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4화.연합군 (2) (414/500)

 # 414

연합군 (2)

“아직인가?”

“아직이지?”

“아직이군.”

일명 국제길드연합.

어디까지나 목적을 이룰 때까지의 한시적인 연합이었지만 그 목적을 위해 그들의 수뇌는 똘똘 뭉쳐 움직였다.

휘하의 길드들은 모두 흩어져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들만큼은 흩어지지도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고 뒷짐을 진 상태였다.

힘을 아끼기 위해서. 그리하여 로칸이 나타났을 때,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

이미 한 번 처참하게 당한 뒤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로칸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가 아깝게 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유는 그들 이외에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나 자신만만해하니 그저 믿을 뿐이다.

“놈이 오기 전에 황궁까지 무너뜨리는 것도 좋겠지. 일단 그 전에…….”

국적을 알 수 없는 유저들이 마구 수도를 짓밟았다.

골목골목 저항하는 병력이 있지만 그래 봤자 턱없이 부족한 질과 양이었다.

고작 그들로 고르고 고른 하이 마스터급 유저들을 막을 수 있을쏘냐!

거금을 들여 대대적으로 무지개 전송기를 사용한 만큼 전투는 일방적이었고, 수도 수비군은 쓸려 나갔다.

그런 전투를 헤치고 일단의 무리가 나아간 곳은 신전.

그곳에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유저를 신으로 믿는 바보 같은 사제들이 부들거리며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로칸교는 무슨!”

이른바 로칸교.

참 바보 같은 이름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처음으로 힘을 발휘했다.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이름을 비웃으며 신전을 무너뜨리고 사제들을 농락하려 들었다.

“크허허허허허헝!”

바로 그때, 천지가 진동했다.

물리력을 지닌 것도 아니건만,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지는 이들까지 다수 발생했다.

“로칸!”

“감히!”

로칸의 등장. 그 자체만으로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어디서 행패를 부리는 거냐!”

[권능 : 불굴의 의지를 사용했습니다.]

[광전사의 축복을 사용했습니다.]

광기의 외침이 적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자의는 아니었지만 로칸교에 속해 있는 한국 유저들 전체에게 특별한 버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권능 : 불굴의 의지. 그리고 광전사의 축복.

그것을 동시에 부여받은 유저들의 마음속에 독기가 일어나고, 육체 능력이 크게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미 각자의 클래스가 있는 이들이기에 광전사로 전직을 하거나 버서크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정신이 단단해지고 육체 능력이 상승했으며 공격력 또한 크게 증폭된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수도뿐 아니라 모든 지상에서 일어났다.

‘쓸 만한데?’

저벅저벅.

국제길드연합 소속의 수뇌부들을 향해 걸어가면서 슬쩍 돌아본 로칸은 실로 만족했다.

이미 자신의 신도로 등록된 이들이기 때문인지 광범위한 권능과 축복의 발휘에도 그다지 많은 신성이 소모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가 폭군의 배틀 액스를 꺼내 들자 수도 내에서는 추가적인 효과까지 일어났다.

[50레벨 이상 차이가 나는 이들에게 굴복의 힘이 작용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감소하고 간헐적인 공포 효과가 일어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감소합니다.]

바로 굴복 효과였다.

폭군의 배틀 액스가 가진 소소한 옵션의 하나일 뿐이지만 거의 전원이 400레벨 이하의 하이 마스터로 이루어진 국제길드연합군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이, 이거 왜 이래?”

“무슨 디버프가……!”

상대가 갑자기 강해진 것도 모자라 이처럼 엄청난 능력 저하 효과라니.

나름 경험이 많은 유저들조차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격차였기에 전세가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오오오오!”

“이게 된다고?”

“길드장, 이거 쩌는데요?”

“흐흐흐, 거봐, 내가 뭐랬어? 로칸한테만 붙으면 된다니까!”

“그때 신세 한탄 했으면서……! 아무튼 기회입니다. 다 조져 버리죠!”

“내가 동급 레벨을 상대로 이렇게 무쌍을 찍을 수 있다니! 로칸은 늘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 로칸교 만세다!”

극과 극으로 치닫는 힘의 격차.

이쯤 되자 한국 유저 하나가 동격의 연합군 유저 열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아군의 능력치는 크게 상승하고, 상대의 능력치는 곤두박질 친 덕분이다.

마스터 스킬로 근근이 버티고는 있지만 마치 300레벨짜리들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픽픽 쓰러져 가는 적들을 보자 한국 유저들의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어깨가 솟고 좀 전까지 당하던 것에 대한 울분을 풀기 시작했다.

지고는 못 사는 것이 한국 유저들의 특징이니까!

악의는 몇만 배로 갚아 주는 것이 정석이라는 듯, 단숨에 몰아쳐 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만약 유저들뿐이었다면 비등했을지도 모른다. 일당십의 전력이라고는 해도 그 수가 10배 이상 차이가 났으니까.

하지만 로칸교에는 필수적으로 NPC들이 속해 있었다.

수도 수비대와 근위대가 몽땅 튀어나와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서로가 경쟁하듯 적들을 썰어 버리고 시체를 짓밟으며, 일부 빼앗겼던 수도를 탈환했다.

“로칸! 로칸! 로칸!”

그리고 그러는 동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해 낸 인물에 대한 찬양의 목소리 또한 거침없이 울려 퍼졌다.

[신성 : 1,244,664을 획득했습니다.]

이름만 걸쳐 두던 이들이 마음을 다해 목소리를 높이고, 진정으로 그 힘을 믿는 것. 덕분에 소모되었던 로칸의 신성이 실시간으로 차올랐다.

그래 봤자 기별도 가지 않는 수준이지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했다.

로칸은 내침 김에 회복된 신성만큼을 다시 투자했다.

[권능 : 폭력의 미학을 사용했습니다.]

불굴의 의지가 정신을 방어하고 전투 의지를 고양시키는 정도라면 폭력의 미학은 그 궤를 달리한다.

로칸이 가진 온갖 전투 버프들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것이니까. 흡혈, 치명타, 방어력 무시 등등 철저히 전투에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버프들로 떡칠이 되어 버리니 어찌 승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현상은 향후 로칸의 신도를 늘리고 신앙을 강화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터였다.

“으흐흐흐! 내가 로칸이다!”

덕분에 한국 유저들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 하나하나가 예전의 로칸이라도 된 것처럼, 사용하는 스킬과 전투 방식은 달랐지만 홀로 수십의 적을 썰어 버리는 것은 똑 닮은 것이다.

“크아아악!”

“제기랄. 이 빌어먹을 놈이……!”

아군에게는 이 게임이 더없이 재미있어졌지만 적들에게는 악몽이었다.

그러나 그 꼴을 보고 있던 적의 수뇌부들은 뭔가를 할 수 없었다.

반신도 아니고 고작해야 신의 힘을 빌려 쓰는 사도 따위로는 권능은커녕 축복조차 내릴 수 없으니까.

그들도 로칸을 따라 저마다 모시는 신의 신전을 세우기는 했지만 사도가 워낙 많은 까닭에 그 영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비슷한 능력이라도 사용하기에는 눈앞의 로칸이 두려웠다.

그들 전부가 전력을 다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존재.

이번 역시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벌이긴 했지만 한 손으로 열 손 못 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었기에 설령 패배한다 해도 한국 유저들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레벨을 다운시켜 경쟁에서 탈락시킨다는 목적으로 시작할 수 있던 일이기도 했다.

“계속 눈싸움만 하려고 왔냐? 덤벼!”

그런 그들을 로칸이 도발했다. 지난번에 했던 것과 같은 수작을 부렸다가는 한 방에 끝장이 날 것이라는 듯, 여유롭고도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건들건들 자세를 취했다.

“언제까지 여유 부릴 수 있나 보자! 메테오!”

“오?”

그러자 곧장 반응이 왔다.

전쟁이 시작되고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참전하지 않고 있던 이들답게 로칸의 등장과 함께 곤란함을 안겨 줄 강력한 주문을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메테오.

우주에 떠도는 별을, 행성을 끌어당겨 폭격하는 재앙급의 마법.

오직 별자리의 사도인 그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지금 실현되었다.

“흠, 즉시 발동은 아닌 모양이군.”

슬쩍 마법이 지나간 하늘을 돌아본 로칸의 표정이 악귀처럼 변했다. 무엇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그때까지 시간이 좀 남은 모양이니까.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너무 재미없을 테니까.”

로칸의 모습이 한순간 사라졌다. 눈으로 좇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하더니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보, 복수의……!”

퍼억!

황급히 준비해 둔 힘을 사용하려 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권능이든 마법이든 그도 아닌 무엇이든, 사용하기 전에 목을 날려 버리면 그만이니까.

로칸이 거인의 모습으로 변하기만을 기다리던 놈들은 그런 과정 없이 순식간에 짓쳐 들자 대응하지 못하고 와해되었다.

가장 성가신 복수의 신의 사도부터 끝장을 내 버렸다.

“속임수를……!”

그러나 그들 역시 400레벨의 수준에는 오른 자들이다.

사도의 권능이라는 편법 아닌 편법을 사용한 덕이긴 했지만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라는 뜻.

한 명이 당하는 순간 일시에 흩어졌고, 로칸을 포위했다고 여긴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폭렬.”

콰과과과과광!

로칸이 폭군의 배틀 액스를 땅에 내리찍은 것이다.

그러자 그를 주변으로 강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건물과 유저를 비롯해 공간 전체를 집어삼키는 대폭발!

그것은 다름 아닌 로칸의 새로운 마스터 스킬이었다.

폭군의 배틀 액스 옵션과 능력이 겹치는 전신 무쌍을 삭제하고 새롭게 조합해 낸 광역 공격기.

로칸의 일반 공격력을 300% 증폭시켜 범위로 타격하는 스킬이지만 일반 공격력 자체가 남들의 필살기 수준인 로칸이기에 그 피해는 무지막지할 수밖에 없었다.

“컥!”

“이게 무슨!”

“미친놈! 여긴 네 도시라고!”

오죽하면 그 한 방에 생명력의 절반 이상이 닳아 버린 이들이 허다할까.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일격으로 건물이 몇 채나 무너졌다는 것이다. 로칸 본인의 신전을 포함해서!

이걸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만 생각해도 아찔할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공격을 날리는 것일까.

적진 한복판이라는 이점 때문에 거친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때문에 그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일깨워 줬건만 로칸의 반응은 쿨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인 것이다.

이미 복구를 포기한 건가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다만 복구에 들어가는 돈이 그들의 생각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것일 뿐.

오직 로칸만이 할 수 있는 돈지랄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신전이 무너지며 신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을 했지만 그 또한 큰 피해는 없었다. 신성의 주체는 신전이 아니라 신도들이니까.

오히려 로칸의 권능을 부여받아 날뛰는 덕분에 로칸의 신성 수급은 한결 원활해지고 있었다.

“계속 입으로 싸울 거냐?”

로칸은 신성도 일으키지 않고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그것이면 충분하니까.

새로운 무기까지 얻은 마당에 겨우 이따위 놈들에게 아까운 신성을 써 대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속전속결로 놈들의 목을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힘 좀 써 봐!”

상대가 발악을 했지만 이미 힘의 차이가, 체급의 차이가 너무 났다. 보유한 신성의 양이 대폭 증가하면서 신성을 이용한 사도들의 힘에 상당한 저항력이 생긴 까닭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공격력뿐 아니라 방어력까지 파워 업을 한 셈.

저번에는 그럭저럭 로칸을 몰아세웠던 놈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나갔다.

순식간에 인원은 다섯까지 줄어들었다.

“싱겁군.”

“……개자식. 이걸 보고도 여유로울 수 있는지 보자.”

다만 입술을 꽉 깨문 그들의 표정과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사도다. 미약한 신성의 조각 따위로는 더 이상 반신의 힘을 쓰지 않는 로칸조차 어쩌기 어려웠다.

“그래 봤자 사도……?”

“신성 강림!”

그 순간, 로칸도 예상하지 못했던 강렬한 신성이 그들에게서 뿜어졌다. 다섯의 신성을 한데 모으고, 신물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냈다.

이 정도면 족히 반신급의 신성이라 할만 했다.

그리고 곧 그 결과물이 로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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