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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화.세계수 (2) (358/500)

 # 358

세계수 (2)

무지개 전송기를 사용하기에 앞서 로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다른 나라 유저들이 활동하는 ‘다른 지상’으로 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어떤 나라를 택할 것인가?

그에게는 이제 세계수의 가지가 아홉 개밖에 남지 않았고, 더 로드를 즐기는 국가는 1백 개가 훌쩍 넘었으니까.

“흐음.”

잠시 고민하던 로칸은 일단 중국을 먼저 찾기로 했다.

그들을 키워 주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겸사겸사 찾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통합 경매장 오픈.”

중국 유저들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이동한 뒤 로칸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하프엘프들의 지역이 아니었다.

바로 통합 경매장.

국가별로 운영되는 그곳에 들러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 봉인된 광풍 검색.”

바로 봉인된 광풍의 무구. 이미 누군가의 창고 안에 잠들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봉인이 된 상태로도 훌륭한 스펙을 자랑하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상급 아이템 중에는 그보다 뛰어난 것들이 많았다.

물론 봉인된 상태라는 전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중국처럼 인구가 많고, 파밍되어 시장에 흘러나오는 아이템도 많은 국가에서 그것을 보관만 하고 있을까? 더 훌륭한 장비들이 시장에 넘쳐나는데?

로칸은 그것에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적중했다.

“매입!”

판매자가 경쟁 입찰을 원했는지 즉시 구매가가 꽤 높게 설정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 봤자 로칸에게는 푼돈이다.

남들이 채 갈까, 웃돈을 주고 즉시 그것을 구입한 로칸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흐흐흐흐, 이렇게 이득을 보는군.”

[봉인된 광풍의 부츠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로칸은 손에 넣자마자 즉시 봉인을 해제시켰다. 흉포한 빛과 함께 광풍의 힘이 깨어났다.

[광풍의 부츠][세트]

광풍이라 불리던 학살의 신이 사용하던 부츠.

-방어력 : 17,000

-내구도 : 1,000,000 / 1,000,000

-민첩 20% 증가

-체력 20% 증가

-[불굴의 발걸음] 효과로 모든 지형 효과 및 부정적 스킬 효과 무시. 이동 속도 30% 증가. 버서크 계열 스킬 사용 시 이동 속도 50% 증가

역시나 대박이었다. 능력치 상승 효과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고, 이번엔 힘 수치의 증가도 붙어 있지 않았지만 로칸은 불굴의 발걸음 효과가 더 반가웠다.

대미지라면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않던가? 그런 그에게 이동 속도 증가 옵션은 가장 필요하던 옵션 중 하나였다.

어디 그뿐인가? 세트를 하나 더 추가하면서 세트 효과가 추가되었다.

[광풍의 무구를 4세트 모으셨습니다.]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3세트 효과 : 모든 공격력 20% 증가]

[4세트 효과 : 모든 받는 대미지 30% 감소]

“흠, 이제 어쩐다?”

만족스레 세트 효과까지 확인한 로칸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가장 원하던 바를 이루기는 했는데, 정말 이 땅에 세계수를 전달해도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가뜩이나 압도적인 유저 수를 이용해 천상에서도 맹활약 중인 그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들은 타국의 전략이나 공략 등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도 없어서 백방으로 공략을 모아 수많은 예비 마스터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수가 더해진다면, 황금사자 진영 중에서도 가장 기본 스펙이 좋아서 많은 유저가 플레이하는 하프엘프 종족이니 득을 볼 사람이 아주 많을 터였다.

그렇기에 일단 보류.

다시 무지개 전송기에 오른 로칸은 다른 국가를 물색했다.

“베트남?”

다만 무지개 전송기가 모든 국가의 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 한 명이라도 천상에 도달한 이가 있는 국가로만 이동이 허용되었다.

아무래도 일종의 밸런스 조정 또는 보호 장치 효과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직 천상에 도달하지 못한 국가도 많은지 그 수가 꽤나 제한되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베트남이다.

베트남 유저들도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들은 것 같은데, 천상에 올라선 국가들 중에서는 그래도 약소국에 해당했기에 두 번째 세계수를 세울 국가로 이곳을 점찍은 것이다.

“제시.”

물론 이곳에서도 당연히 거래를 했다.

그들이 가진 아이템과 골드를 탈탈 털어 바치게 만든 뒤 세계수의 가지를 건네자 또 한 번, 퀘스트가 완수되었다.

“응?”

한데 뭔가 이상했다.

극대량이란 게 어느 정도일까 하는 호기심에 경험치의 양을 체크해 두었건만, 첫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와 두 번째인 지금 완료했을 때의 경험치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극대량이라고 한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기는 했지만 티가 날 정도의 격차에 로칸이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혹시……?”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크기.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할수록 신성의 크기가 더 커질 테니 퀘스트 보상에도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제기랄, 쪼잔하기는.”

아직 케이스가 적어 확신하긴 어렵지만 로칸은 그것이 아주 유력한 가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즉시 확인에 들어갔다.

바로 처음으로 방문했던 중국의 땅.

그들이 급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게 분명하기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어중간한 국가로는 차이를 확인하기 어려울 테니까.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헐.”

결과는 놀라웠다. 고작 한 곳에 세계수의 가지를 전했을 뿐인데 무려 3레벨이나 상승한 것이다.

이건 좀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일단 공짜로 레벨을 올렸으니 기쁜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면 더 가릴 것도 없다. 당장 이 레벨에서 공짜로 몇 개나 되는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기회인데 걸릴 것이 무어랴.

게다가 이미 중국에게 세계수를 줘버린 이상, 다른 강대국들에게도 넘겨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

미국, 러시아, 인도를 비롯해 최대한 인구가 많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수를 전파했다. 가는 김에 통합 경매장에서 봉인된 광풍의 무구를 검색도 하고.

아쉽게도 더 이상 광풍의 무구를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무려 430레벨까지!

갈수록 레벨 업이 어려워지기에 둔화되기는 했지만 도합 9레벨을 올린 것이다.

만약 이걸 사냥으로 올려야 했다면 전쟁을 몇 번이나 치러야 했을 터였다.

아니면 목숨 걸고 마제스티 마스터를 몇이나 잡든가.

“아쉽군.”

이제 남은 레벨은 19레벨.

생각 같아서는 다시 공허의 문을 열고 들어가 넘쳐나는 공허의 존재들을 사냥하고 싶지만 마제스티 마스터의 비밀을 알게 되자 오히려 갈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그간 마제스티 마스터를 잡아 온 것이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마제스티 마스터에 턱걸이를 했더라도 제대로 신성을 사용할 줄 아는 놈이라면 아마 상대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아는 만큼 경계심도 커졌다.

“그걸 찾아볼까?”

하지만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과 상대를 바로 알고 대비하게 되었을 뿐.

그렇기에 더 큰 힘을 얻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참고가 되겠지.”

광풍의 힘. 학살의 신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간 그와의 대화라면 스킬을 발전시키고 자신을 한층 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한판 붙어 본다면.”

가장 좋은 것은 그가 현신하여 자신과 한판 겨루어 보는 것이다.

로칸의 스킬과 전투 방식이 광풍의 그것과 닮아 있는 만큼 그와의 대결은 전투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핑그르르.

욕망의 나침반이 회전했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신맵의 방향. 다행히도 그가 천상에서 활약하는 동안 많은 탐험가들이 산맥을 넘고 새로운 땅을 발견했으며 그곳으로 이어지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상태였다.

로칸은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카이를 소환해 올라탄 뒤, 욕망의 나침반이 이끄는 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뀨웃!

신맵. 더 강한 몬스터와 새로운 지형이 있는 곳.

하지만 그래 봤자 지상이었다. 천상에서 맹위를 떨친 로칸의 상대까지는 없다는 뜻이다.

기분 좋게 활강하는 카이를 노리고 모여든 비행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로칸이 뿜어낸 광기의 외침 한 방에 꼬리를 말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날고 날아 도착한 곳은 신맵 중에서도 가장 외곽에 위치한 미개척 지역이었다.

“여기란 말이지?”

이렇다 할 도시조차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땅.

대체 이곳의 존재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할 만큼 농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야만인들이 사는 지역이니까.

[야만 전사][Lv 389]

하이 마스터 중에서도 상급에 해당하는 레벨을 지닌 존재들. 인간과 닮았지만 덕지덕지 붙은 근육들은 인간이라 부르기에도 뭔가 미묘한 감이 있었다.

“새다!”

“잡아라!”

“구워서 먹는다!”

행동 역시도. 놈들은 카이를 발견하자마자 무기를 던져 대며 떨어뜨리려고 용을 썼다.

섬뜩한 것이 있다면 놈들이 오라를 마구 퍼붓는다는 것이다.

하는 행동은 원시인들이 돌도끼를 던지는 것 같은데, 그 위력은 강맹하기 그지없다.

‘이런 곳에 광풍의 제단이 있다고?’

살짝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욕망의 나침반은 뚜렷이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핑그르르르르.

야만 전사들의 마을이 있는 마을 위에서 목적지를 알리듯 제자리 회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카이, 돌아가.”

놈들의 반응이 워낙 격했기에 로칸은 일단 카이를 돌려보내고 광풍의 날개를 펼쳤다.

아직도 착각 중인지 놈들이 공격을 쏘아 냈지만 그래 봤자 하이 마스터급이다. 그 따위 마구잡이 스로잉에 로칸이 맞아 줄 리 없다.

“헉? 하늘을 나는 인간이다!”

“신일지도 몰라!”

“광풍! 광풍이 돌아왔다!”

아슬아슬하게 날개를 컨트롤하며 땅으로 급강하를 한 로칸이 사뿐하게 놈들의 앞에 섰다.

“응?”

한데 반응이 영 이상했다.

다짜고짜 덤비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놈들은 두려움에 오들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예 납작 엎드려 절을 하는 놈들까지 있었다.

‘이건 또 뭔 일이야?’

오히려 로칸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반응.

이놈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

왠지 멋쩍어져 주변을 둘러보던 로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야만 전사들의 섬세함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조각상의 모습.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광풍’의 모습이 있었다.

‘나를 광풍으로 오해하고 있는 건가?’

광풍과 로칸의 생김은 분명 다르다.

인간과 타이탄의 혼혈인 그였으니 광풍 현신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일상의 모습이 같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무기와 주요 장비 세 파츠가 같다. 이들에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애초에 조각상이라는 게 초상화처럼 대상과 완전히 똑같기도 어려우니 얼추 비슷한 모습을 동일한 모습으로 오해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어나라. 나를 마을로 안내해라.”

씨익.

그렇다면 이용해 먹어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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