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7화.타락의 반격 (2) (457/500)

457 타락의 반격 (2)

신체 변형?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는 타락을 품는 정도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타락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모든 힘이 증폭되고 모든 마나와 신성이 타락의 힘으로 대체되었다.

그야말로 타락에게 자신을 바친 것이다.

‘사도? 아니야. 저건 마치…….’

타락의 사도이던 오딘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저건 사도가 아니라 마치 제물과 같달까. 모습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그 내용물은 완전히 바뀌었다.

제물의 몸을 통해 강림하는 악귀를 보는 것 같았다.

“별짓을 다 하는군.”

그러나 로칸의 눈빛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타락에 몸을 맡기는 순간 레벨이 또다시 상승해 상위권의 반신급의 힘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뿐이니까.

고작 그 정도로 신위에 비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병신들, 그냥 죽어라.”

놈들은 자신 있게 덤벼들었지만 로칸은 가볍게 놈들을 베어 내었다.

무기를 맞댈 때마다 타락의 힘이 강한 반발을 일으켰지만 그뿐이었다.

신성의 양과 질, 어느 것 하나 로칸보다 앞설 수 없었고 로칸이 한 가지 수를 더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의 육체.”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신성을 부여한 것이다.

[모든 능력치가 2배가 됩니다.]

그와 함께 모든 능력치가 뻥튀기되었다.

상당한 신성이 소모되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신성이 지상과 천상, 세계들에서 생성되고 있었으니까.

“모조리 박살을 내 주마.”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히, 히익!”

압살. 녀석들의 변신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로칸의 일격을 받아 내는 이가 드물었고 그마저도 거의 전투가 불가능해질 만큼 뭉개져 버렸기에 나머지 타락자들을 처치하기까지는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더불어 성을 수비하는 놈들까지 몽땅 쓸어버렸다.

살아남은 존재는 단 하나.

로칸에게 제압당해 있던 놈뿐이었다.

타락을 봉인하는 힘을 가진 사슬의 힘 때문인지 녀석은 변신조차 하지 못한 채 짐짝처럼 매달려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고 전의를 상실했다.

이 방법이라면 적어도 로칸을 몇 번쯤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도저히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살려 주십시오! 뭐든 말하겠습니다, 뭐든!”

종족을 배신했던 녀석은 다시 가볍게 동료를 배신하고 로칸에게 붙어 버렸다.

“방금 그 힘은 뭐지? 타락의 힘을 어떻게 얻은 거냐?”

“그건…… 어떤 유저 하나가 타락의 힘을 얻는 방법을 찾아서 퍼트렸습니다. 공허의 문이라는 것을 열고 방금과 같은 맹세를 하면 뻥튀기된 능력치를 얻을 수 있는 거였죠. 페널티가 있긴 했지만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공허의 문……!”

촉새처럼 나불대는 녀석의 입을 통해 로칸은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천상의 본토라 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할 때 이용했던 공허의 문을 연 이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공허의 문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꼭 자신뿐이라는 법은 없었다.

“페널티는 뭐지?”

“그게…… 스킬을 삭제당합니다.”

“스킬을?”

“예. 스킬뿐 아니라 타이틀이 되기도 하는데, 뭐가 사라질 지는 랜덤이라 쓸모없는 스킬들도 마구 익혀 두지요. 삭제당한 스킬이나 타이틀은 다시 얻을 수 없고 힘을 반복해서 쓸수록 더 많은 개수가 사라지긴 하지만 죽기 전까지 효과가 유지되기 때문에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는 해도 손해가 아닌가? 강화 효과를 얻는다 한들 스킬과 타이틀이 사라지면 손해일 것 같은데?”

“그만큼 빨리 레벨 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게……. 400레벨만 되어도 반신급하고 비벼 볼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로칸 님께도 감히 개겨 본 건데…….”

그리고 처참히 박살 났지.

하지만 로칸은 그 말을 듣고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주요 스킬이라도 날아가면? 게다가 저 힘을 받아들이면 반신이 되어 ‘세계’를 구축할 때도 애로 사항이 많을 것 같은데?

여전히 로칸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녀석이 얼른 덧붙였다.

“그, 나중에 신위를 얻게 되면 모두 복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아, 말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진짜로요! 공허의 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그랬어요!”

혹여나 로칸의 심기를 거스를까 잔뜩 쫄아 있는 녀석의 말에 로칸의 표정이 다시 묘해졌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위를 얻고 나면 신성을 사용해 새로운 스킬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클래스의 스킬은 물론이고 더 로드에 존재하지 않는 스킬까지 말이다. 로칸이 신의 육체라는 스킬을 만들어 내었듯이.

하지만 정말로 영향이 없을까? 아니, 타락에 기대어 신위를 얻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대신 신위를 얻게 되었을 때 자신의 부탁을 들어 달라고도 했습니다.”

“부탁? 그게 뭐지?”

“그건 잘……. 나중에 신위를 얻게 되었을 때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그렇군.”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신위 획득이 가능하기는 한 모양이기도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타락 스킬 따위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이제야 대충 이해가 되었다. 공허의 틈 너머 누구의 계략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이라면 혹할 만한 유저들이 제법 있을 테니까.

당장 로칸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레벨 업을 빠르게 할 수 있지 않겠나?

400레벨에 450레벨 이상인 반신과 비벼 볼 정도가 될 수 있다면, 만약 450을 넘긴 상태에서 타락의 힘을 얻는다면?

로칸과 비슷한 속도로 신위에 도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을 그냥 놓아둘 로칸이 아니지만 말이다.

“좋아. 진위 여부는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순순히 정보를 털어놓았으니 살려 주지. 한데, 계속 타락과 붙어먹을 건가?”

“아니, 이게……. 한번 힘을 받으면 제가 없애고 싶다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그래? 그럼 내가 도와주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녀석을 향해 로칸이 손을 뻗었다.

신성을 흡수하듯 타락의 힘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엇!”

[타락의 힘을 흡수합니다.]

[타이틀 ‘공허를 품은 자’ 효과로 타락의 힘을 온전히 흡수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놈의 몸에서 타락의 기운이 몽땅 빨려 나왔다.

이전에는 타락의 힘을 구분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신위를 얻고, 신성에 대한 모든 능력치 증폭된 지금은 죽이지 않고도 선별하여 빨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꽤나 세심한 작업이라서 전투 중에는 어렵지만 지금처럼 비전투 상황에, 상대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헉! 타, 타락의 힘이……!”

결과적으로, 놈의 몸에서 타락의 기운이 몽땅 뽑혀 나왔다. 로칸의 배 속으로 소화되며 천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놈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스킬 회복이…… 안 되는데요…….”

이미 타락에 바친 스킬들은 되돌아오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하지만 로칸이 눈을 부라리자 더는 투덜거릴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원래대로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제부터 타락에 손을 뻗은 놈들은 지상이든 천상이든 발붙이기 어려워질 테니까.”

그 섬뜩한 눈빛은 결코 허투루 볼 수 없었으니까.

잔뜩 겁을 집어먹은 녀석은 그대로 도망쳤고, 로칸은 자신의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지상과 천상에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타락과 연관된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타락자들의 반발이 있을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원래 지상에서도 타락 추종자들은 대륙의 공적이 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니까.

이제는 유저들이 지배하는 거점들이 더 많았지만 NPC들 중 이 말에 의문을 갖거나 불복하는 이들은 없었기에 명령은 순식간에 하달되어 타락자들의 색출이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 로칸은 남은 거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타락자들이 지키는 거점들.

‘이상하군.’

한데 이상했다. 이미 그들이 작정하고 버티던 하나의 거점이 탈탈 털리는 것을 보고도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며 달려드는 것이다.

‘손해긴 한데…….’

이렇게 되면 로칸으로서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는 했다.

놈들을 때려잡으며 소모한 신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놈들의 시체에서 신성을 흡수해야 하는데, 타락자들의 경우 일반 신성이 아니라 타락의 힘만을 남기니까.

만약 로칸이 저절로 공급받는 신성의 양이 충분치 않다면 승리를 거듭할수록 보유한 신성의 양이 줄어들고 흡수한 타락의 힘이 높아져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막대한 신성의 양에 억눌려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는 타락의 힘이지만 균형이 깨어지기라도 하면 사단이 날 수도 있다.

“이것들 진짜 병신인가.”

하지만 반대로 공급되는 신성의 양이 충만하다면?

실제 로칸은 전투를 거듭하며 신성을 소모하기만 하고 있지만 오히려 신성의 보유량은 타락자들을 상대하기 이전보다 제법 높아진 상태였다.

지상과 천상, 그리고 그의 세계들이 끊임없이 신성을 생산해 주고 있는 데다 타이틀 효과와 전용 장비의 효과로 신성 소모는 극히 낮아져 생산량이 소모량을 훨씬 앞지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일까? 자살 특공대 같은 타락자들의 저항은 이어졌고, 로칸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다 잡아 죽이면 되겠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까지 죽이다 보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될 것이 아닌가?

그것을 깨우쳤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스킬이 삭제되고 아이템도 몽땅 드롭해서 몸뚱이만 남게 되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로칸은 가차 없이 놈들을 밀어붙였다. 타락자든 타락한 반신 NPC이든 가릴 것 없었고 두려울 것 없었다.

일단 그의 일차적인 목표는 천상의 통일이었으니까.

몸을 피했다가 나중에 게릴라전으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가 영지를 빼앗는 것을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파죽지세. 로칸이 가는 거점마다 파괴가 일어났다.

일부는 로칸 자신이 부순 것이지만 또 일부는 놈들이 파괴하고 떠난 것이다.

로칸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겠다는 생각인 듯싶었지만 정작 로칸은 별 생각이 없었다.

“복구.”

그저 바로 복구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넘쳐나는 골드로 성벽과 건물을 수리하고 이전보다 더 발전된 상태로 바꿔 버리니 한강 물을 퍼낸 듯 인벤토리의 골드가 티 안 나게 줄었을 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그렇게 천상의 마지막 거점을 차지하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라브라함 영지를 빼앗겼습니다.]

“이 새끼들이?”

천상 통일을 앞둔 순간, 그가 이전에 차지했던 영지들이 일제히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라브라함 영지를 시작으로 십여 개의 영지가 동시에 공격 받고 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게릴라전을 택한 자칭 저항군들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