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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화.천상 통일 (3) (453/500)

453 천상 통일 (3)

마계의 마족들도 충실했지만 천계를 빼앗긴 천족들도 의외로 열심히 로칸의 명령을 따랐다.

천족의 소유권이 사라졌어도 ‘천계’라는 이름이 사라지지 않은 까닭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휘청거리던 군세를 규합했고, 인근의 자유 도시들부터 정복하기 시작했다.

“항복할 텐가?”

“이곳은 자유 도시다! 그 어떠한 세력도 이곳의 자유를 침범 할 순 없다!”

하지만 그들도 순순히 도시를 내어 주지는 않았다.

로칸이 도시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겠다 선언하긴 했지만 자유 도시는 그야말로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 속에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의 집합이었으니까.

첫 번째 도시부터 거센 저항이 일어났고 로칸은 두 번 묻지 않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다 쓸어버려라.”

졸지에 악역이 되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남의 사정을 일일이 다 봐줘 가면서는 천상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복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겠지만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일말의 양보도 없었다.

무자비한 폭력만이 있을 뿐.

일명 폭력의 군세라고 불리게 될 천족과 마족의 군세는 항복을 거부한 자유 도시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역시 본보기라는 건가.’

물론 일부 도시는 로칸에게 먼저 항복을 해 오기도 했다. 로칸을 겪어 본 적 있는 도시들이 중심이었다.

로칸의 성정을 알기에 저항하면 자비 없는 폭력이 행사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고, 반대로 투항하면 생각보다 압박이나 착취 같은 것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사실 그건 그동안 그가 운영한 영지들의 사정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끝까지 저항했고, 천상에서도 가장 큰 세력인 천족과 마족들에 의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건설, 건설, 건설.”

로칸의 입장에서는 빈껍데기에 가까운 폐허가 된 도시만 얻을 수 있어도 상관없었다.

천족과 마족의 도시를, 또 기타 투항한 도시들을 획득하며 가뜩이나 많던 돈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그득그득 쌓여 갔으니까.

파괴된 건물은 다시 지으면 그만이고, 병사들 역시 다시 징집하여 채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로칸이 모든 도시의 이전 상황을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치안과 발전 상태가 이전보다 나아진 곳도 제법 많았다.

“이놈이랑 이놈은 그냥 죽여.”

다만 투항을 하는 모든 도시의 존재들이 생존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시를 로칸에게 먼저 바치며 꼬리를 살랑거리던 이들 중에서도 사망자는 나왔다. 간신배에 가까운, 기존 악덕 영주들이 그들이었다.

아무리 도시를 통으로 내어 바쳤다 하더라도 그런 놈들은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더욱이 지금 로칸에게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충성 맹세가 아니라 대중의 호응이오, 믿음이었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신성의 양이 늘어날 것이 아닌가?

반란이든 게릴라든 민중의 호응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정복 전쟁을 치르는 중에도 끊임없이 여론과 민심을 살폈다.

“후, 정말이지 끝도 없군.”

그러나 천상이 워낙에 넓은 탓에 통일을 이루는 것은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투항하는 자들이 다시 병사가 되어 참전하면서 영토 확장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는 있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뭔가 수가 필요하겠는데.”

이대로라면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당장 자유 도시들을 점령하는 데만 이만한 시간이 들다니?

정작 저항이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력과의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이지 않은가.

이 상태 이 속도로 가더라도 결국 천상 통일은 이룰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 있었다.

더구나 슬슬 게릴라전을 펼치는 이들의 소식도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저항하는 도시가 많군.”

가만히 고민하던 로칸은 자신의 계획을 수정했다.

이전에는 자신이 따로 돌아다니며 거점만 빼먹으면 되었지만 막상 천상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려하다 보니 거점 소유권만 먹어서는 될 일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소유권을 갖기 위해서는 마족과 천족들이 차지한 곳들을 옮겨 다니며 양도받아야 하는데, 거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고 건설과 내정, 민심까지 살필 필요가 있었기에 시간은 더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

그들이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역시 이럴 땐 무력시위가 최고겠지.”

그리고 로칸은 그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거기에 이미 투항한 도시들이 어떻게 변했는지까지 보여 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환마계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힘을 보여 줄지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로칸은 환마계를 타깃으로 삼았다.

환마계라면 자신과도 제법 악연이 있는 곳이 아니던가?

무혼의 왕이라 불리던 칼튼이 실각하여 자취를 감추기는 했지만 나머지 왕들의 힘은 건재한 편이었으니 상대로도 제격이었다.

모든 천상 종족들이 볼 수 있도록 로칸은 즉시 일을 벌였다.

[폭력과 파괴의 신 로칸이 환마계를 찾을 것이다.]

먼저 소문을 모든 천상에 쫙 뿌렸다. 환마계까지는 단숨에 이동할 수 있지만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자신이 어떻게 환마계를 쳐부수는지 보여 주기 위해.

또한 도발의 의미도 있었다.

스스로를 왕이라 칭할 정도로 자존심 강한 환마계의 왕들을 자극하며 도망치거나 항복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로칸 님,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 의뭉스러운 성격을 가진 환몽의 왕, 아자르가 로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모르는 척 로칸은 대꾸하지 않았다.

전해지는 메시지의 숫자가 늘어 갔지만 그 역시 모른 척을 했다.

처음부터 납작 엎드리고 나왔어도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자꾸 간을 본다? 녀석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해볼 만도 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익스퍼트든 마스터든 하이 마스터든, 새로운 경지에 막 올라선 직후에는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쩌면 신위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은연중 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아주 같잖은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로칸이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신위를 얻어 보지 못한 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499레벨과 500레벨 사이에는 지금까지 ‘격’을 올릴 때마다 벌어졌던 그 어떤 차이보다도 더 큰 갭이 있는 것이다.

당장 왕급 반신 몇이 모이든 신성의 양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불가능했고, 같은 양의 신성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수준에도 차이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력의 구조를 파악하고 제 것으로 체득하는 능력은 설령 신위자가 아직 미숙하더라도 금방 완숙 그 이상의 경지로 이끌어 주는 힘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로칸에게 이득을 보려던 시작부터 필살기급의 스킬에 신력을 몽땅 털어 넣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시작해 볼까?”

그렇게 적당히 뜸을 들인 로칸은 수많은 시선이 이곳, 환마계에 몰렸음을 확인하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더 이상 신성을 감추는 일도 없었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신성을, 제 격을 한껏 드러내며 환마계의 땅을 밟았다.

콰지지직.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매설되어 있던 함정들이 파괴되었다.

알고 밟은 것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힘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환마계가 준비한 함정은 고작 로칸의 발걸음조차 견디지 못하고 모두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로칸이다!”

“로칸이 나타났다!”

“이 존재감은……? 정말로 신격을 얻었단 말인가!”

그의 등장과 함께 일대에 소란이 일어났다.

함정의 파괴 소식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지만 사실 이상한 건 아니다.

로칸이 어느 곳을 먼저 찾을 수 없는 까닭에 광범위한 함정을 파 놓은 것이고, 그 위력은 로칸에게 피해를 입힌다기보다 진격 속도를 늦추는 정도였으니까.

결과적으로 그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후퇴, 후퇴하라!”

로칸의 등장과 함께 환수들이 바빠졌다. 일제히 후퇴를 명령하는가 싶더니 거점마저 버리고 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정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쫓으려면 쫓을 수도 있었지만 로칸은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함정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큰 의미는 아니었다.

유명계의 왕들이 그러했듯 만약 자신이 환마계의 왕들이라면 뭉쳐서 대항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로칸이라도 홀로 상대하기는 버거울 텐데 정말 신위를 획득했음을 알았으니 단독으로 승부를 건다는 것은 자살 행위에 다름없었으니까.

때문에 천천히 거점으로 진입한 로칸은 거점의 소유권을 빼앗았고, 몇 번이고 그 행위를 반복했다.

가만 두면 별 짓거리를 다 할 게 분명한 아자르의 영토부터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쪽이 혼자라는 걸 알았을 텐데, 이게 어쩔 테냐.’

로칸을 상대하기 위한 정석은 대회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추가적인 신성을 획득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환수들을 뒤로 물리고 단 한 번의 격돌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로칸이 병력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나섰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달라질 수는 있었다.

소모전을 펼쳐 그의 힘을 빼 놓으려는 시도도 충분히 해 봄 직한 것이다.

환수들을 잡아 획득하는 신성보다 사용한 신성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진다면 그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힘을 빼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로칸이 신위자의 힘에 익숙해질 것을 우려한 듯, 몸을 웅크리며 한데 모이는 것에 집중했다.

소모전을 펼치는 것은 단 한 번의 전투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다 모인 건가?”

그렇게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며 후퇴하는 병력들을 뒤쫓자 자연스레 환마계에서 가장 커다란 전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신기루 평원.

가장 많은, 또 가장 특별한 환수들이 태어나는 환수들의 요람이었다.

환수라는 것이 본디 환상의 생물들이다 보니 한데 모아 두자 꽤나 장관이었다.

같은 모습을 한 환수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각양각색, 나름의 개성을 지닌 수십만 마리의 환수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이 신기하고 즐거워 마냥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로칸의 적으로서 마주한 상태였다.

쿠웅.

깊은 울림을 지닌 로칸의 발걸음이 한 발 내디뎌지자 모두가 긴장했다.

환수들의 군대 저 너머에 있던 4인의 왕들이 제각기 신성을 발현하며 자신의 군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죽여라! 환수들의 힘을 보여 주어라!”

더불어 자신들의 고유 신성을 드러냈다.

마도, 환몽, 야성, 생존.

네 가지 색의 신성이 버무려지며 광역 버프를 만들어 냈다.

환수들을 한 단계 진화시키고, 환수들의 고유 능력을 증폭시켰다.

일반의 그것과 궤를 달리하는 스킬들이니 설령 반신급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느껴졌다.

피식.

그러나 로칸이 그들을 보며 웃었다.

1 대 수십만의 대결 구도였지만 곧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크허허허허헝!”

로칸의 함성이 환마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바람 앞의 등불 같던 환수들의 전의를 상실시키고 심령 깊숙한 곳에 공포를 심어 놓았다.

덤비면 죽는다.

이 간단한 명제가 뇌리에 박혔다.

“어딜 가는 것이냐!”

“도망치는 놈들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그 결과는 전열의 이탈.

반신 이하의 모든 환수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반신급의 환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티고 서긴 했지만 사시나무 떨듯 다리가 떨려 왔고, 눈에는 공포가 스며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로칸이 가뿐하게 배틀 액스를 들어 올렸다.

새로운 장비, 새로운 힘을 처음 제대로 시현해 볼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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