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6화.마계 대공 (1) (426/500)

 # 426

마계 대공 (1)

마계 대공.

왕이 없는 마계를 나누어 지배하는 일곱 지배자 중 하나.

아니, 얼마 전 뱀파이어 로드가 실각한 탓에 이제는 여섯뿐인 지배자들 중 하나를 의미하는 이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것은 역시 바큘이라는 이름의 순수 마족이었다.

그런 그가 전 마계를 대상으로 선전 포고를 하였다.

정확히는 가장 인접한 마계 영지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지만 그 또한 다른 마계 대공의 영토의 일부였으니,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계 대공 간의 힘의 균형을 깨려 드는 것은 곧 마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마계 대공 모두에게 시비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용하군.”

그러나 그 파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기습 공격을 통해 열 개나 되는 영지를 단숨에 빼앗긴 아크 리치 슈발츠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계 대공 간의 싸움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기는지 알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들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과거 로칸이 그몰탄을 사냥할 당시 이불리안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심장을 취해 갔던 것처럼, 둘이 양패구상의 모습을 보이면 뒤늦게 참전하여 그들의 신성만 쪽 빨아먹으려는 수작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로칸의 존재.

바큘의 선봉장을 자처하며 이리저리 슈발츠 휘하의 반신들을 요리하고 다니는 로칸 탓에 정작 바큘의 전력은 거의 온전하다 할 정도로 소모가 없었다.

“나야 땡큐지.”

하지만 마땅히 제제를 가할 방법도 없었다. 

로칸의 공식적인 소속은 무소속.           

그저 천족의 현상 수배를 피해 바큘에게 몸을 의탁한 것으로 보이니 어찌 그와 바큘을 막아설 수 있을까.

갑작스런 변수의 등장에 당황해하다가, 순식간에 로칸이 슈발츠의 본성 문턱을 넘는 것을 허용해 버렸다.

“카이!”

[엘리멘탈 빅버드 카이가 폭력의 왕 로칸에게 테트라 엘리멘탈을 사용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모든 속성 공격에 면역을 가집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아크 리치 슈발츠에게는 로칸과 카이가 상극이었다.

애초에 주문 계열 사용자에게 근접 계열은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일정 수준을 넘으면 각종 이동 방해 스킬과 탈출기 등으로 인해 거리를 주지 않아서 역으로 근접 계열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수 있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로칸의 능력들이 너무나 사기적이었다.

신급으로 성장한 불굴의 의지는 정신 계열 뿐 아니라 육체의 제약마저 풀어내는 능력을 지녔고, 카이의 창조 스킬인 테트라 엘리멘탈은 마법의 근원이 되는 모든 속성 공격을 무력화시켰으며 어렵게 완성시킨 주문 역시 로칸이 휘두르는 파괴의 신성에 잘리고, 카이의 엘리멘탈 브레스에 방향이 틀어지며 제 효과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슈발츠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미 죽었지만 말이다.

“운이 좋군.”

애초부터 신성으로 찍어 눌렀다면 제법 고전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의 신성의 근원인 세계 : 마도제국을 활용했다면 로칸으로서도 난감한 일이 꽤나 발생 했을 터.

그러나 아직 로칸의 레벨이 낮다는 것이, 보유한 신성의 양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방심을 이끌었다.

눈앞의 칼날인 로칸을 보는 대신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을 바큘을 신경 쓰느라 승부를 볼 타이밍을 놓친 것이 패인이었다.

그리고 그 방심이 로칸에게 큰 이득을 안겨 주었다.

“제길, 안 돼!”

슈발츠의 몸이 허물어지는 순간,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른 것은 다름 아닌 바큘이었다.

로칸이 놈의 힘을 적당히 빼 놓고 죽으면 자신이 나서 놈을 처치하고 신성과 세계를 흡수할 작정이었는데, 뜬금없이 로칸에게 죽어 버리다니?

그러고도 어찌 마계 대공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은 슈발츠의 멍청함에 분통을 터트리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로칸을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때려죽여 신성을 토해 내게 만들고 싶었지만 바큘은 그럴 수 없었다.

아직은 로칸이 필요하니까.

여기서 로칸을 죽인다 해도 그가 획득한 신성의 전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방문자의 특성상 어중간한 반신을 사냥한 정도의 어중간한 신성만 얻게 될 것이다. 

라푸제와의 계약은 자동 파기가 될 것이고.

이미 전쟁을 일으킨 이상, 겨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어차피 놈이 슈발츠를 죽인 것은 요행에 불과할 터, 다음 번에는 꼭 자신이 마계 대공의 신성을 취할 것을 다짐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세계 : 마도제국을 인수하시겠습니까?]

“오호.”

그러는 사이 로칸은 슈발츠에게서 획득한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뱀파이어들의 세계를 엿보았을 때는 도무지 써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리치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몽땅 언데드일 수도 있지만 놈의 정확한 포지션은 언데드의 군주가 아니다. 

그저 마도의 끝을, 정점을 보기 위해 생의 불씨마저 포기한 존재 일 뿐.

얼른 세계를 훑자 역시나, 만족할 만한 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이라……. 나랑은 안 맞지만 써먹을 순 있겠지.”

[세계 : 마도제국을 인수했습니다.]

[세계가 잠시 보관됩니다.]

이번에는 인수를 택했다. 

마도는커녕 간단한 마법에 대한 이해도 없는 로칸이지만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폭력의 왕이니까.

그리고 그 폭력이라는 단어에는 꼭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았다. 

로칸이 도끼를 주 무기로 사용하지만 그의 세계 명부마도의 모든 이들이 도끼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마도라면 충분히 이용해 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가벼운 저항이야 있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무마시킬 자신이 있었다.

“다음은 어디지?”

이것을 흡수했다면 얻을 수 있었을 막대한 신성이 아쉽긴 했지만 이미 슈발츠 휘하의 반신들을 잡아먹으며 상당한 신성을 쌓았기에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아직도 넷이나 되는 마계 대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

쿠구구궁!

세계 : 명부마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인간 영웅들이 탄생하고, 이종족을 폭력으로 굴복시킨 그 세계에 새로운 세상이 접붙은 것이다.

흐릿한 안개로 가려진 해안 너머에서 건너온 몇 명의 마도사들. 그들이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세계 : 마도제국.

이제 겨우 지상을 통합하며 안정을 찾아가던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나타났다.

폭력의 신이자 폭군의 신.

같은 신을 모시는 이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화친이나 동맹 따위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신이 바라는 것은 고작 그런 담합이 아니니까.

두 세계는 서로를 인식하자마자 강한 적의를 드러냈고 명부마도의 무력과 마도제국의 마법이 맞붙어 새로운 전쟁의 불길을 피워올렸다.

‘이기는 편 우리 편이다.’

그 가운데에서 로칸은 누구도 응원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가능한 최대 속도로 시간을 가속한 탓에 세계 : 명부마도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았고 가진 바 무력 또한 마도제국에 크게 뒤지지 않았으니까.

다만 스스로 키워 낸 세계인만큼 어느 정도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여 새로운 권능을 부여했다.

권능 : 테트라 엘리멘탈

카이가 사용한 절대 속성 면역의 힘은 아니었지만 이종족과의 전투를 통해 강해진 명부마도 세계 속의 인물들이 가진 속성 저항력이 또 한 번 강화되었다.

오랜 세월 마도만을 연구해 온 이종족 연합을 상대할 힘을 얻었다.

“시간 가속 1만 배.”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미 두 세계 모두 자신의 것이고 굳이 한쪽의 손을 들어 줄 필요는 없다.

최후에 승리하는 자.

그리하여 두 세계를 통합하는 세력이 곧 자신의 신도가 될 것이고 그들을 통해 지하 세계와 천상 세계의 문을 열 터였다.

그 전에 남은 두 세계의 승자들을 이겨 낼 수 있다면.

로칸은 자신의 세계 주민들에게 끝없는 시련과 정복의 역사를 선사하였다.

***

마계 전쟁은 매우 다이나믹하게 전개되었다. 

로칸을 앞세운 바큘의 군대는 파죽지세, 연전연승의 업적을 세우며 승리해 나갔고, 마계 대공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전투력을 지닌 로칸이 선두에서 마구 날뛰어 주었기에 피해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니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다른 마계 대공들도 함부로 전쟁에 뛰어들 수 없었다.

아예 다른 종족, 다른 진영과 힘을 합친다면 모를까 마계 대공이란 작자들은 서로 손을 잡는 이들이 아니었고, 어설프게 참전했다간 자신도 힘을 잃어 다른 대공의 침공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로칸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반신들을 때려잡으며 무수한 신성을 흡수했고 그것을 토대로 더욱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간혹 그를 당황케하는 반신들도 존재했지만 결국 로칸의 배틀 액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폭력의 왕 로칸][Lv 487]

벌써 490레벨을 목전에 둘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때문에 다른 마계 대공들은 한 가지 수를 내었다.

바로 천족과의 결탁.

1급 천족 암살범으로 낙인을 찍어 현상금까지 건 상태이니 그들도 로칸의 소재를 알게 된다면 뭔가 수를 내지 않겠나?

하지만 그것은 천족들을 너무 쉽게 생각한 일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거절.

정확히는 거절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이해했다.

‘그 남을 믿지 못하는 족속들이 이곳까지 올 리 없지.’

아무리 라푸제가 역모의 누명을 씌워 로칸을 쫓아냈다지만 그를 쫓아 마계까지 천족의 정예를 보낼 생각까지 할까? 

아니다. 어차피 로칸은 죽여도 부활하는 방문자였고, 당장 천계에서 분탕질을 치는 것도 아니니, 이참에 그를 통해 마계의 힘을 약화시킬 생각으로 미적거리는 것이다.

게다가 설혹 로칸을 몇 번이고 사냥해 내는데 성공한다 해도 음흉하기 짝이 없는 마계 놈들이 자신이 보낸 천족 정예들을 무사히 돌려보낼 지도 의문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힘을 보전하고 키워 가며 차후 로칸이 자신들에게 칼날을 들이댈 때를 대비하는 것이 낫겠지.

“흐흐흐흐, 멍청한 놈들!”

그 소식을 중간에서 슬쩍 전해 들은 바큘은 득의의 미소를 띄었다. 

라푸제와 자신이 협정을 맺었는데 천족 따위가 이곳에 올 리가 있나. 

오히려 바큘이 자신이 구두상으로 협약을 맺은 이가 라푸제라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 오해 속에서 로칸은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다듬고 신성의 활용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제 잇속을 확실하게 챙겼다.

‘이불리안도 제법 잘해 주고 있군.’

그사이 세력 확장을 맡은 이불리안은 꽤나 잘해 주고 있었다. 

로칸이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귀띔해 주자 경악하긴 했지만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싸움질을 하고 다닌 것이다.

로칸의 예상 대로 바큘이 벌인 전쟁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 벌써 로칸과 이불리안의 세력도는 기존의 2배 이상 커진 상태였다. 

그만큼 놈의 신성 또한 커졌겠지. 로칸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사이, 로칸은 벌써 두 번째로 마계 대공의 앞에 섰다. 배틀 액스를 꼬나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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