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
연합군 (3)
[강철의 신이 인계에 강림합니다.]
“강림이라고?!”
이번만큼은 로칸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림이라니? 그것도 신위를 가진 존재의!
이미 광풍을 통해 경험해 본 적 있기에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광풍과의 대련에서 그나마 이길 수 있던 것도 그가 신성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던가?
이번 얀켄의 사례를 통해 신위를 가진 존재가 얼마나 엄청난 양의 신성을 가졌는지 체감한 로칸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로칸이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과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줄 아는 냉철함이 있기에 놈이 불러낸 신성의 거인이 얼마만큼 강할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감히 반신 따위가 신의 힘에 대항하려 하느냐!]
쩌렁쩌렁한 강철 거인의 목소리가 수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로칸이 내뱉은 광기의 외침만큼이나 강력한 힘이 한국 유저들을 강타했다.
“크윽!”
“저건 또 뭐야?”
“제기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권능까지 사용해 아군을 강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전세가 다시 한번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로칸이 패배하고 만다면, 권능과 축복을 거두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말겠지.
그것을 알기에 로칸도 힘을 내었다.
신성을 끌어올려 놈의 기운에 저항했고 천천히 놈을 스캔했다.
‘다행이군.’
그리고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고작 사도 몇의 힘으로 강철의 신을 온전히 강림시키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강력함과 신성의 활용은 로칸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만 최소한의 희망은 발견한 것이다.
[어서 무릎을 꿇어라! 그러지 않으면 네가 이룬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다!]
그사이에도 강철의 신은 거친 노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좀 이상한데?’
그것이 이상했다.
강철의 신은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 뚫을 수 없는 갑옷을 가진 강철의 화신이다.
우직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무척 저돌적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신.
그런데 이렇게 말로 엄포만 놓고 있는다고?
로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너의 그 무엇도 내게 닿을 수 없으리라!]
“이거 빈 깡통이었잖아?”
로칸은 그 즉시 간파했다.
저것은 강철의 신이 아니다.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
물론 신성을 품었고, 강철의 신의 권능을 담았기에 단단하기는 더럽게 단단하겠지만 그저 그뿐인 것이다.
“시험 상대로는 딱이겠군.”
로칸이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합체 로봇이라도 되는 듯, 강철의 신에게 흡수되듯 사라진 다섯 사도를 향해 중지를 펼쳐 보였다.
“폭력의 왕.”
광풍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폭력의 왕 로칸.
스스로가 바라 왔고 마침내 달성한 자기 자신의 힘을 드러내었다.
“나왔다!”
“어? 근데 커지지 않는데?”
“무슨 일이야?”
로칸이 힘을 발하자 주변에서 전투 중이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전매특허인 파괴의 거인으로의 변신을 지켜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변신 따윈 없었다.
일깨우는 것은 자신의 피와 영혼 속에 녹아들은 죽은 자들의 힘.
죽어 없어짐으로써 로칸의 피와 살이 되고 경험치가 되어 준 것들의 힘이 그 안에서 깨어났다.
심지어, 광풍조차 쓰러뜨렸던 경험과 얀켄에게서 흡수한 그의 경험까지 녹아 형태를 이루었다.
피가 끓어오른다.
두 눈에서는 불꽃과 같은 귀화가 피어올랐다.
덩치와는 관계없이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폭력의 신이 그 자리에 강림하였다.
“괜찮은데?”
이 스킬을 제대로 사용해 보는 것은 로칸으로서도 처음이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광풍 현신을 대신할 마스터 스킬을 완성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니까.
그리고 그 효과는 놀라웠다.
덩치에서 나오는 파괴력이 아니라도 이미 이 힘은 광풍 현신의 그것을 넘어섰다.
스스로 쌓아 올린 역사와 이야기가 그에게 강대한 힘을 전해 주고 있었다.
오직 로칸이기에 쓸 수 있고 로칸이기에 감당할 수 있는 힘이었다.
“투지의 발걸음.”
콰앙!
로칸이 사뿐히 발을 딛는 순간 강철의 신의 단단한 몸체가 크게 흔들리며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역시 단단한데?”
하지만 그 은빛의 몸체에는 실낱같은 상처조차 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절대의 갑옷]이라 불리는 강철의 신의 강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야 재미있지.”
그러나 로칸은 웃었다.
너무 쉽게 당해 버리면 재미가 없지 않겠나? 쓰러뜨렸을 때 획득할 수 있는 신성의 양도 형편없을 테고 말이다.
콰앙! 콰앙! 쾅! 쾅!
로칸은 두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신성 한 줌 섞이지 않은 순수한 힘의 일격이지만 강철 거인의 몸은 거세게 흔들렸고, 버둥거리며 마땅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 더 빠르게 가 볼까?”
차라리 로칸이 거인의 형상을 했다면 힘 대결이든 뭐든 끌고 가 봤겠지만 너무 작은 까닭에 맞히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능력치는 오히려 앞서는데 크기마저 작았으니, 만약 이럴 줄 알았다면 강림시키는 신을 강철의 신이 아닌 다른 이로 선택을 했을 터였다.
쩌적.
그리고 그 일방적인 두들김이 계속되던 어느 순간,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놈의 몸에 균열이 생겨났다.
덩치에 비하면 생채기 수준에 불과한 아주 작은 균열이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척이나 컸다.
신성의 파괴.
[뚫을 수 없는 갑옷]이라는 강철의 신의 권능이자 특성이 깨어진 것이다.
깨어진 컵을 다시 붙일 수 없듯, 파괴 불가라는 믿음이 한 번 깨어지자 그다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쩌저저저적!
같은 곳을 반복해서 두들기는 로칸의 공세에 균열은 점점 커졌고, 몸 전체로 번져 갔다.
거울처럼 반질거리던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무너졌다.
챠라랑!
강철의 신은 로칸에게 제대로 된 일격 한번 날려 보지 못하고 처참히 파괴되어 수억 조각의 파편이 되었다.
[불완전하게 소환된 강철의 신이 파괴되었습니다.]
[강철의 신이 당신에게 분노합니다.]
[강철의 신이 아둔한 자신의 사도에게 분노합니다.]
[강철의 신의 신성 조각을 흡수했습니다.]
[강철의 신성을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 / 사용]
“흡수하겠다.”
그와 함께 흡수되는 신성.
로칸도 이번에는 흡수를 선택했다.
강철의 신성은 꽤 좋은 신성이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강철 같은 의지와 육체.
게다가 유명계를 인수하면서 그러하였듯, 속성이 달라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아무래도 강철의 신은 인간이나 유사 인종이 아닌 강철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로봇이 쓰러졌다!”
“빌어먹을! 로칸이 이겼어! 이겼다고!”
“이 개자식들. 몽땅 다 쓸어 주마!”
대장전에서의 승리. 그것도 무려 400레벨에 사도씩이나 되는 유저 열을 혼자서 쓸어버리는 로칸의 위용에 한국 유저들이 기세가 올랐다.
반대로 믿고 있던 수뇌부가 처참하게 털리는 것을 본 국제길드연합 소속의 유저들의 사기가 폭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
전세가 뒤집히다 못해 일방적으로 바뀐 것은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였다.
족히 10배는 더 많은 수를 자랑하던 국제길드연합 소속 유저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예 한국 유저들의 숫자보다 적어지기까지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징집.”
한국 유저들뿐 아니라 징집되는 NPC들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감히 자신의 영토를 침공한 놈들을 다른 이들의 손에 맡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죽어 없어진 것 이상으로 병력을 대거 충원하고 스스로도 몸을 날려 놈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수도를 넘어 각 대도시로 그리고 다른 종족들의 진영까지!
황금사자 진영과 검은용군단 같은 진영 논리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이건 국가 대항전이니까.
“헉? 로칸이다. 튀어!”
“제길, 조금만 천천히 올 것이지……!”
로칸교의 가입자들이 종족, 진영을 불문하고 이미 상당수를 차지했기에 권능과 축복이 내려진 상태였고, 어떻게든 그들의 공세를 버텨 낸 것이다.
그사이 로칸이 나타나 적의 주력을 도륙했다.
다시는 덤빌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로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리도록 처참하게 뭉개고 학살했다.
빼앗은 거점을 토해 낼 뿐 아니라 가지고 있던 것까지 주머니 탈탈 털어 놓고 가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젠장! 돈이 모자라잖아!”
“미친. 돌아갈 차비도 해결해 준다며! 길드에서는 뭐래?”
“연락 안 돼. 지들끼리 먼저 튄 거겠지. 믿은 내가 병신이다!”
“근처에 사냥터 없어? 골드 많이 주는 곳으로!”
“사냥터고 나발이고 나갈 수나 있어야지!”
귀환 비용의 부재가 발생한 것이다.
무지개 전송기로 다른 국가의 땅을 밟는 것은 개개인에게 어마어마한 비용적 부담을 안긴다.
그렇기에 길드 차원에서 지원을 해 주고 또 해당 국가의 차원을 갈취해 골드를 뜯어내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기습은 차분히 자원을 갈취할 시간도 없이 진행되었고 상황이 역전되어 쫓겨나가다시피 한 까닭에 비용을 지급받지 못한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자금 담당 역시 몇 번이고 죽어 나갔으며, 그들이 원래의 세계 혹은 천상으로 이동하려 한다는 것을 알기에 로칸이 무지개 전송기 주변을 장악해 버린 탓이었다.
덕분에 죽을 때마다 골드와 코인을 드롭한 국제길드연합 소속의 유저들 중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갈 차비를 잃었다.
심지어 귀환 비용을 받고 난 이후에도 죽임을 당해 소지금의 일부를 잃어버리면서 돈이 모자라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사냥터라도 마음껏 쓸 수 있다면 어떻게든 채워 보겠는데 당장 한국 유저들이 복수의 칼을 갈며 주변을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으니 사실상 무지개 전송기 안에 셀프 감금이 된 상태였다.
“항복할래, 쥐어 터질래?”
그런 그들에게 로칸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항복하고 순순히 구금된다면 죽이지는 않겠다.
어차피 무지개 전송기 내부가 공격이 불가능한 세이프티 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포로로서 대우를 해주겠다는 로칸의 말에 홀랑 넘어간 대부분의 유저들이 두 손을 들고 자신해서 밖으로 나왔다.
“컥, 분명 포로 대우를……!”
“그래, 포로지. 전쟁 포로, 새끼야!”
퍼억.
하지만 그들은 원하던 인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
실컷 제멋대로 타국을 침공해 학살을 벌여 놓고 패배하니까 이제 인도적인 대우를 해 달라고?
어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썽을 부리지 않고 처분에 따르겠다는 계약서까지 작성한 그들은 그야말로 ‘숨’만 붙어 있었다.
자신의 의지였든 아니었든 대한민국을, 로칸의 영토를 감히 침범한 죗값을 몸으로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사이, 로칸은 소위 국제길드연합이라 불리는 것들의 리스트를 뽑고 그들이 식민지화한 국가들의 리스트를 뽑았다.
딱 열 명. 전후 뒤처리를 책임질 인원들만을 데리고 무지개 전송기를 사용해 그곳들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식민지의 탈환은 곧 그들 세력의 약화로 이어질 테니까.
굳이 한국이 그들을 지배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식민지에서 자원을 쥐어짜 봤자 절대적 강자 한 명에게 맥을 못 추는 것을 몸소 보여 주지 않았던가?
이른바 ‘해방군’이라 불리는 1인 군단의 해방 작전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