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 삼위일체 (4)
드래곤 슬레이어!
용족과의 관계가 적대로 고정되지만 용족을 대상으로 전투 시 막대한 버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타이틀 효과가 발동했다.
수호의 에인션트 골드 드래곤 주리프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는 확실하게 발동한 것이다.
그 효과는 대량의 능력치 상승과 저항력 상승, 공격력 300%에 물리, 마법 관통이 30%나 증가하는 것이었다.
설령 그 대상이 신급의 존재라 하더라도 적용되는 만큼 그 효과는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신의 돌격! 점멸!”
콰앙!
로칸의 모습이 점멸하여 적에게 틀어박혔다.
“커헉!”
“이놈!”
그러나 그 대상은 공허의 군주가 아니다. 그의 휘하 드래곤들 중 하나의 비늘을 뭉개고 살점을 찢어 놓았다.
노리는 곳은 하나.
드래곤의 심장이라 불리는 드래곤 하트였다.
신위에 오른 드래곤들에게도 통용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처럼 종족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놈들일수록 종족의 색깔을 그대로 간직했을 확률이 높았기에 목젖을 가르고 거무튀튀한 어떤 것을 잡아 뜯었다.
“크와와왁……!”
순간 녀석이 목소리를 잃었다. 아니, 신성의 대부분이 뜯겨져 나갔다.
간신히 숨은 이어 가고 있지만 드래곤이라 말할 수 없는 하등한 격으로 떨어져 버렸다.
“고놈 실하네.”
꿀꺽.
로칸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삼켰다.
드래곤 하트에 내장되어 있는 마나와 신성, 공허를 제 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배 속이 뜨거워지며 대량의 신성이 흡수되었다.
“버러지 같은 인간 놈이……!”
그 모습에 드래곤들이 분노했다.
드래곤으로서의 긍지를, 정체성을 건드린 것은 결코 좌시 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크허허허허헝!”
그러나 놈들보다 먼저 로칸이 노성을 터트렸다.
이미 다음 상대는 점찍어 두었다.
공허의 군주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찍어 놓은 순서대로 드래곤들을 베고 목 졸랐으며, 거대한 몸집을 터트려 죽이기 시작했다.
드래곤이라고는 해도 고작해야 상위 신급의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현재의 레벨보다 한 끗발 위로 쳐주는 것도 반신 정도까지의 이야기일 뿐, 상위 신급인 드래곤들이 최상위 신인 광풍이나 천신, 마신, 정령 신에 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기에 전투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점찍어 놓은 드래곤들을 순차적으로 처리하자 더욱 일방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신화적인 업적! 당신은 모든 속성의 드래곤을 살해했으며 그중에는 신위를 획득한 드래곤마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이틀 ‘드래곤 슬레이어’를 확인했습니다. 상위 타이틀로 통합, 진화합니다.]
[타이틀 ‘드래곤 킬러’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드래곤 킬러][GOD]
모든 속성의 드래곤을 사냥한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이 타이틀은 모든 드래곤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이름이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타이틀 달성 조건을 초과하여 능력이 강화됩니다.
[보유 효과]
-모든 능력치 + 1,000
-모든 저항력 + 70%
-모든 용족을 대상으로 공격력 500%
-모든 용족을 대상으로 물리 관통 70%
-모든 용족을 대상으로 마법 관통 70%
-모든 드래곤에게 받는 피해 40% 감소
-모든 드래곤들에게 [공포] 효과
퀘스트 드래곤 킬러가 완료되며 새로운 타이틀을 얻은 것이다.
드래곤 킬러. 심지어 신위를 지닌 드래곤을 포함해 사냥한 덕분에 타이틀 등급이 상승했다.
신급의 타이틀. 그 효과는 등급 값을 충분히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더욱 극적으로 벌리는 것이었기에 로칸의 일격 일격에 최강의 방어구라는 드래곤 스케일이 찢겨 나갔고, 신성마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광살.”
푸화아악!
당황하는 공허의 드래곤들의 왕의 몸이 열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고기를 해체하듯 결을 따라 베어 내는 로칸의 배틀 액스에 놈의 몸은 포를 뜨듯 분해되었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갔다.
“초극.”
마지막은 로칸의 필살기인 초극이었다.
그의 모든 스킬과 신성을 담아 내지르는 일격에 드래곤 하트가, 신성이 산산이 부서졌다.
콰과과과과과광!
대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의 모든 존재를 집어삼켰다.
공허의 존재든 신이든 모조리 집어삼키고 소멸시켰다.
“쉽군.”
그 속에서 로칸은 먼지를 털 듯 충격파를 훌훌 털어 버리며 가뿐하게 나타났다.
누가 감히 공허의 군주를 상대로 이런 오만한 말을 뱉을 수 있을까? 그가 오기 전, 광풍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녀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상성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허무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젠장, 그놈은 내 거였는데!”
그때 충분히 힘을 쌓은 광풍이 합류했다.
공허의 신성을 버프처럼 온몸에 둘둘 감은 채로 이전보다 더 강력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아직 한 번의 공격을 떨치지 않았지만 발걸음만으로 주변의 신성이 요동치고 새된 비명을 질러 대는 것이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밀어붙여라!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여덟, 아니 이제 일곱이 된 공허의 군주들은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허의 존재들을 몰아붙여 삼위일체의 결계에 틈을 만들려 들었고, 최상위 신들과 휘하 상급 신들은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쉼 없이 신성을 뿌려 대었다.
그와 함께 공허의 군주들도 전략을 바꾸었다.
공격의 핵심인 자신들은 신들을 뿌리치며 물러나고 인해전술로 꾸역꾸역 몰아붙이는 것이다.
어차피 공허의 존재들이 죽어 나간 자리에는 흡수되지 못한 공허의 신성이 남아 새로운 신들을 잉태시켰고, 이전보다는 약하지만 공허의 마수나 공허충 따위가 쉼 없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다시 삼위일체의 결계를 몸으로 들이받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신들은 그들의 소모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풍과 로칸만 빼고.
“어딜 도망가!”
“튀면 못 잡을 줄 알고? 전신의 돌격, 점멸!”
둘은 아군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진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학살을, 일방적인 폭력을 자행하며 놈들을 쓸어 버렸다.
“젠장.”
그러나 공허의 군주를 추가로 살해하는 것은 실패했다.
녀석들이 일제히 힘을 발휘해 방어에 집중한 것도 있었지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이름을 잃어버린 자들의 왕, 카이륜.
카이스만과 똑같이 차원의 힘을 다루는 그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로칸과 광풍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유 넘치던 놈의 전투력도 문제였지만 혹여 차원의 힘을 이용해 삼위일체의 결계를 무력화시키거나 뛰어 넘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들 역시 버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
카이스만이 요구했던 사흘의 시간을 버는 것에 주력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라면 뭔가 수를 낼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을 버티게 만들었다.
꾸역꾸역 쉴 새도 없이 밀려드는 놈의 지겨운 공세를 막아 내며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모두 긴장 늦추지 마!”
“아직 ‘놈’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을 버텨 냈을까? 72시간의 시간이 모두 소진되었을 때, 신계의 하늘을 뒤덮는 어떤 힘을 읽을 수 있었다.
“이건……!”
그것은 결계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차원 결계.
카이스만이 오랜 시간 동안 힘을 모아 완성한 주문답게 그물처럼 촘촘히 엮인 차원의 힘은 삼위일체의 결계의 힘을 잠시 흡수하더니 공허의 신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 모든 신들은 생각했다.
“공허의 경계를 만든 것도 카이스만이었지.”
몇몇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오래전의 일을 떠올리며 환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이거라면 된다. 이것이라면, 이 힘이라면 공허를 다시 그들의 세계로 몰아넣을 수 있다.
누군가는 환한 미소를 지었고 또 누군가는 환호했다. 어떤 이는 상처만 가득한 이 전쟁이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물론 광풍과 로칸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전쟁을 종식시키는 카이스만의 능력에 기쁨을 표출했다.
쩌저저정!
“……!”
“저게 무슨…….”
“차원 결계가…… 깨어진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삼위일체의 결계를 향해 달려들던 공허의 신들을 거침없이 밀어 내던 차원 결계가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끝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이다.
주문이 실패한 것일까? 혹시 카이스만이 상처 입은 것 때문에?
아니다. 적어도 최상위 신들만큼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형언 할 수 없이 강대한 공허의 신성을 느꼈기 때문에.
“카이륜!”
“똑같은 차원의 힘으로 상쇄한 건가?”
“대체 어떻게 녀석이 차원의 힘을……!”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카이륜이 차원 결계를 밀어내고 카이스만의 힘을 깨뜨리며 나타났다.
“나타났구나!”
놈의 존재를 발견한 광풍과 로칸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신들의 도시에서는 간신히 상처 입힌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차원의 힘이 일어나는 것을 주시하며 배틀 액스를 내질렀다.
쩌엉! 쩌엉! 쩌엉!
그들을 날려 버리려던 차원의 문들을 깨드리고 차츰 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단순히 차원 문을 부수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로칸은 공허의 힘을 사용하는 법을 깨쳤고, 광풍은 틈틈이 공허의 존재들을 사냥하며 잔뜩 힘을 모아 둔 상태였으니까.
둘 모두 이전보다는 최소 반 수 이상 앞선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또 나타났구나, 버러지들.”
물론 그들을 대하는 카이륜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미 광풍에게 한 번 당했기 때문일까? 경계와 분노를 표출하며 차원의 힘으로 그들을 겨냥했다.
“누가 또 당할 줄 알고?”
“또 피해 보시지, 할 수 있다면!”
그런 놈을 향해 둘이 형제처럼 들이닥쳤다.
“차원의 큐브.”
“……!”
그때, 그들의 주위로 차원이 절단되었다.
분절된 차원의 벽들이 네모난 상자처럼 그들을 덮었다.
가두어 버렸다.
까앙!
두 배틀 액스가 강하게 벽을 때렸지만 소용없었다.
차원의 힘을 다루지 못하는 그들의 공격으로는 차원의 벽 그 자체로 이루어진 큐브를 파괴할 수 없었다.
이미 위상 변환을 깨뜨린 광풍이지만 그것은 위상 변환이 가진 허점을 이용한 것이지 차원 자체에 간섭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둘을 가둔 카이륜 역시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최상위 신의 격을 갖춘 둘을 동시에 묶어 두는 것은 그에게도 부담이 되었는지 별다른 공격이나 압박은 하지 못했고, 대신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렇게 서둘러 죽으려 들 필요 없다. 곧 카이스만의 세계가 파괴되면 그 무엇도 너희를 보호해 주지 못할 테니까.”
“그 영감이 죽는다고? 아마 네가 늙어 죽는 게 더 빠를 거다!”
광풍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지만 광풍과 로칸, 모두의 마음에 시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녀석이 괜히 저런 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카이스만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크큭,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힘만 센 멍청이들이군. 이만한 힘을 펼쳤다면 놈의 수명은 크게 줄어들었을 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어디 발악을 해 보아라.”
투아아앙!
카이륜이 손짓하자 차원의 큐브가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삼위일체의 결계 너머 아주 먼 곳까지.
저항할 수 없는 광풍과 로칸은 형편없이 처박혔고, 차원 결계는 파괴되어 더 이상 공허의 존재들을 밀어 낼 수 없게 되었다.
“차원 굴절.”
파창!
그다음 순간, 삼위일체의 결계마저 깨어졌다.
연결점이 단 한순간이라도 깨어지는 순간 파괴되는 삼위일체의 결계가 차원 굴절에 의해 잘리며 파괴된 것이다.
“가라.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을 모조리 소멸시켜라!”
공허의 군단이 본격적인 진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