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
신성 (1)
[세계 : 무림을 확인했습니다.]
“세계?”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세계라니? 무림이라니? 무림이면 칼튼이 사용하던 그 힘의 주인공들이 있는 세계가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것이 바로 450레벨, 마제스티 마스터들이 사용하는 힘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혹시…….”
로칸은 즉시 무지개 전송기를 찾았다.
무림이란 세계를 확인한 것이라면, 그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흠.”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지개 전송기는 아닌 듯싶었다.
칼튼과 마툴다의 전투 결과도 확인하기 전에 찾아보았건만 이동 가능한 목록에 무림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식으로 이동할 수 있든가,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군.”
다시 밖으로 나온 로칸은 천상의 룬 북을 사용했다.
후유증이 겹친 지금의 상태로는 칼튼은커녕 그 수하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전투 지역으로 이동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인근의 도시로 이동한 뒤 카이를 소환했다.
“전투에 참여하지는 말고 상황을 살펴 줘.”
다른 소환수들이라면 모를까 카이라면 충분히 정찰이 가능하다.
전설을 타는 자를 사용해 주었기에 설령 공격을 받는다 해도 멀리서 지켜본다면 제 몸을 빼낼 수 있었고, 눈을 감고 있으면 [교감]을 통해 시야를 공유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뀨웃!
대붕으로 변한 카이가 날개를 펄럭이며 칼튼과 마툴다가 한창 전투를 치르고 있을 모스톤으로 날아갔다.
“엥?”
그리고 잠시 후, 모스톤에 도착한 카이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놓친 건가?”
로칸에게 상당한 힘을 소진한 칼튼을 마툴다가 가만 둘 리 없다고 생각했건만, 어이없게도 전투는 모두 끝난 상태였다.
마툴다는 멀쩡한 모습으로 도시의 재건을 지시하고 있었고 그의 수하들도 병사들을 추슬러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복구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마툴다가 멀쩡하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다는 것은 힘을 소진한 칼튼과의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바보도 아니고 그걸 놓아줬다고?
아무리 다른 직업 스킬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해도 주문 계열의 극에 이른 마툴다라면 공간 이동을 제약하고 놈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을 텐데?
“로칸인가? 상황은 종료되었다. 안심하고 이쪽으로 와도 좋다. 보상을 할 터이니.”
황당한 기분으로 카이를 통해 더 돌아보던 로칸을 마툴다가 발견했다.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카이의 눈동자 너머에 있는 로칸에게 상황의 종료를 알렸다.
“젠장, 뭔 일인지 모르겠군.”
마툴다의 전언을 받은 로칸은 시야를 거두고 카이를 역소환했다.
천상의 룬을 발동시켜 마툴다와 보상이 기다리는 모스톤으로 향했다.
“왔나.”
즉시 이동한 로칸을 마툴다가 반겨 주었다.
더없이 환한 얼굴. 칼튼을 놓치고 제법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꽤나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 피해 없이 놈을 죽이기라도 한 것일까?
로칸이 해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짓자 마툴다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승리했다. 놈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신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시킨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지. 아마 놈은 힘을 복구하는 데만 몇십 년 이상을 써야 할 것이다. 어쩌면 몇백 년이 될 수도 있겠지.”
그놈의 신성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니 할 말은 없었다.
놈이 회복하는 동안 놈의 영토를 마툴다가 집어삼킬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처럼 기뻐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큰일을 해 주었으니 그게 무엇이든 들어주도록 하지.”
기껍게 말하는 마툴다를 보며 로칸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그가 해낸 일은 대단히 컸다.
많은 영토를 수복하고 무혼 환수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으며, 모스톤의 대전투에서는 큰 빈틈을 만들어 내고 성주를 무려 셋이나 죽였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무혼의 왕인 칼튼의 신성을 상하게 만들고 도주하도록 만들었다.
마툴다의 휘하 성주도 둘이나 죽인 전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눈감아 주기로 했으니 차치하고,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환마계의 다섯 영토 중 하나를 날로 집어먹을 수 있게 만들었으니 큰 공을 세운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이에게 어떤 보상을 내려야 할까?
애초의 계약대로 마툴다는 로칸의 공적에 맞춰 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들어주기로 했다.
‘뭘 얻어 내야 하지?’
무엇이든. 참 애매한 말이었다.
영토든, 아이템이든, 막대한 코인이든 이 정도 공적이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모두 로칸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도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그렇기에 로칸은 마음을 굳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내가 원하는 건 정보입니다. 450레벨, 마제스티 마스터의 권능에 대한 상세한 설명.”
“뭣?”
마툴다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로칸의 공적이 크다 한들 자신의 약점을 알려 주는 행위나 다름없었기에 고민은 깊어졌다.
“……좋다. 하지만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때문에 대답은 한참이 걸려서야 나왔다.
다행히 승낙.
마툴다는 로칸이 뭔가를 알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고, 그렇기에 어렵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결정을 내린 마툴다는 로칸을 이끌고 심처로 향했다. 이 말은 절대,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의 입을 통해서 나간 말들은 어떤 힘을 갖기 때문에.
“후우, 여러 번 이야기하지는 않을 테니 잘 들어라.”
마툴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 냉정해졌다.
계약이니 어쩔 수 없이 들려주기는 하겠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부터 로칸은 자신을 찌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테니까.
“마제스티 마스터의 권능은 바로 신성이다.”
마툴다가 밝힌 이야기의 첫 마디는 로칸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놈의 신성.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경청했다.
“신성, 참 모호한 개념이지. 때문에 막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른 자들은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신성의 양도 적고.”
“그렇군요.”
로칸은 자신이 상대했던 다른 마제스티 마스터들을 떠올렸다. 그몰탄이나 공허의 마수들 따위를.
그들이 제대로 신성을 발휘했나? 아니다.
마툴다의 말처럼 신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 새가 없었는지, 로칸을 얕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들은 신성이라 할 수 있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로칸 자신이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른 다음에도 비슷할 터. 그렇기에 더욱 날카롭게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신성은 어떻게 획득할까? ……알 턱이 없지. 설명해 주마.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른 자들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부여받게 된다.”
“세계?”
“그래, 세계. 자신만의 세계지.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의 신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신성을 이용해 그 세계에 속한 이들에게 힘을 부여하기도 하고, 시련을 주기도 하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아예 대재앙을 일으켜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만큼 신성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흐음.”
대충 알 것 같았다.
일종의 미니 게임. 심시티 같은 것을 하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세계를 키우고, 그로부터 신성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신성의 근원이 무엇인가가 명확해진다.
“그 세계에 속한 이들의 믿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까?”
종교. 혹은 샤머니즘과 같은 방식을 통해 세계의 존재들로부터 믿음을 획득하고, 그 믿음이 신성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경영에 자신이 없는 로칸에게는 꽤나 귀찮은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없는 얼굴이군.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 하다 보면 느는 법이니까. 그리고 다른 방법도 있지.”
로칸의 걱정을 짐작한 것일까? 마툴다가 무슨 생각인지 안다는 듯 답했다.
한데, 다른 방법이라고?
“어쨌든 그러한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나면 신성을 키울 수 있고, 그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을 구축하거나, 아예 그들을 소환하는 등의 방식으로도 쓸 수 있지. 물론 효율이 좋지는 않지만 자신의 세계에 없는 개념이나 힘도 사용할 수 있다. 신성이란 마나 이상으로 만능의 힘이거든.”
원하던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마툴다의 설명은 꽤나 귀중한 자료였다.
그렇게 만능인 힘이라면 창조 스킬을 여러 개나 만드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지 않겠나? 스킬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신성이 들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계를 구성하고 키워 내는 것과 알고서 목적을 갖고 키워 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자신에게는 어떤 세계가 어울릴까. 콘셉트를 잡기까지는 고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로칸은 궁리를 시작했다.
어려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마제스티 마스터들에게 자신의 세계를 발설하는 것은 금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힘의 종료가 낱낱이 까발려지게 되는 것이니까.”
로칸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상대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 파훼법을 떠올리는 데 큰 힌트가 되지 않겠나?
그때, 마툴다의 입에서 신음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또한, 자신의 세계가 드러나는 순간 그 세계는 상대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공격이라니?
자신이 처음 유추했던 것처럼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 깽판을 칠 수 있다는 것일까?
“물론 직접 힘을 쓰는 것은 무리지. 그러나 세계 대 세계의 충돌은 가능하다. 상대의 입에서 직접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그 세계의 틈새를 엿볼 수 있다면 해당 세계에 대한 좌표를 얻을 수 있으니까. 계시 따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일으켜 상대 세계를 침략할 수 있는 것이지.”
“오호.”
그렇다면 마제스티 마스터들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잘못 입을 놀렸다간 침략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설혹 강력한 세계를 구축했더라도 동급 혹은 한 수 아래의 세계가 여럿이서 연합하고 덤벼든다면 버틸 수 있을까? 신성을 이용해 돕는다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보아하니 자신의 세계라 해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신성을 소모해야 하는 모양이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입맛대로 세계를 만들고 부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이제야 신성의 비밀을 엿본 기분이었다.
“너는 내가 칼튼을 그냥 놓아주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틀린 생각이다. 네가 그러했듯 나 역시 놈의 세계를 엿봤으니까.”
“오, 과연.”
때문에 칼튼을 놓치고도 희희낙락한 마툴다의 태도도 이해가 갔다.
자신은 아직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르지 못했으니 무리였지만 마툴다가 세계의 좌표를 얻어 냈다면 세계를 침공하고 침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
만약 그렇게 다른 세계를 정복하는 데 성공한다면 마툴다는 칼튼이 가졌던 신성을 홀랑 집어삼킬 수 있을 터였다.
이후 두 세계가 합쳐지는지, 별도로 운영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멀티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이것이 마제스티 마스터들의 진정한 싸움이다.”
음흉한 미소를 짓는 마툴다를 향해 로칸도 마주 웃었다.
그의 눈앞으로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 : 마도제국을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