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
랭킹전 - 예선 (4)
“안녕? 드래곤 슬레이어는 처음이지?”
옐로우 드래곤을 마주한 로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갈 텐데 이렇게 알아서 찾아와 주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더구나 옐로우 드래곤의 속성은 땅.
땅 속성의 특징은 단단함이었다.
때문에 다른 드래곤들보다도 방어력과 생명력이 높았지만, 로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환영할 지경이다.
로칸에게는 방어력 관통 효과를 지닌 타이틀도 있었고, 생명력이 높다 한들 압도적인 대미지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드래곤을 상대로 공격력을 3배로 증폭시키는 드래곤 슬레이어 타이틀과 거기서 다시 3배나 증폭시키는 대적자 효과까지.
로칸이야말로 옐로우 드래곤의 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 모두 흙으로 돌려보내 주마!”
“응? 놈‘들’이라고?”
그런 로칸의 진심이 담긴 도발에 옐로우 드래곤이 버럭 노성을 터트렸다.
산천초목을 떨게 만드는 드래곤 피어.
하지만 로칸은 콧방귀를 뀔 뿐이다. 놈의 멘트에서 어색한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뭐야, 자유의지도 없는 놈이었나?”
옐로우 드래곤씩이나 되는 놈이 별도의 이름도 없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정말 프로그래밍된 정보가 전부인 ‘몬스터로서의 드래곤’일 뿐이라니.
실망이 컸다.
정해진 멘트를 내뱉고,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이는 ‘드래곤 인형’이라니. 왠지 김이 새는 느낌이었다.
이래서야 자신이 드래곤을 괴롭히는 기분이지 않은가?
머리는 식었지만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1차 안정화가 이루어지며 다시 되돌아온 본래의 힘을 폭발시켰다.
“광풍 현신, 피의 각성, 무혼 각성!”
미션 1이 끝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미션 2가 종료되었을 때 완전 회복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스킬을 아낄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전력을 발휘하며 옐로우 드래곤을 향해 돌진했다.
“어스퀘이크!”
옐로우 드래곤의 용언에 대지가 즉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가공할 충격파가 땅을 딛고 선 이들에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로칸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광풍을 날개를 펼친 다음이었다.
“카이!”
뀨웃!
[엘리멘탈 빅버드 카이가 폭력의 왕 로칸에게 테트라 엘리멘탈을 사용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모든 속성 공격에 면역을 가집니다.]
유니콘을 대신해 소환해 낸 카이가 로칸의 의도를 읽고 자신의 창조 스킬을 발동시켰다.
레드 드래곤과 달리 옐로우 드래곤의 속성 공격에는 강한 물리력이 섞여 있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스톤 엣지!”
그런 로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소환되었다.
“까불지 마라!”
콰앙!
올려친 것은 파멸의 일격.
작은 동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바윗덩이가 단 일격에 쪼개져 집채만 한 크기로 조각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전신의 돌격, 점멸!”
콰앙!
옐로우 드래곤이 재차 마법을 발동하기도 전에 놈의 몸이 흔들렸다.
덩치의 차이가 월등하건만, 돌진력이 월등한 탓에 옐로우 드래곤의 거체가 흔들리고 구슬픈 비명을 내질렀다.
“너무 단순하잖아?”
공격 받은 옐로우 드래곤이 홰를 치며 날아올랐다.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근접 타격을 받으면 하늘로 회피하도록 설계된 모양.
그러나 그 뜻대로 놓아 둘 로칸이 아니다.
“카이!”
뀨우우우! 콰앙!
옐로우 드래곤이 날아오르는 속도보다 카이가 붉은 유성으로 변해 떨어져 내리는 속도가 빨렸다.
대번에 머리를 얻어맞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덕분에 놈과 살을 부비고 있던 로칸까지 함께 처박혔지만 문제는 아니다.
예상하기도 했고, 생명력의 감소쯤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때문에 먼저 몸을 일으킨 것도 로칸 쪽이다.
옐로우 드래곤의 거체에 깔리는 것은 간신히 면한 로칸이 퍼뜩 일어나 놈의 목을 노렸다.
“광살!”
초극도 필요 없다. 무자비한 도끼질이 놈의 목을 가르고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드래곤 하트를 찾아내었다.
“블링……크.”
“쳇, 귀찮게 하는군.”
그러나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것일까?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이 돌연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
그래 봤자 점멸처럼 시야가 닿는 곳으로의 이동일 뿐이지만, 헤집어지고 구멍 뚫린 목젖 사이로 덜렁거리는 드래곤 하트를 잃는 것만은 면했다.
“크리트컬 운즈!”
“그레이트 힐링.”
이어 즉시 회복 주문을 사용했지만 로칸이 한발 빨랐다. 익숙하지 않은 저주 마법을 사용해 상처의 치료를 방해한 것이다.
치유의 힘이 피부를 재생시키고 살이 차오르게 만들려 했지만 저주의 힘이 상처가 벌어지고 치유 효과를 반감되게 만들었다.
덜렁거리던 드래곤 하트가 간신히 살덩이에 반쯤 파묻히는 것이 효과의 전부가 되었다.
“형 시간 없으니까 앙탈부리지 말고 빨리 끝내자!”
고작 그뿐. 설사 완전 회복되었더라도 다시 살점을 떨어 내 버리면 그만이지만 로칸은 놈이 회복되도록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멍청하게 거리를 벌리자마자 브레스를 준비하는 녀석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정면으로 몸을 날렸다.
“카이!”
뀨! 퍼억!
입가에 응축된 마나의 파장이 로칸에게 향하려는 순간, 카이의 몸통 박치기가 놈의 뺨을 때렸다.
드래곤이 최강의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카이 역시 400레벨이나 되는 동급의 강자였다. 더구나 전설을 타는 자의 효과로 진화까지 이룬 상태.
대붕의 크기는 드래곤에 필적했고 옐로우 드래곤이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입에 머금은 마나를 아무렇게나 사방으로 쏘아 내면서 말이다.
“멍청하면 맞아야지.”
푸확!
그런 놈의 곁으로 로칸이 어쌔신처럼 다가가 장작을 패듯 거칠게 드래곤 하트를 내리찍고 놈의 피로 몸을 적셨다.
“슬롯이 아쉽군.”
심장을 먹는 아귀의 남은 슬롯이 없는 것이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어찌 생각하면 놈의 드래곤 하트는 흡수하는 게 오히려 손해다.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마제스티 마스터도 아니고 고작 그랜드 마스터 따위에게 쓰는 건 좀 찝찝하지 않은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드래곤 하트를 산산이 부수어놓았다.
[미션 2가 종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냥한 몬스터의 포인트가 정산됩니다. 3회 이상 사망했을 경우 랭킹이 자동으로 정해지며 정해진 랭킹은 차후 개별적인 랭킹전을 통해 더 높아지거나 떨어질 수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완전 침묵. 옐로우 드래곤의 사망과 함께 미션 2가 조기 종료되었다.
각자의 활약에 따라 정확히 표기되지는 않지만 포인트가 정산되고 현재 순위가 나타났다.
[현재 그룹 랭킹 : 1위]
당연하게도 로칸의 순위는 그룹 1위였다. 약 1천 명가량으로 시작했던 그룹 내에서의 랭킹일 뿐이지만 이 순위가 어딘가에 쓰이게 되겠지.
하다못해 대진표를 짤 때 시드 배정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파앗.
다시 시야가 전환되며 모두가 어떤 장소로 텔레포트되었다.
[미션 3이 준비 중에 있습니다. 다른 그룹이 미션 2를 종료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십시오.]
[전체 회복! 모든 생명력과 마나, 상태 이상, 스킬 재사용 시간이 회복됩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가장 먼저 클리어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칸과 같은 방식으로 아예 보스를 요격하여 쓰러뜨리지 않는 이상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것을 차례로 막아야 했으니 걸리는 시간은 대개 비슷할 터였다.
그렇다면 다른 그룹들은 어떤 상황일까? 어떤 난이도를 선택했고 어떤 활약을 보이고 있을까?
궁금해진 몇몇이 메시지 기능이나 편지 기능 등을 사용해 바깥에 있을 지인, 길드원들에게 확인하려 했으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모든 기능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다른 그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다른 팀이 있잖아?”
“뭐지? 마지막 미션은 다 같이 하는 건가?”
한두 그룹이 아니었다. 여러 그룹이 시간 차를 두고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꽤 많은 그룹이 나타났음에도 시스템은 다음 미션을 내놓지 않았다.
‘전부 모이면 시작할 참인가.’
로칸은 그동안 어떤 국가의 수도처럼 보이는 대도시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번에는 마땅한 정보나 특이사항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그곳이 자신도 방문해 본 적 없는 도시라는 것 정도를 알았을까.
그렇게 한참을 더 기다리자 마지막 팀이 전송되었다.
마지막 미션이 시작되었다.
[미션 3. 제한 시간 이내에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세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퀘스트를 통해 공헌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공헌도는 전투에 유리한 버프, 또는 지위와 교환할 수 있습니다. 사냥의 경우 몬스터를 사냥해 획득할 수 있는 사냥의 증표를 공헌도와 교환하는 방식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미션 3 종료 예정 시간 : 12시간]
[11 : 59 : 59]
마지막 미션은 공헌도 쌓기 미션이었다.
사냥을 하든, 퀘스트를 수행하든 공헌도를 쌓아 병사, 정예병, 기사, 기사단장 등의 지위를 구입하고 그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또 개인전이야? 젠장!”
“뭐 해? 뛰어!”
그 알림이 나타나자마자 첫 번째 미션 때처럼 대부분의 인원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 더 많은 공헌도를 획득할 것이 아닌가?
퀘스트를 통해서도 공헌도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아주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가 아니면 닥사가 훨씬 많은 공헌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흐음…….’
그러나 이번에도 로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미션이 요구하는 바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정말 사냥 능력을 시험하는 종류일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마구잡이로 사냥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그것을 아는 듯, 일부는 즉석에서 파티를 구성해 단체 사냥에 나섰고 또 일부는 로칸과 같이 잡화점으로 이동했다.
“물품 구입.”
지도를 구입하고, 정보를 구입했다.
몬스터들이 똑같은 수량의 사냥의 증표를 줄 리 없지 않은가? 어디에 더 강한 놈이 있는지, 사냥하기 쉬운 놈이 있는지부터 먼저 살폈다.
시간은 아직 12시간이나 남아 있으니까.
로칸이 첫 번째 미션에서 가장 늦게 출발하고 가장 먼저 도착한 사실을 아는 몇몇이 로칸을 따라 움직여 몬스터들의 종류와 서식지가 표시된 지도를 따라 구입했고 흩어졌다.
아무리 정보를 쥐고 있더라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뭔가 더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때까지도 로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아니면 사냥이 거의 불가능한 몬스터들의 위치를 알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게이머의 촉이 그를 자극하는 것이다.
뭔가 있다. 이 미션의 판을 뒤집을 무언가가.
“가만?”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며 로칸을 감시하던 이들마저 모두 떠나갔을 때, 마침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이 맑아졌다.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바로 왕성.
시스템은 제한 시간 내에 가장 높은 지위를 획득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이 이름 모를 왕국에서 가장 높은 이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