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9화.타락과 공허 (3) (439/500)

439 타락과 공허 (3)

‘사도의 스킬에서 타락의 기운이 나와?’

로칸은 일단 신성을 끌어올렸다.

타락의 힘이라고는 해도 로칸에게는 타이틀 공허를 품은 자가 있다.

타락을 품었다 해도 그저 로칸에게는 조금 더 위력이 강한 공격 정도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반신도 되지 못한 사도 따위의 공격이 강해 봤자 큰 의미는 없었다.

이미 499레벨에 이른 반신들마저 상대해 본 그가 아니던가?

파괴의 신성.

그것이면 족하다.

그 힘을 은근히 끌어올린 뒤, 자신에게 뿜어지는 신성의 포격을 갈라냈다.

“제길, 역시인가!”

하지만 그들 역시 단번에 로칸을 거꾸러뜨릴 생각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첫 포격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즉시 스킬을 연계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고유한 힘을 끌어올려 로칸을 공격해 왔다.

“부식의 강철검!”

“……?”

이건 처음 보는 스킬이다.

강철거인의 거검과 같은 힘에 사이한 어떤 기운이 더해졌다.

로칸은 가볍게 부딪혔지만 신성을 좀먹는 느낌에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그뿐.

놈의 검이 산성 슬라임처럼 상대를 녹이는 힘이라면 로칸의 배틀 액스는 아예 파괴병기다.

고작 슬라임 따위가 뭘 어쩌겠다고?

로칸의 배틀 액스가 놈을 파괴했다.

타락과 함께 강철의 신성마저 베어 냈다.

놈이 자신하던 타락을 가미한 신성?

압도적인 신성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일 뿐이다.

검을 부수고, 강철의 사도마저 그대로 뭉개 버렸다.

“미친!”

“이게 안 통한다고!”

아마도 다른 반신을 상대해 본 적 있던 모양이지만 그들과 로칸을 같게 보면 오산이다.

당장 로칸은 그랜드 마스터일 때부터 마제스티 마스터를 때려잡고 다닌 이가 아니던가?

솔직히 이 정도는 막 반신에 올랐을 때도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였다.

“빅뱅!”

이미 기호지세라는 것일까.

강철의 신의 사도가 일격에 참살당했음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타락의 힘을 듬뿍 담은 신성을 끌어올려 로칸의 몸에 꽂아 넣었다.

“……병신들!”

그 필살의 일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로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위력이 강해서?

아니다. 이 정도 쯤이야 신성을 조금만 일으켜도 단숨에 우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로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 신성 스킬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역시나.’

얼핏 보기에는 하나의 완벽한 스킬 같지만 로칸은 알 수 있었다. 신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까닭이다.

그들의 신성은 어딘지 단절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힘이 가닥가닥 끊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분절된 마디마디에 깃든 것이 타락의 힘이었다.

그뿐 아니라 분절된 지역을 중심으로 신성들이 부분부분 타락에 물들어 있었다.

그 덕에 결과적으로 더 강한 위력을 내고는 있지만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다.

과연 타락이 그처럼 영향을 미치는 것이 스킬에 한해서일까?

독침처럼 파고든 타락의 기운은 신성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그런 건가.’

그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로칸의 과대망상일지 모르지만 만약 타락의 기운이 그들의 신성 연결을 타고 오르면 어떻게 될까?

그들에게 신성을 부여한 신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을 수 없을까?

혹시나, 타락이 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반신들마저 꺼려 하던 공허였으니, 신이라고 자유롭다는 보장이 없었다.

어쩌면 신마저 타락시킬지도, 그것을 미리 알아챈 신이 신성 연결을 끊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된다면 사도는 버림을 받게 될 테고 사도라는 이름을 버려야 하게 될 터였다.

남은 것은 타락뿐.

그 상태로 나중에 반신의 위에 오른다면?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겠지.

어쩌면 팀 라그나로크처럼 공적으로 지정되어 유저 전체에게 쫓겨 다닐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더 로드를 접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키우기에는 그동안 이뤄 온 것들이 너무나 아쉬울 터였고.

“부서져라!”

물론 로칸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의 속에도 타락의 신성이, 공허가 깃들어 있기는 했지만 아직은 꿈틀거리는 느낌조차도 없으니까.

파괴의 신성이 사도들의 타락한 신성을 갈랐다.

아무리 파워업을 했다 해도 신위를 눈앞에 둔 로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공간 전체가 소멸하고 그들이 가진 신성의 구슬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신성으로 흡수한다.”

사도들이 각자 모시는 신의 권능이 신성의 구슬에 담겼지만 로칸은 굳이 그것들을 다시 얻을 생각이 없었다.

신성으로 흡수한 뒤 다시 욕망의 나침반을 발동시켰다.

‘가만, 그럼 내 세계의 어딘가에도 공허나 타락이 있는 건 아닌가?’

다음 상대를 찾아 몸을 날리다가, 문득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상과 천상.

하지만 그것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어쩌면…….’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지하 세계였다.

이름부터가 음습하고 냄새나는 명부마도의 마지막 세계.

공허나 타락은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는 일. 로칸은 즉시 신성을 일으켜 한 가지 권능을 추가했다.

[권능 : 공허를 품은 자를 사용했습니다.]

자신조차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는 능력이긴 했지만 적어도 공허와 타락의 힘에는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힘에 저항할 수만 있어도 로칸이 다음을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지하 세계의 개방은 좀 미뤄야겠군.’

어쩌면 백귀야행과 악귀천하의 세계에서는 그들을 좀 더 빨리 만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들의 정체와 온전한 해법을 찾기 전까지는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들을 사냥하며 타락의 신성을 흡수하는 것은 로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지금 천상에 있는 어떤 존재들보다도 가장 큰 타락의 신성을 지닌 것이 로칸이었다.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이미 기호지세다.

멈춘다 한들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오히려 얼른 퀘스트를 완료하고 타락의 신성에 대한 이해와 저항력을 획득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었다.

“카이, 서두르자.”

로칸과 카이의 이동 속도가 더 빨라졌다.

흩어진 ???들을 처치하고 그 수를 마침내 한 자리 수까지 줄여 놓았다.

[성공 조건 : ???의 격살 99 / 108]

남은 숫자는 이제 고작 아홉.

그들을 처치하는 동안 사도 무리를 한 번 더 만나긴 했지만 이제는 더 볼 것도 없었다.

타락을 품은 사도의 신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파악을 끝냈으니까.

마주치자마자 기다려 주지 않고 한꺼번에 베어 냈다.

“저, 저는 PK를 한 적이 없……!”

“뭐 어쩌라고?”

머더러 카운트?

이미 마왕이 된 이에게 그 까짓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당장 반신만 되어도 어지간한 지역에는 머더러 카운트와 상관없이 들어 갈 수 있었기에 로칸은 거리낌 없이 그들을 베었다.

저항하지 않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저항하지 않은 것인지, 그런 척을 하는 것인지 알게 무언가.

이미 국제길드연합과의 전투에서 한 번 척을 진 적 있던 이들이기에 감히 반발이나 항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사도 무리를 쳐부수자 그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았다.

로칸 역시 타락의 힘을 노리고 있다는, 다소 자의적인 해석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알 바는 아니다.

그들이 로칸이 나타난 낌새만 보여도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아예 몇몇은 놈을 사냥하지 않을 테니 자신들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로칸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보이면 잡을 뿐이니까.

“뭐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성공 조건 : ???의 격살 100 / 108]

사도들이 물러서겠다는 뜻을 보이고 뒤로 호박씨라도 까는 것일까?

로칸이 도착하기 전에 다시 욕망의 나침반이 빙글빙글 도는 일들이 자꾸만 발생하는 것이다.

[성공 조건 : ???의 격살 101 / 108]

로칸이 도착하기 전, 누군가 대상을 죽였다는 뜻이다.

그 증거로 퀘스트 완료창이 천천히 채워지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나?’ ‘엿 먹이려는 수작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절묘하게 로칸의 먹잇감을 누군가 채갔다.

이제 남은 숫자가 얼마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타이밍이 묘했기에 로칸이 놈들을 쫓는 것을 잠시 멈출 정도였다.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야.’

카이를 이용한 로칸의 이동속도를 생각하면 동선이 같다고 채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우연이거나, 다수이거나.’

때문에 로칸은 냉정하다 판단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놈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가 아닌 다른 이들이.

사도의 위를 가진 이들이 놈들을 노린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정보망을 가동했기에 그들이 행동을 정지했다는 사실은 확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누굴까.

일반 유저? 아니면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사도?

그도 아니면 어딘가의 반신?

“그러고 보니 잠적하고 있다고 했지.”

유력한 것은 가장 후자였다.

타락한 반신들이 한참 날뛰다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몇몇은 사냥당해 사라진 것이지만 상당수의 타락한 반신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냥했다는 이도 없었고, 사냥당한 흔적도 없었다.

타락에 물든 이상 파괴 행위를 자행할 테니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기 마련임에도 누구도 그들의 행적을 쫓지 못했다.

“뭔가 있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그들을 규합한 어떤 강대한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얀켄이나 캬루파 정도 되는 인물이 완전히 타락했다면 어설픈 타락자들은 쉽게 굴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눈앞의 파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으고 응축시켜 한 번에 터트리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젠장, 어떻게 찾아야 하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

예상은 되는데 원흉을 찾을 방법이 없다.

욕망의 나침반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뭐라고 설정을 해야 할 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욕망의 나침반 사용.”

한참을 고민하던 로칸은 과감히 놈들을 쫓는 것을 포기했다.

설령 퀘스트가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중요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 가장 큰 타락의 힘을 가진 존재를 찾아라.”

타락의 힘. 그 자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이 이름을 잃은 ???이라도 좋고, 타락한 반신이라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이 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존재일 테니까.

핑그르르르르.

탐욕의 나침반이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전설을 타는 자!”

그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성공 조건 : ???의 격살 102 / 108]

그러는 사이에도 ???의 숫자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저 새끼가……!”

핑그르르.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목표.

놈을 확인한 로칸의 얼굴에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노기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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