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
마제스티 마스터 (5)
불안정한 신성을 지닌 ???들을 추적하여 처리하라는 퀘스트.
수호자를 자칭하던 주리프가 가둬 놓던 놈들이니 세상에 혼돈을 가져온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되었지만, 성공 보상과 실패 페널티는 로칸으로서도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변형된 신성이라고?”
그것은 분명 ‘공허’가 아니었던가?
정확히는 공허에 미치지 못하는 삿된 힘이었지만 하위 호환쯤으로 보아 줄 만큼 유사한 기운이었다.
그런데 퀘스트의 성공 보상은 그것이 신성의 변질된 모습이라 지칭하고 있었다.
정확히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놈들을 때려잡고 얻는 보상이라면 응당 놈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 아닌가?
“아니면 대처법쯤 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 뒤에 함께 걸려 있는 신성 저항력에 연관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신성을 어떤 식으로 변형하면 공허에 저항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공허가 신성에 상극이라고는 하지만 정녕 신성으로 공허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면 이미 공허가 세상을 집어삼키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사실 이쪽이 좀 더 신빙성이 있긴 했다.
“뭐, 나야 상관없긴 하지만.”
사실 어느 쪽이든 이미 타이틀 ‘공허를 품은 자’를 획득한 로칸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이것이 있는 이상 공허의 힘은 로칸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어려웠고, 혼돈 시대의 개막? 만약 그것이 새로운 월드 퀘스트 또는 에피소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놈들은 쫓는다고 해도 당장 쓸어버리는 건 무리겠지.”
한번 놀라고 겁먹은 놈들이 어디 가까운 곳에 모여 숨었겠나? 일단 몸을 숨기고 놀란 가슴을 달랠 확률이 높았다.
그런 다음 천천히 그 마수를 뻗겠지.
때문에 로칸은 놈들을 즉시 추적하는 대신 애초에 염두해 두던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획해 두었던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세계의 구성품이 될 만한 것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
“이 정도면 되려나?”
로칸은 꼬박 사흘 동안 쉬지 않고 천상의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서식하는 신수며 이름난 마물, 현상금이 걸린 네임드 몬스터들을 골라서 사냥했다.
그 동선 가운데에는 천족과 마족을 비롯해 여러 천상 종족들의 거점 도시들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로칸도 그들을 피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특정 세력의 힘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중립 몬스터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유명계의 왕들과 약속한 날짜가 이틀이나 지나 버렸지만 일부러 그들의 영역과 먼 곳으로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했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한 유명계의 왕들이 로칸에게 분노하고, 그를 찾는다는 알림이 나타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의 분노가 닿기 전, 그 역시 마제스티 마스터로 승급할 예정인 것이다.
“배 터지겠군.”
자신의 앞에 수북하게 쌓인 영혼의 구슬과 힘의 정수, 영물의 내단 등을 바라보는 로칸이 벌써 입이 달고 배가 부른 듯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하나씩 입안에 넣고 꿀떡 삼키기 시작했다.
물론 입안에 넣는 순간 스르륵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영혼 포식자를 사용해 영혼의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영혼의 구슬에 담긴 영혼과 신성이 당시에게 흡수됩니다.]
주변을 가득 메운 영혼의 구슬과 힘의 정수는 먹어도 먹어도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을 먹어 갈수록, 몸 안에 강대한 신성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 유명계의 왕들이 이것을 그리도 탐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분노하여 로칸의 행방을 찾고 있는 것이겠지.
‘모두 내 배 속에 들어간 후일 테지만 말이야.’
듣자 하니 자신들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성주급의 유령들을 세상에 풀어놓았다던가?
그렇다 할지라도 철저히 흔적을 지우고 다닌 로칸을 찾으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로칸은 그렇게 꾸역꾸역 영혼의 구슬을 삼킨 뒤, 지상에서 회수한 힘의 정수를 다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천상의 각지를 돌며 모은 내단과 정수들까지.
그것을 모두 삼키고 나서야 로칸이 비로소 아껴 두었던 명령어를 사용했다.
“세계 구축.”
파아앗!
그 순간 로칸에게로 빛이 떨어졌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신성한 빛줄기가 내리쬐더니 그를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다.
[반신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신성을 활용하여 당신의 힘이 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세요.]
[구축된 세계는 당신에게 신성을 공급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의 발전과 구성에 따라 차별화된 신성과 권능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 신성 : 112,826,747]
450레벨로의 승급.
그 뿐만 아니라 로칸의 자격을 인정하고, 그만을 위한 세계의 구축이 진행되었다.
‘이건…….’
그 순간, 로칸은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툭하고 새로운 세계를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브릿지가 되는 이펙트들이 있는 것이다.
마치 처음 접속할 때처럼 유체 이탈을 하듯 거대한 나무 형상의 세계 밖으로 빠져나왔고, 점점 시야가 줌아웃되는가 싶더니 나무 형상의 세계 옆으로 작은 점과 같은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구축이 시작됩니다.]
[세계 : A-00001을 부여받으셨습니다.]
[세계명은 차후 신성을 소모해 변경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칸의 세계.
놀랍게도 그것은 지상과 천상 등으로 구성된 기존의 세계가 아닌, 별도의 행성 같은 새로운 세계였다.
아직은 작지만 완전히 별개의 세계를 그가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를 구성할 설정 및 콘셉트를 떠올려 주세요.]
[세계를 구성할 지역과 세력, 종족을 떠올려 주세요.]
[세계를 구성할 주요 세력과 종족의 성향을 떠올려 주세요.]
[신성을 획득할 주력 종족을 설정해 주세요.]
이후는 알림에 따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로칸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안내를 따라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기본적인 골격은 더 로드의 세계와 같다. 칼튼이 세계 : 무림을 만들었듯 아주 특별한 세계를 구축할 수도 있겠으나, 고민을 거듭해 특별한 게 꼭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반신이, 마제스티 마스터가 구축하는 세계는 본인이 사용하는 힘의 근원이 된다.
그 세계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힘을 끌어다 사용할 수도 있고 더 로드에 존재하지 않는 스킬이나 능력, 권능 따위를 생성해 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창조 스킬을 만들 때처럼 말도 안 되는 능력은 나올 수도 없고 설령 사용 가능하다 해도 막대한 신성을 소모하는 페널티 강한 스킬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칸은 정석적이면서도 자기 색이 가장 강하게 드러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했다.
‘콘셉트는 판타지. 마나와 마기, 신성력이 존재하는 세계. 종족은…….’
[천상 세계를 생성하셨습니다.]
[신성 : 5,000,000이 소모됩니다.]
[지하 세계를 생성하셨습니다.]
[신성 : 5,000,000이 소모됩니다.]
[세계의 조율자 : 드래곤족을 생성하셨습니다.]
[신성 : 1,000,000이 소모됩니다.]
[성장 방식 : 게임 특성을 적용시키셨습니다.]
[신성 : 3,000,000이 소모됩니다.]
그러나 더 로드의 세계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등장 종족이 약간 추가되기도 했고, 지상과 천상뿐 아니라 지하 세계까지 만들었다.
마치 각각의 지역을 하나의 스테이지처럼, 소위 고인물이라 불리는 올드 게이머의 경험과 지식을 총 동원해 하나의 게임 세계를 창조해 냈다.
그것들을 만들고 구분 지을 때마다 로칸이 모아 놓은 신성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이미 커진 신성의 그릇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신성을 일부 소모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제 막 구축한 자신의 세계를 통해 그것을 회수하려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건만, 로칸은 신성의 사용을 아끼지 않았다.
반신이 되기 위한 최소 신성 수치는 10,000,000이었고,로칸은 그의 약 11배가량의 신성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금세 줄어들어 신성의 잔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모자라면 적당한 놈들을 족치고 다니면 그만이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여차하면 400레벨 이상을 학살하여 신성을 모으는 방법도 있었고, 어느 정도의 신성을 보충하고 신성의 활용법을 익힌다면 그다음은 천족이든 마족이든 다 박살을 내면 그만이니까.
자신의 뒤통수를 친 라푸제를 비롯한 고위 천족을 때려잡고, 마찬가지로 자신을 노리도록 사주했던 뱀파이어 로드를 때려잡다 보면 그 과정에서 신성이야 금방 채울 수 있지 않겠나?
때문에 아예 신성의 그릇을 비울 작정으로 아낌없이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다 자칫 세계가 망해 버릴 경우 로칸은 차원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있다는 듯 그의 선택에는 거침이 없었다.
‘계획이 통하기만 하면 그럴 것도 없이 당장 신성을 회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게다가 로칸에게는 확실하게 상당량의 신성을 즉시 회복할 수 있는 계획이 남아 있었다.
‘메인 종족은 인간. 특성은 잠재력과 성장 그리고…….’
그렇게 로칸은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 세계관과 지역, 종족, 관계 등에 대한 설정을 세세히 짜 넣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일단 한번 세계를 만들어 낼 경우, 그 법칙이나 설정을 바꾸기 위해서는 처음 만들 때의 배 이상 되는 신성을 쏟아부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집중 또 집중해서 설정을 잡아 가던 로칸은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될 종족까지 집어넣었다.
바로 인간.
인간을 하등한 종족으로 보는 종족들이 많을 만큼 다른 강력한 종족들도 많았고, 로칸이 인간이라고 꼭 인간 종족을 메인 종족으로 잡아야 한다는 법은 없었지만 신념은 확고했다.
‘신성을 키우기에는 인간이 딱이지. 약하기에 더욱 뭉치고, 초월적 존재에게 기대기도 하면서 성장하고 극복해 나가는 종족이니까.’
인간이야말로 가장 신에게 절실히 기대는 종족이 아니던가?
게다가 수명도 짧고 기본 종족 능력치는 낮아도 성장 잠재력만큼은 그 어떤 종족보다 뛰어났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따금씩 태어나는 영웅의 존재는 종족 우위의 판도를 바꿀 만큼 대단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이 세계의 신인 로칸은, 신성을 소모하여 간접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세계 : A-00001의 구성을 완료하시겠습니까? 완료를 원하시면 ‘완료’를, 수정을 이어 가시려면 ‘수정’을 외쳐 주십시오.]
[일단 세계 구성을 완료하면 설정 수정 및 간접 개입 시 추가적인 신성이 소모됩니다.]
“완료.”
진땀을 흘릴 만큼 집중해서 세계를 완성시킨 로칸은 설정을 끝마쳤다.
혹시 빼먹은 것이 있을까 몇 번이나 검토했지만 적어도 계획한 것에서는 어긋남이 없었다.
[세계 : A-00001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첫 세계명 설정 시에는 신성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구성을 완료하자 나타나는 세계명 변경의 기회.
세계명이라는 것은 그저 세계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 아니라 그 세계의 성향마저 결정하는 것이라 꽤 중요했기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로칸이 답을 내어 놓았다.
앞으로 자신의 뜻을 이어 이 세계를 통합하고 지배할 이가 걸어야 할 길을 대변하는 말로서 일축했다.
“명부마도.”
‘세계 : 명부마도’가 생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