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
환마계 (2)
씨익.
어차피 애초의 목적은 환수를 사냥하는 것이다.
만약 놈들을 쓸어버리고도 평판이 하락하지 않는다면? 그냥 땡큐인 거지.
로칸은 계속해서 환수들을 사냥해 갔다.
나타나는 것은 주로 짐승 형태의 환수들.
각 도시를 돌며 본 환수들 중에는 인간형도 많고, 뭐라 특정 짓기 어려운 형태도 많았지만, 비교적 저레벨이라서인지 이 지역의 특색인지 맹수의 형태를 취한 놈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놈들은 가죽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어찌나 살벌하게 사냥을 해 댔는지 로칸의 레벨이 하나 더 오를 정도.
그렇게 마지막 한 놈까지 쳐 죽였을 때, 로칸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환수의 구슬 : 공포의 맹호]
사용 시 환수를 소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이템이 드롭된 것이다.
이름하야 환수의 구슬.
사용 시 환수를 소환할 수 있다는 특이한 설명에 로칸의 눈이 반짝였다.
이렇게 또 하나의 소환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건가? 공포의 맹호라면 그다지 쓸모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건 차차 해결될 일이다.
사냥터를 옮겨 가며 사냥을 하다 보면 유용한 능력을 지닌 환수도 사냥하고, 그 놈을 소환 할 수도 있을 테니까.
“환수의 구슬, 사용.”
[환수의 구슬은 소환사 클래스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환사 클래스로 전직 하시겠습니까?]
“제길.”
하지만 정작 사용해 보니 기대와는 달랐다. 복종의 구슬처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환사 클래스만 사용 가능한 전용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그가 알고 있는 더 로드의 직업 중에 소환사라는 클래스가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업적! 당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클래스의 존재를 발견해 냈습니다.]
[타이틀 ‘직업 설계사’를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직업 설계사][유니크]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클래스를 발견해 냈습니다. 다른 클래스의 능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보유 효과]
-타 클래스 능력에 사용 효과 증가
“엥?”
새로운 직업을 밝혀낸 것에 대한 보상은 미묘했지만 로칸은 그 효과를 즉시 체감할 수 있었다.
당장 여러 직업의 스킬들을 섞어 만들어 낸 마스터 스킬, 광풍 현신의 효과가 강화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단일 스킬들의 위력들도 증가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며 모든 직업의 스킬을 일부 사용할 수 있게 된 권능의 효과가 더욱 증폭된 것이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지. 신규 직업 ‘소환사’에 대한 정보가 해금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소환사 클래스의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헐.”
신규 직업의 등장. 로칸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유저가 소환사와 환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규 직업 선택까지도 가능했다.
아예 초기 직업 설정도 가능하고, 전직도 가능해졌다.
어떤 식으로 환수를 소환하는지, 그렇게 소환한 환수가 어느 정도의 강함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설마하니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건 아닐 테고.”
환수의 구슬을 사용하면 가장 간단할 테지만 과연 400레벨 이하가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으니 다른 방법이 있을 터였다.
어쩌면 뽑기 형식일 수도 있겠지.
고개를 주억거린 로칸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설령 400레벨의 환수를 소환한다 한들 그에게는 더 강력하고 유용한 다른 소환수들이 있기도 했고.
때문에 다시 환수 사냥에 열중했다.
그렇게 사냥을 이어 가길 한참. 로칸은 자신에게 기척을 감추지 않고 접근해 오는 일단의 무리를 감지했다.
“……?”
“로칸 님이십니까?”
“뭐지?”
인간형의 환수. 무려 다섯이나 되는 400레벨의 존재들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슬쩍 고개만 돌리며 사냥하던 환수의 머리통을 마저 깨 놓았지만 로칸은 은근히 긴장되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아자르 님께서 찾으십니다.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아자르?”
혹여나 선공을 가하지는 않을까 경계했지만 그들은 의외로 깍듯했다.
격이 있기 때문인지 로칸에게 저자세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심부름꾼의 역할에 충실하며 정중히 그를 초대했다.
아자르. 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자신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일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로칸은 기억 속에서 흘려들었던 정보를 꺼냈다.
“환마계의 다섯 왕?”
“맞습니다.”
환마계를 지배하는 다섯 명의 왕 중 하나의 이름이 그랬던 것 같았다. 더불어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도.
“가지 않겠다면?”
하지만 관심이 꼭 호의라는 보장은 없었다. 함정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그들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명령을 받은 입장이라, 꼭 모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는 다섯. 그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로칸을 데려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애초에 아자르란 놈이 로칸에게 호감을 품은 것이 아닐 수도, 이들이 과잉 충성으로 어떻게든 명을 완수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누구에게 적의를 드러낸단 말인가?
“피의 각성.”
혈류가 가속되었다.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며 힘의 쾌감이 전신을 타고 돌았다.
파지직.
거기에 전류 제어까지.
강화된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육체 강화까지 더해지자 로칸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면 해보시든가.”
파앙!
그저 발을 굴렀을 뿐인데 공간이 터져 나갔다. 총알처럼 튀어 나간 로칸의 배틀 액스가 놈들 중 하나의 어깻죽지를 베어 갔다.
“금강불괴.”
쩌엉!
그러나 놈이 순간적으로 일으킨 방어 스킬에 가로막혔다. 놈의 몸이 순간적으로 파괴 불가의 힘을 가지며 무릎 꿇리는 데만 성공한 것이다.
“거울 갑옷!”
그렇다고는 해도 바닥에 납작 엎드릴 정도로 자세가 허물어졌지만 놈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또 다른 마스터 스킬을 발휘하며 로칸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대미지를 받는 만큼 스킬을 건 대상에게 동일한 피해를 입히는 대미지 반사 스킬이 발동했다.
“환몽의 결계!”
[환몽의 결계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동시에 다른 놈들도 움직였다. 로칸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일대에 강력한 결계가 펼쳐지며 로칸과 그들을 가두었다.
“흥!”
퍼억!
베이지 않으면 두들겨 패면 그만이지!
로칸은 금강불괴를 사용한 놈의 몸이 베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베이지 않는 것과 생명력이 하락하지 않는 것은 다르니까.
그의 무지막지한 힘이라면 베지 않아도 상대를 피 떡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큭, 너도 같은 충격을 받게 될…….”
그 일격에 몸이 휘청거린 상대가 스킬에 대해 설명하려 들었지만 이미 로칸은 파악하고 있었다. 배틀 액스를 떨치는 순간 충격과 함께 생명력이 하락하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뭐?
똑같이 생명력이 하락한다면 불사의 권능을 지닌 자신이 단연 우위일 수밖에 없었다.
“이익! 복수의 시간!”
대미지를 무시하고 덤벼드는 로칸의 모습에 놈도 오기가 생겼다.
가파르게 깎여 나가는 생명력이 부담스러웠는지 몸을 뒤로 빼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도망만 칠 생각은 없었다.
창조 스킬을 발동해 로칸에게 어떤 주술을 걸었다.
“키야아아아아악!”
그러자 로칸의 몸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뛰쳐나왔다.
지금까지 그가 잡아 죽였던 존재들. 그중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격을 지닌 존재들이 영혼체의 모습으로 풀려난 것이다.
“헉!”
“어,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많은 초월자들을……!”
수많은 400레벨의 존재들. 그리고 450레벨의 그몰탄까지.
로칸에게 복수심을 지닌 놈들이 눈을 벌겋게 빛내며 저마다 전투를 준비했다.
이쯤 되니 오히려 환수들이 더 놀랐다.
아직 410레벨도 되지 못한 인간이 어찌 이처럼 많은 숫자의 초월자들을 죽일 수 있었단 말인가? 마제스티 마스터급의 존재는 또 뭐고?
혼이 달아날 만큼 놀랐지만 더불어 자신감도 차올랐다.
복수의 시간으로 되살아난 존재들은 그 지속 시간이 한정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죽인 상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는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셈.
이들과 함께라면 능히 로칸을 짓밟을 수 있을 터였다.
로칸이 어떤 스킬을 발동하기 전까지는.
“오, 그 스킬 좋은데?”
“……!”
“악령 지배.”
마신의 힘이 영혼체들을 지배했다. 로칸을 복수의 대상에서 주인으로 바꿔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몰탄의 경우 격이 높아 어려움이 있을 뻔했지만 마족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악령 지배는 마신의 힘에서 비롯된 스킬. 마족이라면 격에 관계없이 복종할 수밖에 없는 힘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이놈들이 우리를……!”
뒤늦게 나머지 네 명의 환수들이 힘을 써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로칸의 몸에서 풀려나온 영혼체들은 그들 하나하나에 비견 될 만큼 강력했고, 결계를 가득 메울 만큼 그 수가 많았으니까.
창조 스킬로 몇이나 되는 존재를 죽인다 해도 그 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 따위에게…….”
“아자르 님…….”
털썩
영혼체들은 로칸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로칸은 결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철저하게 짓밟고 찢어 놓았다.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영혼체들에게 지시만 내리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시간제한이 있을 것이 뻔한 놈들이니 이때 쓰지 않으면 또 언제 쓰겠나?
그렇게 네 명의 환수를 죽이고 금강불괴를 지닌 한 놈은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았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금강불괴가 지닌 방어력 증가 효과 덕분인지 놈이 제일 오래 버틴 것이다.
“자, 그럼 가 볼까? 그 아자르인지 하는 너희들의 왕에게.”
로칸이 싱긋 웃자 녀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놈을 짐짝처럼 들고 로칸이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아자르가 살고 있는 슈리마라는 성이었다.
“여기가 맞나?”
인근의 마을에 도착해서 무지개 전송기를 사용한 둘은 곧 슈리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히 무지개 전송을 사용하기 위해 소모된 코인은 놈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렇……다. 저 성이 바로 아자르 님의 것이지.”
“흐흥, 좋아. 그럼 일단 좀 쉬어 볼까?”
확인을 마친 로칸은 즉시 성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아직 광풍 현신과 피의각성의 후유증과 재사용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까.
저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만전을 기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그렇기에 성의 분위기를 살피고 간을 좀 볼 생각이었다.
“어째서 바로 찾아뵙지 않고……!”
숨이 간당간당한 주제에 충성심을 뽐내는 녀석을 째려봐 주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충성심은 깊지만 목숨보다 소중할까. 더욱이 주인에게서 명령받은 것은 ‘로칸을 데려오라’는 것뿐인데.
녀석도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입을 다물었고, 로칸은 아예 숙소까지 잡고 휴식을 취했다.
NPC들이 운영하는 숙소에 방을 잡아 머무르면 후유증 시간과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응?”
그렇게 쉬고 있을 때, 느닷없이 주변의 풍경의 바뀌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여관방 안이었는데 사방이 온통 꽃밭으로 뒤바뀐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일까? 강제 공간 이동? 환상?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으니까.
[환몽의 왕, 아자르][Lv 487]
환마계의 다섯 지배자 중 하나, 환몽의 왕 아자르.
놈이 성을 벗어나 로칸을 직접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