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6화.신성 (2) (356/500)

 # 356

신성 (2)

‘마도제국이라…….’

무혼의 왕이 무림이라는 세계를 가지고 있듯, 놈에게도 딱 어울리는 세계명이었다.

다만 의외인 것은 그가 자신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가진 세계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세계에 대해 입에 올리는 순간 드러나는 구조인 듯싶었다. 그러니 세계에 대해 아예 언급도 하지 않던 것이겠지.

어쨌든 알아 두어 나쁠 것은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세계의 좌표가 드러나는 것은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인 모양이니까.

게다가 아직 로칸은 세계와 신성을 얻지 못한 초월자에 불과하니 세계가 드러날 위험도 없었다.

“물론, 이 같은 세계의 침략이 아닌 방법으로도 신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있지.”

“그게 뭡니까?”

“바로 신성을 빼앗는 것이다.”

“……?”

신성의 강탈. 로칸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신성을 강탈하는 방법에 대해서.

“심장…….”

그몰탄이 죽었을 때 굳이 놈의 심장만을 빼 간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 신성을 강탈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유력한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을 때, 마툴다가 그 합리적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그래. 심장을 포식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주로 마족 놈들이 하는 짓이기는 하지만 그편이 가장 효율은 높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저 죽이는 행위만으로도 대부분의 신성을 빼앗아 올 수 있거든. 그렇기에 마제스티 마스터들은 신성을 쌓고 빼앗으며 자신의 격을 올리는 것이다.”

“아……?”

로칸이 무언가 깨달은 얼굴을 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마제스티 마스터부터는 단순히 경험치를 쌓는 행위만으로 레벨을 올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동안 마주쳤던 마제스티 마스터들의 레벨이 450보다 많이 높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대부분 450에 턱걸이를 하고 있거나 몇 개 더 올리지 못했지.

세계를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테고, 그게 아니라면 같은 마제스티 마스터를 힘으로 제압해야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꼭 상대가 마제스티 마스터일 필요는 없다. 초월자의 경지에 오른다면 누구나 작은 신성의 파편을 갖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성장을 위해서는 마제스티 마스터를 처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신성의 수준에 격차가 난다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군요.”

그 말에 로칸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동급의 마제스티 마스터를 사냥하면 그만이니까. 아니면 그랜드 마스터급의 존재를 다수 학살하거나.

지금은 열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450레벨, 마제스티 마스터가 된다면 어떨까?

작은 신성이라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열이 아니라 스물이라도 능히 혼자 상대할 수 있으리라.

특히 미리 신성에 대해 연구해 둔다면 어쩌면 마제스티 마스터가 되자마자 급성장을 이룰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럼, 신성을 한계까지 성장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생각이 정리되자 합리적인 질문들이 떠올랐다.

신성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한계까지 성장시킬 경우 어떤 힘을 갖게 될까?

그리고 마제스티 마스터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지라는 것도 존재할까?

“그럼 신이 되겠지.”

“……!”

그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었다. 새로운 경지에 대한 힌트였다.

사실 로칸으로서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광풍 또는 학살의 신이라 불리는 이를 통해서.

그 사자왕조차 감히 함부로 말을 담지 못하던 존재. 그라면 마제스티 마스터를 넘어선 어떤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드디어 해답을 찾은 것이다.

‘만나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그리고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라면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들의 권능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직접 그 경지를 밟아 보면 그만이니까.’

조용히 목표를 다시 세운 로칸은 이후 이어지는 마툴다의 설명을 경청했다. 신성의 가능성 그리고 활용법 등.

당장은 쓸 수 없지만 언젠가 써먹어야 할 것들이기에 머릿속 깊숙이 그 내용들을 박아 두었다.

“이제 만족했나?”

다 말하고 나니 후련하지만 찝찝한 표정으로 마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큰 도움이 되었다.

450레벨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아직 그가 밟아 보지 못한 천상의 땅 역시 무궁무진했으니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로칸은 진심을 담아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무리 계약관계라 해도 언제 적으로 돌아설지 모르는 이에게 이처럼 자세한 설명은 어려운 것이었을 테니까.

더구나 로칸은 다른 이들과의 계약으로 한바탕 그의 진영을 휘저어 놓은 적이 있지 않나?

그것을 염려하는 것인지 마툴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제길, 이만 가 봐야겠군. 부디 전장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음? 벌써요?”

“네놈 덕분에 도화선이 타올랐으니 이쪽도 방비를 해야지. 벌써 무혼의 대지를 갈라 먹기 위해 다른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전란의 시작이었다.

로칸이 마도의 대지를 침범한 것이 스노우볼이 되어 환마계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는 로칸이 아니라 환몽의 왕이 목표한 바였다.

‘신성’을 획득하는 방법이 ‘세계의 통치’와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세계뿐 아니라 천상에서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른 환마계의 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빈 땅의 환수들을 제 휘하로 받아들여 더욱 커다란 신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때문에 어렵게 패퇴시킨 칼튼이 가진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마툴다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영토를 집어삼키고 단단한 수비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서.

덕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로칸은 어깨를 으쓱이며 환마계를 빠져나왔다.

전란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또다시 용병으로 나설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 이상 개입하는 것은 뭔가 꺼려졌다.

그의 감이 발을 빼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약속도 잡혀 있고 말이지.”

게다가 억지로 미뤄 놓은 대정령과의 면담도 기다리고 있었다.

마제스티 마스터가 분명할 존재를 마냥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지.

카이를 소환해 올라탄 로칸은 서둘러 다시 정령계로 돌아갔다.

“왔다, 왔어!”

“꺄르르륵! 기다렸어, 로칸!”

정령계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나무의 정령들이 그를 반겼다.

아래로 뛰어내리자 바람의 정령들이 카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장난을 쳤고, 나무의 정령들은 아쉬운 듯 쳐다보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로칸에게 모여들었다.

“지금 갈 거야?”

“대정령님이 기다리고 계셔!”

끄덕.

로칸이 승낙의 끄덕임을 보이자 녀석들은 춤을 추듯 로칸의 주변을 돌더니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쪽이야!”

“……?”

나무의 정령들이 안내 한 곳은 다름 아닌 거대한 나무였다. 로칸이 세계수가 아닌가 의심을 품었던 그곳.

그 틈으로 열린 길을 따라 이동하자 지하로 통하는 길이 나타났다.

“여길 따라가면 돼!”

“대정령님이 계신 곳까지 이어져 있어!”

그것은 나무의 뿌리였다. 정확히는 뿌리가 파고들며 벌어진 땅의 틈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설마하니 정령들이 자신에게 이상한 길을 알려 주는 건 아니겠지.

묵묵히 따르며 한참을 내려가자 경사가 점차 완만해지더니 꽤 커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이게 대정령님이 계신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야. 세계수의 뿌리는 정령계 어디로나 이어져 있거든!”

로칸이 통로라고 생각했던 곳은 다름 아닌 세계수의 뿌리였다.

기차도 너끈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틈새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빨리 움직일 수 있어?”

“대정령님이 계신 곳은 꽤 먼데!”

“대정령님을 기다리시게 하면 안 돼!”

신기한 그 광경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자 나무의 정령들이 로칸을 재촉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카이!”

로칸은 즉시 카이를 소환했다.

대붕의 상태라면 좁겠지만 크기를 적당히 줄인다면 여유로운 공간이기에 카이를 타고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전설을 타는 자!”

“와! 빨라, 빨라!”

“우리도 빨리 가자!”

로칸이 속도를 올리자 나무의 정령들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뛰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로칸이 벌어지자 아예 세계수의 뿌리 속으로 파고들어 세계수와 하나가 되어 어마어마한 속도로 따라붙었다.

‘엄청나군.’

정령계에서의, 세계수가 함께하는 나무의 정령들은 실로 막강했다. 밖으로 나간다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정령계 내에서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칸과 카이도 빨랐지만 그 속도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오는 녀석들의 모습에 호승심이 생길 정도였다.

나 홀로 속도 경쟁.

카이의 힘을 쥐어짜 날기 시작하자 금세 목적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야, 여기!”

“여길 타고 올라가면 대정령님을 만날 수 있어!”

그러다 어느 순간, 나무의 정령들이 멈춰 섰다.

미리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은 까닭에 한참을 되돌아와야 했지만 지상과의 거대한 연결점이 있는 것을 확인한 덕분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여기란 말이지.”

말해 주지 않는다면 모르게 생겼다. 인간인 로칸의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으니까.

그들을 따라 다시 위로 솟구치자 곧 세계수라 불리는 거대한 나무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뿌리가 만든 길이 세계수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통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만났던 세계수 따위는 그저 새싹에 불과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나무. 그리고 그것을 가꾸고 더불어 살아가는 정령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다!”

“히힛, 우리가 데려왔어! 착한 인간이야!”

그들 중 누군가 로칸을 알아보자 함께 온 나무의 정령들이 우쭐거렸다.

“인간, 좋은 향기가 나!”

“저 새는 뭐야? 난 쟤가 더 좋아!”

정령 마을과 비슷한 반응.

로칸에게 관심을 보이던 정령들은 금세 우르르 카이에게 몰려갔고, 그들에게 둘러싸인 카이가 도와 달라는 듯 끼잉거렸다.

“대정령님은 어디에 계시지?”

하지만 로칸도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자신이 동물원 원숭이가 되는 것보다는 카이를 그들에게 던져 두는 편이 낫기도 했고…….

[엘리멘탈 빅버드 카이가 엘리멘탈의 힘을 흡수합니다.]

정령들이 관심을 보이고 모여들수록 엘리멘탈 빅버드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카이를 위한 것이라 스스로 변명을 하며 로칸 홀로 나무의 대정령을 찾았다.

그가 있는 것은 세계수의 가지 위.

카이를 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하늘을 날 방법은 그에게도 있었다.

광풍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로칸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새의 둥지처럼 생긴 대정령의 거처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이만 갈게!”

“안녕! 다음에 또 놀자!”

“대정령님은 무서워.”

그의 거처에 다다르자 함께 왔던 나무의 정령들이 흩어졌다.

로칸 홀로 나무의 대정령이 있는 둥지 위로 살포시 날아 앉았다.

“그대가 로칸인가?”

그리고 그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나무의 대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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