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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화.화이트 드래곤 (1) (383/500)

 # 383

화이트 드래곤 (1)

‘얼치기도 400레벨만 찍으면 해볼 만해.’

로칸의 판단은 냉정했다.

설령 일반 클래스라 하더라도 400레벨만 찍는다면 사도니 나발이니 하는 것들과 충분히 비벼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사도 역시 400레벨을 달성했을 경우, 전투가 쉽게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못 이길 수준은 아니다.

창조 스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도라는 놈들을 때려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려면 몇 개쯤 거창한 위업을 달성하고 능력치와 공격력 등의 보너스를 얻어야 할 테고, 만약 사도 역시 위업을 다수 달성한 상태라면 쉽지 않겠지만, 아예 최상위권이던 놈들이 사도가 되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거창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나한테는 안 돼.’

설령 그렇다 한들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때문에 로칸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 나서서 그들을 견제하는 것도 나중을 위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차라리 그럴 바에야 그들이 400레벨을 달성하기 전, 자신이 450레벨을 달성하는 편이 나았다.

마제스티 마스터만 된다면, 사도고 나발이고 떼로 몰려온 들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룬 북, 사용.”

그렇게 소란을 뒤로하고 로칸이 다시 길을 떠났다.

미국이나 러시아 놈들이 미친 짓을 하는 것을 경계해 한국 대표 길드장들에게 친구 추가를 걸어 두었으니 정말 급한 일이 있다면 자신을 부를 것이다.

어차피 거점 몇 개쯤은 날려 먹어도 큰 타격이 없는 로칸이었으니 대응이 조금 늦는 정도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자유도시.

타이탄을 몰살시켜 레벨 업을 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다른 사냥감을 물색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만만한 건 나가족이었는데…….”

일단 로칸은 근처에 거점을 두고 있는 종족들부터 훑었다. 타이탄을 비롯해 나가, 조인족 등 익숙한 얼굴들도 있지만 그조차도 한번 보지 못한 생소한 종족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것은 역시 나가족.

타이틀 만독불침의 효과 덕에 나가족의 가장 큰 무기인 독을 무력화할 수 있으니 사냥감으로는 놈들이 제격이었지만 너무 늦게 찾았다.

나가족 대다수의 레벨이 400레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400레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450레벨급은 없었다. 사냥을 해 봐야 약간의 경험치를 먹는 게 고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놈들을 사냥하는 것이 좋을까. 어디 경험치 많이 주고 쪽수도 많은 놈들이 없을까?

종족 리스트를 쭉 훑던 로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오호, 이건?”

정확히는 리스트 밖이었다. 종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개체가 살고 있어 기타로 분류되어 있는 이름을 발견했다.

“화이트 드래곤이라…….”

드래곤. 홀로 오롯이 왕이 된 일자왕의 이름이었다.

가오칸과의 협공으로, 또 한 번은 그의 휘하 병력들의 도움으로 사냥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무려 두 번이나 사냥했던 종족이기도 했다.

그런 놈이 이 근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저기인가 보군.”

고개를 들어 살피니 욕망의 나침반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놈의 서식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근처가 꽤 황량한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얼어붙을 정도는 아님에도 아예 눈으로 뒤덮인 산이 하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필시 빙결의 힘을 타고난 화이트 드래곤의 거처일 터였다.

“잡을 수 있을까?”

놈에 대한 추가 정보를 읽어 내린 로칸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이트 드래곤과 자신을 비교했다.

화이트 드래곤의 레벨은 무려 457. 마제스티 마스터의 권능을 얻고 반신의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간 로칸이 450레벨의 존재들을 몇이나 때려잡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해볼 만하다 여길 수도 있으나 상대는 드래곤이다.

통상 드래곤은 레벨보다 한 끗 위의 등급으로 전투력을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최소 마제스티 마스터급의 힘은 지니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사자왕 가오칸과 함께 사냥했던 그린 드래곤 사말리안의 레벨이 463이긴 했지만 놈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잠들어 있을 때 치명적인 일격을 입히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마제스티 마스터 이상의 힘을 보유했던 가오칸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물론 로칸이 그때의 그보다 약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지금 로칸은 철저히 혼자였다.

마족 병력, 정령들의 도움 등 써먹을 수 있는 요소들은 제법 많았지만 거리상의 문제로 그 또한 여의치가 않았다.

만약 정말 사냥을 하고자 한다면 단신으로 드래곤의 가디언을 뚫고 레어를 공략한 뒤, 화이트 드래곤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뜻이다.

“재미있겠네.”

실패하면 드래곤을 분노케 한 죗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로칸에게는 드래곤 슬레이어의 타이틀과 더불어 대적자라는 사기 효과가 있지 않던가?

시간을 갖고, 타이탄에게 돌려놓았던 그것을 드래곤으로 설정해 둔다면 드래곤의 비늘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을 터였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결정을 마친 로칸은 즉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항상 혼자서도 전쟁을 치를 수 있을 만큼 철저한 소모품 관리와 정비를 해 두는 로칸이지만 홀로 드래곤을 사냥하는데 그 정도로 충분할 리 없었다.

특수한 효과를 지닌 아이템들을 긁어모으고, 최상급의 포션과 성수 등 소모품을 채워 놓고,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 인근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보내자 며칠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흠, 다녀와야겠군.”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되었다.

드래곤 사냥을 나서기에 앞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필요가 있었다.

바로 유명계의 왕들과 약속한 경매였다.

한 차례 유찰을 한 덕분에 잔뜩 독이 올라 있을 그들을 상대하는 건 로칸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한 번 더 그들을 기다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만약 드래곤 사냥에 실패할 경우, 일단 유명계로 도피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구슬과 힘의 정수를 바친다면 그들 중 누구라도 자신을 반겨 맞이하겠지.

화이트 드래곤이 유명계로 날아와 깽판을 부릴지도 모르지만 영혼들을 거두어 가지는 않을 테니 잠시 소나기만 피하면 그만일 터이다.

때문에 로칸은 이번에도 고의로 경매를 유찰시켰다.

“또 유찰이라니!”

“네놈, 우리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이냐?”

그러자 역시 대번에 호통이 날아왔다.

경매를 하겠다고 유명계의 왕들을 불러 놓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경매를 취소시켜 버리니 그들로서도 열불이 나지 않겠나?

더욱이 이번 경매에서 꼭 승리하기 위해 지난 보름간 꽤 많은 고민과 수집을 해 온 그들인데 말이다.

“진정하십시오. 조건이 바뀌었지 않습니까?”

“크흠…….”

하지만 그들도 마냥 강짜를 부릴 수는 없었다.

지난번 조건과 다르게, 로칸이 힘의 정수까지 대량으로 내놓은 것이다.

유명계의 존재들에게 영혼의 구슬은 힘의 정수와 비슷한 효과를 지녔다지만 어쨌든 물량이 압도적으로 늘었으니 대가도 느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들을 넘기겠다는데, 마냥 화만 냈다가 로칸이 수틀려서 그와 적대적인 이에게 그것들을 넘겨 버리면 낭패였다.

이것은 격을 상승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유의미한 신성의 강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다. 그럼 다음 경매는 언제지?”

“보름. 보름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때는 다른 것을 추가하지도, 추가로 받지도 않도록 하죠. 물론 오늘 제시하신 보상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알겠다.”

그렇게 그들의 경매는 2회 유찰로 이어졌다.

‘그 전에 마제스티 마스터를 찍는다.’

그것이 가능한 데는 사실 그들이 로칸을 얕보고 있음이 주효했다.

마제스티 마스터이자 유명계의 왕인 자신들과의 약속을 설마 지키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로칸은 여차하면 그것을 파기할 생각이었다.

만약 보름 안에 자신이 마제스티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혹은 그에 가까운 레벨을 갖추게 된다면 오히려 자신이 사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겠나?

어차피 유명계의 왕들은 자신들의 구역을 함부로 벗어나기 힘들 테고, 한둘쯤 빠져나온다 한들 도망치거나 맞붙으면 그만이었다.

신성의 활용에서는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그 안에 신성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유명계를 다시 빠져나온 로칸은 즉시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드래곤 사냥이라니, 피가 끓어오르는걸?”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인근의 자유도시들을 돌며 모집한 용병들을 잔뜩 대동한 채였다.

상대가 마제스티 마스터급의 화이트 드래곤이라는 소리에 꼬리를 말고 도망친 놈들도 많았지만 로칸의 드래곤 슬레이어 타이틀 때문인지 흥미를 보이며 찾아온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그 숫자가 무려 5백.

이 정도 숫자로는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 인근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1백 분의 1도 되지 않겠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400레벨 이상인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꽤 유의미한 일이었다.

“광풍도 했다, 우리도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타이탄 일족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을 광풍의 사도로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타이탄들을 호감도와 평판으로 꼬셔서 데려온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다.

그 힘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진짜였으니까.

만약 드래곤의 레벨이 마제스티 마스터급이 아니라 카르파고급 정도만 되었어도 이들만으로 끝장을 볼 생각까지 할 만큼.

“가자.”

그렇게 로칸이 자신 있게 걸음을 옮겼다.

***

드래곤 레어의 주변은 흔히 천연의 요새로 불린다.

드래곤의 마력에 이끌려, 혹은 놈의 지배력에 잠식당한 몬스터들이 장벽처럼 둘러진 까닭에 어지간한 자들은 길을 뚫어 내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죽어라!”

“순 잔챙이들뿐이구나! 나 호그롭을 상대할 자 누구냐!”

하지만 로칸이 이끄는 정예 부대에게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400레벨의 몬스터들이 다수 포진해 있음에도 최소 430레벨의 강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두들겨 패니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마을이 불타고 몬스터들은 피 떡이 되어 흩뿌려졌다.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놈들이지만 지금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드래곤의 마력에 지배당하고 있다 해도 생존에 대한 욕구가 지배력을 뛰어넘은 것이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도망치는 놈들을 봐주는 것도 아니었다.

로칸이 이곳을 공략하고 화이트 드래곤을 사냥하려는 것은 순전히 레벨 업을 위한 것이니까.

오히려 로칸이 앞장서서 도망치는 몬스터들까지 도륙했다.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로 직진하는 대신, 빙 원을 그리듯 돌며 몬스터의 장막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그것에 분노한 화이트 드래곤이 레어 밖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솔직히 그래 주면 땡큐였다. 가디언들을 거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렇게 스킬마저 아끼지 않고 펑펑 쏟아 가며 빠르게 레벨을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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