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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화.신들의 도시 (9) (467/500)

467 신들의 도시 (9)

“너도 알고 있겠지만 신성을 흡수하면 단순히 신성만 흡수 하는 게 아니야. 그 신성이 지니고 있는 특질이나 신성을 만들어 낸 존재의 정보까지 함께 흡수하는 거지. 그리고 그 존재의 힘은 어떤 식으로든 흡수한 신의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예를 들어 트롤 신을 죽였으면 그 세계의 트롤들이 더 강해지거나 성향이 미묘하게 달라지거나 하는 거지.”

“그렇군요.”

사실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신위를 얻은 뒤, 흡수한 신성에서 대상이 가지고 있던 신성의 성질 같은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던 정도?

그러나 실상은 해당 신 또는 반신의 정보까지 흡수하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기존 신성 보유자의 성향이나 특성 따위가 적용되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아직까지 자신의 세계가 특별히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폭력과 파괴의 신인 자신의 영향으로 더 받을 영향이 없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공허의 존재들도 마찬가지이지. 저놈들도 원래는 ‘신’이었거든.”

“으흠.”

이건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타모스를 비롯해 몇몇의 존재들을 구슬리고 협박해서 얻어 낸 정보에 따르면 공허의 존재들은 원래 신위를 획득한 신이었으나 어떤 사건 등을 통해 세계를 잃고 타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신성으로 흡수된 신들은 어떻게 될까?”

“음……. 하위 신?”

잔뜩 머리를 굴리는 로칸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광풍이 퀴즈 하나를 냈다.

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저 이야기에서 의도하는 것은 아마 공허의 존재일 터.

하지만 신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하자 떠오르는 것은 한 가지였다.

“반은 맞혔군. 하위 신도 가능은 하지. 하지만 대부분 자신을 죽인 대상의 밑으로 들어갈 리 없잖아? 보통은 악마라 불리는 존재가 되거나 반항적인 놈들에게 접근해 그들의 신이 되려고 하지.”

“세계 안에서 말썽을 일으킨단 말이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신들은 그런 존재가 생겨나지 않도록 24시간 감시를 하기도 하는데, 내 경우는 좀 달라. 놈이 구체화될 수 있도록 돕는 거지.”

“돕는다고요?”

의외였다. 세계에 악영향을 끼칠 존재라면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은가?

하지만 뭔가 의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 드러나지 않은 위험보다는 드러나 있는 적이 덜 위험한 법이거든. 적당히 틈을 줘서 놈이 구체화되게 만든 다음.”

“다음?”

“말살하는 거지.”

“아.”

광풍다운 해답이었다. 공허의 존재가 다시금 이름을, 신격을 얻게 만든 뒤 다시 한번 죽이는 것이다.

세계 안에서 다시 한번 죽음을 맞이한 신격은 어떻게 될까?

“그럼 신격마저 사라지고 오롯이 신성만 남아 세계에 흡수되게 되지. 어때, 꽤 괜찮은 방법이지? 효율도 훨씬 높다고?”

예상대로 신격이 사라지게 된다. 잘게 조각나 의미조차 잃어버리는 작은 신성 알갱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세계는 양분으로 삼아 쑥쑥 자라날 테고.

이해했다는 듯 로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해볼 만한 일이 아니던가?

‘조금 다른 식으로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이름과 세계를 잃어버린 타락한 신.

그들을 세계에 받아들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 같았다.

“어때, 할 만하지? 물론 이걸 해내기 위해서는 세계의 성숙도가 높아져서 공허 따위에 지지 않아야 하겠지만 사실 여차하면 현신을 하든 강림을 하든 하면 될 일이니까.”

확실히 로칸이나 광풍 정도의 무력이라면 현신이든 강림이든 하여 놈들을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터였다.

힘이 제한될 수 있다지만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힘에 제약이 걸릴 테니까.

그럼 공허를 흡수하는 것에 대한 제약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한바탕 날뛰기만 하면 될 일.

씨익 미소를 지으며 동의하자 광풍이 마주 웃으며 그를 인도했다.

“그럼 여기 수비는 저놈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한바탕 휘저으러 다녀오자고!”

먼저 앞장서서 공허의 경계를 향해 걸어 나갔다.

키아아악!

그런 광풍을 감히 막아서는 공허의 존재들이 있었지만 묵직한 도끼질 한 방이면 두 쪽이 나서 기어 다녔다.

그 한 방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콰직.

광풍은 가뿐히 그것들을 짓밟아 없애 버렸고, 공허의 경계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는 것을 경계하던 신들은 잠시 손을 놓았다.

경험상 광풍이 나섰을 때 끼어들어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흠, 저 안쪽에는 좀 재미있는 놈들이 있는 것 맞죠?”

푸확!

그 뒤를 따르며 로칸도 배틀 액스를 내질렀다.

[공허의 들개][Lv 489]

공허를 품었으니 실제 전투력은 그보다 높겠지만 반신 등급에 불과한 공허의 존재 하나를 격살하며 아무렇지 않게 경계선을 넘어섰다.

“미친놈이 하나 더 늘었잖아?”

“저거 분신 아니지? 학살의 신 저 미친놈하고 똑같은 놈이 하나 더 있다니…….”

그 모습에 경계를 지키던 다른 신들이 기겁을 했지만 정작 로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허의 신성을 제 몸 속으로 흡수하며 나아갈 뿐이었다.

“물론이지. 이제부터 잘 따라오라고. 공허가 신계를 침식하고 싶어 하기는 하는데 영 소심한 놈들이라 적극적인 공세가 펼쳐지는 법이 없거든. 그러니 제대로 유인하려면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지.”

“앞장서시죠. 따라가겠습니다.”

광풍의 멘트는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적을 유인하기 위해 공허의 한복판에 뛰어들겠다니? 그러다 상위 신급에게 포위라도 당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로칸의 담이 작았다면 머뭇거렸겠으나 설령 광풍이 없다 해도 같은 짓을 했을 위인이었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뒤를 따랐다.

“……?”

그리고 어느 순간, 광풍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분명 모습은 눈앞에 있는데 마치 길가의 돌멩이처럼 그 기척이나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와 같은 모습.

의아했지만 로칸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인하는 거군.’

이것은 유인이었다. 여기 겁 없이 공허에 뛰어든 신이 있으니 와서 잡아먹어 보라는 유인.

그리고 자신이 바로 미끼였다.

그의 말처럼 정말 자주 공허에서 날뛰었다면 이미 그의 신성 특질이 적에게도 파악되지 않았겠나?

광풍의 신성을 드러낼 경우 공허의 존재들이 지레 겁을 먹고 모이지 않을 수 있으니 자신의 기척을 감추고 로칸의 신성만 노출시킨 것이다.

“이거, 일당이라도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을 알아차린 로칸은 너스레를 떨며 오히려 신성을 증폭시켰다.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공허의 존재들에게 알리듯 눅진한 공허의 기운을 방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미 타이틀 효과의 영향으로 공허의 침식을 받지 않는 그였으니 자신을 개방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럼 내가 할까? 신성 특성을 살짝 비틀면 되는데.”

그러나 광풍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의 말처럼 저들을 유인하기 위해 신성을 위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수없이 많은 이들을 격살한 광풍일 테니, 그들의 신성 특성을 흉내 내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겠지.

그 말을 통해 로칸은 이번에도 광풍이 자신의 사정을 봐주었음을 깨달았다.

광풍이 신성의 특성을 비틀어 유인한다면 로칸이 상대하기 버거울지도 모를 거물들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성이 바뀔 뿐, 그 격은 여전할 테니까.

그 또한 속일 수도 있겠지만 광풍의 입장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터였다.

신계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인 그라면 어떤 공허의 존재가 나타나든 개의치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폭력의 신. 절대자의 힘.”

말로 노닥거리던 것도 잠시, 로칸은 곧 전력으로 신성을 일으켰다. 범상치 않은 존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허의 촉수 식물][Lv 542]

무려 542레벨이나 되는 공허의 존재.

신급의 레벨을 가졌지만 공허의 존재들은 한 끗발 위의 전투력을 보유한 것으로 봐야 하니 550레벨이 넘는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이제 537레벨에 불과한 로칸보다 한참이나 높고, 신성을 사용한 기간도 오래된 존재일 테지만 로칸이 신경 쓰이는 것은 놈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부터 존재감을 발하며 달려오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

하나같이 신급의 레벨을 지닌 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감각을 캐치했기에 오히려 공허의 촉수 식물 따위와 오랫동안 놀아 줄 수가 없었다.

“신의 육체.”

로칸은 즉시 전신 세포에 신성을 불어 넣었다. 모든 능력치를 증폭시키고 단숨에 녀석을 몰아쳐 갔다.

쿠억!

탐욕의 빛을 번들거리며 로칸에게 덤벼들던 놈의 팔, 아니 촉수들이 우수수 잘려 나갔다.

다급히 촉수를 꼬아 두껍게 만들어 보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칸은 베어 냈고, 놈은 버티지 못했다.

상대의 전력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서 발생한 비극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높게 쳐줘도 자신과 비슷한 레벨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로칸이 사용한 폭력의 신에는 이미 능력치를 배 이상 뻥튀기시키는 버서크 효과가 들어 있었고, 신의 육체 또한 육체 강화의 끝판왕이라 할 만큼 신체 능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결과는 압승.

처음부터 신성 활용 능력을 겨루는 스킬 싸움으로 몰고 갔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근접전에서 로칸은 신계에서도 상위권으로 쳐줄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광살.”

불시에 수십 개의 촉수를 잃어버린 공허의 촉수 식물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고, 몸을 채 빼내기도 전에 전신을 난자당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초극까지도 필요 없다. 상대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을 파악한 로칸은 파괴의 신성을 가득 머금은 광살을 펼쳐 내었다.

채소를 다지듯 잘게 잘게 박살을 내 놓았다.

“호오, 제법인데?”

그사이, 존재감을 감추고 있던 광풍이 어느새 들이닥친 공허의 존재들과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공허의 외뿔 악마][Lv 566]

[공허의 날개 사자][Lv 569]

그가 상대한 적보다도 강한 놈들이지만 여유가 있다 못해 한눈을 팔며 말까지 걸 정도로 가뿐하게.

새삼 광풍의 전투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도 놈을 싱겁게 처치하긴 했지만, 광풍은 공허의 존재들을 상대해 본 적이 많다지만 그 실력 하나만큼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공허의 신성을 흡수하셨습니다.]

[타이틀 ‘공허를 품은 자’ 효과로 공허의 신성을 온전히 흡수합니다.]

[당신의 신성 안에 이질적인 신성의 기운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 틈에 로칸은 공허의 촉수 식물이 남긴 신성을 획득했다.

‘아……?’

그것을 머금는 순간, 수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왜 광풍이 신성을 ‘정보’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월드 크래프트로 획득한 신성은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에너지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신격을 지녔던 녀석의 신성을 직접 획득하니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치 DNA 정보를 읽어 내듯 녀석의 역사와 능력, 특성 따위가 저절로 읽혀졌다.

더불어 녀석이 사용하던 신성의 활용법 또한.

씨익.

흡수를 마친 로칸이 미소를 지었다.

배틀 액스를 쳐들며 본격적인 사냥에 나섰다.

전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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