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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화.마제스티 마스터 (3) (400/500)

 # 400

마제스티 마스터 (3)

드래곤 킬러 퀘스트의 마지막 한 조각. 골드 드래곤의 거처를 찾아 나선 로칸은 카이와 함께 전속으로 움직였다.

위치를 특정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코인을 아낌없이 사용했고, 그 결과 불과 2시간이 지나지 않아 골드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는…….”

마법 지도를 펼친 채 찾아간 그곳은 참으로 묘한 위치에 있었다.

바로 천상의 중심. 천상의 배꼽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분지 지형이 골드 드래곤의 레어였다.

“제길,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드는데…….”

아무것도 없었지만 반대로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로칸은 그것이 마나 혹은 신성 따위의 무엇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기에 더욱 불안해졌다.

이만큼이나 기운이 충만한 곳에 서식하는 놈이라면 쌓아올린 힘도 남다르지 않을까?

가뜩이나 마땅한 속성 없이 ‘마나 그 자체’를 속성으로 삼는 골드 드래곤이었다.

핑그르르르르.

로칸은 슬쩍 다른 골드 드래곤이 있는 장소를 욕망해 보았지만 나침반은 어느 곳도 가리키지 않았다.

어쩌면 한두 마리쯤은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건만 가오칸이 잡은 놈이 아직 리스폰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놈이 리스폰되어 새로 태어난 놈인 것인지 다른 골드 드래곤의 존재는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후우, 이판사판이다 이거군.”

뀨우! 뀨우 뀨우 뀨우 뀨우…….

하강하는 카이의 외침이 메아리가 쳐서 들렸다. 소리뿐 아니라 이 지형 자체가 모든 힘을 모아 두는 속성을 지닌 까닭이었다.

‘몬스터는 없나?’

로칸이 먼저 스캔한 것은 레어 주변에 몰려들어야 할 몬스터의 존재. 그러나 이만한 기운이 응집된 지역임에도 똬리를 틀고 있는 몬스터가 없었다.

그저 보이는 것뿐일 리 없다는 생각에 샅샅이 훑었지만, 땅속에도 나무 사이에도 단 하나의 생명체조차 살고 있지 않았다.

[농축된 마나의 기운에 노출되셨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장기간 노출될 경우 마나 중독 현상에 빠지실 수 있습니다.]

“이런.”

아무래도 마나가 너무나 진하게 응축된 것이 원인인 모양이었다.

이제 막 도착한 로칸에게조차 마나 중독에 주의하라는 경고가 뜰 정도라면 어지간한 놈들은 이미 마나 중독 혹은 폭주를 겪으며 스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이만한 마나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단 하나의 종족뿐일 터.

‘드래곤.’

마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존재들.

골드 드래곤이 이곳에 서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골드 드래곤밖에 서식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했다.

“서둘러야겠군.”

마나 중독이 정확히 어떤 증상인지는 모른다.

다만 어떤 식이든 상태 이상에 빠지는 것은 드래곤이란 강대한 적을 앞두고 피해야 할 사항이었기에 로칸은 서둘러 카이를 움직여 골드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 헤맸다.

‘없다.’

그러나 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곳이 맞는데, 욕망의 나침반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드래곤 레어로 보이는 동굴이 당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늘?’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름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럼 땅?’

그나마 확률이 높은 것이 땅속이었다. 보통 장소라는 것은 땅을 기반으로 하니까.

이 같은 마나의 응집도 대기나 하늘이 아니라 땅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나?

물론 그런 만큼 잘못 건드렸다가는 대폭발이 일어날 확률도 있었지만, 로칸은 적어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가능성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카이, ‘그걸’ 해 보자.”

뀨우…….

로칸이 교감을 통해 신호를 보내자 카이가 살짝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용하려는 것은 카이의 새로운 스킬.

창조 스킬로 테트라 엘리멘탈을 익히면서 요령을 습득해 스킬화시키기는 했지만 아직 실전에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기술이었다.

이전에도 틈틈이 연습하긴 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로칸이 가진 기술 중 더 단단한 지면을 꿰뚫어 낼 만한 것은 초극이나 어설픈 광역 마법밖에 없었으니까.

끼유! 쿠오오오오오오오.

대붕으로 변한 카이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분지의 상당부분이 카이의 그림자로 뒤덮일 만큼 거대한 몸, 거대한 입으로 막대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자신의 마나가 아닌 주변의 마나를 이용하는 스킬인 만큼 지형 특성인 마나 응집력이 작용한 듯싶었다.

농축된 마나가 꾸역꾸역 카이의 입가에 모여들었다.

“엘리멘탈 브레스! 쏴 버려!”

쿠과과과과과과과과과.

카이의 입에서 모든 속성이 융합되었다.

속성의 반발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테트라 엘리멘탈을 스스로에게 걸고, 상극이자 상성인 기운들을 한데 뭉쳐 쏘아 내었다.

“헐.”

로칸과 카이로서도 400레벨을 달성하고 처음 제대로 사용해 보는 기술이었다.

테트라 엘리멘탈을 자신에게 사용해야 반동을 견딜 수 있고, 그마저도 마나를 끌어모으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까닭에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제대로 써 볼 수가 없었는데, 막상 써 보니 그 위력이 가공할 만했다.

대폭발? 아니다. 그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카이의 입에서 쏘아진 브레스가 대지를 녹이듯 부서뜨리며 지하로 파고들어 간 것이다.

마치 깎아지듯 파고들어 간 그 흔적은 초극을 사용했을 때와는 또 다른 방식의 힘이었다.

“카이, 잠깐 쉬고 있어!”

예상대로 지하에는 카이가 만들어 낸 흔적 외에 무언가가 있었다.

두껍게 덮인 지층을 내려가자 도시처럼 생긴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응?”

아니다. 도시가 아니었다. 로칸이 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건물만큼 커다란 동상이었다.

오랜 세월을 거친 흔적이 있지만 어떤 힘에 보호받아 풍화되어 사라지지 않은 동상들이 생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체스?”

어떤 것은 같은 방향을 보았고, 어떤 것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체스판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대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그때, 누군가 로칸에게 말을 걸었다.

금빛 비늘을 번들거리는 골드 드래곤은 로칸이 아닌 동상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늙은이가 무료해져 홀로 체스라도 두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기습을 할까 하고 잠시 살펴본 로칸이지만 그의 주위에는 이미 황금빛의 보호막이 펼쳐진 상태였다.

제아무리 로칸이라 해도 일격에 뚫어 내기는 무리.

때문에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며 순순히 대화에 응해 주었다.

“승패 말입니까?”

“그것도 좋겠지.”

양측에 대립하고 있는 모양새에서 승패 말고 또 뭐가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로칸이 금방 답을 내렸다. 이건 오래 보고 분석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센 놈이 이기겠죠.”

모든 동상에서 느껴지는 힘. 미약한 신성은 서로 비등했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이지 않으니 승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국 센 놈이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가?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

다소 건성처럼 느껴질 수 있는 답변이었지만 골드 드래곤은 그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으니까.

오히려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호의 에인션트 골드 드래곤 주리프][Lv 499]

그가 몸을 일으키자 황금빛 보호막이 걷혔다.

그 거대한 덩치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것부터가 커다란 위협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로칸도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499레벨. 신위를 획득하여 신이 될 수 있는 500레벨을 눈앞에 둔 존재. 그런 이를 두고 어찌 함부로 무기를 떨칠 수 있겠나.

놈의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하나에 움찔거리고 있자니 로칸은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젠장. 그 정도 됐으면 후대에 물려주고 신이나 될 것이지 왜 뭉개고 있는 겁니까?”

“흘흘, 다 내 쓰임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억지로 툴툴거리며 소리를 내어 봤지만 주리프는 가볍게 로칸의 말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로칸의 머릿속은 팽팽 돌고 있었다.

수호의 골드 드래곤이라니 대체 무엇을 수호한단 말일까.

이것을 해결하면 놈이 신이 되든 역할을 다해 바스라지든 하지 않을까?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동상들의 가까이까지 온 주리프가 거대한 마나를 일으켜 동상들을 깨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보게.”

깨어난 동상들이 격돌을 시작했다. 부수고 부서지며 서로를 향해 살의와 적의를 뿜어내었다.

하지만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서로 엉키고 뒤섞여 누가 누군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뭔 생각이야?’

이놈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자신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 주는 것일까.

로칸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주리프는 평온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그 전투를 지켜보았다.

부서지면 재생하고, 재생하면 또 부수고.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뀨우?

상태를 어느 정도 회복한 카이마저 곁에 다가올 정도.

하지만 주리프는 단 한순간도 동상들의 전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확 저질러 버려?’

때문에 손이 근질거리는 기습의 유혹에 몸이 달았지만, 로칸은 억지로 눌러 참았다.

그 정도의 기습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적어도 테트라 엘리멘탈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이후 뭔가를 감행해도 해야 할 터였다.

“이처럼 끝나지 않는 싸움이 있네.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서로가 다르지 않지. 힘의 균형 또한 무너지는 법이 없어서 그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아. 자네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겠나?”

한참 만에 또다시 선문답이 튀어나왔다.

같지만 다른 이들,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싸움.

이 또한 간단한 것 아닌가? 로칸이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판을 깨야죠. 균형을 무너뜨릴 만큼 강해지거나, 더 강한 자를 영입하거나.”

“하지만 그럴 경우 그 강한 자에게 모두 잡아먹힐 위험이 있지 않겠나?”

그러나 이번에도 주리프는 진지하게 임했다. 근심이 서린 얼굴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리고 그럴 배짱도 없는 놈들이면 언제든 박살 날 겁니다. 지금은 둘뿐이지만 언제 또 다른 집단이나 적대 세력이 나타날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럴 바에는 일찌감치 박살을 내 놓고 세력을 통합해서 다른 적들을 견제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싹수가 보이면 밟아 주기도 하고요.”

“그래, 그렇지. 두려워만 하고 있으면 언젠가 무너지고 말겠지.”

또다시 깨달은 듯한 주리프의 모습.

로칸은 현자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하며 심드렁해했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자네는, 자네가 그 강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거대한 판을 뒤엎을 변수가 될 자신이 있나?”

“물론이죠.”

로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자신이 아니면 그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나.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믿어 보도록 하지. 사실 나도 이제 많이 지쳤다네.”

“……?”

파아아아아앗.

그 순간 주리프의 몸에서 금빛 광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로칸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놈이 뭔가 하려는 것일까? 혹시 마나 중독 같은 상태 이상을?

황급히 상태 창을 열어 본 로칸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경험치가……?”

경험치가 차오르고 있었다.

주리프가 내뿜는 광채가 더욱 짙어질수록 경험치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신성!’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신성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막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어려운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몸 안에 흡수되었다.

‘대체 왜…….’

로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몇 가지 선문답을 해 줬다고 이만한 경험치와 신성을 내어 준다고? 이 늙은 드래곤이 치매라도 걸린 것일까, 아니면 우울증이라도 걸린 것일까?

경험치와 신성을 흡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기에 로칸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죽음.

이것은 주리프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의미했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며 경험치와 신성을 로칸에게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무엇을 바라고?

그 해답은 다소 모호했지만 곧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균형은 깨어질 것이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 무한히 이어질 것이고 신들은 지상과 천상으로 전장을 옮길 것이다. 세상은 파괴되고 혼돈이 찾아오리다. 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이 열리리라.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여 전쟁을 끝내고 그다음의 적을 대비하리라.”

예언이나 신탁과도 같은 말이었다. 로칸은 얼른 그것을 동영상으로 저장했지만 당장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신들이 지상과 천상으로 전장을 옮긴다는 것뿐.

그것이 사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주리프가 남긴 유산이 그를 마제스티 마스터의 문턱까지 데려다주었으니까.

꿀꺽꿀꺽.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즉시 레벨 상승의 비약을 꺼내 들이켰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마침내 449레벨. 승급 퀘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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