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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화.라푸제 (4) (447/500)

447 라푸제 (4)

“젠장!”

돌아가서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파괴의 신성을 끌어올린다 한들 상쇄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고, 막아 낸다 한들 자신이 입는 피해 역시 만만치 않을 터였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신성 배척!”

절체절명의 순간, 로칸이 꾀를 내었다.

수호의 펜던트의 존재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신성 배척.

일정 범위 안의 신성을 모조리 증발시켜 버리는 수호의 힘이 발동했다.

정확히 결계의 안쪽으로 펼쳐지며 라푸제가 쏘아 낸 신마 융합의 힘을 극도로 약화시켰다.

콰앙!

이미 쏘아진 힘이기에 그 물리력까지는 어쩌지 못했지만 고작 그 정도에 파괴될 신성 결계가 아니었다.

결계 역시 이미 신성을 머금고 만들어진 상태였으니, 신성의 결계를 그저 강한 힘으로 후려친 결과만 남았을 뿐이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려 수호의 에인션트 골드 드래곤이 가지고 있던 힘에 대해 알 리 없는 라푸제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지만 로칸은 대꾸하지 않았다.

반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 육신을 움직여 놈을 갈라 낼 뿐이다.

“커헉!”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성장해 온 로칸과 달리 라푸제는 날 때부터 고위 천족의 힘을 지닌 존재였다.

신성을 잃어버리자 쉽게 적응할 수 없었고, 그 육신에 담긴 힘이 출중함에도 5할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퍼억. 퍼억. 퍼억.

그런 몸으로 로칸의 일격을 감당 할 수 있을 리 없다.

힘겹기는 로칸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경험해 본 적도 있기에 빠르게 적응하며 본신의 힘을 모두 쏟아 냈다.

배틀 액스가 꽂힐 때마다 라푸제의 몸이 찰흙처럼 패이고 뭉개지며 생명력이 바닥을 쳤다.

기본적인 육체 강화 능력이 있기에 어떻게든 버티기는 했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 난 이 세계의 왕이다! 인간 따위에겐 절대……!”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퍼억!

마지막까지 정신 나간 놈처럼 중얼거리는 놈을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패고, 또 패고. 깐데 또 까면 제 놈이 죽지 않고 버티겠는가.

로칸의 일격 일격에 누적되던 대미지가 한 순간 폭발하며 녀석의 몸을 허물어뜨렸다.

“신성 배척, 캔슬.”

[세계 : 선택받은 자들의 땅을 인수하시겠습니까?]

“아니.”

놈을 처리한 로칸은 일단 신성 배척부터 해제시켰다.

그래야 신성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

광신도들의 세계인 선택받은 자들의 땅은 당연히 인수를 거부했고, 그 대신 놈이 가지고 있던 막대한 신성이 몸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마계 대공들처럼 순수한 실력으로 오른 자리가 아니기에 조금 부족한 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작은 양의 신성은 아니다.

“쳇.”

[폭력의 왕 로칸][Lv 498]

그러나 아쉽게도 499레벨을 달성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마침 신성의 소모도 거의 없이 놈을 처치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건만 유실되는 신성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499레벨에 이르기 위해서는 놈과 동급쯤 되는 반신을 최소 몇이나 더 잡아야 할 듯싶었고, 그렇기에 로칸은 이대로 결계를 유지하다가 499레벨을 채우고 나갈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대로 결계를 해제한다면 자신의 정체가 모두 탄로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폴리모프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온 뒤에 다시 하멜로 위장을 하고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만약 이대로 나갔다가 다시 역적으로 몰려 수도에 있는 천족 전원의 공격을 받는다면, 제아무리 로칸이라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혹여나 죽거나 너무 많은 신성을 소모해 버린다면 애써 이곳까지 온 보람이 사라진다.

“어쩐다.”

로칸은 한참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앉은 채로 고민했다.

“아니지, 꼭 내가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다 문득,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성 결계는 결국 존재를 가두는 힘이다.

시스템까지 막지는 못한다는 뜻.

로칸은 즉시 메시지를 보내 하멜을 소환했다.

모습을 감추고 이쪽으로 올 것을, 그리하여 자신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할 것을 말이다.

-하멜 :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로칸 : 어떻게 할 거냐면 말이지…….

막간의 작당 모의를 끝낸 로칸은 조율한 대로 타이밍을 쟀다.

타이머를 소환해 인터페이스 한쪽에 두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신성 결계 해제! 폭렬!”

콰과과과광!

결계가 해제되며 동시에 강력한 폭발이 그의 주위로 폭사했다.

그 힘에 말려드는 천족들도 있을 테지만 그걸로 죽는 놈들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들의 신성이 모두 로칸에게 흘러들어 올 테니까.

하지만 그가 폭렬을 사용한 이유는 공격이 아닌 은신을 위함이었다.

그렇게 폭연이 하늘을 높이 뒤덮은 사이 로칸은 신성의 장막을 둘러 몸을 숨겼고, 도시 외곽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하멜은 재빨리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순간 이동 마술을 하듯, 로칸이 있던 자리에 원래 있던 것처럼 대신 서 있었다.

애초부터 그였다는 듯 연기를 시작했다.

“콜록콜록.”

“엇, 저기……!”

“사도! 사도 님이시다!”

“그, 그럼 라푸제 님은?”

폭연이 걷히고 하멜이 홀로 고고히 모습을 드러내자 천족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설마 라푸제가 당할 줄이야!

아무리 천신의 사도라고 하지만 고작해야 그랜드 마스터 급이 아니던가?

천신의 신성을 빌려 쓴다지만 반신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라푸제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던지 고위 천족들은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우와아아아아!”

반면 일반 천족들은 흥이 올랐다.

하멜이 천신의 힘을 증명한 셈이니까.

그의 힘을 빌어 반신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까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천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로칸 : 시작해.

그와 반대로 안절부절못하는 고위 천족들을 살핀 로칸이 하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라푸제와 자신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상황을 지켜보며 슬금슬금 몸을 빼 낼 준비만 하고 있지만, 괜찮다 싶으면 얼른 하멜에게 붙어먹을 놈들이기에 로칸은 준비한 멘트를 하도록 지시했다.

“천신께서 말씀하시길, 고귀한 천신의 핏줄을 죽이고 위대한 핏줄들을 속인 악적들이 이곳에 있다 하셨습니다.”

웅성웅성.

하멜의 발언에 천족들이 동요했다.

라푸제가 천신의 핏줄을 죽였다고?

그건 로칸이라는 인간이 벌인 짓이 아니었나?

자신들이 아는 것과 다른 이야기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설마하니 고위 천족, 그것도 2급 천족이자 조금 전까지 1급 천족의 위에 있던 이가 모두를 속였다니!

실은 그 자리를 탐하여 제 손으로 역천의 행위를 벌였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가 제자리에 얼어붙었고, 그 일을 도왔거나 묵인했던 3급 이상의 고위 천족들만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하여 그 역천의 수장을 처단했으니 이제 그에 동조한 악적들을 처리함으로서 천족의 명예를 바로 세우고, 위대한 천신의 의지가 살아 있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젠장!”

이어 쏟아진 하멜의 말들에 고위 천족들이 식겁했다.

자신들을 처단하겠다는 의지가 명백했기에 먼저 손을 쓰거나 몸을 빼 내려 하는 것이다.

“어디서 개소리냐!”

“천계는 우리들의 것이다!”

“어찌 순수 천족도 아닌 하프엘프 따위가……!”

콰과과과광!

강력한 신성 공격들이 하멜의 몸 위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 힘을 온전히 받아 내고도 그는 멀쩡했다.

하멜을 성바퀴라 불리게 만든 생존력이 발동했고, 처음 등장할 때 로칸이 폭연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하멜에게 천신의 칠성검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러 마땅한 공격임에도 하멜은 버텨 냈고, 그 당당한 모습이 일반 천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생각과 마음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이놈들!”

“천신의 사도님을 도와라!”

“악적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수도를 가득 메운 일반 천족들이 제각기 힘을 발했다.

모든 힘을 쏟아부을 듯 공격을 퍼붓는 고위 천족들의 공격을 상쇄하고, 하멜을 보호했다.

일부는 결계를 생성해 그들의 이탈을 막아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 천족과 고위 천족 간의 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지만 격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부서져라!”

콰과과광!

하지만 포위를 뚫어 내던 이들을 덮쳐 오는 힘이 있었다.

파괴의 신성.

폭력의 왕과 절대자의 힘마저 끌어올린 로칸이 그들을 막아선 것이다.

“마, 마왕!”

“로칸!”

로칸의 등장에 고위 천족들이 치를 떨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서이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그를 쓰러뜨릴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서 비롯된 몸서리였다.

이미 마계를 일통하고, 강림한 타모스마저 막아 낸 최강 반신.

그의 등장에 몇몇은 아예 전의를 상실했다.

기존이었다면 현상금까지 걸린 그를 역천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힘을 모아 대항했겠지만,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뒤집힌 상황이 아니던가?

그와 하멜의 관계나 협작 따위를 지적하며 여론을 돌려 보려 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미 일반 천족들은 도시에 발을 묶인 다른 고위 천족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로칸과 자신들 중 누구를 돕지 않고 방관하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얌전히 죽을래, 죽도록 쥐어 터지고 죽을래?”

가볍게 배틀 액스를 휘돌린 로칸이 놈들을 바라보며 거대한 신성을 일으켰다.

498레벨이나 되는 존재가 발하는 존재감과 광기에 놈들의 몸이 쭈뼛쭈뼛 굳어 갔다.

“뭐해? 덤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위 천족들의 모습에 로칸은 기꺼이 먼저 몸을 날렸다.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놈부터 날개를 자르고 목을 쳤으며, 도망치려는 시도를 분쇄하며 놈들의 신성을 흡수했다.

뀨우!

카이도 지지 않고 한몫했다.

일대일로 싸워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속도라면 누가 와도 자신이 있는 카이였기에, 그들을 방해하고 물고 늘어지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잠깐의 방해가 놈들의 목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마음껏 날뛰어 대는 로칸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이 수없이 긴 세월 동안 모아 온 신성과 어렵게 구축하고 유지해 온 세계들이 로칸에게 마구 흘러들어 갔다.

[……를 인수하시겠습니까?]

“안 해!”

그 셀 수 없는 인수 요청을 로칸은 모두 거절했다.

더럽고 음흉한 놈들의 세계 따위, 파괴해서 모조리 신성으로 빨아먹었다.

로칸의 몸속에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한 덩어리의 신성을 이루었다.

콰득!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3급 천족 하나의 목을 비틀어 죽였을 때, 로칸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 드디어 마지막 한 계단을 딛고 올라서며 499레벨을 달성한 것이다.

[499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반신 최고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신위를 획득할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승급 퀘스트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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