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9화.마계 대공 (4) (429/500)

 # 429

마계 대공 (4)

발록의 세계인 투쟁의 장.

바큘의 세계인 탐욕의 보석함.

두 세계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투쟁의 장은 철저히 힘과 강함을 위해 투쟁하는 세계이고 탐욕의 보석함은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탐욕하고 온갖 비열한 일들과 비인도적인 일들을 서슴지 않는 세계였으니까.

그렇기에 로칸의 선택은 간단했다.

“투쟁의 장만 인수하겠다.”

그간 지켜봐 온 바로는 마계의 반신들이 가진 세계는 인간과 맞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악마들이 지배하고, 인간을 비롯한 이 종족의 고혈을 빨아 힘을 채우는 식인 데다 이미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정신을 다잡아 시작할 수 있는 유명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 살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물론 인간 반신의 세계라고 꼭 인간이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마계 반신들의 세계는 설정 단계에서부터 어딘가 어긋나있거나,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막장인 경우가 많았다.

설령 로칸이 인수를 한다 해도 어찌 상황을 뒤집기 어렵고, 뒤집을 수 있다 해도 막대한 신성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 곳들.

그렇기에 로칸은 본래 두 세계 모두를 흡수할 생각이었지만 투쟁의 장을 살짝 들여다 본 결과, 마음이 바뀌었다.

‘비슷하네.’

그 세계는 어떤 면에서 로칸의 명부마도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순수한 힘을 추구하며 자신을 단련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얄팍한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대신 철저히 힘으로 적을 분쇄한다는 점도 그렇다.

다만 투쟁의 장은 주인인 발록을 닮아 정치나 문화, 기술 따위가 영 부실하기는 했는데, 드워프나 엘프 등 몇몇의 인원에게 제작과 행정을 맡길 뿐 나머지는 매일 같이 우르르 몰려 나가 사냥을 하거나 쌈박질을 하는 식이었다.

그 싸움에서도 군단의 힘보다는 개인의 무력을 겨루는 것이 대부분이고.

발록 씩이나 되는 인물이 만든 세계 치고는 약간 허술한 면이 보였지만, 반대로 참 발록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인수했을 때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권능 : 폭력의 미학을 사용하셨습니다.]

로칸은 투쟁의 장을 제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자마자 세계의 주민들에게 권능을 알렸다. 

그리하여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음을 알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록이 특정 종족을 편애하지 않고 순수하게 싸움을 좋아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이거 어쩌면…….’

개종이라는 것은 본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성향이 잘 맞았다. 

백귀야행이나 악귀천하 때처럼 특수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았어도 그저 그들의 투쟁을 장려하고, 오히려 폭력의 미학을 찬양하면서 발록에게 돌아가던 신성이 온전히 로칸에게로 돌아오도록 만든 것이다.

아마 발록이 사용하던 권능과는 또 다른 효과이겠지만 투쟁의 장에 속한 세계의 주민들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들이 싸움을 벌이고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할 때마다, 적지 않은 신성이 로칸에게로 흘러들어 왔다.

“흐흐흐흐!”

덕분에 로칸은 투신이라 불리던 발록의 세계를 흘리는 것 없이 홀랑 집어먹었다. 

거기에 기념이라기엔 뭐하지만 발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기술, 행정에 대한 노하우를 추가하자 이제는 정말로 투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존에는 사냥을 해서 식량을 구해 놓아야 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가축을 기르고 식량을 재배하는 인원을 따로 두는 구조랄까.

“헝그리정신, 좋지. 근데 근성만으로 강해지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성장 방법도 있는 법이지.”

배고픔이 있어야 더 처절해진다는 발록의 미학과는 조금 벗어나는 것이기는 했지만 로칸은 그 생산 인원들을 다른 쪽으로도 활용했다.

구경꾼. 그리고 이야기꾼.

그들은 생산 인력임과 동시에 그들의 전투를 보고, 기록하고, 환호하는 관객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이야기의 힘을 더해 주고,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다른 측면에서 부각시켰다.

그들을 동경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만들고, 원래는 죽어 없어졌어야 할 특별한 기술들이 기록되고 전승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투쟁의 장에 소속된 주민들은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로칸이 만든 세계인 명부마도와 하나가 되어 자웅을 겨루게 될 그날까지 끊임없이 투쟁하고 또 투쟁할 터였다.

[폭력의 왕 로칸][Lv 493]

늘어난 신성은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 : 탐욕의 보석함을 파괴하고 신성으로 바꾸어 흡수한 신성이 고스란히 로칸의 몸속에 남았다. 

신성이 증가함에 따라 레벨도 대폭 상승한 상태.

마계 대공이라 불리는 이들의 신성인 만큼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러다 진짜 마계 통일하자마자 신위를 얻는 거 아니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칸 자신도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신위에 오른다는 것은 그 기반이 되는 세계에서 막대한 양의 신성을 지속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언제 다시 반신의 자리로 끌어 내려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계속해서 신성을 갈취해야 하는데, 당장 광풍이 상대가 없어 제대로 전투를 즐기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그게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반.

자신이 보유한 네 개의 세계를 제대로 성장시키고 ‘궁극’에 가까운 상태를 만들어야만 신위에 합당한 능력을 지닐 수 있을 터였다.

‘아직 멀었지.’

그런 관점에서 자신은 아직 멀었다. 

부족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 명부마도는 마도제국과의 전쟁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을 끝마친다 해도 지하 세계와 천상 세계라는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신위에 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곳들을 모두 굴복시킨 이후가 되겠지.

백귀야행이나 악귀천하도 아직 유령들의 세력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많았고 말이다.

그나마 가장 완성에 가까운 것이 투쟁의 장인데, 그곳을 본진으로 바꾸기에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로칸의 목표는 마도제국을 접붙였듯, 이들 네 개 세계를 모두 합치는 것.

그러기 위해 지금은 각 세계를 성숙시킬 필요가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그를 위해 레벨의 다운을 감수하고 각 세계에 막대한 신성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

[폭력의 왕 로칸][Lv 487]

로칸은 바큘의 세계를 쪼개 획득한 신성 전부를 자신의 세계에 재투자했다. 

수십억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신성이지만 지금이야말로 승부수를 던져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게이머의 감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의 신성은 과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만한 신성이 들어간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로칸의 화신.

고작 성향과 성격만을 닮은 것이 아니라 로칸 자신을 아예 복사해서 그 세계에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반신의 힘을 가진 자신을 강림시키기에는 오히려 신성이 부족했기에, 그저 자신의 역사를 담은 신성을 떼어 새로운 생명을 빚어 낸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대단했다.

화신이 지닌 것은 로칸의 힘과 기술만이 아니라 전투 센스와 지식까지였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를 왕으로 만들거나, 성장시키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약간의 축복과 권능을 개인에게 부여하긴 했지만 4개의 세계에서 각각 스스로 성장하게 방치했다.

자신의 화신이라면 그냥 두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과 자신감 때문이었다.

시간을 가속시키고, 로칸 본인은 다시 현재에 집중했다.

마계 통일.

그리하여 마계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

이미 그 절반은 이루었다 말할 수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안심 할 수 없었다.

“징집.”

로칸은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을 끝마치자마자 바큘과 슈발츠, 발록의 영지의 소유권을 몽땅 가져온 뒤 대규모 병력을 징집했다.

막대한 영토, 수많은 거점들에서 병사들이 몸을 일으키니 코인이 홍수처럼 흘러 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로칸조차 타격이 있을 만큼의 막대한 양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금방 다시 회수할 수 있으니까.

더구나 이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경우,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주 많았다.

‘마계 진영으로 넘어온 유저들한테만 삥 뜯어도 이 정도는 금방이지.’

그다음은 이불리안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어쨌든 동맹이고, 그 역시 나름대로의 업적을 쌓았으니까.

로칸이 먹어 치운 마계 대공 셋의 영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중 하나와는 비견될 만큼 꽤 많은 영토를 삼킨 녀석이었다.

때문에 로칸은 슈발츠에 운영하던 영토를 놈에게 넘겨주었다.

절반씩 가지기로 한 약속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을 통해 징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는 의도도 있었다.

‘서로 가로막히는 형국이지만 이쪽이 좀 더 유리하지.’

아크 리치 슈발츠의 영토라 발록과 바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보니 서로 가진 영토가 쪼개지는 느낌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계약서가 있긴 해도 어느 한쪽이 꼼수를 써서 배신하는 경우, 슈발츠의 영지는 멀리 떨어진 이불리안의 영지의 도움을 제때 받기 어려울 테니까. 

배신을 억제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래 봤자 할 놈은 하겠지만.’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정말 엄청나군.”

로칸의 연락을 받고 모습을 드러낸 이불리안은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바큘과 슈발츠는 그렇다 치더라도 투신 발록을 처치하다니!

마계 일통에 가장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했던 존재를 미리 꺾어 놓았으니 녀석의 표정이 밝아진 건 당연한 일이다.

[정수 약탈자 이불리안][Lv 491]

하지만 이불리안의 성장도 놀라웠다. 

로칸이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주변 영지들을 점령하며 막대한 신성을 쌓은 것이다.

반신이라고는 하지만 주변에 있던 놈들은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들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많은 반신을 잡아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레벨은 보이는 것일 뿐, 로칸 자신처럼 인수한 세계를 몇이나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지.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물론 그에게는 특별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정수 약탈자라는 이명이 붙었을 만큼, 상대의 심장 또는 정수 등을 취할 때 손실을 최소화하여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반신에 오른 그가 신성을 흡수할 때도 다를까? 

로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흩어지는 신성을 최소화하여 알뜰하게 짜 먹은 덕에 491이라는 엄청난 레벨을 달성하게 된 것이겠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녀석 또한 나머지 세 명의 마계 대공을 사냥하면 신위를 획득할 자격을 얻을지 몰랐다.

“그럼 다음은 어디를 칠 생각이지?”

그간의 근황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던 이불리안은 돌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남은 세 명의 대공 중 누구를 먼저 칠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모두 칠대죄악이라 불리는 강력한 고유 신성을 지닌 이들.

누구 하나 쉬운 상대가 없었지만 로칸은 여유 있게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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