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3화.랭킹전 - 예선 (5) (393/500)

 # 393

랭킹전 - 예선 (5)

[미션 3가 종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획득한 지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집니다. 지위를 획득하지 않았거나 같은 지위를 획득했을 경우, 획득한 공헌도나 사냥의 증표의 수에 따라 순위가 가려집니다. 이 경우 동점자가 발생 할 수 있습니다.]

[상위 1,000위까지만 본 랭킹전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채점 중입니다.]

“……뭐? 벌써?”

“미친. 아직 마지막 미션이 시작된 지 1시간도 안 지났다고!”

“이거 버그 아니야? 12시간이라며! 나 아직 지위도 못 얻었다고!”

갑작스러운 공지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12시간 안에 가장 높은 지위를 얻으라더니 이게 대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애초에 12시간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트릭이었나? 대체 왜 그런 짓을?

모두가 어이없어 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의견을 제시했다.

“가만, 좀 전에 도시 쪽에서 폭발음이 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만……. 뭐지? 혹시 누가 도시에서 깽판을 부려서 NPC들이 방문자 전체를 배척하기라도 한 건가?”

그 가설은 반절만 맞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깽판을 부린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스케일이 훨씬 엄청났다.

왕의 시해.

그리하여 스스로 왕의 지위에 오른 자가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로칸이다.

공헌도를 바치며 왕에게 지위를 내려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왕을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에 올라 버렸으니 그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을 방법이 있겠나?

때문에 시스템이 더 이상의 미션 수행이 의미 없다 판단하고 조기에 미션을 종료시켜 버린 것이었다.

유저들은 황당하지만 따지고 보면 합당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아는 것은 오직 로칸뿐이었다.

마을 밖으로 사냥을 나선 유저들을 따라붙느라 로칸의 움직임을 놓친 카메라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담았을 뿐이다.

방청객들과 게임 바깥에서 구경하던 시청자들은 할 말을 잃었고, 게임사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가 엉망이 되는 것을 보며 좌절했다.

이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웃는 것은 로칸밖에 없었다.

[랭킹전 ? 예선. 최종 결과가 발표됩니다.]

[현재 종합 랭킹 : 1위]

[예선 결과는 본 랭킹전의 대진표에 영향을 줍니다.]

[종합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는 시드 배정을 받아 2일 차부터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세 가지 미션 수행으로 치러진 예선전의 결과는 역시 대진표를 짜는 데 활용되었다.

랭킹 1위인 로칸은 시드 배정을 받고 부전승으로 중간부터 일대일 대전을 치를 수 있었다.

어차피 싸워 봤자 결과는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을 아낄 수 있다니 나쁜 보상은 아니다.

파앗.

그렇게 생각할 때쯤 예선이 끝나고 다시 처음의 필드로 전송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콜로세움을 가득 둘러싼 방청객들의 함성이 로칸을 반겼다.

다른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려 받은 순위를 붙잡고 부들거리는 중이었지만.

“토너먼트는 내일부터다 이거지?”

뒤늦게 이 모든 혼란이 로칸에게서 비롯되었음을 파악한 몇몇이 그를 쏘아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토끼 몇 마리가 노려본다고 사자가 겁을 먹을쏘냐.

‘억울하면 덤비든가.’

로칸은 당당히 허리를 펴고 콜로세움을 벗어났다.

‘물론 그 전에 토너먼트에서 이기고 올라와야겠지만 말이야.’

불만이 있는 놈이 있을지 몰라도 따라붙을 수 있는 놈조차 없었다. 10위권에 들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치열한 토너먼트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재밌게 됐군.’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2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로칸의 그룹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어차피 마지막 미션은 다 같이 ‘나가리 판’이 되었고, 첫 번째 미션에서 추가 포인트를 얻지 못했지만 두 번째 미션에서 획득한 포인트가 아슬아슬하게 그들이 더 높았다.

듣자하니 다른 그룹들은 대부분 하드 난이도를 골랐거나 아주 소수가 헬 난이도를 골랐다고.

그나마도 헬 난이도를 선택해 놓고 전멸한 그룹도 있었고, 어떻게든 버텨 낸 자들도 중간부터는 수호 탑 방어에만 올 인 하며 시간을 끈 덕분에 마지막 미션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짧은 시간, 단 한 번의 웨이브뿐이었지만 무려 불지옥 난이도를 통과한 로칸의 그룹에서 포인트를 몰아 받은 것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지옥 난이도의 몬스터를 제대로 사냥하고 치명상을 입혀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아득바득 올라와 보라고.’

망연자실하거나 분노에 휩싸인 ‘사도’들을 보며 로칸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누구든 냅다 달려가 후려치면 죽어 나자빠질 것 같긴 하지만 이참에 사도들의 능력을 감상해 볼 요량이었다.

사도의 힘이 특별하긴 하지만 정보가 노출된 뒤에도 마냥 우위에 설 수 있을까? 꼭 로칸 자신이 아니라도 파훼하는 자는 분명 나올 터였다.

마치 시험 감독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접속을 해제하고, 소파에 누워 토너먼트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

인원이 인원인 만큼 동시다발적으로 경기가 치러졌다. 방청객과 시청자는 각자가 원하는 대결을 선택해서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는데 대결 상대의 이름값에 따라 해설이 붙기도, 끝났는지도 모르게 치러지기도 했다.

로칸의 관심사는 당연히 제한적이었다.

사도와 각 국가의 대표 선수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흥미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초반에 로칸에게 덤볐다가 쥐어 터지고 모습을 감추었던 체리셰프가 등장해 흥미를 끌긴 했지만 곧 사도 중 하나에게 탈탈 털렸고, 그다음부터는 뻔한 싸움이 계속된 까닭이다.

예상은 했지만 사도들이, 각국이 대표 유저들이 저마다 감추고 쌓아 온 실력을 내보이며 자신을 드높였다.

“하암, 별거 없구먼.”

모두 로칸에게는 별 볼 일 없게 느껴지긴 했지만.

물론 결승은커녕 32강도 못되는 예산 같은 전투이니 저것이 저들의 모든 실력이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각자가 감추어 둔 비장의 한 수쯤은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계속 보고 있는다고 그것들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시간 낭비.

위기감 따위는 1그램도 들지 않지만 굳이 볼 만한 그림은 어차피 영상 클립으로 제작되어 떠돌 것이 분명했기에, 로칸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더 로드에 접속했다.

한창 소란스러운 경기장을 등지고 천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건 블루와 골드뿐인가?”

드래곤 킬러 퀘스트를 완성시킬, 또한 자신의 레벨을 올려 줄 두 드래곤의 행방을 쫓았다.

하지만 영 쉽지가 않았다.

블루 드래곤은 물을 관장하는 드래곤답게 해저에 똬리를 틀고 있었고, 골드 드래곤은 딱히 서식지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쉽지 않네. 확 그냥 뱀파이어 로드 성으로 쳐들어가 버릴까?”

더구나 아직 몸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기에 드래곤 브레스라도 맞았다간 어떻게 될지 몰랐다.

테트라 엘리멘탈로 커버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드래곤 킬러 퀘스트는 미뤄 두고 뱀파이어들에게 복수전이나 하면 레벨을 올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무리다. 전쟁을 벌이기에는 상황도 좋지 못했지만 시간도 부족했다.

당장 내일부터는 로칸도 랭킹전에 참여해야 하지 않던가?

그가 랭킹전에 참여하는 동안 뱀파이어 놈들이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1레벨 상승이라는 혜택이 걸린 랭킹전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랭킹 1위라는 타이틀이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보상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역시 전문가를 찾아야 하나.”

혼자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블루 드래곤을 쉽게 사냥할 방법이, 또 골드 드래곤이 살 만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로칸은 오랜만에 가오칸을 찾았다.

이미 일곱 종류 드래곤을 모두 사냥하고 드래곤 킬러 퀘스트를 완수한 그라면 뭔가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물음을 던졌다?

“블루 드래곤? 그거 까다롭지. 물뿐만 아니라 번개도 꽤나 잘 다루거든. 물로 얻어맞고 전기로 지져지면…… 어우,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네. 아, 공략법이라고 했었지? 흠, 글쎄. 딱히 있을까? 굳이 이야기해 주자면 물에서 끌어내라는 정도? 아니면 어린놈을 잡든가.”

“흠.”

하지만 대답이 영 신통치가 않다.

드래곤 사냥에 있어 그가 전문가이긴 해도 드래곤이라는 족속 자체가 약점이 없는 종족이다 보니 유의미한 답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골드 드래곤이라면 보통 지맥이 강한 곳에 살지. 정확히는 마나 응집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 때문에 옐로우 드래곤과 혼동되기 쉬운데 싸워 보면 전혀 달라. 딱히 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나 그 자체인 놈이다 보니 박 터지게 싸우는 수밖에 없지.”

골드 드래곤에 대한 정보 또한 마찬가지. 지맥 혹은 마나 응집점이라는 약간의 힌트는 얻었지만 위치가 오리무중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좋아 보이시네요.”

“나? 하하. 그럭저럭 성과를 보고 있지. 너도 빨리 올라와. 자칫하면 네가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르기 전에 내가 ‘신’이 되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만약 곧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르면……. 좀 살살 봐주고, 흐흐흐흐!”

끝까지 농을 던지는 가오칸을 뒤로하고 로칸은 다시 천상을 돌았다.

블루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와 힌트를 마구 수집해 대기 시작했다.

블루 드래곤의 경우 한 놈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지만 가오칸의 말처럼 혹시 더 상대하기 쉬운 놈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는 사이 하루가 지나 다음 날이 되었다.

“제길, 아슬아슬하군.”

[육체 안정화 : 12시간 25분]

아쉽게도 육체 안정화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반면 어제의 토너먼트로 이제 생존자가 자신을 포함해 예순네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오늘 경기 전까지 안정화되긴 글렀다.

물론 불과 얼음의 노래까지도 필요 없는 잔챙이들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준결승쯤부터는 쓸 수 있으려나.”

굳이 다 보여 주고 싶은 생각도 없긴 하지만 잘하면 내일은 재미난 연출을 보여 줄 수도 있겠다.

내일은 딱 준결승과 결승전만 치러지니까.

시간상 오늘 안에 다 끝낼 수도 있지만 개발사 측에서도 빼먹을 게 좀 필요하다 보니 하루를 더 끈 것이다.

“귀찮은데 그냥 몽땅 몰아넣고 몇 놈만 남기라고 하면 좋겠군. 아니면 일대다로 싸워도 좋을 텐데.”

유명계와의 경매 기일이 다가오다 보니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최대한 빨리 상대를 쓰러뜨리는 수밖에.

얼른 끝내 버리고 드래곤이든 다른 몬스터 무리든 사냥하러 가고 싶어 근질거리는 몸을 꾹 눌러 참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5초 후에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5, 4, 3, 2, 1.]

파앗.

“우와아아아아아아!”

로칸의 등장과 함께 거대한 함성이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바닥과 벽은 특별히 게임사에서 준비된 파괴 불가 옵션의 오브젝트들로 채워졌고 혹시나 전투의 여파가 관중석을 들이닥칠까 그 또한 게임사에서 마련한 특수 실드로 돔처럼 둘러 보호하고 있었다.

달리 생각하자면 그만큼 유저의 활동 반경이 줄어드는 셈이기도 했지만 무한정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흐음.”

로칸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영혼 기사 도혼][Lv 381]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상대의 별칭과 이름이 저절로 떠올랐다. 관객들을 위해 참가자가 설정해 놓은 정보가 알아서 보여지는 것이다.

로칸의 정보 역시도 비슷하게 보이고 있겠지. 레벨은 비공개로 설정해 놓은 탓에 나타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381레벨. 나쁘지 않군.’

그것을 보며 로칸이 제법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5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두 선수 모두 준비해 주세요. 5, 4, 3, 2, 1! 파이트!”

“유체화!”

하지만 그뿐이다. 보아하니 사도도 아닌 것 같은데 감히 어디서 비벼 보려고?

상대가 시작과 동시에 스킬을 발동하며 무형의 존재로 변신했다. 유령처럼 일반 공격 따위는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특성을 이용해 로칸을 공격해 왔다.

공격의 순간에만 실체화하여 피해를 주겠다는 작전이다.

만약 미리 무기에 성수를 부어 두거나 속성 인챈트 마법을 걸어 두지 않았다면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조건.

그러나 로칸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팔짱을 낀 채로 입술만 달싹거렸다.

“나이트메어.”

히이이잉!

“영혼의 일겨……. 컥!”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으니까.

나이트메어가 소환됨과 동시에 뒷발을 내뻗어 도혼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콰앙! 털썩.

유체화? 그딴 것은 통하지 않는다. 여기 악몽과 환상의 대악마가 있을지니.

영체와 영체가 부딪치는가 싶더니 도혼이 몸이 부서지지 않는 벽에 부딪혀 엉망으로 쓰러졌다.

녀석에게 나이트메어가 거친 투레질을 하며 다가갔다.

“커, 컥? 스, 스킬이……!”

나이트메어가 보랏빛의 요사스러운 눈빛을 띄자 도혼이 가진 영혼 스킬이 봉인되었다.

보다 상위의 격을 지닌 존재의 힘이기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64강 첫 번째 경기는 로칸의, 아니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마의 승리로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