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욕망의 나침반 (1)
황금 사자의 무구가 가진 세트 효과가 사라졌지만 오히려 능력치는 상승했다.
이 정도면 세트 효과를 포기해도 괜찮다. 세트 효과와 황금 사자의 흉갑이 가진 효과가 해제되었을 뿐, 나머지 파츠들은 제힘을 다하고 있으니까.
흉갑을 가볍게 두드리며 만족을 표한 로칸은 중립 지역으로 이동한 뒤, 비싼 값을 치르고 다음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도시로 향하는 천상의 룬을 구입했다.
해양 도시 바루다.
천상 도시 중에서도 상업으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해적들이 많아 약탈도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었다.
‘어디와 거래를 하는 건가 했더니…….’
그렇기에 로칸은 이곳에 대해 들었을 때 궁금했었다. 바루다는 대체 어디와 교역을 하는 것일까.
그가 아는 한 인근 가까운 지역 중에는 바루다와 그만한 교역을 할 만큼 커다란 도시가 없었기에 대체 어디와 교역을 해서 이득을 남기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의문이 풀렸다.
확장된 천상의 도시.
바루다는 그들 중 어딘가와 교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따라서 그 교역선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굳이 공허를 통하지 않더라도 확장 맵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교역선에 올라타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무단으로 숨어들어 가는 것도 무리.
몇이나 되는 초월자들이 철저하고, 마제스티 마스터인 해상제독이 직접 호위하기 때문에 로칸으로서도 어설픈 은신으로 도둑 항해를 시도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해적을 잡으러 가 보실까?”
때문에 로칸은 해적선을 노렸다. 정확히는 그들 중 누군가가 가진 욕망의 나침반을 노리는 것이었다.
다만 어떤 놈이 가지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어서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제법 시간을 허비해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걱정 없다. 운이 없다면 몽땅 다 박살을 내 버리면 그만이니까.
“카이!”
뀨웃!
상점을 돌며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구입한 로칸은 즉시 카이를 소환해 날아올랐다. 일단 하늘에서 해적선들의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려는 것이다.
뀨우…….
그러나 오래 비행하는 것은 카이로서도 무리다. 바루다의 인근 상공에는 제멋대로 불규칙적으로 불어대는 강풍이 악명 높으니까.
전설을 타는 자를 사용한다면 그래도 제법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오히려 이쪽이 먼저 해적들에게 노출될 확률이 높았다.
“일단 하나.”
휘익. 풍덩.
그렇게 어렵게 날아 해안을 둘러보던 로칸이 해적선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즉시 몸을 던져 바닷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이미 광풍의 날개는 다른 것으로 교체한 상태였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 바다 왕자의 망토.
물속에서도 바다 종족처럼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권능이 로칸의 몸에 깃들었다.
덕분에 로칸의 몸이 격렬하게 치고 나갔지만 내구도 걱정도 없다. 물에 닿아 있을 경우 자체 수복이 되니까.
멀록의 아가미를 사용하지 않아도 수중 호흡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로칸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거, 맞겠지?”
미끄러지듯 해적선의 밑에 접근한 로칸은 굳이 공을 들여 배에 올라타지 않았다.
어차피 갑판으로 올라가 봤자 손쉽게 항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왕 드잡이질을 하게 될 거라면 애초부터 무력화시키는 것이 나았다.
“아쿠아 블라스트.”
쿠오오오오오. 콰과과과광!
망토에 내장된 마법을 이용해 해적선의 바닥을 파괴했다.
배틀 액스를 휘두르는 것으로도 충분히 박살 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한 번에 크고 넓은 구멍을 뚫는 데는 역시 마법만 한 것이 없었다.
‘이참에 마법도 좀 배워 둘까?’
크게 뚫린 구멍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 갔다.
그 순간 흡입력이 대단해서, 로칸조차 바다 왕자의 망토가 아니었다면 함께 빨려 들어갈 뻔한 정도.
마법 한 방으로 이루어 낸 성과를 보고 있으니 슬그머니 욕심도 생겼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면서 스킬 습득 제한이 사라진 로칸이었지만 그동안은 스킬 창만 난잡해질 것 같아 적당한 것들을 골라 익힌 상태였던 것이다.
스킬을 습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본래 직업 스킬로 익힌 자들만큼의 위력이 나온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전사가 마법을 익힐 경우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모든 능력치가 상승하는 효과를 다수 보유한 자신이라면 그럭저럭 쓸 만하지 않을까?
돌아가면 진지하게 마법의 습득을 고민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으아악! 침몰한다!”
“막아! 물을 퍼내라고!”
“미친놈아, 저걸 어떻게 막아! 그냥 뛰어내려!”
풍덩 풍덩 풍덩.
바닥부터 빠르게 물이 차오르는 해적선을 다시 수리해 내는 것은 무리였다.
해적들은 상황 파악을 끝내자마자 귀중품을 챙겨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해양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 무척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배 위에 계속 머무르다가는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 분명한 것이다.
‘오, 수영 선수 해도 되겠는데?’
그렇게 바닷물로 뛰어든 해적들은 익숙하게 방향을 잡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오라 폭격.”
쏴아아아. 퍼억!
“……!”
하지만 그냥 가게 놔둘 로칸이 아니다. 어쨌든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해적들을 잡아 그들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욕망의 나침반을 얻기 위함이니까.
크고 아름다운 오러의 다발이 물속이라는 제약 없이 뻗어 나갔고, 헤엄에 열중이던 놈들을 상어처럼 집어삼켰다.
“크악!”
“적이다!”
“모, 몬스터인가?”
고작해야 수면 위를 유영 중인 놈들이 잠수 중인 로칸을 어찌 발견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공격과 죽어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공포가 찾아왔지만 그들도 해적짓을 허투루 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이 즉시 수중 호흡이 가능해지는 아이템을 사용하고 물속으로 들어왔고, 로칸은 그들을 우선적으로 사냥해 나갔다.
‘잔챙이군.’
[레드 스컬 해적단 갑판원][Lv 377]
아쉬운 점이 있다면 레드 스컬 해적단이란 놈들의 레벨이 그리 높지 못하다는 것.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욕망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낮다는 뜻이기도 했다.
쐐애애액.
하지만 그렇다고 간단하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다.
수중 호흡 아이템을 사용한 해적단은 로칸을 잡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저돌적으로 변했다.
사방으로 퍼지며 오러 폭격의 범위를 벗어나고, 오히려 로칸을 포위하듯 에워싸기 시작했다.
에픽 아이템의 가호를 받는 로칸만큼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평생을 물위와 물속에서 산 놈들답게 날랜 움직임을 보이며 각자가 가진 힘을 쏟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와류.”
그때, 로칸이 바다 왕자의 망토에 내장된 마지막 스킬을 사용했다.
와류. 일명 소용돌이라 부르는 그것이 로칸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제어력을 빼앗았다.
레벨? 수영 실력? 그런 것 따위는 소용돌이 앞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저 휩쓸릴 뿐.
그 속에서 자유로운 것은 오직 로칸뿐이었다.
‘좋군.’
사용자가 로칸이라서? 아니다. 그 엄청난 힘의 회전에 로칸조차도 휩쓸렸으니까.
바다 종족과 같은 이동력을 부여하는 망토가 로칸에게 저절로 물의 흐름을 이용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었을 뿐이다.
때문에 로칸은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도 원하는 대로 움직여 낼 수 있었다.
“……대단한데?”
그렇게 항거불능의 적들을 쳐 죽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항은커녕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데다 레벨 차이까지 나 버리니 피의 각성이나 광풍 현신은커녕 버서크조차 사용하지 않고도 모조리 도륙해 버릴 수 있던 것이다.
그렇게 작은 해적단 하나를 완전히 쓸어버렸지만 약간의 전리품과 경험치 말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그럼 계속 가 볼까?”
그러나 로칸은 나름대로 만족했다. 수중 전투의 가능성을 읽어 냈으니까.
더구나 망토에 내장된 스킬들은 마나만 충분하다면 짧은 재사용 대기 시간으로 얼마든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기에 다음 사냥감을 찾아 빠르게 이동할 뿐이었다.
뀨웃!
하늘에서 카이가 살피고, 로칸은 수중으로 이동했다.
다른 소환수라면 모를까, [교감]으로 정신이 이어져 있는 카이라면 자신이 본 것을 얼마든지 알릴 수 있기에 거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적단을 찾고, 배에 구멍을 뚫고, 물속에 들어온 놈들을 도륙하는 반복 작업만 있을 뿐.
그렇게 하루에 다섯 채 쯤이나 되는 해적선을 처치했지만 욕망의 나침반은 나타나지 않았다.
“흠, 이래서야 끝이 없겠는데.”
해적선은 많았지만 바다는 더 넓다.
카이의 시야를 이용해 빠르게 해적선을 찾아낸다고는 하지만 이래서 언제 욕망의 나침반을 가진 놈을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생각 같아서는 막대한 코인을 투자해서라도 함대를 만들어 일거에 소탕하고 싶기도 했지만 아마 그런 짓을 했다간 멀리서부터 해적들이 알아보고 전력으로 도망칠 확률이 컸다.
바루다에서 그만한 전투 선단을 구축하도록 허락할지도 모를 일이고.
“역시 거기를 치는 게 답인가.”
물에 불어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인근 지도를 살피던 로칸이 엑스 표로 표시된 어딘가를 주시했다.
무법항.
일반 도시에서 정박을 받아 주지 않는 해적선의 공용 항구.
해적왕 따위의 절대 강자는 없지만 400레벨의 해적들이 바글바글한 위험한 곳이었다.
“재미있겠네.”
씨익.
그 사실을 알기에 로칸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끈질기고 얍삽하기로 소문난 해적들이지만 그렇기에 더 재미있지 않겠나?
가장 좋은 것은 잠입해서 욕망의 나침반을 가진 해적을 찾아내는 것이지만 로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시비가 붙으면 모조리 박살 내고, 그러다 보면 얻을 수 있겠지.
마음을 굳히고 곧장 무법항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만약을 위해 카이는 일단 역소환해 두었다. 토벌 병력의 접근을 감시하기 위해 망루를 수백 개나 운영하는 곳이라니 카이를 보고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
때문에 최대한 잠수를 유지한 채 무법항에 접근했고, 인근에 도달해서는 감시망의 범위를 살폈다.
“점멸로도 어렵겠군.”
본래의 계획은 점멸을 사용해 감시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지만 가까이에서 살피니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무법항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항구이기도 했지만 요새에 가까웠으니까.
그 높은 벽을 넘기 위해서는 몸을 드러내는 것이 필수였고, 그랬다가는 안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의심받고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별짓을 다 하는군.”
때문에 로칸은 지하를 택했다.
무법항의 바닥에 뚫린 해저 동굴 하나를 골라잡고 들어간 뒤, 디그독을 이용해 땅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물속에서 활동이 불가능한 디그독이지만 해저 동굴 안쪽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라면 땅굴을 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약간이지만 산소도 있었고, 땅굴을 만들며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은 자신이 충분히 시선을 돌릴 수 있으니까.
“와류.”
쿠오오오오오오.
무법항에 인접한 바다에서 난데없이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다를 다니는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 중 하나가 바로 소용돌이이지 않던가.
로칸이 일으킨 와류에 무법항 내부가 시끄러워졌고, 그 사이 디그독은 순탄하게 안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내었다.
후드득.
그리고 마침내, 로칸은 무법항에 진입하는 것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