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0화.카이륜 vs 로칸, 광풍 (3) (490/500)

490 카이륜 vs 로칸, 광풍 (3)

쩌저정! 쩌엉! 쩡!

얼핏 보면 섀도 파이트 같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짓쳐 드는 차원의 힘을 막아 내고 쳐 내는 것을 반복하며 한 발 한 발 카이륜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차원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카이륜의 차원 활용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이잉.

차원의 힘은 벽처럼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카이륜은 차원의 벽을 반으로 접어 무기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콰앙! 쾅!

차원 벽은 한 겹, 두 겹 접혀 갈수록 더 묵직한 위력을 자랑했고, 광풍과 로칸의 배틀 액스에 부딪칠 때마다 점점 깨어져 나갔다.

“젠장.”

문제는 그게 아니다. 파괴된 차원 벽의 파편이 비수처럼, 표창처럼 날아든 것이다.

푸욱!

그것도 공간을 격해서.

카이륜은 차원의 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원의 하위 개념인 공간까지 사용하여 차원 벽의 파편을 피부 바로 앞까지 날려 버린 것이다.

차원 벽의 파편은 피부에 틀어박혔고 광풍과 로칸은 신성을 갑옷처럼 둘러 그것을 막아 냈다.

완벽히 막아 낼 수는 없어서 살가죽이 베이고 피가 튀었지만 말 그대로 거죽이 베였을 뿐이다. 치명상은 없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큭!”

그것이 반복되자 카이륜의 입에서도 신음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차원의 신성을 다루는 그였기에 차원 벽이 파괴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광풍과 로칸이 놈을 몰아 붙였다.

‘통한다!’

정말 통한 것일까? 놈이 차원 벽을 만들어 내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힘에 부치는 것이다.

갈수록 광풍과 로칸은 차원 벽에 적응했는지 거세게 몰아쳤고, 그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 버러지들이……!”

우우웅!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사정권이다.

그러나 카이륜은 그냥 당해 주지 않았다. 차원의 힘을 자신에게 적용해 탈출을 도모한 것이다.

장거리 이동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차원 문이 나타났고, 눈빛을 교환한 광풍과 로칸은 각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흐흐! 어딜 도망가려고!”

서로가 놈의 본체를 맡고 싶어 했지만 아쉽게도 한 명은 퇴로를 차단해야 했다.

그 역할을 맡은 것은 로칸.

힘의 차이도 약간은 있겠지만 하필 그의 뒤쪽으로 차원 문이 열린 것이다.

‘나오기만 해 봐라.’

빠득 이를 갈며 둘이 동시에 참격을 날렸다.

이동을 하든, 하지 않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순간, 녀석은 다른 루트를 선택했다.

콰과과광!

열었던 두 개의 차원 문을 모두 폭파시킨 것이다.

“쿨럭!”

무리한 신성 운용의 여파로 피를 울컥 게워 내던 카이륜이 눈을 부릅떴다.

차원 문의 폭발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광풍과 로칸이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신성을 넓게 펼쳐 폭발을 억누른 것이다. 아니, 집어삼켰다.

폭발의 힘은 물론 그가 사용한 차원력, 신성까지 모조리 집어삼켜 제 것으로 만들었다.

상당한 신성의 소모가 있는 일이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 게걸스레 먹어 치워 버렸다.

“잘 먹었다, 새끼야!”

광풍이 먼저 짓쳐 들었다. 더 높아진 차원력에 대한 이해를 담아 배틀 액스를 내질렀다.

쩌저저적! 콰앙!

다급히 신성을 일으켜 보지만 막을 수 없다. 처음으로 공격에 적중당한 카이륜의 몸이 형편없이 땅으로 처박혔다.

“크윽, 이 버러지들이……!”

그러나 거기서 끝날 리가 없다. 급히 몸을 휘돌린 로칸까지 합세해 막강한 공격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쾅 쾅 쾅 쾅!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울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이 그의 몸에 새겨졌다.

차원력을 둘러 막아 내고는 있지만 공격을 받을 때마다 깨어져 나가는 그의 신성은 모조리 둘에게 흡수되고 있었고, 이렇게 되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카이륜의 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

그 순간, 하늘이 무너졌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한순간 정전이 된 듯 하늘이 빛을 잃더니 다시 느린 속도로 푸른빛을 되찾아 가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뭐래는 거야, 이 미친놈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몸을 엄습했지만 그들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강하게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카이륜의 몸을 두들기고 베어 낼 뿐이었다.

“오라, 나의 세계여!”

그러나 카이륜은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어려움이 모두 장난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공격을 받아 내며 광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

“이런 씨……!”

그리고 잠시 후, 어딘가에서 날아온 막대한 신성이 놈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막으려 해 봤지만, 놈에게 흘러가기 전 가로채서 흡수해 버리려 했지만 로칸과 광풍에게는 자격이 없다는 듯 그들을 통과해 버렸다.

카이륜의 몸에 주입되기 시작했다.

“끝내! 참수!”

“초극!”

뭔가 잘못됐다. 지금 끝장을 봐야 했다.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낀 둘은 지체 없이 자신들의 필살기를 사용했다.

모든 것을 베어 내고 파괴시키는 전율적인 일격이 동시에 카이륜에게로 꽂혀 들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그와 함께 대폭발이 일어났다.

신들의 군단 한쪽에서.

로칸과 광풍이 쏘아 낸 필살의 기운이 카이륜의 몸이 아니라 아군의 진영에서 터져 나간 것이다.

“수고를 덜어 주는구나, 버러지들.”

카이륜이 상처 입은 몸을 가만히 일으켰다.

이 정도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만한 눈빛을 회복하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새끼가…….”

로칸과 광풍은 분노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배틀 액스에 무거운 기운이 내려앉은 까닭이다.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근력으로도 쉽게 배틀 액스를 들어 올리기 어려웠다.

“무슨 짓을…….”

처음에는 배틀 액스였지만 점점 팔로, 어깨로, 곧 몸 전체가 무거워졌다.

아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단순한 기분 탓이나 정신 공격 따위가 아닌 진짜임을 증명하듯 그들이 서 있는 땅마저 내려앉기 시작했다.

“너희 따위가, 진정 차원의 힘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쿠궁!

몸에 무게가 더해졌다.

대체 차원과 무게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것은 현실이었다.

이대로라면 당한다. 오직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까고 있네.”

“흐으으읍!”

그렇다면 단번에 풀어낸다. 로칸과 광풍은 온몸의 핏대를 세우며 용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신성과 세계의 힘까지 이끌어 놈의 속박을 풀고, 배틀 액스를 내리긋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다.

“이 정도까지 하다니, 버러지치고는 쓸 만하구나. 하지만 여기까지다. 신계, 공허. 그 따위에 얽매여 있는 너희 따위의 목숨은 여기까지일 테니까.”

콰앙!

“커헉!”

하지만 배틀 액스를 내리긋기도 전에 그들의 눈앞이 터져 나갔다.

차원력이 폭발하며 내부를 진탕시키고 그들의 존재조차 흐릿하게 만들었다.

“타고난 격이라는 것은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선택받은 이의 힘 앞에, 너희 같은 버러지들은 그저 따르고 복종하면 그만이란 말이다!”

공격은 계속되었다.

어지간한 신들은 일격에 소멸할 만한 가공한 위력의 공격들이 연달아 터졌지만, 불사의 권능을 지녔기 때문인지 둘은 어떻게든 버텨 냈다.

생명력이 바닥을 치고, 신성이 촛불처럼 흔들려도 악착 같이 버텨 내고 배틀 액스를 들어 올렸다.

“이제 내가 너희를 지배해 주마. 그동안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고, 영원한 공포와 절망 속에……!”

푸욱!

그 순간, 카이륜의 몸이 꿰뚫렸다.

‘……창?’

놈의 가슴을, 심장을 삐죽 뚫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묵빛의 창이었다.

대체 누가 있어 그에게 이런 일격을 날렸단 말인가?

아니, 그 전에 그만한 기척을 파악하지 못할 카이륜이 아닐 텐데?

“이런 벌레 같은 놈이!”

푸확!

황망한 눈으로 뒤를 돌아본 카이륜이 노성을 터트리며 상대를 난자했다.

“……새끼, 왜 끼어들어서…….”

차원의 벽, 아니 차원의 검에 난자당한 것은 다름 아닌 공허의 광전사였다.

광풍의 조력자이자 이름을 잃은 광전사 신.

언젠가 광풍을 통해 이름을 되찾기로 약속했던 녀석이 카이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츠즈즈즛!

그러나 상처는 곧 회복되었다.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심장이 관통당한 것은 회복하기 어려울 텐데, 더구나 공허의 광전사라면 광풍이 인정할 만큼의 강자일 텐데도 놈은 아무렇지 않게 터지고 꿰뚫린 심장을 회복시켰다.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신과 같은 광경이었다.

“……운이 좋구나, 버러지들.”

공허의 광전사의 숨을 끊어 놓은 카이륜이 표독스럽게 돌아섰다. 로칸과 광풍을 지그시 노려보다가 그들에게 내려진 차원의 힘을 회수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망가진 심장을 복구하는 것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 힘을 완벽히 소화해 내고 나면 그 무엇으로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까지 그 질긴 목숨을 보전해 두거라.”

“어딜……!”

부웅.

로칸과 광풍이 즉시 달려들어 봤지만 녀석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짧은 시간만으로도 장거리 이동을 할 만큼 차원력이 더 강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카이스만의 죽음. 그의 신성과 세계의 흡수.

그것이 아니라면 갑작스러운 파워 업이 설명되지 않는다.

“놈들이 물러난다!”

“쫓아야 하나……?”

그와 동시에 공허의 군단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일부 신들이 쫓아 보지만 공허의 군주들이 쏘아 낸 신성 포격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쫓을 것인가, 말 것인가.

“모두 재정비하라!”

광풍이 결정을 내렸다.

누구보다 호전적인 성격의 그였지만 지금은 확인을 할 때였다.

카이스만의 죽음에 대한 확인을.

무거운 마음으로 신들을 추스르고 전열을 뒤로 물렸다.

신들의 안전을 확보한 뒤, 공간을 넘어 신들의 도시로 향했다.

“젠장!”

콰앙!

광풍의 발 구름에 건물이 무너질 듯 출렁거렸다.

다시 돌아간 카이스만의 거처에는 그가 있었던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죠?”

“카이스만 님이 소멸되셨다니…….”

뒤늦게 쫓아온 최상위 신들이 그들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한마디씩 의견을 내어놓았다.

“지금 쫓아야 합니다. 정말 카이스만 님의 신성을 흡수한 거라면……. 완전히 그 힘을 소화하기 전에 끝장을 봐야 해요.”

“하지만 지금도 이미…….”

“마지막에 당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버거울 겁니다.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남긴 상처가 작지 않아요. 놈이 물러난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러니 당장…….”

“그만!”

첨예한 의견의 대립 속에 광풍이 거칠게 소리쳤다.

신들의 수호자인 카이스만의 대행으로서 그들을 잠시 물리고 로칸과 단둘이 마주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쫓아야지요.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놈이 그 힘을 완전히 체득하면……. 정말 기회가 없을 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그 이상한 힘을 완전히 소화해 낸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좋아. 채비를 하지.”

의견 교환을 마친 둘은 억지로 기력을 회복했다.

카이륜을 쫓아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아, 광풍 님, 이것.”

다시 밖으로 나가 다른 신들을 만나기 전, 로칸이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공허의 광전사. 그가 남긴 공허의 신성이었다.

“그건……. 네가 맡아 줄 수 있을까? 내 세계는 다른 신들을 품기에 적합하지 않아. 원래는 카이스만 영감에게 부탁해서 작은 세계라도 가질 수 있게 해 주려고 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군.”

“……알겠습니다.”

결국 공허의 광전사가 남긴 신성은 로칸이 취했다.

그의 세계라면 다른 공허의 신을 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만큼 위험해지긴 하겠지만 이미 최상위 신들 가운데에서도 광풍 다음이라 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춘 그였으니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지금부터 놈을 쫓는다. 단, 추격조는 딱 다섯으로 한정하지.”

다시 밖으로 나온 둘은 모여든 신들에게 선언했다.

광풍과 로칸의 능력으로 함께 데려갈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셋. 둘을 포함하면 딱 다섯 정도가 한계였으니까.

신계의 운명을 결정지을 최정예 파티가 모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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