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7화.타이탄 마을 (2) (3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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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마을 (2)

콰과과과과광!

로칸이 작정하고 공격을 퍼붓자 제단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천족의 국경 지대 건물보다도 뛰어난 내구력을 자랑하는 것이 손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으로 확인되었지만, 매에는 장사 없었다.

모든 스킬들을 꽂아 넣기도 전에 제단이 완파되고, 시스템 알림이 나타났다.

[별자리의 신의 제단을 파괴하셨습니다.]

[별자리의 신이 당신을 비난합니다.]

“엉?”

그러나 시스템 알림의 내용은 전혀 기대와 다른 것이었다.

타락의 신이 아닌 별자리의 신을 모시는 제단이었던 것이다.

머쓱해진 로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마음속으로 별자리의 신에게 사과를 했고, 별자리의 신이 보내는 간접 메시지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크흠, 일단 잠입해 볼까?”

다음으로 로칸이 눈을 돌린 것은 타이탄들의 마을. 역시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그곳이었다.

다만 문제는 폴리모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아직 남았다는 것이었다.

가장 편한 방법은 타이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하고 마을을 수색하는 것인데, 순수 천족의 모습으로 변하느라 그것이 당장은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다렸다가 찾아봐야 할까?

“못 먹어도 고지.”

로칸은 어쩐지 조급함이 느껴졌다.

폴리모프의 재사용을 기다리는 대신, 본신의 모습 그대로 타이탄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광풍의 후예이자 인간인 자신을 배척하고 싸움을 걸려 들 수도 있지만 일단은 하는 데까지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만약 힘에 부치더라도 몸을 피할 자신은 있으니, 그때 가서 폴리모프를 사용해 잠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저 쪽이었지?”

카이의 등에 올라 보았던 타이탄 마을의 방향을 가늠해 낸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알아차린 타이탄들을 보며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 채 마을로 들어섰다.

“엇? 인간이다!”

“뭐? 인간? 그게 진짜로 있는 생물이었어?”

로칸의 등장과 함께 타이탄 마을의 내부가 들썩거렸다.

인간은 천상에서 보기 가장 힘든 종족 중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타이탄들로서도 구전을 통해 그 생김새를 전해 들었을 뿐,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적대인가?’

그들의 격한 반응에 로칸이 긴장했다. 언제든 광풍 현신을 발휘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다음 이어진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타이탄 마을에 온 것, 환영한다!”

“……엉?”

두 팔 벌려 자신을 환영하는 타이탄들을 보며 로칸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배틀 액스를 늘어뜨리고 눈만 껌벅거렸다.

기만전술일까? 자신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아닌 것 같은데.’

합리적인 의심을 했지만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소처럼 순둥한 저 눈망울이 거짓이라면 세상에 진실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아앗, 놀랐다면 죄송하다! 반가워서 그랬다!”

심지어는 당황한 로칸을 보며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기까지 했다.

이게 정말 그 살벌하고 파괴적이던 타이탄이 맞단 말인가? 의문과 의심이 들 만큼 그가 알던 모습과 매치가 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타이탄들은 무척이나 순박하고 선량했다. 경계하고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마을 안으로 들어선 로칸은 타이탄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기본적인 구성은 다른 마을과 비슷했다.

거인족인 타이탄들의 마을이기에 마을 영역이 꽤 넓고 건물들이 큼지막하긴 했지만 상점 자체는 별 볼 일 없었다.

기본적인 장비 상점과 소모품 상점이 있었고, 나머지는 그다지 의미 없는 일상적인 상점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타 종족들과의 교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제 막 문명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하지만 로칸은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마을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지도까지 구입하는가 하면 광풍의 날개를 펼쳐 마을 주변까지 모조리 돌아보았다.

그리고 약간 외진 곳에 감춰진 제단을 발견했다.

순박한 모습 뒤로 칼을 감추고 있던 것이다.

“잠깐이나마 믿을 뻔한 내가 바보지.”

“앗, 거기는…….”

제단으로 향하는 로칸을 발견하고 몇몇의 타이탄이 모여들었다.

거친 발걸음에 지진처럼 땅이 진동했지만 각종 이동기를 사용하는 로칸의 비행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광풍의 제단을 발견하셨습니다.]

“……헐?”

그러나 배틀 액스를 휘둘러 그것을 파괴하려는 순간 들려온 알림에 로칸의 몸이 휘청거렸다.

광풍의 제단이라니? 광풍이라면 오히려 타이탄들의 적이자 공포의 대상이 아니던가?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지만…….

“핫, 발견했다.”

뒤늦게 도착한 타이탄들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마치 부끄러운 비밀을 들킨 소녀처럼 몸을 베베 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로칸, 그분의 사도다!”

“음, 사도는 아닌데.”

타이틀 광풍의 후계자를 잘못 이해한 듯싶었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광풍을 모시는 타이탄들이니 그의 무구를 두르고, 힘의 일부를 이어받은 로칸에게 극호감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설명이 필요한 것은 여전했다.

광풍의 손에 무수히 희생당했던 타이탄들이 어째서 광풍을 신으로 모시는 것일까.

“히히, 숨겨도 다 안다. 저기, 그러니까…….”

“……?”

로칸은 오류를 지적했지만 이미 타이탄들은 듣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광풍으로 착각하던 야만 전사들을 보는 것 같다고 느끼며 고개를 저을 때, 타이탄들이 멋쩍은 듯 한 가지 요구를 해 왔다.

“나랑 싸우자.”

[타이탄과의 대결][퀘스트]

광풍의 신도, 타이탄들이 광풍의 후계자인 당신에게 대결을 신청했습니다.

타고난 전사이자 광풍의 신도인 그들을 쓰러뜨리십시오.

단, 이 대결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아야만 끝이 나는 생사결입니다.

-성공 조건 : 타이탄과의 대결에서 승리

-성공 보상 : 타이탄들의 호감 및 평판 최대치까지 증가, 보통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타이탄들의 호감 및 평판 대폭 하락

‘생사결인데, 호감과 평판이 최대치라고?’

로칸은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정보를 확인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생사결이라면 상대를 죽여야만 끝나는 승부라는 뜻인데, 상대 타이탄을 죽이면 타이탄들의 호감도와 평판이 최대치까지 상승하다니? 아무리 힘을 숭상한다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좋아. 하지.”

어이없어 하면서도 로칸이 웃었다. 이런 꿀 같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우오오오오오오!”

로칸이 승낙하자 타이탄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마치 축제라도 벌이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았고, 우르르 모여 어떤 곳으로 이동했다.

“여긴……?”

연무장이었다. 다만 인공적으로 바닥을 갈아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이탄끼리의 대련으로 만들어진 천연의 연무장이라는 것이 특이할 따름이다.

타이탄들끼리의 격돌을 받아 냈던 곳이니 만큼 로칸과 타이탄의 대결 역시도 견딜 수 있겠지.

그렇기에 로칸도 마음 놓고 힘을 쓸 수 있었다.

“그럼, 상대는 누구지?”

“나요! 나입니다.”

“아니, 나입니다!”

“내가 먼저라고!”

로칸이 즉시 대결에 들어갈 의사를 보이자 타이탄들끼리 티격태격했다. 이대로 둔다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판이다.

“그만. 너희들 중에 가장 강한 건 누구지?”

때문에 로칸이 직접 나섰다. 어차피 어설픈 전사 하나를 꺾는다고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았기에 그들 중 가장 강한 자를 찾았다.

그편이 더 많은 경험치와 신성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으흐흐! 내가 먼저다!”

“우우, 쉬롬벨 강하다. 근데 나도 강하다!”

“그럼 다음은 나다!”

혹시나 이것도 이견이 있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다행히 가장 강한 놈은 이미 가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으스대며 나오는 타이탄과 아쉬워하는 놈들.

한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번 한 판으로 끝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타이탄 일족의 리더 쉬롬벨][Lv 462]

일단 레벨은 마제스티 마스터급. 하지만 마제스티 마스터치고 레벨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중립 지대에서는 딱히 분쟁이 많지 않기 때문인 듯싶었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일단 놈은 신성을 사용할 수 있는 입장이었고, 무엇보다 종족 자체가 타이탄이다.

신성 따위 없이도 동급의 존재들 중 최강으로 여겨지는 놈들인 만큼 로칸도 좀 더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대적자 설정, 타이탄.”

[대적자가 설정되었습니다.]

[대적자 : 타이탄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적자는 168시간 후 변경이 가능합니다.]

[타이탄을 대상으로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이 30%만큼 증가합니다.]

바로 대적자 설정이다. 가뜩이나 광풍의 배틀 액스와 타이틀 효과로 타이탄 한정 최강의 공격력을 지닌 로칸의 공격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정도라면 신성을 쓰지 않는 싸움에서는 광풍 현신이나 버서크를 쓰지 않더라도 놈들을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신성인가.’

순수 확실하게 압도할 자신이 있었지만 관건은 역시 신성의 활용이다.

놈이 신성을 얼마나 잘 활용할지, 또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초 무혼의 왕 칼튼 수준이 되지 못한다면 승부는 의외로 쉽게 갈릴지도 모른다.

“시작할까?”

“좋다. 먼저 간다!”

대결의 시작. 레벨도 더 높은 주제에 선공을 취한 것은 쉬롬벨 쪽이었다.

쿠웅. 휘익!

대뜸 발을 굴러 쏘아져 온 쉬롬벨이, 들고 있던 메이스를 휘둘렀다.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으로 살펴본 결과, 고작해야 유니크급밖에 되지 않지만 타이탄의 능력치가 더해지자 파괴 병기로 돌변했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이에 로칸도 경시하지 못하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신성이 섞여 있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위력이라면 이쪽도 전력을 다해 주는 편이 옳다고 본 것이다.

쩌엉!

배틀 액스와 메이스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붉은 불꽃이 튀며 메이스가 젖혀졌다.

힘에서는 로칸이 우위. 하지만 녀석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칸, 강하다. 다시 간다!”

오히려 광풍의 후계자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더욱 힘을 실어 메이스를 휘둘러 댈 뿐이었다.

까앙, 깡 깡 깡!

둔기와 날붙이. 정면으로 부딪치면 손해 보는 것은 당연히 날붙이 쪽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각자의 병기가 부딪칠 때마다 손해를 보는 건 쉬롬벨 쪽이었다.

둘 다 이렇다 할 스킬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탐색전에 가까웠지만 육체 능력과 컨트롤 면에서는 로칸이 월등한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쉬롬벨의 팔이 튕겨 나갔고 격돌이 거듭될수록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로칸 쪽이었다.

내구도의 문제? 광풍의 배틀 액스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막아 내는 것도 숨차 보일 만큼 공격과 수비의 관계가 명확했지만 쉬롬벨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타고난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듯, 일족 최고의 전사인 자신이 밀리고 있는 이 상황조차 즐기고 있었다.

“로칸, 이제 진짜 간다!”

그리고 마침내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건 위험하군.’

놈의 메이스에 가공할 힘이 깃들었다.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속도와 파괴력이 그 단점을 뒤덮고도 남았다.

콰앙!

로칸이 피해 낸 일격이 바닥을 때리며 지진처럼 땅을 갈라 놓았다.

구경하던 타이탄들마저 순간 균형을 잃을 만큼 놀라운 파괴력이었다.

“피의 각성.”

놈의 진심에 로칸도 진심으로 답을 해 주었다.

그의 핏속에 내재된 타이탄의 피와 베어 넘겼던 수많은 종족들의 힘이 들끓어 올랐다.

“선조의 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쉬롬벨 역시 창조 스킬을 발동했다.

고대 선조들이 지녔던 힘의 기록을 꺼내 자신에게 덮어씌웠다.

진짜 대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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