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 신들의 도시 (3)
쿠당탕!
비료 포대에 신성을 담아 던졌기에 얻어맞은 두 신이 바닥을 뒹굴었다. 포대가 터지며 신수의 똥으로 만든 비료를 잔뜩 뒤집어썼다.
“에퉤퉤! 이게 무슨 짓이냐!
“너 이 자식, 도시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거냐! 우리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간신히 정신을 차린 녀석들이 입에 들어간 비료를 뱉어 내며 큰 소리를 쳤지만 그 따위에 기가 죽을 로칸이 아니다.
“X까! 꼬우면 덤비든가, 새끼들아.”
오히려 덤벼 보라는 듯 잔뜩 으르렁거렸다.
여차하면 진짜 두 놈의 머리통을 쪼개 놓을 기세로 배틀 액스의 자루를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다.
“히익!”
“너, 너 이 자식, 두고 보자!”
그 모습이 두려웠던지 놈들은 기겁을 하며 엉금엉금 기어 도시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로칸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젠장, 시간만 버렸군.”
그렇게 도시 안으로 도망치는 두 놈을 보며 로칸이 혀를 찼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 게임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세 명의 신이 보증을 서야 한다고?’
따지고 보면 굳이 그들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지 않았나?
그는 즉시 신언을 일으켜, 자신이 알고 있는 신들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다.
[로칸입니다. 보증 좀 서 주십시오.]
학살의 신인 광풍을 비롯해 천신, 마신, 정령 신에게 각각 보낸 메시지였다.
그 외에도 간접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 신들이 제법 되었지만 그나마 교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행위 또는 간접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이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곧 그가 있는 위치에 강대한 존재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어, 오랜만이야! 드디어 올라왔군!”
처음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학살의 신, 광풍이었다.
이미 몇 번이고 만나고, 교류하고, 싸워보았던 그는 누구보다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로칸 님?”
그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쌍둥이처럼 꼭 붙어서 모습을 드러낸 천신과 마신이었다.
각자 천계와 마계를 지배하던 이들이고, 또 천신의 경우 마계에서 빠져나온 역사가 있기에 사이가 안 좋을 것을 우려해 둘 중 하나만 나오라는 생각으로 신언을 보낸 것인데 놀랍게도 둘이 동시에, 그것도 사이좋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두 분……?”
“아, 저희 사이가 나쁠 거라고 생각하셨군요?”
로칸이 그 모습에 짐짓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천신이 먼저 살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계에서 하계의 인연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어차피 더 이상 하계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실질적인 대답을 내놓은 것은 마신의 쪽이었다.
하계, 즉 지상과 천상에서의 일이야 어찌되었든 신계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하긴, 천당과 지옥이 나누어진 것도 아니니.’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이미 같은 신들이고, 각자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마당에 서로의 세계를 침공하는 것이 아니면 문제없지 않겠나?
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초월자이기도 하니 언제인지도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옛날 일로 투닥거리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저는 지금 그곳으로 가기가 어렵군요.]
그리고 뒤늦게 정령 신의 메시지도 전달되었다.
당장 이곳으로 오기 어렵다는 것.
그렇다 해도 이미 신들의 도시 진입 조건인 보증인, 아니 보증신의 조건이 달성되었다.
로칸은 정령 신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 놓은 뒤, 자신을 위해 모여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들의 도시로 들어가려는데 제가 품은 공허의 힘 때문에 어떤 장막 같은 것에 가로막혀 들어갈 수가 없네요. 듣자하니 신들의 보증이 있으면 출입이 허락된다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대신 나랑 한판 붙는 거다?”
“그럼요. 제 아이들에게 아량을 베풀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야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나도 도와주지. 그리고 나도 고마워. 난 네가 마계를 완전히 없애 버릴 줄 알았거든.”
다행히 세 신 모두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와 동시에 신들의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승인이 떨어졌다.
[신들의 도시에 입장할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신원 보증 : 학살의 신, 천신, 마신.]
‘됐군.’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런 귀찮은 짓까지 했다니. 어쩐지 한심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도 그놈들에게는 복수를 해 줘야겠지.’
다만 자신을 농락한 히야킨과 크로무슈에게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우습게도 신들의 도시, 그리고 신계에서는 신들끼리의 전투를 제한하고 있다지만 찾아보면 뭔가 방법이 있을 터였다.
정해진 법칙을 벗어나 상대를 괴롭히는 것은 로칸 같은 올드 게이머들의 기본 소양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일단 도시에 들어가시는 것은 해결이 된 것 같네요. 아, 늦었지만 신위를 얻으신 것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간단히 상황이 정리되자 천신은 기쁜 마음으로 로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신은 하계가 큰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천신만큼은 천족들에 대한 애정이 제법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 그들의 생살여탈권마저 쥐고 있는 로칸에게 잘 대할 수밖에 없겠지.
그 때문일까? 인사를 마친 천신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괜찮으시면 제가 도시를 안내해 드릴까요? 이제 막 신계에 도착하셨으면 이곳의 규칙이나 생활양식에 대해 잘 모르실 것 같은데요.”
선뜻 먼저 나서서 도시의 안내를 맡아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딱 봐도 신계가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곳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안내를 해 주겠다는 그의 호의는 로칸으로서도 달가운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가는 건 어때? 저 녀석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 봐야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내용일 게 뻔하잖아?”
그때, 학살의 신이 나섰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 성격일 텐데도 로칸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판 붙기로 한 약속 때문인지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가르치면……!”
천신은 뭐가 불안했는지 우려를 표했지만 로칸은 솔직히 광풍의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의 말처럼 천신이 가르쳐 주는 것은 FM적인 내용일 게 뻔하지 않은가?
FM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적인 내용을 먼저 알고 나서 편법이나 꼼수를 아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기는 했다.
하지만 로칸은 그것을 스킵하고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경력을 쌓은 게이머였다.
예를 들어 그가 새로운 게임을 한다고 기본 매뉴얼부터 읽어야 할까?
아니다. 처음에 잠시 머뭇거릴 수도 있지만 잠깐만 플레이 해 보면 대충 감을 잡는 것은 가능할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중수 정도는 찜 쪄 먹을 수 있을 테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칸은 광풍을 선택했다. 천신은 너무 모범생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로칸 님, 그치만……!”
“흐흐, 그럴 줄 알았지. 역시 너는 내 과라니까. 자, 가자!”
그 대답과 함께 광풍은 로칸에게 어깨 동무를 했고, 천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듯싶었지만 그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학살의 신, 광풍의 위세가 대단했기에 더 이상의 만류는 없었지만 말이다.
***
“푸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로칸과 함께 신들의 도시로 진입한 광풍은 로칸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계가 아닌 신계에서의 일.
공허의 힘 때문에 신들의 도시에 진입하지 못하고 수사슴의 신과 바위의 신을 만났던 이야기와 하급 트롤 신과 하급 엘프 신을 만나 열이 받았던 일들을. 그리고 통쾌하게 웃었다.
“잘했다, 잘했어. 종족빨로 신위를 얻어 까부는 그런 놈들에게는 똥 귀싸대기가 딱이지!”
특히 비료 포대로 후려친 이야기에서는 배를 잡고 큰 웃음을 터트렸다.
신들 간의 분쟁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뭔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제 일을 떠밀다가 처맞은 놈 때문에 불이익은 무슨? 혹시나 또 까불면 그냥 쥐어 패 버려.”
“예? 그래도 되는 겁니까?”
“왜 안 되겠어? 아, 그 바위 놈의 이야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 신들끼리 싸우지 못하게 하는 건 어디까지나 전력 손실을 우려한 것일 뿐이니까. 죽이지만 않으면 되지, 흐흐!”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규정이 죽이지 말라는 것이라면, 말 그대로 ‘죽이지만 않으면’ 될 일 아닌가?
로칸이 반짝 눈을 빛냈다.
“그거 좋군요, 흐흐!”
로칸은 광풍과 똑같은 놈이었다. 그런 좋은 방법이 있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겠지.
역시 광풍과 같이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참 좋은 것도 가르치는군.”
“아, 영감.”
“영감?”
[신들의 수호자 카이스만][Lv 599]
‘헐.’
광풍의 반응에 따라 그를 살피자 놀라운 정보가 나타났다.
신들의 수호자. 그리고 599레벨.
대체 이놈은 뭐지?
로칸이 흠칫 놀라며 눈을 부릅뜨자 그는 익숙한 듯 혀를 쯧쯧차며 입을 열었다.
“네가 로칸이로군. 이번에 하계의 주신이 되었다지?”
“예. 맞습니다.”
“흠, 그래도 저 망나니 놈하고는 좀 다르군. 예의는 있어.”
“거참, 또 그러신다. 저처럼 예의 바른 신이 또 어디 있다고…….”
카이스만의 말에 광풍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익숙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로칸을 바라보았다.
“그런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될 테니 너무 저놈 말을 믿지 말게. 우리는 싸우기 위해 신이 된 게 아니야. 서로와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벌을 받는다고? 대체 신에게 누가 벌을 내린단 말인가?
의아했지만 일단은 수긍했다. 광풍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라면 자신도 밉보여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저 녀석이 제대로 가르쳐 줄 것 같지는 않으니 혹시 알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찾아오게. 나는 저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네.”
“예.”
그가 가르킨 곳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말끔한 건물이었다.
신들의 수호자니 하는 이름을 가졌음에도 딱히 영주나 왕 같은 노릇을 하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봤지? 여기에서는 저 영감만 조심하면 돼.”
“근데 벌을 받는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카이스만이 사라지자, 광풍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로칸이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가 말한 벌이라는 건 무엇일까? 광풍이 자신을 속이기라도 한 것일까?
“아, 그거? 별거 아냐. ‘경계’로 이동해서 공허 놈들 좀 때려잡으면 그만이거든. 우리쪽 업계에서는 벌이 아니라 포상이지, 흐흐흐.”
그의 대답에 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런 거라면 확실히 벌이라고 보기도 뭐하다.
오히려 전투가 없는 신계의 규율에 지루해하는 광풍이나 자신 같은 신들에게는 정말 포상과 같은 일이 아니던가? 공허든 뭐든 신나게 싸울 수 있을 테니까.
로칸이 공감하자 광풍은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 갔다.
“뭐, 나머지는 비슷해. 하계하고 대충 비슷한 구조거든. 무기 상점에는 대장장이 계열의 신들이 있고, 잡화점에는 연금술 계열의 신들이, 각 직업 길드에는 해당 계열의 신들이 있지. 이미 별로 쓸모는 없겠지만 참고 삼아 둘러보는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럼 여기 신들은 평소에 뭘 하는 겁니까? 제작 계열이면 만드는 재미라도 있겠지만 전투 계열에 특화된 신들은…….”
“아, 그건 말이지…….”
한참 이야기를 듣던 로칸이 의문을 표하자 광풍이 즉시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허공에 로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하급 트롤신 크로무슈가 폭력과 파괴의 신 로칸에게 월드 크래프트를 신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