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
마제스티 마스터 (2)
쩌저저저저적!
드래곤 하트가 산산이 깨어지며 막대한 신성이 로칸에게 흘러들어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좋았어.”
드래곤이라는 종족 자체가 품고 있는 경험치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부족했던 레벨을 생각할 때 레드 드래곤을 사냥한 이후 간간히 사냥을 하고, 랭킹전 미션을 수행하며 홀로 몬스터 웨이브를 독식한 경험치가 제법 되었던 모양이다.
경험치 바가 간신히 마지막을 가리키며 레벨이 하나 상승했다.
446레벨. 이제 2레벨만 더 올리면 레벨 상승의 비약을 사용해 마제스티 마스터 승급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칸에게는 아직 골드 드래곤과 영혼의 구슬, 힘의 정수가 남아 있었다.
푸확!
내부에서부터 파괴되어 기울어진 블루 드래곤의 몸을 로칸이 뚫고 밖으로 나왔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어 도끼로 굴을 파듯 여러 번 두들겨 헤치고 나와야 했지만 힘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밖으로 나왔을 때, 자신을 대신해 복수를 해 준 로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기다리던 인물이 말을 걸었다.
“인간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가족과 일족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끙차, 별말씀을…….”
블루 드래곤의 시체에서 완전히 몸을 빼내던 로칸의 몸이 그를 보고 흠칫 굳어 버렸다.
드래곤도 반할 만큼 너무 아름다워서?
아니, 그 반대다.
[하이 오크 워리어 라벨][Lv 408]
‘오크잖아? 그것도 수컷의!’
하이 오크라는 종족명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외형이 일반 오크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팔다리가 조금 더 길고 우락부락한 근육 대신 잔근육이 빽빽할 뿐이니 기본적으로 누가 봐도 오크라는 외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 얼굴도 마찬가지. 오크들의 세계에서는, 몬스터의 세계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인 로칸이 보기에는 오크답게 돼지 머리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수컷.
드래곤이 반해서 육체를 탐하였다고 하기에 당연히 인간이나 엘프 등 아리따운 종족의 여성체라고 생각을 했건만 수컷이라니.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있는 중성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 블루 드래곤은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이었던 거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언가를 상상하던 로칸이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어느 쪽이든 별로 유쾌한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역린을 찔렀군.’
슬쩍 고개를 돌려 죽은 사힐란의 시체를 훑어본 로칸은 놈이 어째서 그 난동을 부렸는지 알 수 있었다.
저 하이 오크가 드래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역린을 찔러 버린 모양이었다.
“크흠, 혹시 그 수장됐다는 마을이 어디쯤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군요.”
“예? 하지만 그곳은 이미 수장되어…….”
“물을 다루는 것이라면 저도 가능합니다.”
“아아……!”
그 대답에 놈은 오크답지 않게 눈물을 펑펑 쏟았다. 수장되어 버린 일족의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혹시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음, 알겠습니다.”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경우 알려 주지 않겠다고 할까 싶어 어쩔 수 없었다.
사힐란이 버려 둔 레어를 털어먹기 위해서는 그 위치를 먼저 찾아야 했고, 욕망의 나침반에만 의지하자면 장소를 특정 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저쪽으로.”
하지만 로칸이 놈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다.
놈은 자신이 대신 복수를 해 주었다고 이야기하지만 몬스터의 말을 어디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나.
대붕으로 변한 카이에 함께 올라탔으되, 속박 주문을 사용해 그를 고정 시키는 방법으로 함께 이동했다.
잠시 후, 그가 지정한 위치에 도달했다.
“……여기라고?”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들은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일단 물에 잠긴 마을과 거대한 호수가 있는 것은 맞다.
“이 정도면 대부족인데?”
하지만 오크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건 글쎄?
그놈들은 죽고 새로운 오크들이 터를 잡은 것인지는 몰라도 대부족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호수 주변으로 성채를 쌓고 생활하는 중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로칸은 슬쩍 하이 오크의 행동을 주시하며 땅으로 내려앉았다.
“인간이다!”
“동족도 있다!”
그들의 등장에 성채가 소란스러워졌다.
호전적인 놈들의 성격을 생각할 때 당장 덤벼드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대붕으로 변한 카이의 위압감 때문인지 상위 종족인 하이 오크를 대동한 까닭인지, 무작정 덤비는 일은 없었다.
“취익! 족장을 불러와라!”
그런 놈들을 향해 하이 오크가 일갈을 내질렀다.
드래곤과 함께 생활하며 그 체취와 마나를 묻히고 있던 터라 오크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물러서서 그의 말대로 이 성채의 주인을 불러왔다.
“라벨,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뭐지, 이 반응은?’
심지어 성채의 주인은 그가 알고 있는 이였다.
라벨과 같은 하이 오크 종족.
하지만 반응이 영 이상하다. 반가워하기보다는 두려워하는 모습. 그 이유는 곧 놈의 입에서 밝혀졌다.
“너는 여기에 오면 안 된다. 녀석이 아는 날에는……!”
“걱정 마십시오. 놈은 죽었습니다.”
“뭣? 그게 정말이냐?”
“예. 이분이 놈을 해치워 주셨습니다.”
“아아, 대체 왜 그런 짓을……!”
“……?”
동족의 입에서 밝혀진 비사는 실로 놀라웠다.
사힐란이 오크 마을을 수장시키고 그 아래 레어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크들은 특유의 생존 본능으로 수영을 익혀 대부분 살아난 것이다.
죽은 것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놈에게 저항하고, 무기를 들었던 이들뿐.
그마저도 라벨이 잡혀간 후로는 저항하는 이가 없어서 피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라벨이 마음에 들었던 사힐란은 아주 잠깐 레어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아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라벨이 죽은 동료와 가족들을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살아남은 오크들에게 그 지역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은 덤이었다.
드래곤의 마나에 이끌려 몰려온 강대한 몬스터들이 많았지만 드래곤의 권한을 위임받은 그들이 보다 강한 종족들마저도 컨트롤할 수 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인데 그가 죽었으니 이제 놈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구나.”
“저를 팔아넘기신 겁니까? 어찌 그런……!”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라벨이 충격을 받았다. 공황에 빠졌다가, 분노했고, 허탈해했다.
자신은 한시도 일족의 분노와 복수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건만 일족은 자신을 팔아 호가호위하고 있었다니.
생각지 못한 진실에 충격을 받은 사이, 로칸은 카이와 함께 슬쩍 몸을 빼내었다.
‘호수의 아래라고 했겠다?’
그들끼리 치고받든 산맥 전체가 전란에 휩싸이든 그가 알 바가 아니다.
물론 그들이 뱉을 경험치는 탐이 났지만, 놈들이 모여들려면 당장 시간이 필요할 테니 레어를 먼저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얼른 바다 왕자의 망토와 해신의 트라이던트를 갖추고, 호수 아래로 뛰어들었다.
빈집 털이.
사힐란이 남긴 유산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흠, 뭐가 있긴 한 거겠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귀농하듯 사라져 버렸기 때문인지 레어의 입구를 지키는 가디언조차 부실했다.
어차피 호수 아래고 주변은 오크들이 통제하고 있으니 가디언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마지막에 그가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며 로칸이 레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오?”
부실하다 하나 그래도 드래곤의 레어다.
눈이 돌아갈 만큼 거대한 금화와 코인의 산이 있었고, 각종 무구들과 아이템들이 창고마다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이 장비들만 풀어도 대형 길드 몇의 장비 풀 세트를 교체할 수 있을 정도.
발에 채이며 굴러다니는 것들조차 최소 유니크 등급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이 맛에 드래곤 사냥하는 거지.”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그것들을 인벤토리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다시 레어를, 호수를 빠져나왔을 때, 호수 주변이 불타고 있었다.
제법 오랜 세월 동안 이 근방의 지배자였던 오크들과 드래곤의 위세에 억눌려 있던 흉폭한 몬스터들이 한판 붙기 시작한 것이다.
각 개체의 전력 차이는 있으나 사실 오크들의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그동안 태평성대를 이루면서 종족 번신에 힘을 쏟았고, 강력한 오크들이 많이 태어났으니까.
모여서 사냥하면 트롤이든, 오우거든, 드레이크든 그들이 연합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사냥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평화가 길었던 모양이군.”
그러나 역설적으로 태평성대의 나날들이 놈들을 망쳤다.
세대가 바뀐 오크들은 호전성을 잃었고 공격의 날카로움이 사라졌다. 마치 자신의 종족조차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불리하면 도망했고,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졌다.
라벨 등 구세대의 오크와 하이 오크들이 분투했지만 점점 전선이 밀리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래서 로칸이 나섰다.
이처럼 뷔페처럼 모여 있는데 포크 들고 덤비지 않으면 그 또한 매너가 아니다.
“광풍 현신, 피의 각성, 무혼 각성!”
“아앗, 인간님……!”
푸확!
무참한 살육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제물은 다름 아닌 오크들이었다.
레벨도 높고 숫자도 많은 주제에 이런 한심한 꼴을 보이고 있으면서 자신들을 도와 흉성이 가득 차오른 몬스터들을 쓰러뜨려 달라고? 어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남이 먹기 전에 자신이 먼저 먹겠다는 듯, 로칸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오크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오크든, 하이 오크든 상관없었다. 그 누구도 감히 로칸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나마 싸울 줄 아는 구세대의 존재들 역시도 평화에 젖어 날카로움은 잃은 상태인 데다 무려 그 드래곤을 죽인 인물이라는 것까지 들었으니 마음에 공포의 씨앗이 심긴 것이다.
그렇게, 그날 오크 대부족 하나가 전멸했다.
더불어 그들의 자리를 노리고 그 동안의 억압에 복수하려던 몬스터들 역시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남은 것은 오직 로칸 하나뿐.
막대한 경험치를 쌓아올리며 로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후우, 더럽게도 많네.”
사냥해야 할 몬스터도 많았지만 채워야 할 경험치량은 더 많았다.
몇만은 족히 될 법한 몬스터들을 학살했음에도 절반조차 차오르지 않는 경험치 바라니.
450레벨이 한 놈도 없었기 때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 너무하긴 했다.
“그만한 보상이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물론 일단 마제스티 마스터에 오르면 힘들었던 것 이상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하루인가.”
날짜를 세어 본 로칸이 초조한 목소리를 내었다.
유명계의 왕들과 약속한 날짜가 이제 하루 남았다.
그냥 확 다 줘 버리고 천천히 레벨을 올릴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좀 아까운 감이 있었다.
명색이 유명계의 왕들조차 탐을 내는 힘이 아니던가? 그것을 굳이 남에게 주느니, 자신이 취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게 분명했다.
‘일단 마제스티 마스터에만 오르면.’
마제스티 마스터의 경지만 달성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테니까.
게다가 유명계의 왕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자신의 적이요, 사냥감이었으니 남을 키워주는 일은 역시나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힘을 키우는 동안 그들 중 누군가 유명계를 통합하고 신위에 다가가 버리면 일이 꽤나 골치 아파질 수 있는 것이다.
“서두르는 수밖에.”
결국 해답은 하나였다.
하루. 그 안에 1.5레벨을 더 올린다.
450레벨에 가까워질수록 레벨당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경매를 진행하기로 한 날까지가 하루 남았을 뿐, 의식적으로 놈들을 피해 다니고 연락을 차단한다면 며칠 정도는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임 어택.
로칸의 마음속에서 초시계가 째깍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