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
마도의 대지 (4)
쿠오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육망성이 반으로 갈라졌다. 지상의 것도, 허공의 것도.
설마하니 이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로더스가 다급히 그를 막아서려 했으나 소용없다.
로칸의 모든 것을 품어낸 초극의 힘은 그 어떤 저항도 허락하지 않았다.
파괴.
도시 전체를 감싸듯 펼쳐진 육망성의 힘이 깨어지며 후폭풍이 일어났다.
“아, 안 돼……!”
파괴된 육망성은 자신이 부여하던 모든 힘을 빼앗아 갔다. 마치 블랙홀처럼 마나를 빨아들이고, 주문 사용자들의 생기마저 앗아 갔다.
“크윽.”
로칸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무한의 마나와 불사의 권능이 마나와 생명력의 강탈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뿐.
그리고 놈들이 비쩍 마른 미이라의 꼴이 되었을 때, 대폭발이 일어났다.
쿠콰콰콰콰콰콰콰쾅!
초극, 그 이상의 폭발이 도시를 집어삼켰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한 줌의 마나마저 빼앗긴 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경악의 눈빛을 한 채 죽어 나갈 뿐.
로칸조차 간신히 머리를 보호하며 버텨 낼 뿐이었으니 그 폭발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으리라.
“후우, 죽겠군.”
‘도시였던’ 곳의 잔해 속에서 로칸이 욱신거리는 몸을 풀고 대자로 뻗은 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찌어찌 이기기는 했으나 꼴이 말이 아니다.
레벨은 그랜드 마스터이지만 전투력만큼은 이미 마제스티 마스터급의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해법을 늦게 찾았다면, 혹은 놈이 더 시간을 끌고 버텼다면 이후는 어찌되었을지 모르니까.
어떻게든 놈을 해치웠다 한들 남은 환수들에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로칸은 자신에게 냉정해질 수 있었다.
“만만치 않은데?”
욱신대는 근육의 통증이 조금 가실 때쯤, 로칸이 웃었다.
역시 이래야 재미가 있지.
부하가 이 정도인데 마도의 왕이라는 놈은 과연 어떤 수준일까 사뭇 기대가 되었다.
곧 만나 보면 알게 되겠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 계획을 떠올렸다.
이제 진짜 전쟁이다.
“악령 지배.”
몸을 회복한 로칸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마도의 대지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바로 유명계.
영체로 된 존재들이 주를 이루는 또 다른 세계였다.
마신에게 소속된 이들이 아니기 때문인지 400레벨 이상의 영체들은 제법 저항을 했지만 로칸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우적우적.
바로 마신의 이빨 허리띠를 한 단계 더 진화시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유저들에게 털어먹은 장비와 사냥을 통해 획득한 수준 높은 장비들을 먹이로 던져 주자 녀석은 신나게 씹어 삼키더니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대체 어디까지 진화할는지, 또 얼마나 먹어야 최고 수준까지 강화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말을 듣지 않던 유령들이 확실히 그의 지배하에 놓였으니까.
그래 봤자 아직 한계는 430레벨 정도인 듯싶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들 역시도 충분히 강력했고, 무엇보다 물량이 대단했으니까.
무려 1천. 유명계의 마을 하나를 홀랑 털어먹은 로칸은 그들을 이끌고 다시 환마계에 들어섰다.
“어디 진짜 전쟁을 벌여 볼까?”
환수들의 천적인 유명계의 존재들. 그들이 경계를 넘어 대거 환마계를 침범했다.
몽환의 대지의 반대 방향에 있다는 것은 곧 유명계와 인접해 있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유명계의 존재들에게 치명적인 마법을 다루는 환수들이 많아 그동안에는 대대적인 침공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로칸에게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는 유령들은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극이라 해도 보다 쉽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뿐이지 유령들이 환수보다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이쪽으로 따라와.”
로칸은 그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정면 공격을 했다간 도시에 접근하기도 전에 그들을 알아챈 환수들에게 요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바로 땅굴.
급히 파 내려가느라 디그독에 의해 파여진 길목은 좁았지만 애초에 육신이 없는 영혼체들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줄을 지어, 혹은 포개져서 이동을 하니 1천에 달하는 유령들이 아주 좁은 공간에 빼곡히 들어찼다.
“가라! 마음껏 날뛰어라!”
그리고 지면에 가까워졌을 때, 로칸의 지시에 따라 남은 땅을 통과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상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돌아다니던 환수들의 몸에 들러붙어 정신을 무너뜨리고 몸을 빼앗았다.
히키키키키키키!
영혼체인 만큼 놈들의 행동은 빠르고 은밀했다. 도시를 지키는 환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콰과과과과광!
순식간에 사달이 일어났다. 도시를 지켜야 할 환수들이 방향을 바꾸어 도시 내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1천.
그들이 야밤을 틈타 동시에 마법을 펼치니 잠들어 있던 환수들은 소란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했다.
키약칵칵칵칵!
피어오르는 죽음에 유령들이 환호했다. 더욱 신이 나서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유령?”
“유명계가 침공했다!”
“도시를 방어하라!”
하지만 그 소란에 휩쓸리지 않은 자들도 많았다.
저마다 마나를 일으키며 대응해 보지만 선수를 빼앗긴 마당에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해대는 환수들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마법이란 것이 파괴력이 높은 만큼 주변의 피해를 수반하는 능력이다 보니 유령들이 빙의된 환수들을 막기 위해서는 도시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지키려는 이들이 어찌 마음 놓고 도시를 파괴할 수 있으랴.
그 마음가짐의 차이가 피해의 차이를 불러왔다.
“크아아악!”
“버텨라! 수비대가 올 때까지 버텨!”
어쩔 수 없이 수비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놈들은 샌드백에 불과했다.
마나가 바닥나면 생명력을 갈취해 대신하는 유령들의 잔인함에 빙의된 환수들은 영혼이 고갈되도록 착취당했고, 그만큼 위력과 피해를 커져갔다.
만약 그러다 몸의 내부가 망가져 버린다면?
휘익.
다른 환수에게로 옮겨 가면 그만이다.
설령 공격을 받아 죽는다 해도 유령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얼른 다른 환수의 몸에 빙의해 생명력을 갈취하고 회복과 공격을 이어 갔다.
‘까다롭긴 하네.’
그들이 소란을 피우는 동안 마저 땅굴을 파고 지상에 안착한 로칸이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악령 지배가 있기에 망정이지 만약 저런 짓을 자신에게 하려 했다면 꽤나 골치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불굴의 의지에 막혀 빙의는 통하지 않겠지만 숙주를 옮겨 다니며 빙의를 해 대는 유령이 만약 마제스티 마스터급이라도 된다면 과연 자신은 이길 수 있을까?
전투력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시간제한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았다.
당장 악령 지배가 통하는 유령은 430레벨까지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에 대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빙의할 존재가 전무하다시피 한 유명계에서야 괜찮겠지만 혹시나 다른 존재들이 즐비한 곳에서 그들을 상대할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그에 대비할 방법도 세워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할 때다.
배틀 액스를 꺼내 들고 은밀히 내성을 향해 달려갔다.
“마도병단과 마검병단은 놈들을 섬멸하라!”
그리고 잠시 후, 이 도시를 책임지는 자가 나타났다.
마도병단과 마검병단. 쉽게 말해 마법사와 마검사들로 이루어진 병단을 도시에 풀어놓으며 침공한 유령들을 단죄할 것을 천명했다.
그와 함께 방어에 전념하던 환수들도 여유가 생겼다. 힘을 얻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도시의 피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력으로 적들을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키에엑!
순식간에 빙의된 환수들이 썰려 나갔다.
유령들은 환수들의 고유 능력에 자신들의 정신 공격을 섞어 저항했지만 수적인 차이가 월등했다.
한 놈이 혼란에 빠진다 해도 금세 다른 놈이 그 자리를 메우며 짓쳐 든 덕분에 제대로 된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숙주를 잃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주문 계열의 환수가 대부분인 탓이겠지.
마법을 주 능력으로 사용하다 보니 마검사 계열의 환수들에게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윽! 이쪽에 지원을!”
“화력이 너무 강력하다. 마도병단을 불러와!”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열세를 깨달은 유령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적들의 길목을 제한하고 화력을 집중시키니 피해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접근조차 불가능해졌다.
그들이 빙의한 환수들 역시 도시를 지키는 정예들인 만큼 파괴력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물론 로칸의 지시에 따른 전략이었다.
“비켜라! 내가 간다!”
그때, 놈이 나섰다. 이 도시를 책임지고 있는 책임자.
[환마검사 고르단][Lv 447]
레벨은 로더스보다 높다. 거의 마제스티 마스터에 근접한 자.
하지만 레벨이 다는 아니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피의 각성, 무혼 각성!”
이번에는 천신의 힘이 깨어났다. 마신의 이빨 허리띠에 담긴 무혼을 각성시키기엔 휴식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낫다. 강력한 신성이 로칸의 몸에 깃들며 능력과 저항력을 동시에 올려 주었다.
“앗!”
황급히 주문과 무기를 날려 엄호하려던 환수들의 행동이 무위로 돌아갔다.
로칸의 신성에 막혀 튕겨 나갔고, 검에 막대한 기운을 쏟아붓던 고르단이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었다.
“늦었어, 새꺄.”
살육의 일격이 놈의 팔을 베었다.
뎅강.
놈이 황급히 몸을 뒤집는 바람에 노리던 오른팔이 아닌 왼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애초에 일격으로 끝낼 생각이었다면 초극을 사용했을 테니까.
하지만 로칸의 목적은 단순히 놈의 살해, 도시의 파괴에 그치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은 더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400레벨 이상 중에서도 진정한 강자들과 겨루며 스스로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초극 대신 살육의 일격을 날린 것이다.
물론 팔을 하나 잘랐으니 불공평한 싸움이 되겠지만 그게 뭐 어떤가? 저들은 쪽수로 밀어붙이려고 할 텐데.
일대일이었으면 제대로 싸워 줬겠지만 그럴 리가 만무하니 이쪽도 어드밴티지는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
“웬 놈이냐!”
한쪽 팔을 덜렁거리며 물러난 고르단이 고함을 질렀다.
그런다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로칸 역시 굳이 악당처럼 친절하게 자신에 대해 늘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거 알면 저승 갈 때 노잣돈이라도 하게? 염라대왕한테 말해 봐야 별 거 없을 거야. 나한테 죽은 놈이 어디 한둘이라야지.”
“으득! 다른 도시를 망가뜨린 것도 네놈 짓인가?”
학습 능력이 없나? 아니면 이 정도는 대답해 줄 것이라 생각한 걸까.
놈은 로칸이 대답해 줄 생각이 전혀 없음을 내비쳤음에도 녀석은 끈질기게 물어 댔다. 바로 어제 습격당해 사라졌다는 도시의 일도 그의 소행인지 궁금한 모양이다.
“한 대 더 맞으면 가르쳐 주지.”
시간을 끄는 건지 입으로만 싸우는 놈을 향해 로칸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