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
모테론의 원한 (1)
[기적적인 업적! 당신은 100마리 이상의 신수를 살해했습니다.]
[타이틀 ‘신수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신수 사냥꾼][에픽]
신수를 100마리 이상 사냥한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신성력을 지닌 존재를 상대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단,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악화된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보유 효과]
-신성력을 사용하는 존재와 전투 시 공격력, 방어력, 저항력 10% 상승
-신성력을 사용하는 존재와 전투 시 적의 공격력, 방어력, 저항력 10% 하락
-신성력을 사용하는 존재들과 적대 관계 형성
“쩝, 천족 놈들과는 관계가 텄군.”
무려 1백 마리의 신수를 사냥하며 천족의 사냥터를 휘저어놓은 로칸은 새롭게 획득한 타이틀에 짧은 감상을 내놓았다.
원래도 좋지 않은 관계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맵에 있는 천족들과는 또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래서야 영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수 사냥꾼 타이틀은 확실히 천족이나 신수 따위를 대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타이틀이었고, 이번 사냥을 통해 신수의 심장과 내단 같은 것들을 다량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먹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되었지만, 힘의 정수나 영혼의 구슬처럼 일단은 아껴 두었다.
나중에 먹어도 되고 여차하면 예전처럼 거래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코인보다 더 높은 가치의 화폐 같은 느낌이었기에 인벤토리 한편에 고이 모셔 두었다.
“대적자 설정. 천족.”
대신 언제 싸우게 될지 모르는 천족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해 두었다. 168시간이 지나 재지정이 가능해진 대적자 설정을 통해 천족을 지목한 것이다.
[대적자가 설정되었습니다.]
[대적자 : 천족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적자는 168시간 후 변경이 가능합니다.]
[순수 천족을 대상으로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이 30%만큼 증가합니다.]
[일반 천족을 대상으로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이 15%만큼 증가합니다.]
“오호?”
다만 이번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순수 천족에게는 원래대로 30%의 상승률을 보였지만 진영만 천족을 선택했을 뿐인 일반 천족들에게는 반 토막 난 15%의 상승을 보인 것이다.
살짝 아쉬운 감이 있지만 사실 이것도 훌륭하다.
왜냐하면 400레벨 이상의 강자들의 경우 대부분 순수 천족인 경우가 많고, 그를 적대하는 정도에 있어서도 순수 천족은 병적인 데 비해 일반 천족은 마지못해 내몰린 느낌이니까.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로칸은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신수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아니다 보니 이제 개체 수가 제법 줄기도 했고, 좀 더 치열한 전투에 대한 갈증이 생긴 것이다.
카이를 타고 넘어갈까 하다가, 폴리모프를 사용해 그가 기억하는 순수 천족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유니콘 소환.”
탈것 또한 카이 대신 유니콘을 소환했다.
이곳에서도 유니콘은 귀한 생명체인지 사냥터에서도 본 적이 없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닐 터.
그리고 이 유니콘을 통해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천족의 사냥터지기 헤밀드][Lv 433]
그렇게 사냥터의 경계까지 다가서자 사냥터지기라는 놈이 나왔다.
‘타이탄?’
타이탄. 거인족인 주제에 일반 천족으로 앙증맞은 천족의 날개를 달고 있는 녀석.
그 모습이 언밸런스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로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히 그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이제 돌아가십니까? 사냥이 즐거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잘 관리했더군.”
들어가는 걸 본 적도 없으면서 이게 웬 개소리란 말인가?
로칸은 내심 어이가 없었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혹여 책이라도 잡힐까 으레 하는 소리겠거니 하며 적당히 받아 주었다.
그러자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배웅까지 하는 헤밀드.
지상에서는 세상을 파멸시키려 드는 존재였던 타이탄이 그러고 있는 꼴을 보니 이놈의 종족이 타이탄이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타이탄은 맞았다.
이놈이 특이한 걸까, 아니면 그만큼 천족이 대단한 걸까?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통과.
사냥터지기의 집을 지나 다음 도시로 향했다.
[천족의 수도 밀라니움에 입장하셨습니다.]
“오…….”
다시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도시는 아주 거대한 곳이었다. 도시도, 성벽도, 건물도 하나같이 화려하고 웅장했다.
과연 천족들의 수도라고나 할까.
기껏해야 대도시쯤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대뜸 수도가 나와 버리자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정보를 모으기에는 도시가 클수록 좋다.
짧은 감상과 함께 수도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인간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로칸이 느낌 감상이었다.
일단 순수 천족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특권층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면 하나 같이 400레벨이 넘거나 거의 그것에 근접한 것이 놀라웠지만 생활상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 상업 활동이나 노동 활동을 하는 이들은 거의 다 일반 천족들이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평민의 느낌일까.
반면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장비들을 착용하고 활보하는 이들은 귀족쯤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인간들의 사회에서 귀족들은 만나기 쉽지 않은 존재들이었지만 이곳이 천족의 수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흔하게 보이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당장 로칸이 황제로 군림하는 황궁과 수도에서도 귀족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지 않던가.
그것을 생각하자 대충의 상황이 그려졌다.
‘혹시 그렇다면…….’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수도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차근히, 수상하지 않게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런가.”
그리고 진짜 이들의 행태가 인간과 흡사함을 파악했다.
인간이 그렇듯 순수 천족들 역시 계급이 나뉘어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순수 천족은 명예 귀족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시 계급이 나뉘었다.
인간들과 같은 작위명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1급부터 6급까지 계급으로 나뉘는데, 따지자면 1급이 황족, 2급이 공작, 3급이 후작, 4급이 백작, 5급이 자작, 6급이 남작으로 볼 수 있었다.
따로 지위를 갖지 못한 이들도 몽땅 6급에 포함되었다.
다만 이들 간의 레벨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1급부터 3급까지는 모두 450레벨이었고 4급 이하도 대부분 400레벨 이상이었으니까.
가진 바 능력에 따라 힘의 격차는 있을지 몰라도 레벨로 따지자면 큰 차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급수를 나누는 기준은 우습게도 태생적인 고귀함이다.
과연 천족 놈들답다고나 할까.
선민의식이 무척이나 강해서 태고부터 이어진 혈통의 권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때문에 1급이지만 3급보다 전투력이 낮은 경우도 있다고.
이건 정말이지 인간과 같지 않은가? 인간의 경우 로칸에 의해 몽땅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이것까지 똑같단 말이지…….”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계급에 완전히 만족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것은 인간만의 본능이 아니라는 듯, 그들의 세계에도 역시 ‘정치’라는 것이 존재했다.
“하긴, 신성의 수준이 달라질 테니까.”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1급, 즉 황족이 된다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신성의 수준도 자연히 달라지지 않겠나?
자신만의 세계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 천상에서의 지위 역시도 신성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
그런 의미에서 황족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막대한 신성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게다가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는 유저들의 증가 역시 오롯이 그들의 힘이 된다.
믿음의 수가 증가하고, 믿는 자들의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신성이 저절로 불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순수 천족들이 일반 천족을 무시하고, 괄시하면서도 배척하지는 않는 이유였다.
“써먹을 수 있겠군.”
로칸은 그것에 주목했다.
천족과의 일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마제스티 마스터가 이렇게나 우글거리는 곳에서 단신으로 난동을 부린다?
신성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창조 스킬로 다구리를 맞고 돌 맞은 개구리처럼 뻗기 딱 좋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로칸이라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껏 난동을 부릴 수 없었다.
전력으로 부딪치면 한두 마리쯤은 논개처럼 끌어안고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 뿐이니까.
그렇다면 틈을 만들어야 했다. 천족들이 분열하고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애초에 수도를 치지 않으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이 뭉쳐 있으면 언제고 로칸을 잡을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 파견될 확률이 높았다.
천족들이 반목하게 만든 후 갉아먹는 것.
그리하여 450레벨, 마제스티 마스터에 올라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로칸의 목표였다.
그것을 위해 꽤 많은 코인을 투자했다.
순수 천족들이라면 감히 정보를 팔아먹지도 입에 올리지도 않겠지만, 다행히 술집 주인과 이용객, 정보 상인은 일반 천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도 맨 얼굴을 보여 줄 순 없지만 은근히 다가가 코인으로 홀리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구나 이곳은 모든 정보가 모이는 수도가 아니던가?
‘허, 첩자까지 있어?’
개중에는 순수 천족들의 첩자로 보이는 이들이 섞여 있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 로칸의 모습은 폴리모프로 빚어놓은 것에 불과하니까.
사흘이 지나 다시 다른 천족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면 그만이었고, 지금 감시받고 전달되는 이 얼굴은 오히려 놈들에게 혼란만을 줄 터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로칸이 집중적으로 파헤친 것은 순수 천족 간의 알력 관계이다.
서로를 보완하며 사이가 좋은 정령계를 제외하고 환마계와 유명계에서 그렇듯 남의 영지와 권력이 줄어들수록 자신의 입지와 신성이 불어나는 형태이다 보니 순수 천족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알력 관계와 암투가 있는 것이다.
고상한 척 하는 놈들의 행동을 보면 우스운 일이다.
“하긴, 이런 놈들일수록 뒤가 구린 법이지.”
하기야, 이전에도 그몰탄과 천족들이 손을 잡고 자신을 죽이려 들지 않았던가?
알아보니 심지어 그것에 따라 파벌도 형성되어 있었다.
어렵게 얻어 낸 그 세력도를 보며 로칸이 주판을 튕겼다.
“흐흐흐, 어느 쪽을 먼저 건드려 볼까……?”
신수 사냥꾼 등의 호칭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관계상 어느 천족 파벌에서도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로칸이지만 자신 있었다.
‘이런 분탕질은 또 내가 전문이지.’
로칸의 눈빛에 음흉한 자신감이 깃들었다.
평화롭던 천족들의 세상을 뒤집어 놓을 일이 계획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