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8화.신계 방어 (1) (478/500)

478 신계 방어 (1)

“……헐.”

로칸은 제가 벌인 참상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방어 장치라기에 적당히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만큼이나 엄청난 위력이라니?

벼락의 형태로 쏘아진 공격들은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상급 신들의 몸뚱이를 넝마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물론 그만큼 막대한 신성이 소모되었지만 특이점에 모인 신성의 양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로칸이 느끼기에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

물론 소모된 신성 안에 로칸의 것도 약간 섞여 들어가긴 했지만 그것은 권능을 부여하기 위한 것일 뿐, 큰 수준은 아니었다.

이미 로칸도 어지간한 신성 소모는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신성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아깝네.”

때문에 신성 소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미 빈사 상태인 놈들을 주변의 신들이 물어뜯고, 그 신성을 나눠 먹고 있는 것이다.

당장 로칸이 튀어 나가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저건 저것대로 문제다.

상급 신이 지닌 신성을 빼앗기는 것도 아깝지만 그 안에 담긴 공허의 기운까지 퍼지는 것이 아닌가?

신성이 쪼개지는 만큼 공허의 힘도 쪼개지니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쌓이면 언젠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나갈까? 말까?

이미 공허를 흡수한 만큼, 저들을 잡아 죽여도 자신에게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공허를 품은 신들에 대한 살인 면허를 얻은 로칸이었기에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정확히는 그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나타난 것이다.

[신계 방어][퀘스트]

공허의 대대적인 침공이 발생했다.

다른 신들과 협력하여 신계를 방어하라.

-성공 조건 : 공허의 침공 저지

-성공 보상 : 극대량의 신성

-실패 조건 : 신들의 도시의 함락

-제한 시간 : 168시간

“……뭐?”

공허의 대대적인 침공이 일어난 것이다.

화들짝 놀란 로칸은 즉시 눈앞의 스크린들을 훑었다.

신계 전역에 깔린 구름들이 그의 눈이 되어 공허의 움직임을 대신 감지해 주었다.

“이게 진짜라고?”

까맣게 대지를 메우며 돌진하는 공허의 존재들.

그들 중 상당수는 고작해야 반신급의 존재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가진 힘은 하급 신에 육박했다.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의 전투력이라는 뜻이다.

공허의 경계를 지키던 신들이 저항해 봤지만 순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의 물량에 밀려 죽임을 당하거나 도망치기 일쑤였고, 그나마 일부 전투 계열의 신들이 저항하며 시간을 끌어 주고 있었다.

“서두르길 다행이군.”

그리고 또 한 가지. 오토로 설정된 지상의 방어 장치들이 한몫해 주고 있었다.

구름 위에 있는 이 방어 장치가 구름을 이용해 벼락을 쏘는 형태라면, 처음 작동시킨 지상의 특이점 방어 장치는 지상의 모든 것을 이용하는 형태인 것이다.

대지를 뒤흔들어 지진을 일으키거나, 지뢰처럼 신성을 폭발시켜 달려오는 놈들을 저지하고, 나무에서 열매처럼 신성 폭탄을 던져 공허의 존재들을 공격했다.

어디 그뿐인가? 꽃밭에서 가스 형태의 신성이 흘러나오며 적을 잠재우거나 중독시키는 것까지 순수 공격력 자체는 벼락보다 약하지만 전투에는 훨씬 유용한 능력들이 발휘되었다.

‘오래는 못 버티겠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무리다.

적들이 겁을 집어먹고 머뭇거린다면 다행이지만 다른 바로 옆에서 아군이 죽어 가도 그 시체를 짓밟으며 마구 달려드는 통에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집중 포격.’

로칸은 얼른 방어 장치를 집중해 공허의 경계로 구름들을 이동시켰다.

쿠르르릉!

그리고 벼락을 마구잡이로 쏟아부었다.

이걸로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적들의 공세를 잠깐은 막아 내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이, 이게 뭐지?”

“일단 후퇴해!”

덕분에 시간을 끌던 신들이 대비할 틈이 생겼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전력을 다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공허의 존재들도 이미 멀어진 그들을 쫓지 않았다.

공허의 경계를 점령하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신들의 유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 가운데 싸움이 나서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기도 했지만 곧 강력한 공허의 존재들이 나서자 잠잠해졌다.

파앙 파앙 팡 팡.

“이것들이?”

그리고 벼락을 일으킨 구름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좀 더 벼락을 쏟아부을까 고민하던 로칸도 생각지 못한 반격에 깜짝 놀랐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지성이 없는 몬스터라면 모를까, 그들은 한때 신의 반열에 올랐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완전히 자신을 잃은 놈들도 있었지만 아직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들도 많았기에 그 정도 반격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오토 모드.”

이렇게 되면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도 별 소용이 없다. 조금 더 정밀하고 전술적인 타격이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그뿐이니까.

벼락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반신급 혹은 하급 신 정도의 격을 가진 공허의 존재들뿐이었으니 그럴 바에는 놈들과 정면으로 맞붙어 한바탕 휘젓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얼른 두 번째 특이점을 벗어나자 기다리고 있던 비행 계열 신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그들도 공허의 침공에 대해 아는 것인지 저마다 목적지를 갖고 이동한 상태였다.

“일단은…… 돌아가야겠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세 번째 특이점으로 향할까 하던 로칸은 다시 신들의 도시로 방향을 잡았다.

카이스만의 의뢰에 따라 특이점을 체크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앞선 두 개의 특이점에 별다른 문제가 없기도 했고, 오히려 그가 특이점을 찾고 들어가는 것을 포착해 수작을 부리려는 놈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에게 빌미를 주느니 차라리 한바탕 날뛰고 난 뒤, 혼란한 틈을 노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특이점 조사 퀘스트에 딱히 제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세 번째 특이점의 방어 장치를 재가동시킨다면 공허의 존재들을 막아 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들의 침투 경로로 볼 때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세 번째 특이점이 있는 위치는 다름 아닌 바닷속이기 때문이다.

‘육로로 오고 있기는 하니까.’

일부가 바다 쪽을 이용해 신계를 공격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자신이 지휘를 한다면 당연히 힘을 집중시켜 땅따먹기를 시도할 터였다.

바다를 통해 공격해 오는 놈들의 수는 제한적일 테고, 그 정도는 물과 관련된 힘을 사용하는 신들이 충분히 방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적의 본진을 막아 내는 것이기에 신들의 도시 쪽으로 합류를 시도했다.

“왔냐?”

“오셨군요.”

카이와 함께 도착한 신들의 도시에는 이미 여러 신들이 모여 작전을 짜는 중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름난 상위 신들이 결정을 내리겠지만 그중에는 광풍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 사회봉사 기간이 남았지만 공허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인해 취소된 것으로 보였다.

이런 시기에 공허에 남아 있는 것은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척 위험할 수 있는 일이고 광풍이 소멸당하기라도 한다면 적에게 큰 힘을 부여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요격을 해야 합니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아요. 그대로 두었다가는 농성을 한다 해도 버텨 내기 어려울 겁니다.”

“흥, 그래 봤자 자신의 세계도 지키지 못한 멍청이들일 뿐이지. 갑작스러운 공세에 잠시 밀렸을 뿐, 그런 놈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소멸할 것이다.”

“이번에는 평소와 다르다. 함부로 생각할 수 없을 것 같군. 더구나 이미 상당수의 신들이 공허에 물들었다고 하지 않나? 혹여나 그들이 안에서 호응하면 한순간에 도시가 함락될 수도 있을 테니 나도 미리 수를 줄여 놓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상위 신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중이지만 결론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부는 아직도 공허의 존재들이 가진 힘을 무시하고 있었고, 일부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자신이 놈들을 쓸어버리겠다 주장했으며 일부는 신중하게 그들의 병력을 갉아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일부는 농성을 주장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틈에 공허를 역으로 침공해 신계의 영토를 역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것은 물론 상대에 대한 강함의 측정조차 제각각인 것이다.

“여기서 나보다 공허에 많이 들어가 본 놈 있냐?”

그때, 귀를 후비고 있던 광풍이 나섰다.

당연히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다.

때문에 신들은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광풍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놈들 중 공허에 들어가서 1주일 이상 버틸 수 있는 놈이 몇이나 있는 지 알려 줄까? 많아야 절반이야. 그것도 군주급이 나서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아니, 당장 자기가 군주급하고 맞짱 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 손 들어 봐. 자, 이게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저놈들을 무시한다고? 미쳤냐, 너네?”

“…….”

“쉬벌, 지금까지 저놈들이 힘이 없어서 못 밀고 들어온 줄 알아? 딱 이중 몇몇 신들 때문에 확신을 할 수 없어서 머뭇거렸을 뿐이지, 마음만 먹었으면 이미 신계의 3분의 1 정도는 그냥 날아갔어. 어디서 허세야?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냐?”

광풍의 평가는 냉정했다.

실제 군주급으로 불리는 공허의 존재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상위 신들 중에서도 광풍을 포함해 열 명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나머지 신들은 격만 높을 뿐,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이들도 있었고 종족 신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취급될 뿐 실제 전투 능력은 중급 전투 계열 신과 비슷한 수준인 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오랜 평화가 그들을 좀먹었다.

공허의 존재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 경쟁을 통해 강화되어 왔지만 신계의 신들은 평화 속에서 싸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광풍이 그 점을 지적하자 아무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당장 그들 중 대부분이 광풍보다 빠르게 신위를 획득했지만 그와 싸워 버틸 수나 있던가?

그런 그가 냉정하게 현실을 꼬집자 싸늘함 침묵이 흘렀다.

“그럼 광풍께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전에, 너는 어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냐?”

누군가 힘겹게 입을 열어 광풍의 의견을 묻자, 광풍은 시선을 돌려 로칸을 바라보았다.

신성이 상급 신의 반열에 오르기는 했지만 신계에 오른 지 불과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인지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던 로칸에게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전에, 꼭 싸워야 하는 겁니까?”

“뭐?”

“나 참, 이래서 망아지 같은 초보 신들은…….”

로칸의 첫마디에 그를 마뜩찮게 여기던 일부 신들이 타박부터 늘어놓았다.

“안 닥칠래?”

“헙.”

그러나 광풍이 으르렁거리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

계속해 보라는 듯 턱짓으로 신호하는 광풍의 모습을 보며 로칸이 뒷이야기를 덧붙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허의 존재들이 신계를 습격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름’을 되찾기 위함이겠지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복속시키면 꼭 우리 손으로 저들을 전부 상대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가베라.”

짜증스레 대꾸하는 일부 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로칸이 자신의 세계에 거주하는 하위 신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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