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9화.뱀파이어의 습격 (1) (379/500)

 # 379

뱀파이어의 습격 (1)

부동의 랭킹 1위, 천외천의 경지를 달성한 로칸을 끌어내리기 위한 유저들의 연합인 것일까?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먼저 유저들의 연합이라는 것은 같다. 하지만 그 주체가 특정 몇몇의 길드라는 점이 달랐다.

러시아 길드 연합.

얼마 전 뱀파이어로 종족으로 집단 종족 변환을 한 놈들이 지금 성벽을 넘고 마족 병사들을 죽이는 원흉인 것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짓쳐 오는 놈들 중에는 미국과 중국의 길드 등 기시감이 드는 얼굴들도 함께였지만 그런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체리셰프를 비롯한 희멀건 얼굴들을 보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감히 이것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아?

‘근데 어떻게 한 거지?’

로칸은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그들과 자신 사이에는 계약서로 맺어진 약정이 있지 않던가?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계정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텐데?

“이거로군.”

얼른 인벤토리에서 계약서를 꺼내 보니 계약서를 감싸던 빛이 사라져 있었다.

계약서의 효력이 다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계약서를 무력화시킨 것일까?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종족 변환.”

빠득.

로칸이 이를 갈았다. 그가 계약을 맺은 것은 계정이 아니라 캐릭터인 것이다.

그런데 그 캐릭터가 종족 변환을 하며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자 계약서의 효력이 상실된 것이다. 계약의 주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어이없는 꼼수였지만 따지고 보면 체크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기도 했다.

그들의 배신만을 탓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

“광풍 현신!”

때문에 로칸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직접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타이탄의 심장을 흡수해 더욱 강화된 능력을 바탕으로 적의 선봉을 꺾기 위해 달려들었다.

“헉! 로칸이다!”

“젠장, 빨리도 왔군. 산개해!”

놈들은 로칸을 발견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짓을 해 놓은 것인지 힘을 쓰지 못하는 NPC 병사들을 노리며 수적인 우위를 더욱 크게 가져가기 위해 제각기 힘을 발휘했다.

“어딜!”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전쟁 상황에서 강력한 한 명의 영웅이 부대를 쓸어버릴 수 있기는 했지만 성을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때문에 정석적인 수성 전략으로 가자면 내성의 입구를 지키고 서는 것이 옳았겠지만 그런 것은 로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가 일찍이 해 먹었던 성 뺏기? 할 테면 하라지.

어차피 자신이 가진 성을 다 빼앗긴다 해도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었다.

로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전신의 돌격, 점멸!”

“커헉!”

때문에 지키는 포지션이 아닌 공격자의 포지션을 잡았다.

많이도 필요 없다. 상대는 고작해야 400레벨도 달성하지 못한 애송이들. 한바탕 들이받은 뒤 배틀 액스 몇 번 휘두르면 두 조각이 나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파다다다다닥.

“귀찮게 구는군!”

하지만 놈들도 가만히 당해 주지는 않았다. 공격에 적중 당하려는 순간, 수백 마리의 박쥐 떼로 변해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격에 목이 달아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뱀파이어의 권능을 이용해 피해를 줄이는 한편, 멀찍이 자리를 잡고 그를 포위한 다른 뱀파이어 유저들의 지원을 기다렸다.

“블러디 발칸!”

투다다다다다다.

로칸이 한 놈에게 배틀 액스를 휘두르는 동안 나머지 놈들이 블러드 매직을 활용한 포격을 퍼부었다.

기관총을 난사하듯 피와 마나로 뭉쳐진 탄환들이 로칸의 몸을 두들겼다.

[피의 살육 효과로 블러드 매직을 흡수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버서크의 스킬 중 하나인 피의 살육.

피를 흡수해 힘을 더욱 증폭시키는 그 패시브 효과가 발동하며 놈들의 힘을 흡수해 버렸다.

‘피해가 없는 건 아니군.’

그 시스템 알림을 확인하며 몸을 돌린 로칸이 빠득 이를 갈았다.

블러드 매직의 기운을 흡수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놈들이 공격을 퍼부을 때마다 많지는 않지만 생명력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블러드 매직이 가지는 충격량까지 흡수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라 폭격!”

로칸이 발작적으로 힘을 쏟아 내 보지만 제법 연구가 있었는지 살아 나가는 숫자가 적지 않았다.

“크악!”

그러나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레벨의 차이, 능력치의 차이가 월등하다 보니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몸이 갈라져 죽는 놈들도 상당했다.

‘부족해.’

그럼에도 로칸은 갈증을 느꼈다. 이래서는 끝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

놈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배틀 액스를 길게 늘어뜨렸다.

“휠 윈드!”

천족의 국경수비대조차 몰살시켰던 그 힘이 일거에 내뿜어졌다.

“진광풍참!”

거기에 광풍참의 효능까지 더해지자 일정 공간 내에서 날아다니는 박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

“역시 로칸……!”

“놈과 싸워 주지 마라! 힘을 비축해!”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바가 아닐 텐데도 뱀파이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시간 끌기에 주력했다.

버서커 계열의 약점인 시간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어딜 감히?”

하지만 로칸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비등한 수준도 아니고 힘의 차이가 월등한 상황에서 굳이 그것에 당해 줄 이유가 없었다.

도시가 파괴되든 말든 힘을 분출하며 달아나는 뱀파이어들을 찢어 죽였다.

그가 가진 재력이라면 대도시 하나쯤 복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도시가 파괴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힘을 쓰자 더 많은 뱀파이어들이 휘말리기 시작했다.

블러드 매직에는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더욱 파괴력을 높여 가는 로칸을 보는 적들의 표정이 질려 버렸다.

정말 이길 수 있는 걸까 걱정이 떠올랐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로칸이 꺾이든 자신들이 밟히든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비켜라!”

그때, 멀찍이 도망가 있던 이들이 전면으로 나섰다.

“……뭔 깡이냐?”

[뱀파이어 체리셰프][Lv 387]

가장 선두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체리셰프.

첫 격돌에서 놈부터 족치려 들었을 때는 후다닥 도망가 버린 주제에 다시 나타난 녀석의 표정에는 제법 여유마저 보였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일까?

“뱀파이어의 고성.”

“……!”

그때, 로칸이 파괴한 도시의 잔해를 짓밟으며 하늘에서 거대한 고성의 형상이 떨어져 내렸다.

누군가의 창조 스킬.

그리고 로칸은 이 스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샤로크?”

다름 아닌 샤로크.

로칸이 신수의 심장을 넘겨 그랜드 마스터의 경계를 넘게 만들어 주었으며 함께 그몰탄에 대항했던 뱀파이어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입니다, 로칸 님.”

“너 이 새끼……!”

하지만 그가 구원했던 웨어울프 키리토와 달리 녀석은 한 차례 패퇴한 이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몰탄을 처치한 이후에도.

키리토의 경우 그에게 넓은 영지를 분양 받아 일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잘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타나기만 했다면 함께 싸운 정을 생각해서 영지든 뭐든 한몫 챙겨 주었을 텐데.

“네가 이들을 감염시킨 건가?”

그런 놈이 갑자기 이곳에는 무슨 일로 나타난 것일까.

아니, 러시아 유저들의 종족 변환을 이놈이 주도했을 것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고의적으로, 악감정을 품고 접근했을 게 분명했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로칸이 눈알을 부라리자 샤로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 따위가 마계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냉정한 마족의 눈빛.

그것을 보고 로칸은 그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언행이 거짓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에게 충성하듯 보였던 언행들은 모두 계산된 것이었고, 이제야 나타난 것은 아마도 로칸이 더 크기 전 짓밟겠다는 의도인 모양이었다.

“그래? 간단해서 좋군. 한데 네놈 따위로 될까? 설마 저 떨거지들을 믿는 건 아니지?”

덕분에 로칸은 오히려 속이 편안해졌다.

샤로크의 말처럼 무슨 설명과 이유가 더 필요할까.

놈이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고, 자신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주면 되는 것이다.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글쎄. 떨거지일지 아닌지는 잘 봐야 할 텐데?”

“……?”

[뱀파이어 체리셰프][Lv 387 + 15]

“뭐야, 저건?”

여유만만한 놈의 대답에 슬쩍 눈을 돌려보니 체리셰프의 레벨이 바뀌어 있었다.

저런 표시도 있었던가?

로칸으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그 숫자를 더해 보니 놈의 여유를 알 수 있었다.

402레벨. 어떤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레벨이 끌어올려진 것이다.

마치 자신이 과거 초월 각성을 사용했던 때처럼.

[뱀파이어 로스날도][Lv 385 + 15]

[뱀파이어 파리솔타][Lv 385 + 15]

녀석뿐이 아니었다. 체리셰프를 위시하고 선 다수의 유저들의 레벨도 함께 올랐다.

개중에는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넘은 놈도 아닌 놈들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랜드 마스터만 무려 열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샤로크의 지원을 받아 부지런히도 레벨을 올린 모양이었다.

“뱀파이어의 고성 효과인가?”

과거에도 저런 효과가 있었던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놈이 창조 스킬을 개량한 모양인데,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신성?”

하지만 그럴 리가. 그사이 샤로크의 레벨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신성을 다룰 수준은 아니었다.

본인은 뱀파이어의 고성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작 그 정도로 마제스티 마스터의 수준에는 오를 수 없는 것인지, 샤로크의 레벨은 450에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심지어 로칸보다도 낮았다.

[뱀파이어 백작 샤로크][Lv 431]

남작에서 백작으로 지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430 정도였다.

뭔가 특수한 힘이나 존재가 개입한 게 틀림없었다.

“뱀파이어 로드라도 개입한 건가?”

“그걸 알아보다니 확실히 대단하군. 하지만 너의 성장도 여기서 끝이다. 그분이 너의 파멸을 명하신 이상, 너는 더 이상 천상의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할 테니까.”

“뱀파이어 로드라 이거지…….”

로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뱀파이어 로드가 자신을 적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놈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고작 어설픈 그랜드 마스터 열 놈 정도로 로칸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창조 스킬의 개념을 파악한 유저들의 전력은 확실히 매섭겠고 보통의 그랜드 마스터라면 동급의 존재 열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겠지만, 이미 그는 그랜드 마스터의 힘과 수준을 뛰어넘고 있지 않던가?

아무래도 로칸이 저쪽에 넘어가 있는 동안의 정보가 갱신되지 않았거나 뱀파이어의 신쯤 되는 작자가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고 로칸을 잡으라는 신탁 따위만 내린 것이 분명했다.

‘광풍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쪽인가?’

피식.

로칸이 미소를 짓자 샤로크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자신을 얕봤거나,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그럼 누가 뿌리 뽑히는지 한번 볼까?”

이 정도면 정보 수집은 충분하다.

일단은 뱀파이어 로드.

그 이름을 마음속 살생부에 적어 두며 로칸이 배틀 액스를 쳐들고 자신의 진짜 힘을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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