 조급 할 수밖에 없지. 타우혼 님 또한 비슷한 생각이신 거고.”
“흐음…….”
예상대로였다.
자신이 400레벨에 오르면서 자신들의 위치가 위태로워진 천족, 마족, 그리고 중립 진영의 강자들이 각자의 사절을 내려 보내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기와 방어구 등 지상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미끼 삼아서.
스베노는 그 사실을 감추지 않았고, 그 밖에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들이 예비 천상인들을 포섭하려는 것 이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제단……요?”
그것은 제단의 발굴과 활성화였다.
천신의 제단과 마신의 제단.
지상 어딘가에 있는 그것을 찾아내 활성화시킴으로써 지상에 새로운 종교를 뿌리내리고, 천신 또는 마신의 힘을 성장 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단이라…….’
그 말에 로칸도 어떤 것을 떠올렸다.
학살의 제단.
광풍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으라고 했던 그것.
그렇다는 것은 광풍의 제단 역시 지상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로칸의 눈이 반짝였다.
“한데 왜 이런 걸 다 알려 주시는 겁니까?”
“글쎄, 자네가 겁나서? 흐흐흐, 뭐, 천족 놈들이나 마족 놈들이나 그놈들이 잘되는 건 우리도 달갑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 두지.”
그 말을 끝으로 딱히 도움 되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로칸의 고민이 깊어졌다.
황제의 자격으로 퀘스트를 내려 광풍의 제단을 찾아야 할까? 글쎄. 아무래도 무작정 진행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어느 것이 천신의 제단인지, 마신의 제단인지 아니면 학살의 제단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문제를 표면화시켰다가 남 좋은 일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놈들이 이미 천신 또는 마신의 제단을 찾으라는 퀘스트를 내렸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단정 짓기는 어려운 일.
그런 중요한 퀘스트를 바로 공개했을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지켜보는 수밖에.
단순히 맵 확장과 천상 진출 가속화가 아니라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업데이트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로칸은 일단 다른 천상인을 찾았다.
폴리모프를 사용해 다른 이의 모습을 하고서.
“강해지고 싶나?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것을 가져와라. 그럼 우리 마족의 지고한 힘과 기술이 담긴 무구를 선물하지.”
[마족의 힘][퀘스트]
마족이 지닌 힘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30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해 그 심장을 모아 오십시오.
-완료 조건 : 300레벨 이상의 심장 0 / 100
-완료 보상 : 마족의 무구
‘이것 봐라?’
다른 사람인 척, 마족의 퀘스트를 받아 든 로칸의 눈빛이 변했다.
이건 사기다. 아니, 날강도가 따로 없다.
300레벨 이상의 존재가 가진 심장이라면 진짜 강력한 마족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하이 마스터급 정도 되는 존재들만 되어도 적지 않은 파워 업을 할 수 있는 힘의 정수가 아니던가?
그런 것을 고작 무구 하나랑 바꿔 먹겠다고?
마족의 무구라고 뭉뚱그려 놓았지만 로칸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놈이 보상으로 제공하는 아이템이 천상에서는 널리고 널린 것들 중 하나일 것이라는 사실을.
이건 칼만 안 들었지 순 날강도가 따로 없다.
“오오, 이참에 신규 사냥터도 돌아볼 겸 딱 좋은데?”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유저들은 반색을 하고 나섰다. 아마 천족들 쪽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었다.
그들에게는 몬스터의 심장이 잡템에 불과할 테니 노가다를 좀 하고 천상제 무구를 얻으면 그게 무기든 방어구든, 설령 어떤 부위든 이득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로칸이 그것을 바로 잡기도 어려웠다. 로칸이 대신 무구를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당장 새로운 아이템에 굶주려 있는 유저들에게는 더없이 큰 메리트로만 느껴질 터였다.
‘어, 가만?’
그때 문득, 로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이 하는데 자신이라고 못 할 것이 무언가? 더구나 상급 마족의 권위까지 얻은 마당이었다.
“그럼 어디 초를 쳐 볼까?”
다시 황궁으로 돌아온 로칸은 한 가지 정보를 확인했다.
파견 천족이 내리는 퀘스트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한 것이다.
그 결과, 마족과 천족의 퀘스트가 동일했다. 그들 역시 300레벨 이상의 존재가 가진 힘을 취해 자신들의 무력을 강화시키려는 것이다.
“퀘스트 발동.”
로칸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내용은 그들과 동일하다.
다만 모아 와야 하는 심장의 숫자를 줄였다.
[천상 무구 교환][퀘스트]
천상의 무구를 얻고 싶다면 인간 종족의 행정관을 찾으십시오. 30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해 그 심장을 모아 오면 진영과 관계없이 누구나 천상제 무구와 교환할 수 있습니다.
-완료 조건 : 300레벨 이상의 심장 0 / 90
-완료 보상 : 천상의 무구, 약간의 경험치
1백 개에서 아흔 개로. 이 정도는 돼야 유저들도 메리트를 느끼지 않겠나. 천상제 무구야 골드를 환전한 코인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부족할 걱정은 없다.
게다가 300레벨 이상 존재의 심장이라는 게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말이다.
하이 마스터쯤 된다면 꽤 빠르게 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며칠은 족히 걸린다. 사냥터가 늘어난 만큼 경쟁도 치열해질 테니까.
굳이 천상에 당장 오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유저들이 이 퀘스트에 대거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천상제 무구는 로칸 자신이 사냥 몇 번만 돌면 수십, 수백 개는 우습게 모을 수 있기도 하고.
게다가 예전에 지상에서 상점 뽑기를 만들 때처럼 초반에 레어, 유니크 등급의 무구가 몇 개 뜨는 모습을 보여 주면 자연히 이쪽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흐흐흐, 유저들의 심리는 이쪽이 잘 알지.”
여전히 차후에 천족과 마족으로 진영을 선택할 시 주어지는 작은 혜택은 메리트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쪽은 경험치 보상까지 더해졌다.
눈앞의 이득을 두고 과연 천족 또는 마족 퀘스트를 선택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로칸은 실실 웃으며 천족 또는 마족의 퀘스트 변화가 있을 시 하멜에게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자신이 천상에 있을 때는 즉시 보고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나마 친분이 있는 하멜에게 작위를 주고, 상황의 변동을 메시지로 알리도록 하여 대처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유저들이 술렁였다. 인간뿐 아니라 황금사자 진영 전체, 그리고 검은용군단에까지 퍼진 퀘스트 소식과 함께 300레벨 이상 존재의 심장이 어떤 효과를 가진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된 것이다.
정말 그들이 생각하던 것처럼 잡템이라면 천족과 마족, 그리고 로칸이 이토록 열을 내며 거둬들이려 할 리 없으니까.
‘하지만 알아도 소용없지.’
그러나 그 의미를 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유저들 중 그것을 취해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수천수만 개 이상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고작 300레벨 수준의 심장으로 어느 한쪽에 딜을 걸 수도 없을 테니까.
그것을 충분한 수만큼 모아서 흥정을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서는 오직 로칸뿐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그렇게 천족과 마족을 방해하는 퀘스트를 내린 로칸은 문득 어떤 아이템을 떠올렸다.
[심장을 먹는 아귀][레전드]
트롤 종족의 신기로 불리는 단검.
대상의 심장을 먹어 사용자에게 힘을 전해 준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심장을 흡수할 경우 흡수 효율이 높아진다.
-공격력 : 10
-내구력 : 파괴 불가
-대상의 심장을 찔러 능력 흡수
-살아 있는 대상의 심장을 찌를 경우 흡수 효율 증가
-자신의 심장을 바쳐 5분간 모든 능력치 2배 효과
-현재 흡수 가능 심장의 수 : 5 / 10
심장을 먹는 아귀. 그의 창조 스킬인 피의 각성에 강력한 힘을 불어 넣어 준 존재였다.
그리고 역시나, 400레벨에 오르자 흡수 가능한 심장의 수가 증가해 있었다. 다섯 개에서 열 개로.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심장을 더 흡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깝긴 하군.”
이렇게 되자 이불리안이 가져간 그몰탄의 심장이 아까워졌지만 이미 떠난 버스다. 로칸은 미련을 갖는 대신 흡수 대상을 물색했다.
이왕이면 450레벨이면 좋을 텐데, 과연 자신이 450레벨을 사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차피 400레벨에서 더 떨어지지는 않으니 한번 들이받아 볼 수도 있지만, 이번 그몰탄의 건에서도 느꼈듯 그만한 세력을 건드린다는 것은 큰 각오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몰탄이 단일 전투력에서는 다른 450레벨들보다 약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400레벨을 사냥하는 것도 무리.
창조 스킬의 근간이 되는 흡수인 만큼 신중을 기하는 편이 좋았다. 450레벨이 되면 다시 슬롯이 확장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로칸은 일단 몇몇을 점찍어 두기만 했다.
그리고 천상 도약의 룬을 사용해 다시 천상으로 돌아왔다.
지상의 변화는 대강 파악했으니 이제는 천상에서의 일을 할 때.
지상의 신맵과 사냥터도 궁금했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천상의 맵 확장이 더욱 큰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지역? 글쎄,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정보를 얻기 위해 로칸이 무작정 찾아간 곳은 역시 마계의 정보 상인이었다.
돈만 주면 상급 마족의 팬티 색까지 알아봐 줄 자본주의의 노예들. 그몰탄의 압박도 풀어지면서 그들이 로칸을 꺼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나 그곳에서도 신통한 소식은 얻지 못했다.
천상은 업데이트가 적용되지 않기라도 한 것일까? 돈을 주겠다는데도 정보 상인들이 특별한 정보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만, 그대가 그동안 가지 못했던 곳들은 있지.”
‘빙고.’
더 듣고 싶으면 코인을 내놓으라는 듯, 두 손가락을 비벼 보이는 정보 상인을 향해 로칸이 음흉한 미소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