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
랭킹전 - 예선 (2)
첫 번째 미션은 가장 빠른 이들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 ‘빠름’이 단순한 이동속도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도적 계열 유저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까.
반대로 주문 사용자들은 어지간해서는 순위에 들기 어려울 것이기도 했기에 이것은 누가 봐도 복합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상대를 방해하고, 제압하는 능력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떠난 방향에서 벌써 폭음이 들려오고 비명이 들려왔지만 로칸은 개의치 않았다.
로칸이 생각하는 ‘빠름’이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꽤 달랐기 때문이다.
“물품 목록.”
그들이 초기에 위치된 공간은 작은 마을이었다.
그렇다면 상점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로칸은 그중 잡화점에 들러 판매 물품 목록을 확인했다.
[힘의 비약 : 10골드]
[민첩의 비약 : 10골드]
[체력의 비약 : 10골드]
[만능 해독제 : 5골드]
[벌레 기피제 : 3골드]
[최상급 체력 포션 : 20골드]
[최상급 마나 포션 : 20골드]
[지도 : 50골드]
“개발사 놈들, 돈독이 올랐구먼.”
재미있게도 시스템이 금지했던 포션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알림 창의 속임수였다. 그것은 분명 ‘기존에 가지고 있던’ 포션과 날개, 탈것의 사용을 금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는 건 미션을 수행하는 도중에 획득한 포션 등은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일괄 구입.”
로칸은 그것들을 고루 구입했다.
시가보다 훨씬 비싼 것들이고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돈이야 썩어날 만큼 차고 넘치니 걱정 없는 것이다.
“역시나로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지도다. 기대감을 품고 열어젖힌 지도에는 목적지까지 자리하고 있는 지형과 몬스터, 장애물 따위가 소상히 적혀 있었다.
더불어 직선처럼 보이는 대로가 실제로는 꽤 많이 돌아서 가는 길이라는 사실도.
“그럼 슬슬 출발해 보실까?”
그것을 확인한 로칸이 비로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늦게 마을을 벗어나 유저들이 달려간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자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발이 빠른 사람? 빠른 탈것을 가진 사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가는 ‘길’이 같다면 말이다.
‘지름길을 잘 아는 놈이 장땡이지.’
그런 의미에서 로칸의 생각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길을 잘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빠른 자가 아닐까?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났을 때, 빠르게 빙 둘러가는 사람이 빠를까, 얕은 곳을 찾아 건너는 사람이 빠를까? 그도 아니면 나룻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배를 타고 건너는 사람은?
그렇기에 로칸은 자신을 가로막는 강을 향해 홀연히 몸을 던졌다.
찰박.
풍덩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큰 파문이 일어야 할 강에 아주 조용한 출렁임만 생겨났다.
배틀 액스가 들려 있어야 할 로칸의 손에는 다른 유저들이 본 적 없는 삼지창 하나가 들려 있을 뿐이었다.
해신의 트라이던트.
콰아아아.
물을 조종할 수 있는 권능이 깃든 그 무기를 가볍게 휘두르자 로칸의 발밑으로 서핑 보드 같은 물의 발판이 생겨났다.
해일처럼 일어난 파도가 그와 발판을 함께 떠밀었다.
“재밌는데?”
다른 유저들이 뭐 빠지게 뛰고, 또 박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로칸은 혼자 장르를 달리해 레포츠를 즐기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하면서.
물을 조종하는 그의 권능은 탈것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
“헉, 헉, 헉.”
고작 첫 번째 미션이건만 유저들은 그야말로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저 달리기만 할 뿐이었다면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또 포션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 것이다.
랭킹전이라는 것이 결국 최종적으로 일대일 승부를 상정한 것이기에 전문 사제 클래스는 극히 드물었지만 조금이라도 회복 능력을 갖춘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물밑 작업이 이루어졌고, 빠르게 힐러를 확보한 파벌을 중심으로 유저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줄을 지어 달리던 이들이 뿔뿔이 산개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빌어먹을 자식들.”
어디 그뿐인가? 유저 사냥꾼들을 피해 목적지로 향하는 것 역시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저 필드만 있을 뿐이 아니라 몬스터까지 구현해 놓은 탓에 사냥을 하거나, 도주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이들을 미끼로 던지고 회피하는 일을 몇 번, 몇 수십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선착순이 아니라 그 전에 참여자가 5백 명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치열하고 필사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도적 계열 클래스를 메인 직업으로 삼은 히리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신과 덫, 연막 같은 도적 계열 스킬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가 마침내 모두를 따돌리고 선두로 목적지에 도달했다.
자신이 확인한 것이 맞다면, 그보다 앞서 나간 이가 없으니 첫 번째로 이곳에 도착한 것이 분명할 터였다.
“특전이고 뭐고 얼른 좀 쉬고 싶다.”
때문에 첫 번째로 들어온 특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품었지만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1등이든 500등이든 이제 안전지대로 들어가 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선착순 5백 명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당신의 현재 그룹 순위 : 2위]
[지급 포인트를 확인합니다. 1위와의 시간 차이가 너무 큽니다. 추가 포인트를 지급받을 수 없습니다.]
“……뭐?”
허나, 목적지인 마을에 도착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2위라고? 그렇다면 자신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것도 추가 포인트를 받을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났다고 한다.
얼떨떨한 눈으로, 그리고 오기와 은근한 분노가 서린 눈으로 마을 안을 훑었다.
대체 누가 감히 자신을 따돌리고 먼저 도착을 한 것일까 눈에 담아 둘 요량으로 찾아 나섰다.
“헉.”
그리고 그 범인을 발견한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눈을 내리 깔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차이로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달한 이는 다름 아닌 로칸이었다.
***
“미친!”
“로칸이 1위라고? 그것도 압도적으로?”
“말도 안 돼. 내 앞으로 지나가는 걸 보지도 못했다고!”
“이거 주최 측의 농간 아니야?”
잠시 후, 하나둘씩 목적지에 도달하기 시작한 유저들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로칸을 보고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 그 누구도 로칸의 터럭 한 올 본 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로칸은 그들이 모두 출발할 때까지도 마을에 머무르고 있지 않았나?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제작사를 욕하는 이들까지 생겨났지만 그렇다고 로칸에게 다가가 물어보거나 직접 따질 배짱이 있는 놈들은 없었다.
그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냥 뛰어도 이겼겠지만……. 굳이 귀찮은 짓을 무릅쓸 이유는 없지.’
사실 똑같이 경쟁을 했다 해도 로칸이 500위 안에 들지 못할 일은 없었다.
그는 400레벨, 그랜드 마스터였으니까.
단순히 능력치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가진 여러 직업의 이동 스킬들만 난사하듯 사용해도 그들보다 빠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잔챙이들을 상대로 사서 귀찮아지는 일에는 취미가 없기에 다이렉트로 목적지에 도달했을 뿐이다.
‘슬슬 다 와 가는 건가?’
[현재 인원 : 477명]
[현재 인원 : 483명]
[현재 인원 : 491명]
이미 마을 탐방을 끝내고 광장 분수대에 누워 현황판을 살피던 로칸이 몸을 일으켰다.
휴식 시간을 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즉시 미션 2가 진행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으니까.
[현재 인원 : 500명]
[선착순 5백 명 달성. 미션 1이 종료되었습니다. 500위 안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현재의 거리를 계산하여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랭킹이 자동으로 정해지며 정해진 랭킹은 차후 개별적인 랭킹전을 통해 더 높아지거나 떨어질 수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5백 명의 인원이 모두 차는 순간, 미션이 종료되었다.
냉정하게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이들을 원래의 장소로 돌려보내고 선착순 5백 명 안에 든 이들에게 빛을 선사했다.
[전체 회복! 모든 생명력과 마나, 상태 이상, 스킬 재사용 시간이 회복됩니다.]
“오?”
남은 참가자들을 회복시키는 따스한 빛이었다.
그렇다는 건 다음 번 미션이 전투와 관계되었다는 소리일까?
로칸을 비롯해 호전적 성격을 가진 몇몇의 눈이 번뜩였다.
[미션 2. 마을을 방어하세요. 마을 중앙에 위치한 수호 탑이 파괴되면 미션이 종료됩니다. 마을을 방어하는 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이에게 가장 많은 포인트가 돌아갑니다. 단, 미션 2가 진행되는 동안 개인당 부활은 총 3회까지 가능합니다. 완전 사망 시 사망 시점까지 모은 포인트로 랭킹을 집계합니다.]
그리고 역시나, 두 번째 미션이 곧장 시작되었다.
이렇게 되면 가장 나중에 들어온 이들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 부족해지지만 완전 회복을 해 주었으니 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또한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한 페널티라는 것인지 정신적 피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디펜스 게임?”
그 냉정한 시스템의 알림에 유저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내용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게임 모드를 떠올렸다.
디펜스 게임. 점점 난이도를 높여 가며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포인트를 쌓는 게임 모드였다.
마법 계열이 많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미션이지만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부활 가능 횟수라는 페널티가 붙어 있는 것이다.
두 번까지는 죽어도 괜찮지만 세 번 죽어 완전히 리타이어 되어 버리면 제대로 된 랭킹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서로 힘을 적당히 아껴 가며 생존을 도모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너무 눈치만 보다가 수호 탑이 박살 나 버리면 그 순간 미션이 종료되어 다 같이 망하게 되겠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은 그 정도쯤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치열한 눈치 싸움이 예상되었다.
[미션 2의 난이도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미션 2 난이도 : 이지(300레벨) / 노멀(350레벨) / 하드(370레벨) / 헬(399레벨) / 불지옥(399레벨)]
“난이도라고?”
한데 그때, 한 가지 변수가 끼어들었다.
시스템이 미션 2의 난이도 조절을 유저에게 맡긴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높은 난이도일수록 각 개체가 부여하는 포인트가 높을 것이다.
즉, 이지 난이도로 끝까지 깬다 해도 하드나 헬 난이도로 버티기만 한 이들보다 벌어들이는 포인트가 현저히 낮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리한 수 싸움과 주제 파악이 중요했다.
“노멀!”
“하드! 이건 무조건 하드야!”
“버티기만 한다면 헬도 가능하지 않을까?”
각자가 머리를 굴린 대로 마구 허공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이도 선택은 되지 않는다.
다수결이라도 하라는 것일까?
모두 변화가 없는 난이도 선택창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곧 시스템이 결정 방식을 알려왔다.
[미션 2의 난이도 선택 권한은 미션 1의 1위에게 부여됩니다.]
“헉!”
“……망했다.”
“로칸 님, 제발……!”
미션 1의 1위 달성자. 그건 바로 로칸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로칸의 생각을 예상하고 있었다.
“불지옥, 불지옥으로 하겠다.”
씨익.
생존자 5백 명 가운데 로칸만이 홀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